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4. 4. 26. 10:49

 

오래 전 미국에 사는 교포에게 들은 이야기. 한국을 다녀와 미국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당황할 때가 있다고 했다. 정거장이 다가오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운전기사를 놀라게 한다는 거였다. 그는 덧붙였다. 그러다 한국에 와서 시내버스를 타면 종종 정거장을 지나치게 된다고. 달리는 차 안이더라도 미리 출입구에서 대기하지 않았던 게 이유였다. 요즘도 그 분위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내버스의 출구에 흔들리며 대기해야 안심이 되는 사회는 불안이 유도했다. 벨을 눌러 내리겠다는 신호를 보내도 정거장을 지나칠지 모른다는 불안, 늦게 나오면 당신 때문에 지체되었다며 운전기사가 싫은 소리를 할 것 같은 불안이 출구로 비틀거리며 나가게 만든다. 그런 불안감은 시내버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교사의 학습권과 학생의 생각할 권리를 방해하는 선행학습이 그렇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합당한 정책 논의보다 인맥과 조직 관리에 주력하는 의회 의원들은 아니 그럴까?


투기 목적으로 집이나 땅을 필요 이상 구입한 사람은 거품과 같은 경계 상황이 꺼질까 불안할 텐데, 비슷한 목적으로 농사를 짓거나 축산업에 투자한 사람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빨리 남보다 더 벌어들이려고 성장호르몬을 주입한 농작물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과도하게 살포한다. 몸에 맞지 않은 사료를 주며 금방 자라도록 가축에 항생제 투여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땅이 황폐화되고 동물복지는 무시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연은 어떨까. 비틀거리는 사람과 달리, 스스로 늘 그러하듯, 안정적일까.


지난겨울은 비교적 따뜻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의 폭설로 뜻하지 않게 대학에 갓 입학한 부산의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백두대간 동쪽 농가에 피해가 발생했지만, 예년보다 춥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올봄은 유난히 꽃들이 뒤죽박죽 피었다. 잔설을 뚫고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이 피는가 싶더니 산수유를 시작으로 우후죽순처럼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과 목련이 무슨 경주라도 하듯, 느닷없이 꽃봉오리를 펼쳤다. 그리고 이내 시들었다.


정한 순서는 없더라도 봄꽃은 봉오리를 펼치는 시기가 조금씩 달랐다. 중부지방의 경우, 3월이 절반 정도 지나 매화가 향기를 내놓아야 근린공원의 노랑 산수유가 바통을 잇는다. 3월이 저물 무렵 개나리와 진달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었다 떨어지면 4월 중순을 맞았다며 목련과 벚꽃이 만개했다. 박목월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다고 4월을 읊었지만 올해는 무엇이 급했는지 3월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목련과 벚꽃이 일제히 4월을 선언했다. 4월에 들어서자 5월의 라일락이 꽃잎을 펼쳤다. 꿀벌은 미처 준비를 마치지 못했는데.


해마다 봄이 짧아지면서 꽃 피는 시기가 더러 겹치지만 올해는 지나쳤다. 아침저녁의 냉기가 사라지는 3월 하순이 되자 때 이른 더위가 낮 시간을 달궜다. 여름이 다가와 머무적거리면 씨를 퍼뜨리지 못하리라 불안했던 걸까? 엘리엇이 잔인하다고 노래한 4월은 들쭉날쭉한 기온과 거센 바람이 시시때때로 꽃샘추위를 일으키기 마련인데, 무모했던 꽃들은 꿀벌을 만나지 못한 채 우수수 떨어지거나 봄볕에 타들어갔다.


화무실일홍? 열흘 이상 피어 있는 꽃이 없다지만, 일찍 펼친 꽃봉오리는 금방 시들고 말았다. 여의도 가장자리와 불광천을 화사하게 물들인 벚꽃도 첫 주말도 넘기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졌다. 4월 들면서 기온과 바람이 잔인했으니 군항제를 기다리던 진해는 벚꽃 없이 치러야 했다. 여의도나 진해는 모여드는 인파와 축제를 연출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자연은 실망으로 끝나지 않았다. 꿀을 채취하지 못한 꿀벌은 봄부터 시련을 겪어야 했다.


봄과 가을이 짧아질 뿐 아니라 기온이 들쭉날쭉한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지목해야 한다. 자연이 스스로 그러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온난화된 지구는 곳곳에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100년 전보다 평균 0.7도 정도 오른 지구에서 태풍과 해일은 강력해지고 횟수도 늘었다. 보일러 켜놓은 아파트에서 수은주가 올라가듯 지구온난화는 얌전하게 진행되는 게 아니다. 들쭉날쭉 뒤죽박죽 오르는 까닭에 봄꽃들이 헷갈린다. 문제는 봄꽃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봄에 짝을 찾아 알을 낳아야 하는 개구리와 새들도 비슷한 상황에 몰린다.


10여 년 전인가? 두꺼비들이 모인 이른 봄의 웅덩이에 황소개구리가 들어갔다가 봉변당한 일이 생겼다. 늦은 봄에 동면에서 깨어야 할 황소개구리가 제 암컷으로 생각하고 끌어안은 두꺼비의 피부 독에 죽었던 이유는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참개구리와 금개구리는 섞여 살아도 알 낳는 시기가 달라 잡종이 생기지 않지만 온난화는 이따금 잡종을 발생하게 하는데, 잡종은 생식능력이 없다. 생태계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은 위축된다. 개구리가 먹는 곤충의 수가 조절되지 못하고 개구리를 먹는 동물도 줄어든다.


천적에게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 꼭대기에 올라 차례로 울어대던 새들이 한꺼번에 모여들면 짝 찾기 어려워진다. 알을 낳아도 부화한 새끼들을 먹이기 어렵다. 곤충들의 알 낳는 시기도 들쭉날쭉하므로 새들은 충분한 먹이를 제때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먹이 경쟁이 치열해진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핀 꽃을 만끽하며 잠시 황홀할지 모르지만 균형을 잃은 생태계는 비틀거리게 된다. 그 상당한 원인은 사람이 온실가스를 내뿜으며 제공했다.


떨어진 벚꽃이 바람에 도로에 흩날릴 때, 그늘에 뿌리내린 근린공원의 벚나무는 느긋하게 꽃봉오리를 펼쳤다. 아파트 그늘에 가려 햇볕을 덜 받은 목련은 타들어간 꽃잎을 우수수 떨어뜨린 목련과 달리 오랫동안 펴 있었다. 꿀벌이 부족한 도시에서 그나마 오래 자태를 뽐낼 수 있었다. 누군가 벌통을 가져와 관리한다면 꽃향기도 오래 지속될지 모른다. 곤충 애벌레가 보인다는 이유로 살충제를 뿌리면 꿀벌은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다.


불안해진 봄은 불안한 여름과 가을로 이어진다. 불안해진 생태계는 사람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사람도 생태계의 자손이다. 생태계가 안정될 때 오늘은 물론 내일도 건강할 수 있는데, 과학기술을 동원하는 사람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에너지 과소비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더욱 끔찍한 불안으로 이끄는 부메랑이다. (작은책, 2014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