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7. 1. 16:25

플라스틱 제로로 가는 여정

 

세종시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중견 공무원은 허건 날 저녁이 고민이다. 밖에서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자니 쓸쓸하고 무료하다. 가끔 총각 후배들 초대하는데 처음 환호하더니 이내 시큰둥한 게 아닌가. 맛이 뻔하기 때문이란다.

 

일주일 한 번에서 한 달 한 차례, 서울의 집을 다녀오면 잠깐 신선했던 냉장고의 풍요로움이 이내 시들해진다. 퇴근하며 반찬가게를 들리는데, 배고프면 조심해야 한다. 얇은 비닐에 둘러싸인 스티로폼 접시의 소담한 반찬마다 맛나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사면 냉장고에 남아돈다. 먹성 좋은 후배를 모시지만, 그들도 지친다. 냉장고를 속절없이 차지하던 반찬들은 한꺼번에 쓰레기통으로 향하기 일쑤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저녁도 녹록한 건 아니다. 텔레비전 앞 소파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삼식이를 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요리학원에 등록하는 남성이 많다는데, 무슨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 알지 못하는 한 사내가 묵은김치에 순두부를 넣고 끓여 보았다. 김치와 순두부의 오묘한 섞어찌개가 완성될 거라 굳게 믿었는데, 웬걸. 아무 맛도 내지 않았다. 사방팔방에 은근한 도움을 청했다. 귀한 친구의 묘방은 라면스프였고, 에라, 넣었더니 먹을만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아내에 이실직고 못 했다. 그랬다간 소파를 지키기 어려울 거 같아서.

 

라면스프는 작은 비닐봉지에 담겼다. 라면도 비닐봉지에 담긴다. 생각하니, 라면은 필시 비닐과 제 운명을 키운 거 같다. 비닐이 없었다면 늦도록 소파 고집하는 야식이, 나트륨 중독에서 당뇨로 직행하는 배불뚝이도 드물었겠지. 비닐 이후 기저질환자가 대거 늘었고, 오호통재라! 젊은이들이 가소롭게 여기는 코로나19가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 무섭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우리집 감자를 누가 재배했는지 잘 알던 시절, 짚으로 만든 꼬투리에 달걀 한 꾸러미나 반 꾸러미 담아 팔던 동네 가게는 주전자를 가지고 가야 막걸리를 한 되 퍼담아 주었다.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가며 두부 한 모 사오던 아이는 이웃 농부가 광에 감자를 쏟아넣었다는 걸 짐작하면서, 신문지 없으면 두부와 생선은 사고 팔 수 없을 거라 믿었다. 유튜브가 신문을 대신하는 요즘은 어떨까? 비닐 없으면 두부부침과 고등어구이는 꿈꾸기 어렵겠지.

 

언제부터 전복을 라면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완도 일원에 여객선 드나들기 빠듯하게 집중된 전복 양식장 덕분인데, 그 양식장은 태풍을 조심해야 한다. 뒤집히면 스티로폼 조각들이 바다를 한동안 더럽힌다. 스티로폼으로 양식장을 띄우지 않는다면 전복이 라면에 들어갈 수 없고 우럭 매운탕이 주당의 최애메뉴로 등극할 수 없다. 비닐이 없다면 편의점에서 온갖 과자를 쉽게 만날 수 없고 짜장면과 짬뽕의 배달이 원활할 수 없다. ‘배달의민족은 대기업의 지위를 넘보기 어려웠겠지.

 

사진: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석유에서 비롯된 썩지 않는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석유는 고갈이 머지 않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선도국이 되어달라!” 코로나19 방역에 남다른 성과를 보이는 우리나라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서양학자의 당부가 그렇단다. 뿌듯하다. 4차산업이 궤도에 오르는 시점에서 한국은 방역을 넘어 민주주의와 경제의 선도국이 되어 달라고, 저명한 미래학자가 조언했다고 우리 언론이 전했다. 그도 그럴 게,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마스크와 방진복은 물론, 코로나19 감염을 빠르게 확인하는 진단키트를 세계 각국의 호응으로 수출한다. 우쭐해진다.

 

비닐과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우리는 코로나19커녕 일본의 수출규제도 이길 수 없었다. 플라스틱으로 적절하게 전기를 차단하거나 표면을 코팅하지 않으면 반도체가 정교하면서 가벼울 수 없다지 않던가. 결국, 석유다. 석유를 가공해 얻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있어야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고 초고층빌딩으로 하늘을 찌를 수 있으며 제3세계 앞바다의 물고기 씨를 말릴 수 있다. 대형 어선으로 바닥에서 훑는 쌍끌이어업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대한 그물이 있기에 가능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젊은 기자는 석유종말시계에서 갤런당 2달러인 석유 가격이 4달러가 되면 고등학생은 운전을 포기하고 부모차에 의지하면서 대화가 무르익을 거로 전망했다. 12달러로 오르면 승용차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웃이 살가운 마을이 도심에 늘어나고, 16달러가 되면 원양어선이 사라져 초밥은 자취를 감출 거라 예상했다. 나아가 20달러 이상 치솟으면 전투기를 띄울 수 없으므로 세계는 평화로워질 거라 상상했다. 재치 있는 상상인데, 석유가 고갈되면 비닐과 플라스틱은 귀중품으로 등극할 게 분명하다.

 

2007년 한 저널리스트는 파티는 끝났다에서 2005년 즈음 유정에서 퍼올리는 석유를 소비량이 초과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하지만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거라는 주장인데, 기껏 100여 년 전 존재를 알기 시작한 석유는 인류 역사에서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질 게 틀림없다. 지금은 석유 파티 중이다. 한데 파티는 일상이 아니다. 잠깐 즐긴 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석유를 모를 때 인류는 불행했을까?

 

패스트푸드는 석유 없이 불가능하다. 공장식 축산은 옥수수가 필수 사료이고 옥수수는 옥수수에서 얻는 열량의 10배의 석유를 동원해야 생산할 수 있다. 한 계절만 입으라는 패스트패션도 석유가 창조했다. 면직물에 개성을 넣어 염색한 티셔츠는 젊은이 방에 가득한데 못 입으면 유행에 뒤처지니 우울한가? 그렇게 광고하는데, 많은 옷에 플라스틱인 인조견이 섞인다. 세탁기 한 번 돌릴 때, 옷 한 벌에서 마이크로플라스틱 1500개 이상이 나온다고 영국 연구팀이 발표한 적 있다. 그 플라스틱은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침없이 통과해 바다로 나간다.

