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0. 4. 00:12

 

지난 달 여수의 한 고등학교에서 신종플루 집단 감염 증세가 나타나 보건당국이 주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작년과 달리 ‘긴장’이 아니라 ‘주목’할 정도에 그치는 건, 감염된 4명 모두 완치되었고 추가 확진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항바이러스 제재가 충분히 비축돼 있는 까닭이라고 당국은 주장했다. 그래도 65세 이하 노인과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무료로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이다 싶은데, 같은 시기 네덜란드의 한 대학병원은 어떤 항바이러스 제재도 효과가 없는 변종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하며,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신종플루 발병 후 3개월 만에 숨진 5살 아동은 작년 개발회사를 돈방석에 올려놓은 타미플루와 리렌자를 모두 투여했건만 소용없었고 그 밖의 치료제에 내성을 보였다는 게 아닌가. 문제의 변성 신종플루가 심각한 사태로 퍼질 가능성을 놓고 네덜란드의 전문가의 걱정은 속수무책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발생한 신종플루가 다행이 변성이 아니라 그런가. 네덜란드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태평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시민들의 면역이 네덜란드보다 높은 걸까. 의약분업 이후 병원에서 처방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항생제 처방률이 세계 수위를 다툰다 하고, 횟집 식탁에 오르는 양식어류에 적지 않게 항생제가 들어가고 있으므로 시민들의 항생제 내성이 상당하다고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생제 내성이 높다는 거고, 따라서 그만큼 면역이 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신종플루가 변성될 조건은 충분하다는 건데, 보건당국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이 아직 태평하다. 어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년 신종플루도 그랬지만 2003년에 발생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세계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낳게 한 ‘사스’도 우리나라에 심각한 피해를 안기지 않았다. 항생제 내성이 남달리 높아도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사망하게 한 그 질병들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견디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면역력을 높이게 하는 묘약이 있는지 사스 때 중국이 주목한 바 있는데, 그들은 김치를 거론했다. 날 배추를 천일염으로 절인 뒤 젓갈을 적당히 버무려 넣고 발효시켜 먹는 김치. 그걸 항상 먹어 면역이 강한지 한국인들은 끄떡없었다고 분석했다는 거다.

 

신종플루로 세계가 긴장할 때 뉴욕에서 김치 그림을 그린 마스크가 등장했는데, 중국의 고급 식당은 한때 기본 반찬으로 김치를 내놓았다. 중국인들이 여전히 김치를 즐겨먹지 않고 그저 호기심 정도였지만 김치는 이미 세계적인 건강식품이 되었다. 특히 면역을 높이는 데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널리 입증되었다. 라면만 먹인 쥐는 몇 주 살지 못했지만 김치를 곁들이자 보통 쥐와 똑같이 건강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지 않던가. 그렇다면 작년 신종플루에 감염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젊은이가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공통점은 김치를 멀리한다는 데 있을 거라 믿는 이도 있다.

 

김치가 없는 밥상을 생각할 수 없는 우리네는 까마득한 오래 전부터 겨울을 대비해 김장김치를 담갔다. 그를 위해 장마가 끝나면 배추를 심었다. 지금보다 큰 그릇에 밥을 많이 담아 먹고 고기나 가공식품을 덜 먹었던 시절, 웬만한 가정은 100포기 이상의 김치를 담가야 했고, 김장하는 며칠은 집안이 축제처럼 떠들썩했다. 담 높이로 쌓아놓은 김치를 절이고 커다란 무를 채 썰어 갖은 양념과 젓갈로 무치는 일로 온 식구가 부산했다. 여성들이 가장 바빴지만 남정네들도 팔 걷어붙이고 도왔다. 그래야 푹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인 보쌈 한상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마당이 없으니 파묻을 김장독도 없는 요즘, 김치냉장고가 부엌의 냉장고 크기를 따라잡아도 배추 100포기 이상 김장을 담그는 집은 거의 없다. 40포기를 담는다는 이를 놀란 토끼처럼 바라보는 이들은 김치 말고 식탁에 올리는 반찬이 많다. 김치 소비가 많지 않으니 배추도 예전처럼 많이 구입할 리 없다. 외식이 잦으니 한 번 담근 김치는 한참 먹는다. 식구들의 밥상에 김치를 빠뜨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져간다고 긴장하지 않는다. 대형 마트의 식품매장에서 4계절 배추 뿐 아니라 온갖 김치를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젊은 주부들이 요즘 많단다. 담지 못한다거나 담가본 적 없다는 걸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새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신종플루가 젊은 층에 유독 많았던 이유의 설명일 수 있겠다.

