고창 선운사 선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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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등산

2018. 9. 28.


코스:선운사 주차장~선운사~도솔암~용문굴~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선운사 주차장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 )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707년(숙종 33)에 쓰여진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는 전자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진흥굴, 도솔암 밑에 있다.)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하였으니 이것이 이 절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 창건설화는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고 하는 사실에 따라 형성되었겠지만, 당시에 이 지역이 신라땅에 속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또 검단의 창건설을 보면 위덕왕 24년은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난지 2년 뒤에 해당한다. 그런데 검단과 해구()에 있는 검단리()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즉, 옛날에 검단선사가 바닷가의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쳤기에 해안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하였다는 것이다.

두 설은 모두 설화이기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 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이 중수하였고, 1472년(성종 3)부터 10여년 동안 극유()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극유는 1472년에 이 절에 이르러 뜰에 구층석탑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중창을 발원하였다.

그는 이듬해 2월 제자 종념()과 함께 상경하여 성종의 작은아버지 덕원군()이 쓴 원문()을 얻어 중창을 시작하였다. 그 해 여름에 나주 보을정도()의 재목 1,000여 그루를 3척의 배에 싣고 왔으며, 147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와 20여 가마를 구웠다.

그리하여 1474년에는 2층의 장륙전(殿)과 관음전(殿)을 짓고, 1475년 봄에는 선왕선가()를 위한 수륙재()를 크게 열었다.

1476년에는 천불대광명전(殿)을 조성하였고, 1481년에는 모든 건물이 단청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장전(殿)·동상실()·금당()·능인전(殿) 등을 짓고, 또한 영산회() 등 53불회탱()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10여 년에 걸친 극유의 중창불사로 인하여 선암사는 옛 모습을 되찾았는데, 건물이 189채나 되는 웅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부터 1609년에 이르는 2년 동안 승려 수십 명이 선방() 한두 개 소를 먼저 지은 뒤 몇 년 동안에 법당 3칸을 지었다. 1613년(광해군 5) 봄에 태수 송석조()가 일관()에게 중창을 부탁하자 일관은 원준()과 더불어 수많은 집을 돌며 시주를 모았다.

그리고 어실을 빙자하여 고창 문수리에서 재목을 얻어 먼저 보전(殿) 5칸을 세운 다음, 상·하 누각과 동·서 양실()을 건립하였다. 이때의 중창은 6년 만인 1619년에 끝을 맺었다.

그 뒤 1707년(숙종 33)에 이르기까지 일관·원준 등의 선사들이 서로 계승하여 거듭 건물을 세우고 화상을 조성하는 등의 불사를 계속하였다. 1698년에 김우항()이 쓴 「선운사중신기()」에는 중수에 참여하고 당시 선운사에 살고 있던 대중 260여 명을 기록해두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시의 사찰규모와 조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1707년에는 현익()이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를 지었다.

1839년(헌종 5) 비로 인해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졌다. 이에 찬성()·의홍()·성찬() 등이 법당과 향운전(殿)을 수리하고 정문()의 기와를 갈았는데, 1840년 가을에 중수를 마쳤다.

이 때의 중수내역을 기정진()이 「무장현선운사대법당사적기 」에 기록하여 남겼다. 1965년 팔상전을 중수하였고, 197년 성보전시관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운사 사적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殿)」이라는 제목 아래 남아 있다. 그것은 이 시기의 선운사의 역사를 아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법당:1614년 봄 창건, 화주() 원준. 1618년 봄 기와 및 수장(), 화주 일관. 1619년 가을 단청, 화주 심우(). 1620년 봄 향운각() 창건. 1633년 봄 불상삼존 조성. 1634년 가을에 봉안, 화주 법정().

1648년 여름 불상 도금, 화주 담형(). 1661년 봄 개와(), 화주 의운(). 1688년 봄 단청, 화주 경탄(). 후불탱(), 화주 일진(), 별좌() 법안(). 1697년 봄 개와, 화주 극현(), 별좌 삼정(). 1839년 5월 큰 비에 법당 오른쪽 2칸 무너짐. 1840년 봄·여름 보수 및 단청, 화주 성찬.

② 천불전:1618년 봄 창건, 화주 영일(). 1668년 봄 천불() 조상, 별좌 대해(). 도괘불탱(), 별좌 혜정(). 개와, 화주 사준(). 1677년 봄 중창, 화주 쌍운(). 1678년 가을 단청, 화주 덕기(). 1840년 8월 법당이 상하여 오래 보존을 기할 수 없어 석상화탱()을 봉안.

③ 시왕전(殿):1675년 봄 창건, 화주 덕문(). 1676년 가을 개와, 화주 해준(). 1669년 봄 수장, 화주 찬휘(). 1670년 봄 단청, 화주 사우(). 1676년 5월 시왕상() 봉안, 화주 극호(). 1680년 봄 중창, 화주 선열().

④ 나한전(殿) 및 영자전(殿):1677년 봄 창건, 화주 유선(), 별좌 천호. 1681년 봄 나한존상(), 화주 명월(). 1681년 가을 단청, 화주 성해(). 1694년 봄 제공전(殿) 개와, 화주 경탄.