 

등지느러미 없는 돌고래 상괭이는 우리 서해안이 터전이다. 천연기념물이지만 죽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괭이 사체의 위를 조사하면 비닐이 가득하다. 쥐치 같은 물고기를 즐기던 상괭이가 왜 비닐을 삼킬까? 남획이 한몫했다. 쥐치가 없으니 아열대화된 서해안에 몰려드는 열대성 해파리라도 먹어야 산다. 양식장에서 빠져나오는 배설물은 해파리를 유인하는데, 허기진 상괭이 눈에 바닷물에 흐물흐물 찌든 라면봉지가 해파리로 보인다. 허겁지겁 먹었겠지.

 

바닷물에 삭으면 마이크로플라스틱으로 분리돼 우유처럼 해저로 내려간다는 비닐봉지들은 요즘 대형 식품점에서 찾기 어렵다. 하지만 바다로 이미 들어간 비닐, 스티로폼, 플라스틱은 막대할 텐데, 세포막을 통과하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생물의 생식과 성장을 방해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소금에 포함되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수돗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먹이사슬을 따라 인체에 스며들기 때문인가? 불임클리닉을 두드리는 부부가 늘어난다고 한다.

 

유럽은 적어도 2040년까지 자동차나 석탄화력에 필수인 내연기관을 없애겠다 선언했지만, 석유를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고갈 앞둔 석유를 태워 없애기보다 어떻게든 활용하겠다는 의지인데, 산업문명을 조금이라고 고수하려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리라. 석유 고갈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인류는 생존해야 하고 코리아19보다 심각한 감염병도 견뎌야 하는데, 비닐 없이 두부 한 모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떤 준비에 나서야 할까? 시장바구니는 아니다.

 

자동차 없이 살 수 있을까? 도로를 대거 없앤 자리를 온갖 생물이 어우러지는 생태공간으로 바꾼다면 코로나19는 지금처럼 전파될 수 없다. 비행장이 사라지면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넘나들지 못한다. 자동차와 비행기를 모르는 인류 조상은 해외여행을 인생 바구니의 마지막 목록에 넣지 않았다. 열대과일을 사시사철 먹지 않아도 배곯지 않았다. 해안의 드넓은 갯벌이 복원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안전하고 맛있는 전통음식을 실컷 맛볼 것이다. 마을에서 자급자족 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살려낸다면, 석유가 거의 필요 없을 텐데.

 

머리 회전이 빼어난 인류는 석유 없이 행복한 내일을 구상할 텐데, 어쩌면 조상의 삶에서 힌트를 얻을지 모른다. 그런데 걱정이다. 혹시 석유 분해하는 미생물이나 곤충의 유전자를 분리하는 건 아닐까? 벌써 그럴 조짐이 있다. 과학기술이 탐욕스런 산업의 노예가 된 요즘, 불길함을 엄습한 생명공학 기술로 석유 분해 유전자를 이 생물 저 생물에 넣는 게 아닐까? 그럴 경우, 생태계가 한꺼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대안은 무엇일까? 인류의 초심이다. 석유 모르던 시기를 눈여겨보자. 진정한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일상이 거기에 있을지 모르는데, 땅과 물과 사람이 살아나는 마을이다. 간디는 인도가 70만 개의 마을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립을 의미한다. 의식주에서 에너지와 돌봄까지 자립할 수 있는 마을이다. 그런 마을에 비닐과 플라스틱이 뭐 필요하겠는가? 몽상이라고? 무슨!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 아닐까? 그 길을 우리가 선도하면 어떨까? 후손으로 이어질 지속 가능한 행복의 어쩌면 유일한 길일지 모르는데. (가톨릭일꾼, 2020년 여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6. 29. 23:09

 

날이 더워지니 하루 만보를 걸으려면 오전이 좋다. 선선한 밤이 더 좋지만, 약속이 이어지면 건너뛰기 일쑤다. 약속 없으면 보통 아침 먹고 집을 나서는데, 온라인 강의 파일을 보내면 그만인 시간강사 처지라서 오전을 활용할 수 있다. 학교 방문할 기회를 잃었어도, 그나마 다행인가?

 

할머니의 코로나19 감염이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이어졌다는 인천발 뉴스가 나왔다. 해당 학교에 검사 설비가 급히 마련되고 전교생이 검사했다고 덧붙인 기자는 당분간 온라인 수업이 이어질 거라 전했다. 할머니는 어디에서 감염되었을까? 어설픈 물건 팔기 위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 불러모으는 방문판매 공간일까? 지하철 인천시청역 구내의 탁구장은 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는데, 탁구장도 코로나19 감염 통로가 되었다. 교회와 클럽, 콜센터와 택배회사. 우리네 세상의 약한 고리에서 연실 탈이 났다. 어디가 남았을까?

 

비말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공원이나 거리를 걸을 때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꼭 쓰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멀쩡해 보인다. 사실 그럴 것이다. “거짓말 강사로 알려진 젊은이가 나타난 이후, 인천이 감염 핵심지역처럼 오해받기도 했는데, 이제껏 300만 인구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300명이 안 된다. 대략 만분의 일이므로 방사능 허용기준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만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확률인 1밀리시버트 이하의 방사능은 안전하다는데, 코로나19의 위험성은 암보다 분명히 낮다.

 

유전자가 DNA인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 가깝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RNA로 구성된 코로나19는 갑자기 나타났지만, 없던 바이러스는 아니다. 1930년대 가축에서 존재를 알았어도 의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다.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던데, 발견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축 사이에 무증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데, 사람 사이에 증상 없이 빠르게 퍼지면서 무서워졌다. 작년 겨울에 중국 무한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코로나19는 올해 봄부터 세계 모든 국가의 뉴스를 잠식하고 말았다.

 

하루 확진자가 10명 아래로 이어지면서 마음을 놓았던 시민들은 거짓말 강사 이후 확연하게 늘어나는 상황에 적잖게 당황한다. 문제의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그 젊은이는 학원에서 강의한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우리의 탁월한 추적 시스템 덕분에 발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가? 비말이 전달될 거리에서 마스크 없이 춤을 추었기에?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거리두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거짓말을 해 역학조사를 더디게 했고 그로 인한 감염자가 늘어서? 거리두기 연장으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져서? 그렇긴 하겠다.

