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4. 4. 28. 22:31

 

지난겨울이 아무리 따뜻했어도 그렇지. 지구온난화로 봄이 점점 짧아진다고 해도 그렇지. 올봄, 꽃 피는 순서가 유난스레 헝클어졌다. 잔설을 뚫은 복수초가 노란 꽃잎을 펼칠 때만해도 순조롭길 기대했건만 아니었다. 보일러 방금 켜놓은 집안과 달리 자연의 수은주는 차분하게 오르지 않는다는 건 안다. 햇볕의 입사각도가 커지는 만큼 분명히 따뜻해지더라도, 밀물의 바닷물이 해변에 차오르듯 온도가 들쭉날쭉 오르지만, 올봄은 유별났다. 느닷없이 더워지더니 추웠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에 이어 동백꽃과 매화도 시기를 놓치지 않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미처 외투를 벗지 못한 청춘들이 근린공원의 산수유 앞에서 셀카놀이에 열중하는가 싶었는데, 금세 기온이 솟구쳤다. 4월 접어들기 전부터 양지바른 마당의 목련이 꽃봉오리를 펼치더니 이내 만개했다. 산수유가 꽃잎을 거두지 못해도 서둘러 꽃봉오리를 펼친 목련은 숨이 가빴나.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그만 꽃잎을 떨구고 말았다. 응달의 목련은 하얀 꽃봉오리를 펼치지 않았는데, 햇살 아래 떨어진 꽃잎들이 검다. 햇볕에 탔다.


아파트단지를 구별하는 녹지대의 개나리도 한순간 노란 통일체를 연출하더니 일순 초록 잎으로 바뀌고 말았다. 갑자기 흐드러지던 근린공원의 벚꽃도 거센 봄바람을 한 차례 받더니 우수수 꽃잎을 떨어뜨렸다. 진해는 군항제를 시작하지 않았는데 연분홍 꽃잎을 잃었다. 여의도 벚꽃축제도 200만 인파를 모을 수 없었다. 꽃잎을 주말까지 매단 벚나무를 만날 수 없었으니까. 벚꽃과 목련에 놀란 걸까? 5월의 전령, 라일락이 서둘러댄다. 이러다 덩굴장미까지 엉겁결에 붉어지는 건 아닐까.


갑자기 따뜻해지자 기지개를 편 꿀벌들이 잠시 신바람 냈을지 모르지만, 농염하게 펼친 봄꽃들을 모두 가루수정하기에 절대 부족했다. 섭씨 15도가 돼야 활동하는 꿀벌들은 아카시 꽃이 흐드러질 5월을 준비했을 텐데, 벌통의 꿀벌들도 어수선한 봄을 맞아 어리둥절했을 게 틀림없다. 올해 벚나무와 목련은 실한 씨앗을 맺지 못할 게 틀림없다. 그런 소동은 벚나무와 목련에서 그치지 않았다.


4월로 이어지던 3월 어느 오후, 만개한 벚꽃이 터널을 만든 불광천변을 천천히 걸었다. 30? 북한산과 그리 멀지 않건만 눈에 띈 꿀벌은 3마리를 넘지 않았다. 10분에 한 마리 꼴이다. 겨울을 지낸 벌통에서 아직 많이 나올 수 없었던 걸까? 그랬는지 모르지만 작년과 재작년 4월 중순, 흐드러졌던 벚꽃 사이에 꿀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미국과 유럽처럼 꿀벌집단붕괴현상이 발생한 걸까.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은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다고 두루 이야기한다.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하는 과일과 채소가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이 못돼 온갖 질병을 피할 수 없다고 그 물리학자는 계산했을까? 알 수 없지만, 내일이 불안하다. 벚꽃 구름 아래 엄마가 미는 유모차를 탄 아기들도 건강하게 자라야 하는데, 내년 봄은 어떨까.


어느새 일상이 된 기상이변은 꽃 피는 순서만 헝클어뜨린 게 아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다른 개구리들이 한꺼번에 모여들면 잡종이 생긴다. 그 잡종들은 후대를 잇지 못한다. 봄이 오면 나무 꼭대기에 올라 목청 높이는 새들도 짝 찾기 어려워진다. 곤충도 알 낳을 시기를 놓치고, 새들은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제 철에 짝을 만나야 후손을 건강하게 이어가건만, 올해는 시작부터 뒤죽박죽이었다.


여름철 잎사귀마다 부지런히 탄소동화작용을 해야 곡식과 과일은 가을에 실한 열매를 맺는다. 안정된 봄을 맞아야 식물의 잎이 건강하다. 식물이 건강해야 동물도 건강할 수 있는데, 같은 동물인 인간은 자연의 오랜 흐름을 뒤죽박죽 흔들어놓았다. 에어컨으로 여름을 겨울처럼, 보일러로 겨울을 여름처럼 보내는 인간은 삼라만상이 내일을 기약하는 봄을 헝클고 말았다. 겨울에서 벗어나 여름으로 부드럽게 잇던 봄은 어느새 짧아지더니 이젠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가을은 오려나? 오긴 오겠지만 열매는 각박해질 테지. 겨울이 더욱 혹독해지겠지. (월간에세이, 2014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