⑤ 정문():1620년 봄 창건, 화주 요의(). 단청, 화주 태연(). 1680년 봄 중창, 화주 혜정(). 개와, 화주 사우(). 1689년 봄 단청, 화주 경탄. 1690년 봄 좌우제석탱(), 화주 일진.

⑥ 천왕문():1624년 봄 창건, 화주 지정(). 1674년 봄 수장, 화주 종민(). 단청, 화주 법안. 1669년 봄 개와, 화주 지휘(). 1680년 봄 천왕등상(), 화주 사준.

⑦ 팔상전(殿):1706년 봄 창건, 화주 행성(). 팔상탱(), 화주 심경(). 1707년 봄 수장·삼존등상()·단청, 화주 심경.

⑧ 향적전(殿):창건 화주 숭민(), 중창 화주 홍열(). 1690년 개와, 화주 계순().

⑨ 진정당():1658년 봄 중창, 화주 인종().

⑩ 약사전(殿):1675년 봄 창건, 화주 사준.

⑪ 극락전(殿):1678년 봄 창건, 화주 성혜().

⑫ 부도전(殿):1619년 봄 창건, 화주 탄혜().

⑬ 부도암():1620년 창건, 화주 계수().

⑭ 능인전:창건 화주 각현().

⑮ 대승전(殿):1691년 봄 창건, 화주 선우().

⑯ 해납료()·삼선료():1659년 봄 창건, 화주 승초().

⑰ 칠성료()·청심료():1682년 봄 창건, 화주 해집().

⑱ 관음전(殿):1705년 봄 창건, 화주 영택().

⑲ 양계료()·양봉료():1705년 봄 창건, 화주 태초()·법총().

⑳ 대종()·중종():1701년 봄 주성(), 화주 희원().

㉑ 상고():1701년 봄 조성, 화주 설화()·경준(), 별좌 두성().

㉒ 승당():1656년 봄 개건(), 화주 육수(). 1666년 가을 개와, 화주 정행(). 단청, 화주 명안().

㉓ 지장전:1618년 봄 창건, 화주 웅민(). 1666년 가을 개와, 화주 옥능()·삼각().

㉔ 동상실:1618년 봄 창건, 화주 견우(). 1646년 가을 중창, 화주 정학(). 1711년 봄 중창, 화주 겸 별좌 영각().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영산전·관음전·팔상전·명부전·만세루()·산신각·천왕문·대방()·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은 정면 5칸의 맞배기와집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세루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인 선운사금동보살좌상(), 보물 제280호인 선운사지장보살좌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영산전목조삼존불상(殿)을 비롯하여 약사불상()·삼존불좌상·보살입상()·아미타삼존상()·십육나한상()·판관상()·녹사상(使)·사자상(使)·십대왕상()·동자상()·판관상·호법신장상(, )·팔상전석가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인 6층석탑, 제31호인 범종, 그리고 중종과 부도()·탑비() 등이 남아 있다. 이들 중에서도 금동보살좌상과 지장보살상 등은 미술사적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동불암()의 마애불상()은 높이 13m, 너비 3m이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와 탑비 중에는 김정희()가 쓴 백파대사사적비()와 채제공()이 쓴 설파대사사적비()가 있고, 절 아래 마을 입구의 오른쪽 밭 가운데 「선운사동구」라는 시를 새긴 서정주()의 시비()가 서 있다.

이 밖에도 이 절 주변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당황하여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 조망이 뛰어난 만월대(滿),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 등의 명소가 있다.

19세기 전반기까지는 이 절에 속한 산내()의 암자가 무려 50여 곳이나 있었다. 곧,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상도솔()·기출암()·천리암()·수선암()·연대암()·성대암()·수다사()·동암()·도성암()·청풍암()·천등암()·광정암(), 1618년에 인해()가 창건한 내원암(), 1665년 학철()이 중창한 석상암(), 1666년에 학철이 창건한 청련암()이 있다.

또 1674년에 영조()가 창건한 백련암(), 1672년 사준이 창건한 상남암(), 1676년 처인()이 창건한 중남암(), 1693년 천성()이 창건한 동운암(), 1658년 한해인()이 창건한 하도솔(), 1702년 거사() 최태신()이 창건한 북도솔(), 1699년 명우()가 창건한 미륵암(), 영조가 창건한 수도암(), 1596년 정도암() 등이 창건한 고암굴(), 1573년 상일()이 중창한 은선암()이 있다.

또 1576년 상조()가 중창한 은적암(), 1582년 경신()이 중창한 상암(), 1583년 성문()이 중창한 월출암(), 1575년 철심()이 중창한 의경암(), 1710년 해운()이 머물던 명심암(), 1709년 경문()이 창건한 한산전(殿), 1707년 지휘()가 창건한 백운암(), 1713년 태경()·응묵()·봉흠() 등이 창건한 성도암() 등의 30여 암자와, 이름만이 보이는 20개 암자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운암·석상암·참당암()·도솔암 등 4개의 암자만이 남아 있다. 특히 도솔암의 내원궁()에 봉안된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80호이고. 선운사참당암대웅전은 정사각형 맞배집으로 구포()장식의 건축양식이 독특한데 보물 제803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운사 [禪雲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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