 

사진: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에 더 많은 피해를 안긴다. 또한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중앙집중 체제의 허점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출처@인터넷)

 

한데 생각해보자. 거짓말이 죄가 되는가? 십계명이 분명하게 선언했듯, 거짓말은 만악의 근원임이 틀림없다. 거짓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어느 전직 대통령은 어릴 적 가훈이 거짓말하지 말자!”였다고 토로한 적 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를 판별하기에 탐지기의 성능이 정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란다.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거라고 한 전문가가 풀이했다. 우리 법에 따뜻한 구석이 있는지 그때 알았는데, 한 젊은 학원강사의 거짓말은 확산에 다소 기여했을지언정,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은 아니다.

 

이태원 클럽 감염자에 외국인도 있었다. 그가 주한미군인지 모르는데, 요즘 30명을 넘나드는 확진자 중에 해외 원인은 크게 줄었다. 14일 격리를 각오하고 입국하는 해외의 방문자는 98% 가깝게 줄었다지만, 주한미군은 어떤가? 우리가 그들의 입국에 앞서 인천공항처럼 검역할 수 있는가? 그 방면에 상식이 없어 섣불리 짐작할 수 없지만, 이태원 클럽에서 퍼져나간 코로나19는 그 이전과 유전자가 약간 다르다. 10명 이하로 확진자를 줄었을 시절의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종식되었는지 모른다. 이번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G그룹이라고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게 누적 확진자가 늘어나는 유럽과 미국에서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른다. 노인과 기저질환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코로나19 때문에 굶어죽게 생겼다는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일까? 코로나19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막힌 경제의 문을 조금씩 열겠다 의지일 텐데, 걱정이 앞선다. 입국자 증가로 항공사의 숨통은 다소 풀리겠지만 검역과 치료에 헌신하는 모든 국가의 보건 관계자 부담은 무척 늘어나겠지. 확진자 발생으로 교문 닫는 학교도 늘어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중국 무한의 화남시장이 근원지일까? 무한의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가 시발점일까? 거액의 연구비를 미국에서 받아온 그 연구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미국은 위험도가 높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연구를 다른 나라에 의뢰하거나 비밀리에 남의 나라에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무한에서 코로나19 변형을 연구했는지 모른다. 그 연구에 미국의 지원이 있었는지 역시 모르고 알 도리도 없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탄저병을 미군 주도로 연구하는지 알 도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코로나19의 원인이 중국? 미국? 박쥐? 천산갑? 역시 모르는데, 꼭 알아야 하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 따로 있다.

 

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증상으로 감염되는가? 원래 그랬을까? 변형된 결과일까? 그런 변형이 코로나19 이외에 없을까? 감기나 독감은 어떨까? 사라졌다 믿는 사스와 메르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데, 백신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는 그 바이러스는 진정 사라졌을까? 드물게 남아있지만, 변형된 뒤 증상이 가볍고 뚜렷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는 건 아닐까?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킨다는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되고, 무섭게 변형될 가능성은 없을까? 티베트나 툰드라 지대의 영구동토층에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얼어붙어 있을까? 온난화된 지구에 다시 창궐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될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연구는 진행되고 있는가?

 

고양이와 애완견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하는데, 문제를 일으킬 만큼 자주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데, 모피를 위해 밍크를 밀집 사육하는 네덜란드의 한 축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축사에서 끔찍하게 사육하는 밍크까지 감염되었다는 소식은 없는데, 비참한 사육환경은 밍크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계란과 삼계탕을 위한 양계장은 어떤가? 걸핏하면 조류독감이 창궐하는 까닭은 동물복지는커녕 비위생적으로 밀집시킨 공장식 사육과 무관하지 않은데, 잊을만하면 구제역을 창궐하게 하는 공장식 돼지 축산은 어떤가? 젖소와 고기용 소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바이러스 무방비지대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볼 때, 인간은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했다. 퍼져나가기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일 텐데, 도시 주변을 농촌이 감싸고 건강한 생태계가 사람 거주 지역 밖에 드넓게 펼쳐졌던 예전에는 아니 그랬다. 현재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타고 퍼지는 감염성 질병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효율을 위해 타고난 다양성을 없앤 생명 산업에 예외가 없다. 공장과 다름없는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의 수경재배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소품종으로 광활한 농토를 채우는 미국의 옥수수밭과 콩밭도, 세계 소비량을 만족시키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밭도, 마치 한 그루처럼 똑같은 세계의 바나나농장도, 재선충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소나무도 비슷하다. 유전적 다양성과 더불어 환경 적응력마저 잃었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이동해보라. 차창 밖 풍경으로 어디가 인천이고 부천이며 의정부인지 분간이 어렵다.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거리두기 못하는 사람은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만보 왕복하면 직접 빚은 만두를 내놓는 작은 식당이 있다. 식품회사 만두와 달리 예전 맛을 기억하게 하는 식당으로 걷는 길에 가로수라도 울창하면 좋을 텐데, 여름이 깊어지기 전부터 회색도시는 뜨겁다. 얇아 숨쉬기 편한 마스크가 나왔어도 반갑지 않다. 마스크보다 책임 있는 정책이 아쉽다. (작은책, 20207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0. 6. 21. 17:17

 

20001020일부터 이틀 동안 제3차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아셈 ASEM)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렸다. 김대중 정권 시절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다는 정상들의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 아시아와 유럽의 NGO 회원들이 <아셈 2000 민간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1017일부터 닷새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놓고 정상들의 사교장과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열띤 포럼을 이었는데, GMO(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그 농산물을 재료로 가공한 식품)의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잠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20여 농작물의 유전자가 조작되고, 미국과 우리 슈퍼마켓에 보이는 가공식품의 90% 가까이가 GMO 옥수수이거나 GMO 콩이 절대 또는 어느 정도 섞인 시절이 요즘이다. 다시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일로 기억할 수 있지만, 당시 민간 GMO 포럼에 참여한 유럽 그린피스 대원은 자신들의 성공담을 자부심처럼 전해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독일 국적의 식품공학 박사인 그는 세계 최대의 식품 가공업체인 네슬레를 굴복시킨 체계적인 행동과 그 성과를 우리와 공유하고자 했다

 

네슬레에서 판매하는 아침 시리얼, 콘프레이크였다고 했다. 출고 얼마 되지 않은 신제품을 대상으로 GMO 옥수수가 얼마나 포함되었는지 묻자 대답을 회피한 회사에 유럽 그린피스는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낸 모양이다. 시장에 막 선보인 콘프레이크의 종이상자에 적힌 옥수수 원료를 추적하니 언제 어느 항구에서 어떤 화물선으로 하역했던데, 틀림없는지 물었다 했다. 사실을 근거로 추궁하니 세계적 회사도 부정할 수 없었을 텐데, 질문은 이어졌다. 그 화물선을 추적하니 언제 어느 농장에서 생산한 옥수수가 30% 정도 섞여 선적한 것으로 파악했고, 그 농장은 GMO 옥수수를 전량 재배해왔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종이상자에 담긴 콘프레이크에 적어도 30%GMO 옥수수가 포함돼 있다는 우리의 의문을 회사 차원에서 확인해줄 수 있겠는가?