 

배추가 한 포기에 1만원을 넘어 1만5천 원이라는 보도가 나온 후 정부는 중국에서 배추를 긴급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참 간단한 대책이다. 김치 수입량도 치솟겠지. 대부분의 농부들은 중간상인과 밭떼기로 계약한 관계로 배추 가격이 오른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 소식을 듣고 심어도 3개월이 지나야 실한 배추를 내놓을 수 있는데, 벌써 찬바람이 분다. 배추 심는 시기는 이미 놓쳤다. 장마철 뒤 맑은 하늘이 실종되어 김치를 제때 파종할 수 없었던 농부들은 심난한데, 결국 수입업자와 상인들만 신나게 생겼다. 중국 김치공장의 위생 상태를 한때 무척 의심했던 정부 당국은 이번 수입을 계기로 검사를 철저하게 할 것인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인물은 업자의 사재기를 가격 인상의 원인인 듯 주장했다. 그런가. 언제나 매점매석하는 자가 예나 지금이나 없는 건 아니지만 배추 값이 사상 초유로 오른 원인이 바로 그건가. 그렇다면 한시바삐 단속하고 숨겨둔 배추를 내놓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다. 이번 배추 값 인상의 원인으로 야당을 비롯한 많은 이가 4대강 사업으로 경작지가 위축되었다는 걸 지적한 이후의 호들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도 땅이 질어 배추를 파종할 시기를 놓친 농민이 많았지만 따져보자. 이번에 배추 값만 올랐다던가. 비닐하우스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수확하는 거의 모든 채소의 가격이 올랐다. 비닐하우스도 더러 날씨의 제약을 받지만 요즘처럼 가격이 솟구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비서실장의 주장처럼 진정 사재기를 의심해야 할까. 그 정도의 물량을 도대체 어디에 숨겨놓고 버틴다는 겐가. 온갖 정보를 먼저 들여다볼 위치에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주장치고 참 치졸한데, 부정할 수 없이 분명한 것은 4대강에서 마구 퍼올린 오염된 모래와 자갈은 강변의 농토에 막대하게 쌓였다는 점이고, 그 땅은 작년과 그 이전에 각종 채소를 생산하던 기름진 농토였다는 사실이다.

 

김치를 포함한 채소는 경매를 거쳐 시장에 나온다. 경매는 사려는 자에 비해 팔려는 자의 물량이 적으면 가격을 오르게 한다. 그래서 경매를 거치는 채소와 어패류는 그날그날의 물량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린다. 또한 앞으로 경매에 나올 물량에 대한 소식에 따라 가격이 민감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배추와 채소가 더욱 줄어들 거라는 예측이 가격이 오르게 하는 건 당연하다. 매점매석과 관계가 멀다. 배추 값 때문에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질 걸 몹시 두려워하는지 정부의 관계부처는 배추 값 인상과 4대강 사업은 서로 무관하다고 강변했지만 도무지 맥아리가 없다. 권력 핵심부의 눈치를 보려는 것 같아 가련하기까지 하다.

 

방귀 뀌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서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든 채소밭의 면적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즉시 변명했지만, 금세 공허해졌다. 정부의 부실한 주장에 대해 바로 이어진 4대강 주변 농토 농민과 시민단체의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수치에 대해 이렇다 할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공허한 대책이 겨울철 김장을 먹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우리를 달래주지 못한다. 중국에서 긴급 수입하겠다는 발상이 소비자와 생산자의 분노를 위로하지 않는다. 김치 없는 겨울을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다 시민들도 역사와 문화에 없던 양배추로 김장을 담가야 하나. 생각만 해도 역겹다.

 

김치가 우리네 면역을 증진시키는 건 신토불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직접 재배한 배추에 같은 땅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확한 갖은 양념을 넣었다. 또한 우리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으로 절인 뒤 우리 갯벌에서 손으로 채취한 젓갈로 담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라. 모름지기 땅을 떠난 먹을거리는 먹는 이의 건강을 제대로 도모하지 못한다. 수입식품과 가공식품이 그렇다. 항생제가 들어간 양식어패류, 우유, 계란들.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며 농약 세례를 받은 수입곡식과 과일들이 그렇다. 유전자조작 사료를 먹여 키운 외국 육류도 그렇다. 그 결과 면역이 떨어져 우리 땅의 젊은이들이 작년에 신종플루로 고생하지 않았나.

 

그나마 밥상 앞에서 조금 씩은 언제나 김치를 먹어온 우리의 젊은이들은 거의 입에 댈 수 없었던 다른 나라의 젊은이에 비해 면역이 높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번에 여수의 한 고등학교에서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했지만 당국처럼 우리도 아직은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배추 파동은 우리의 내일을 걱정스럽게 한다. 기상이변으로 몸과 땅의 기운이 전 같지 않은데, 배추가 동나 김치마저 먹을 수 없다면, 내일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네 겨울 밥상에 김장김치가 없거나 희귀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김치가 없는 겨울, 우리네 역사와 문화에 없지 않던가. 역사에 기록돼 두고두고 지탄받을 게 명약관화한 4대강 사업은 이번 배추 파동으로 보아도 당장 용서하기 어렵다. (인천in, 2010.10.?)

깊이 동감합니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특히 배추와 같이 장기저장이 어려운 생물인경우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