 

유럽 그린피스는 네슬레가 잡아뗄 걸 대비해, 부정하면 연구시설을 갖추어 즉각 검증할 수 있다는 걸 암시했다고 한다. 그린피스의 체계적 추적에 이은 질문에 네슬레는 하루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다음 날 이실직고했고 전 유럽에서 해당 상품과 재고를 회수해 소각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고 포럼에 참여한 그린피스 대원은 증언했다. 네슬레의 퍼포먼스는 다른 식품 가공업체로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 제품에 GMO는 없다는 상품광고는 매출이 증가하는 파급효과를 빚어 겔로그나 다농과 같은 회사에서 GMO를 가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는 건데, 아시아는 달랐다고 한다.

아셈 2000 민간포럼에 참석한 홍콩 그린피스 대원은 유럽에서 팔리지 않는 가공식품이 아시아에 쏟아진다며 성토를 했는데, 우리는 당시 어떠했을까? 이름 있는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 여성단체와 종교단체에서 중견 활동가를 파견해 만든 연대단체,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에서 한국네슬레에 질문서를 보냈다. GMO 옥수수가 포함되었는지 어리석게 묻자 현명한 대답이 나왔다. “우리는 한국의 법률을 잘 따르고 있다.”라고.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에서 GMO가 섞였는지 검사하겠다고 한국네슬레에 으름장을 놓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불가능했으므로.

 

 

어리둥절했던 시절의 환경운동

 

1990년대 초,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파주에 모였다. 환경운동연합이 공식 출범하기 전,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일원으로 농민과 뜻을 모아 골프장을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에 나선 것인데, 생태 전문가의 일원으로 초대돼 골프장 예정용지 생태조사의 일정을 함께 소화한 적 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무뎌진 시절이었지만, 군 트럭과 지프형 자동차가 드나드는 거리의 분위기는 집회 현장이 처음인 학출처지에서 마음 편할 수 없었다. 활동가의 안내로 골프장 예정용지의 양서류를 조사했고 계곡의 돌을 들출 때마다 당시에도 희귀했던 꼬리치레도롱뇽 무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임무는 거기까지였다. 골프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간단한 서류로 작성해 환경단체 선임 활동가에게 전한 뒤 철수하려는데, 함께 참여한 식물학 전공학자인 선배는 하루 더 머물며 주민의 이야기를 듣자고 권해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서 밤새 막걸릿잔을 기울이던 젊은 활동가 대부분은 과거 민주화운동에 매진한 경험이 있었다.

 

19913월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우리 사회에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염 저감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군사독재정권 이후 누적된 환경문제는 1980년대 조금씩 현실로 드러났지만, 당시 전국 규모의 언론은 일시적이거나 지역의 문제로 간단하게 취급하곤 했다. 1985년의 일이다. 석유화학과 비철금속 공장이 운집한 당시 경남 울산군의 온산공단에서 지역에 참을 수 없는 악취를 안겼다. 하지만 일부 주민의 이주로 어설프게 봉합되고 문제는 확대되지 않았다.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명백히 밝히지 않았는데, 1991년 구미공단의 두산전자가 페놀 원액 30톤을 누출시킨 사건은 달랐다. 마시는 물의 검사 항목에 페놀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던 거다. 예전 군사정권이었다면 보도를 자제했을 텐데, 시대가 바뀐 것이다. 페놀의 존재와 위험성을 비로소 알기 시작한 시민사회는 충격을 받았고, 때를 같이 해 공해추방연대는 대기업 두산의 대표 상품인 OB맥주를 거리에 쏟아버리는 행동에 나섰다. 그 사건은 시민들에게 환경단체의 존재와 가치를 심어주었다. 이후 환경운동연합이 1993년 공식 태동했고, 회원이 늘어났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은 강압적인 태도를 일상적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금서로 여기던 다양한 책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었다. 격렬했던 민주화 열기가 빚은 결과일 텐데, 정권의 억압적 태도가 느슨해진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치열했던 학생운동도 조용해졌고 분위기를 타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진 크고 작은 모임은 뜻을 서로 모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모습을 갖춘 환경단체는 지역으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그 과정에서 작은 모임과 연합하기도 했다. 군사정권의 눈치를 살피던 언론도 사슬을 벗어던졌다. 새로운 모임과 활동에 관심을 표명했고 방송 매체도 호의적으로 취재에 나셨다.

학교라는 온실에서 실험과 논문 쓰기로 전문가 경력을 쌓으려던 젊은 생물학자도 1990년대 초부터 멋쩍게 환경단체와 보조를 맞췄다, 환경단체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거대 개발사업에 문제를 제기할 때, 엉거주춤 참여했다. 어리숙한 행동에 용기를 불어넣으며 동행하던 당시 서울시립대학교의 이경재 교수의 권유 덕분이었다. 환경운동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어 피동적으로 응했던 초보 생물학자 박병상은 진주환경운동연합과 지리산국립공원과 인접한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산청양수발전소 건설 현장 방문을 지금도 나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리산 남쪽 사면의 감나무마다 잘 익은 감을 높은 가지에 매달았던 때였다. 진주에서 두세 시간 비지땀을 흘리며 오른 반천리 상부댐 부지는 꼬리치레도롱뇽이 큰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무거운 방송 장비를 들고 올라온 기자들은 화면이 중요했고 노랗고 날씬한 꼬리치레도롱뇽을 처음 보며 신기해했다. 그때 어떤 내용으로 인터뷰에 응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런 계곡에 댐을 세워 물을 채우면 생태적 위치가 중요한 개구리들과 생태 지표종인 꼬리치레도롱뇽이 감소할 거로 주장했을 것이다.

 

이후 산청양수발전소 인근은 찾아가지 않았다. 1992년 늦은 가을 양수발전소 착공 전에 현장을 방문했던 진주환경운동연합은 이후 허탈한 상태로 몇 차례 찾았겠지만, 지역의 중요한 관광지처럼 지금도 홍보되는 반천리 산청양수발전소는 그 단체의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 같다.

 

신라 말기의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이 머물었다는 전설이 남은 산청 고운동계곡은 양수발전소에 내줄 자연공간일 수 없다. 당시 생태조사에 참여한 환경단체는 민족의 정기가 살아있고 우리나라 생물종의 30%가 보존된 천혜 자연의 보고인 곳을 파괴하며 지리산을 지켜온 주민들을 내쫓는 양수발전소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외쳤다. 꼬리치레도롱뇽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황조롱이가 관찰되었지만, 양수발전소 건립을 막지 못했다. 생태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드물다. 환경단체와 현장을 누비는 학자는 보기 어렵지만, 개발을 원하는 측을 은근히 배려하며 피해자 앞에서 전문가 위세를 펴는 학자는 지금도 수두룩하다. 그들은 천연기념물이라도 다시 찾아올 거로 장담하고, 환경을 평가하는 관청은 그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다.

 

생태계 파괴에 저항하고 개발 예정지역의 현황을 파악하는 행동이 환경운동연합의 주요활동은 아니었다. 환경단체 출범 초기는 좌충우돌해야 했다. 단체의 지속성과 건강한 활동을 위해 회원을 늘려야 했지만, 정부나 기업도 환경의식이 일천하니 마음이 급했다. 환경단체의 일은 끝이 없었다. 최악의 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이 배출되는 소각장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주민들과 반대운동에 나서야 했고 핵발전소와 핵폐기장 반대운동, 동강댐 반대운동으로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환경운동도 시민운동의 일환이므로 일방적인 반대보다 시민과 함께 행동할 대안찾기를 모색해야 하지 않느냐의 질책이 일부 보수 언론에서 나왔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막무가내 개발에 환경단체는 당장 절박했다. 합리적 절차를 무시하는 개발에 저항해야 했다. 점잖은 문제 제기는 귀담아듣지 않았기에 반대운동에 돌입해야 했다. 199412월 한 방송뉴스에서 느닷없이 기정사실로 보도한 직후 추진한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그랬다.

 

사진: 그린피스코리아의 행동. 화력발전소 벽에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는 글을 띄워 주목을 받았다.

 

199412월 창립한 인천환경운동연합이 사무실 집기를 들여놓기 무섭게 몰두해야 했던 반대운동은 회원 관리에 할애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천의 환경단체만으로 힘이 모자라 노동단체들과 연대해야 했다. 과학적 합리성을 담보하지 않고 핵폐기장 적지로 지정한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천의 환경단체는 덕적도와 굴업도 주민과 합세해 정부와 핵폐기장 추진세력이 내놓은 자료를 하나하나 반박했고, 집회와 시위, 그리고 비공식 토론회와 공청회를 거푸 열었다. 당시 한 차례만 실시하면 그만인 공청회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버둥치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좌석을 이미 선점하고 공청회장 외부에서 환경단체의 차단하던 경찰력에 분노하며 좌절해야 했다.

 

굴업도 핵폐기장은 결과적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당시 과학기술부 차관은 환경단체의 항의에 그만 말실수를 했다. “과학은 정치의 시녀라고 실토한 것이다. 굴업도가 거대한 단일 응회암이므로 핵폐기장 적지라고 발표했지만, 실상과 달랐다. 삼척동자가 보아도 굴업도에 지진과 절리의 흔적이 명백했다. 하지만 정치가 과학에 굴종을 강요한 것이다. 9명의 주민이 거주하므로 굴업도를 정치적으로 밀어붙였던 거였다.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저항한 환경단체의 노력은 정치권을 움직이게 했고, 핵폐기장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199011월 충청남도 안면도를 육지로 잇는 다리를 불타오르게 한 핵폐기장 반대 항쟁도 정부의 무리한 추진이 화근이었다. 19941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이어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기록은 백서로 보전돼 있다.

 

중앙정부가 볼 때, 인천은 서울의 관문에 불과한 곳일 때가 많았다. 지금도 인천공항은 치외법권 지역이다. 요즘 코로나19 시국이므로 한 방송사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은 외국 젊은이들을 초청하지 않지만, 그 방송은 인천을 거의 조명하지 않는다. 인천공항에 내린 외국 젊은이들은 예외 없이 서울로 움직였다. 항공사에서 서울·인천 공항이라 말하는 인천공항은 서울의 관문인가? 드넓은 갯벌이었다. 문제 제기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묻혔다. 1400만 평의 갯벌을 매립하므로 해양 생태계 파괴를 염려하며 대안을 요구했지만, 그 목소리는 미약했다. 대부분 언론은 환경단체의 연약한 외침을 가차 없이 외면했다.

 

지금도 인천은 환경문제의 도가니에 가깝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으로 지친 환경단체는 몸을 추스르기 전에 영흥도 화력발전소 반대운동에 매진해야 했다. 한국전력이 전력생산 분야를 5개 회사로 분리했고, 그중 한 곳인 남동전력주식회사에서 영흥도에 80만 킬로와트 급 화력발전소 2기를 추진할 때였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지역 환경단체들이 연합해 영흥도 주민과 더불어 반대운동에 돌입했고, 철두철미하게 졌다. 시간과 돈과 권력에 격차가 현저했기에 지친 주민이 먼저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고,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자신의 생일에 구금되고 말았다.

 

발전소 건설 관련 제도는 업체의 편의를 노골적으로 지원한다. 시민의 감시는 거의 없고, 있어도 형식적이므로 환경단체가 저지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환경단체 활동가는 그 상황에서 자칫 범법자가 되고,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인천의 화력발전소만이 아니다. 전남 영광군의 핵발전소 역시 환경단체와 연대한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들은 억압을 피하기 어려웠고, 핵발전소는 자신의 의지대로 핵반응로의 수를 착착 늘렸다. 기획에서 건설, 시설의 운영관리 영역에 시민의 감시가 차단되므로 사고 가능성은 무시로 열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광군에 있는 핵발전소는 어떨까? 외부 콘크리트 층에 균열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공에 문제가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고가 없으면 그만인가?

 

환경단체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남동전력회사는 화력발전 계획 초기에 인천시와 선뜻 합의해 석탄화력 2기로 한정한다 못 박았지만, 연막이었다. 발전 사업자는 시민사회와 맺은 합의를 간단히 무시한다. 지자체와 가진 합의마저 연연해 하지 않은 전력회사는 국가 전력 계획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며 2기씩 두 차례 발전 시설을 추가했고, 현재 6기의 화력발전 설비가 맹렬하게 가동하고 있다.

 

300만 인구의 인천시가 소비하는 전력은 막대한데, 그 전력의 두 배 이상을 생산하는 영흥도 화력발전소로 인해 인천시는 생산직 일자리를 늘리지 못할지 모른다. 커다란 공업단지를 여럿 가진 인천시는 영흥도에서 쏟아지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설비 확대가 어려울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의 절반 가까이 영흥화력본부가 독차지하지 않나. 인천시민들이 그 화력발전소가 배출하는 초미세먼지의 세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신 인천 환경단체는 공동조사단이라는 위원회에 모여 영흥화력본부의 관리와 운영을 분기마다 감시하지만, 무력한 게 현실이다.

 

 

시민사회에 파고드는 환경운동

 

지난 121일 그린피스는 한국전력 서초지사 벽면에 레이저빔 영상을 투사했다. “해외 석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라!” 요구하며 10억 마리 넘는 야생동물을 희생시킨 호주 산불 근거 영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진 것이다.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 중의 하나인 호주에 발생한 지난해의 거대한 산불은 기후위기 시대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캠페인은 우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린피스의 레이저빔 캠페인은 처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물론이고 해외에서 벌이는 캠페인 대부분도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그렇듯, 그린피스의 과감한 행동은 유명하다.

 

GMO 옥수수가 실린 거대 화물선의 닻에 매달리는 영상,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안전하다 발언한 토니 블레어 총리의 관저 앞에 수십 톤의 GMO 콩을 쏟아붓는 영상은 그린피스의 위상을 세계인의 뇌리에 심었다. 연구용이라며 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호를 작은 보트로 방해하며 물세례를 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핵폭탄 실험을 반대하는 그린피스의 워리어호를 프랑스군이 공격해 침몰시킨 사건은 충격이었다. 그런 희생적 행동은 세계적 반핵운동으로 이어져 요즘 태평양 외딴 섬이든, 남의 나라 사막이든, 핵폭탄 실험은 불가능해졌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은 보는 이에 선명한 인식을 각인하기에 활동가에게 선망이 되기도 한다.

 

2011년 한국에 사무소를 설립한 그린피스 코리아는 우리 시민사회에 어떤 인식을 심었을까? 사무소를 서울에 설치하기 이전에 인천 내항에 워리어 호를 몇 차례 정박하며 홍보하려 노력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2013년 부산 광안대교에서 펼친 행동이 컸다. 핵발전소 폭발 위험 반경은 국제공인이 30km이지만 우리나라 기준은 10km에 불과하다. 고리핵발전소와 25km 떨어진 광안대교의 행동은 아슬아슬했다. 80미터 상공 케이블에서 뭉크의 절규를 형상화한 대형 포스터를 펼친 그린피스 대원은 한국의 핵발전소 비상 계획구역 확대를 요구했고, 언론마다 크게 주목했다.

 

시민사회에 경각심을 심는 행동은 어떤 환경단체든 외면하지 않는다. 200610월 인천녹색연합은 인천의 진산인 계양산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굴지의 대기업 롯데에 저항했다. 당시 28세 활동가 신정은은 골프장 예정용지 내 소나무 세 그루를 활용해 설치한 1.5평의 패널로 올랐고, 패널 위 텐트에서 57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언론은 주목했고, 인천의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대책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연대한 인천녹색연합은 나무 아래에서 행동했다. 방문자에게 계양산의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설명하면서 나무 위의 활동가를 지원했다.

 

기온이 급강하 되면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였던 48세 윤인중 목사가 신정은 활동가의 바통을 받아 이듬해 5월까지 155일 동안 나무에 머물렀고, 현재 계양산은 골프장 위기를 넘겼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윤인중 대표가 내려온 뒤에도 롯데는 골프장 계획을 버리지 않았지만, 대책위원회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숲의 밀도를 왜곡한 롯데가 군사보호구역을 침범하려 한 의도를 숨기지 못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200910, 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운동 목표로 하는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제15풀꽃상본상을 계양산 맹꽁이에 드리고 부상을 대책위원회에 드리는 행동으로 이목을 끌어들였다. 환경단체의 거듭되는 저항에 밀려 골프장 면적을 줄이던 롯데는 인천시장이 바뀐 이후, 무모한 계획을 접었다.

 

인천녹색연합에서 계양산의 소나무에 오르기 5년 전, 20015,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 정책부장은 용인 대지산의 상수리나무 위 10미터에 17일 동안 올랐다. 주민은 물론, 대지산을 소유하는 문중에서 땅을 지키고자 했어도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려는 한국토지공사는 막무가내였다. 중장비를 동원해 하루 만에 사면부를 벌채하는 행태를 보였다. ‘환경정의로 이름을 바꾼 당시 환경정의시민연대는 시민 성금으로 한 평 사기 운동으로 대지산 정상 인근 100평을 매입, 그 자리의 상수리나무에 오른 것이다.

 

환경단체의 저항은 계속되고 언론이 주목하자 한국토지공사는 14일 만에 물러섰다. 그 일원의 대지산을 자연공원으로 보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환경정의시민연대는 법원 공증을 요구했고 박용신 부장은 3일을 더 머물렀다. 박 부장은 나중에 그 순간을 술회했다. 첫 일주일은 상수리나무가 진저리쳤고 이어진 일주일은 받아들이더니 내려가려 하자 아쉬워하더라고. 박 부장의 마음이었겠지만, 다양한 나무와 풀이 어우러지는 숲을 굴착기로 마구 허무는 인간을 생태계의 어떤 생물이 흔쾌해 여기겠는가. 대지산의 숲과 나무에 사과하면서 막아낼 것을 다짐한 박용신 부장은 자신을 받아준 상수리나무의 이름을 장군이라 붙였고, 용인시에 지부를 설립한 환경정의는 작년 자연공원 보전 20주년 행사를 장군 앞에서 가졌다.

 

걸핏하면 산불에 휩싸이는 미국 서부 해안은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거대한 삼나무로 울창했다. 그중 극히 일부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무어의 숲으로 보전돼 있지만, 나머지 숲은 대부분 벌채돼 사라졌고, 습기마저 사라지자 화마에 휩싸이곤 한다. 요즘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거대한 나무는 보기 어렵지만, 세계로 수출할 나무는 남았다는데, 캘리포니아주 북부와 오리건주, 그리고 워싱턴주가 그런 모양이다. 주민들의 환경의식이 다른 곳보다 높다는 평이 있는 그 일원은 겨울에 눈이 거세다. 겨우내 쌓인 눈에서 흐르는 물이 캘리포니아를 젖과 꿀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 캐나다 밴쿠버에 눈 대신 비가 내렸다. 캘리포니아 북부도 마찬가지였는데 겨울에 비가 내리는 온난화 현상에 아랑곳하지 않는 벌목회사는 거대한 삼나무들을 호시탐탐 노린다.

 

동부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1997년 주술에 끌린 듯 캘리포니아 북부의 900년 된 삼나무에 올랐다. 자연을 지키려고 폭력도 불사하는 미국의 환경단체 지구 먼저’(Earth First)가 삼나무 숲을 지키려 나무에 올라가는 행동에 나서는 곳이었다. 애초 며칠 동참하려던 힐은 마음을 바꿔 61미터 삼나무의 56미터 지점을 2년 넘게, 그것도 맨발로 버텼다. 온갖 감언이설과 조롱, 협박과 위험을 견뎌내며 기계톱의 공포를 견뎠고, 두 차례의 생일과 3번의 겨울을 보낸 20대 젊은이는 결국 클린턴 행정부의 보전 약속을 끌어냈다. 처음 오를 때 빛을 내준 달을 생각해 이름을 루나로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한동안 운명을 같이해온 삼나무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나무 위의 여자에 썼다.

 

태양의 도시또는 세계 환경수도라는 별칭을 가진 독일 남부의 프라이부르크는 에너지 자립마을이 많은 곳으로 이름이 높다. 1970년대 초 핵발전소를 건립하려는 정부에 저항하며 전기를 자급하는 행동에 나섰기 때문인데, 핵발전소에 대한 저항은 격렬했다. 나무에 올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다는데, 서울의 마포 성미산공동체는 배수지를 위해 산 정상의 나무를 잘라내려 할 때 쏟아져나와 나무를 끌어안았고, 인도 아낙들은 기계톱을 윙윙거리며 다가오는 벌목꾼에게 필사적으로 맞서 나무를 끌어안는 칩코운동을 전개했다. 나무를 둘러싼 환경운동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눈물겨웠다.

 

 

힘에 부치는 환경운동

 

우리나라 환경단체는 역사가 아직 부족해 그런가? 거들먹거리는 언론에서 외면해서 그런가? 시간과 몸을 쪼개며 행동해도 파급하는 효과가 기대보다 크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회원 수가 그린피스나 지구의벗, 하다못해 독일의 환경단체 분트에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다. 막강한 권력을 과시하는 개발 행위자에 저항하려면 힘에 부친다. 하는 수없이 다른 환경단체와 연대할 때가 많은데, 환경단체들은 활동 범위가 조금 다르고 나름 특징을 고수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이 굵직한 개발에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한다면 녹색연합은 생태계 보전운동에 민감하다. 요사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몰두하는 환경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활동 범위를 생태계 보전에 집중하는 환경단체도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역의 작은 생태 공간을 보전하려 애쓰는 생태보전시민모임은 주택이나 골프장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는 습지와 그 습지에 서식하는 생물종의 보전에 애를 쓴다. 또한, 강서습지생태공원과 고덕수변생태공원에서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생태교육에 앞장서는데,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은평구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던 때, 지역에 흩어진 습지에 다수 분포하던 양서류의 보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막대한 이권이 걸린 개발에서 생물종의 서식지는 언제나 무시된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의 눈물겨운 행동으로 건설회사는 은평구 아파트단지 개발 예정지의 금개구리나 맹꽁이 같은 보호대상종을 대체서식지로 옮길 수 있었다. 다행일까? 활동가들은 한 마리라도 더 옮기려 애썼지만, 알량한 대체서식지에서 제대로 보전되는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니터링 시간과 예산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인데, 그건 수도권만의 사정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환경단체의 연대로 모자라 종교단체도 힘을 모은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은 실패했을까? 20064월 마지막 물막이 공사로 해수 유통이 막히는 장면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진 환경단체는 이후에 할 일이 사라진 걸까? 새만금청이 신설되며 정부와 전라북도 당국에서 개발을 서두르지만, 1억 평이 넘는 새만금 일원은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비행장과 태양광발전단지 이외에 구체화한 계획이 없고, 그 계획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33km가 넘는 외곽 제방의 안쪽, 드넓은 새만금 간척지는 해수면보다 오히려 낮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펼칠 환경단체의 일은 아주 중요하다. 상식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듯, 해수면이 상승하고 한층 강력해진 태풍이 해일까지 몰고온다면, 현란한 계획처럼 개발될 간척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사진: 새만금 간척사업이 본격화되기 전, 전국 환경단체가 보여 캐나다 원주민단체와 함께 해창갯벌에 장승을 세우는 행사를 했다.

 

개발을 거의 마친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 역시 얼마 전까지 갯벌이었다. 해수면보다 높게 매립했어도 기후변화에 이은 해수면 상승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부산 해운대 인근의 마린시티는 201510월 내습한 태풍 차바로 아파트 마당에 물고기가 퍼덕거렸는데,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은 아니 그럴까? 미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내습한 20058, 제방을 넘은 바닷물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안겼다. 새만금도 안전할 수 없다. 대형보로 4대강이 거대한 계단식 호수로 버림받을 때, 전국의 환경단체는 연대했고 행동했다. 그런데도 대형보가 강물을 흉물스럽게 틀어막았지만, 환경단체의 일은 분명히 남았다. 일에 치어 여력이 없더라도 준비는 해야 한다. 들고나는 바닷물을 차단하는 조력발전소를 반대하느라 강화와 가로림만에서 애를 썼고 덕분에 그 계획은 수면 아래에 내려갔지만, 끝난 게 아니다. 언제 올라올지 모른다.

 

후손에게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생태계를 보전해 물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872년 세계 최초 국립공원이 미국 옐로스톤에 지정되고 1967년 지리산국립공원이 우리나라 최초로 지정되었다. 대통령이 지방에 선물처럼 국립공원을 지정한 우리나라는 초기 유원지처럼 난삽하게 개발되었다. 국립공원이 오염되는 현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1993년 발족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은 지금도 자연경관과 생태자원을 지켜내고자 활동하지만, 시민 대부분은 그 단체를 모른다. 낙동강과 금강, 태화강과 안성천 주변 도시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들은 지역의 생태계와 환경을 보전하려 애를 쓰지만,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다. 국립공원의 위축을 막고 댐 건설과 초음속비행기 개발까지 저지한 미국의 시에라클럽은 회원이 70만을 헤아린다, 그러므로 강력하다. 우리 생태계 보전을 위한 환경운동은 갈 길이 멀다.

 

한때 열성적으로 움직였지만, 현재 시들해진 환경운동이 있다. 생명안전과 윤리를 위한 환경운동이다. GMO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수입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일부 농민단체를 제외하면 환경단체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아주 미약하다. 배아줄기세포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환경단체는 요즘 찾기 어렵다. 생명안전과 윤리에 문제가 사라진 건 분명히 아니다. 이권을 노리는 대기업이 끼어들면서 오히려 심각해졌다. GMO 위험성을 극복할 거처럼 등장한 유전자가위 기술은 환경단체가 외면할 사항이 아니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막대한 자금으로 눈독 들이는 바이오 헬스캐어는 생태계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는데, 관심 보이는 환경단체는 어디 있는가?

 

 

환경단체의 과제

 

아셈 2000 민간포럼에 참여한 독일그린피스 대원은 GMO 농산물로 가공한 식품은 유럽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확신했는데, 우리는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아무리 외쳐도 우리나라에 둥지를 친 GMO 관련 거대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원 수백만을 헤아리는 유럽과 미국 환경단체의 목소리와 차원이 달랐다.

 

우리 주부들도 많이 사는 미국산 거버 유아식에 GMO 옥수수가 포함된 적 있었나 보다. 회원 100만인 미국 그린피스의 질문을 받은 거버는 애초 사실을 부정했지만, 성분 조사에 돌입하겠다는 그린피스에 굴복했다고 한다. 출하된 제품을 회수해 폐기하는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매출이 증가하자 경쟁회사인 하인즈도 GMO 옥수수를 넣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수입하는 유아식에 GMO 옥수수가 포함되었을까? 우리 환경단체는 알지 못한다. 성분 조사가 나설 엄두를 낼 수 없다.

 

지부를 개설한 한국 그린피스의 회원 수는 현재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의 최대 환경단체 회원보다 많지 않을까? 야생동물과 환경보호를 목표로 행동하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회원 수는 세계적으로 500만이다. 2014년 출범한 한국본부 회원이 내는 회비 총액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모든 환경단체 회비의 총액보다 작을까? 자료에 접근하지 못해 알지 못하지만, 단시일에 우리를 넘어섰을지 모른다. 친절하고 성실할 뿐 아니라 감동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는 그들의 자세 때문만이 아니다. 이름값에 반응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시민들의 호감도 작지 않다. 유명인들이 거금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미담으로 보도되곤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단체에 대한 경외심이나 부채의식이 그렇게 추동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해외 굴지의 환경단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 굳이 파악하지 않아도 선뜻 회원으로 가입하는 시민들이 우리나라에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단한 환경단체의 회원이 되었다는 만족감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건 아니다. 벌써 30년 가까이, 기진맥진하며 행동한 우리 환경단체에 냉담해 하는 이유를 먼저 반성적으로 살펴야 한다. 지지하는 정당에 당원이 되어 소정의 당비를 내는 시민이 절대다수인 사회라면, 당선과 권력 유지를 위해 허접한 인물을 의원 후보로 내세우는 정당은 힘을 잃는다. 마찬가지다. 자신과 아이들, 이웃과 생태계의 안전과 행복을 생각해 환경단체 가입하는 걸 당연시하는 사회라면, 기업과 정부는 개발에 앞서 시민 의견을 먼저 물을 것이다. 우리 환경단체의 과제는 무엇일까?

 

살리기라는 허울로 4대강에 대형보를 세우려던 정권은 친환경을 참칭했고 수자원을 연구하는 대다수 전문학자는 침묵하거나 일부는 정부에 아부하는 논리를 구상했다. 환경단체와 행동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가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연구비가 몰수되거나 학회활동이 불가능하게 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황우석 전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연구 주도권을 행사할 때, 생명공학이 수상하다고 말한 학자는 전공을 국가 연구비가 거의 없는 생명윤리로 바꿔야 했다.

 

조상이 물려준 유전자마저 사유화되어야 할까? 질 좋은 유전자로 교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유전자가위 기술은 장차 생태계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까? 보건의료보다 영리로 이어질 원격질료와 바이오 헬스캐어는 부자의 몸관리보다 골방에 밀집 거주하는 외국 노동자의 코로나19 감염에 민감해할까? 자본과 헬스캐어의 긴밀한 관계를 묻는다면, 누가 명쾌하게 답해줄 수 있을까? 대학이나 연구소, 또는 정부나 기업에 소속된 전문가가 솔직하게 이야기할 거라 믿기 어렵지만, 환경단체에서 연구시설을 갖추고 조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편향된 연구비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 연구기관에 힘이 있다면 정의로운 의견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유럽과 미국의 그린피스만이 아니라 규모가 있는 소비자단체도 자체 연구기관이 있고,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할 능력이 있다. 회원들의 회비가 뒷받침되기 때문인데, 우리는 요원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환경단체의 절박하고 성실한 행동이 시민에게 감동을 준다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시민과 더불어 가려는 환경단체의 행동에 재미까지 느낀다면 빠져나가는 회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 출범 한 세대가 지난 우리나라 환경단체는 맹아기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가 탐욕스러운 개발이 빚은 생태계 파괴를 거세게 경고하는 이때, 환경단체의 헌신은 더욱 빛날 수 있다.

 

식량과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며 물려받은 자연생태계를 거의 잃은 우리는 시방 절박하다. 비록 늦었더라도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구두끈을 바싹 묶어야 한다. 무너진 생태계에서 무서워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속도와 경쟁을 미덕으로 여기는 개발주의를 엄하게 경고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경제정의와 사회정의에 조금씩 눈을 뜨지만, “포스트 코로나19”는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환경운동의 포스트 코로나19를 생각해본다. 생태계의 다양한 생물종을 생존을 있는 그대로 배려하는 생태정의와 다음세대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세대정의가 환경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념이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기후위기 시대에 한 그루의 사과나무라도 심어야 하므로. 비록 험난하더라도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다. (불교평론,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