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1. 1. 00:29

 

20191210일 고 김용균 1주기 추모제가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에서 진행되었다. 그날 추모제의 주제는 일하다 죽지 않게! 다치지 않게!”였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말이다. 죽으려고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일하다 다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위험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완벽해야 하고 그런 일에 종사하는 이에 충분한 보상이 뒤따라야 옳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1주년이 지난 현재 제2 3의 김용균이 나올 가능성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시속 90km 속도로 자동차가 달리는 차도에서 낙화물을 수거하는 일꾼은 겁이 난다. 쉴 새 없이 달려오는 자동차들을 용케 피하며 수거하는 낙화물이 무겁다면 뛰기 어렵다. 발이라도 삐끗하면 넘어질 수 있다. 실제 20152명이 수거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가이드 차량이 차선을 막아 보호하더라도 위험할 텐데, 비용을 줄이려는 위탁관리회사는 안전지침을 어길 뿐 아니라 임금까지 줄인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대부분 비정규직일 그런 일이라도 거부할 수 없는 일꾼, 그리고 그의 가족은 하루하루가 불안할 것이다.


몇 차례 도전 끝에 취업에 성공한 청년 김용균은 기뻐했다고 어머니는 전했다. 비정규직이이라 급여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면 늘어날 거라 여겼을지 모른다. 위험이 수반된 작업을 맡더라도 머지않아 익숙해질 거라 믿었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안전한 일자리를 얻을 거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커먼 석탄가루를 싣고 어두컴컴한 공간을 맹렬하게 이동하는 컨베이어벨트는 악마의 뱃속이었다. 악마는 일 시작한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젊은이의 생명을 시커먼 아가리로 삼키고 말았는데, 사고 1년이 지났어도 발전소의 작업현장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위험한 일은 여전히 외부, 비정규직의 몫이다.


제도 개선으로 위험한 일은 정규직이 맡아야 한다면 화력발전소의 석탄 컨베이어 벨트 설비는 크게 변할 게 틀림없다. 승진을 원한다면 반드시 1년 이상 컨베이어벨트를 관리해야 한다면 그 시설은 안전하게 재설계되어 청결하게 운영될 것이다. 비정규직 직원에게 일을 맡길 때 반드시 정규직보다 급여를 높게 책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한다면 일자리에서 모멸감은 사라질지 모른다.


고등학교의 등록금과 급식비가 사라지면 의무교육과 마찬가지인 셈인데, 고교를 졸업한 나이의 모든 젊은이에게 대학 진학 여부와 관계없이 50만원을 조건 없이 10년 동안 지불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친구들과 밥 먹고 술 마시거나 옷과 장신구 구입하느라 금세 써버릴까? 그렇게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나보다. 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신의 젊은 시절을 찬찬히 반추해보라. 한두 달이라면 모를까, 10년 내내 술 마시며 50만원 탕진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림: 기본소득을 준비하거니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지역과 국가.


대학생이라면 코앞까지 다가온 과제물 정리를 미루고 아르바이트로 전전긍긍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거나 답사여행을 계획하며 인터뷰 준비에 시간을 쓰겠지. 자신의 공부를 스스로 찾아가며 건실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런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는 얼마나 즐거울까? 대학보다 일찌감치 취업전선을 도전하려는 젊은이는 자신의 관심사와 역량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텐데, 50만원이 주머니에 있다면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혹사당하거나 모멸감을 무릅써야하는 일은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일을 강요하는 회사라면 오래 머물 이유가 없다. 악랄한 기업주는 설 자리를 잃겠지.


어떤 사회가 합의로 정한 범위의 모든 이에게 무조건 제공하는 일정액을 기본소득이라고 한다. 겨우 밥을 먹거나 작은 용돈에 불과하기보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사회 일원의 교양까지 배려하는 액수라면 좋을 것인데, 일정액은 얼마가 적당한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그 일정액을 50만원이라고 가정해보자. 다달이 50만원이 입금된다면 결국 나태해질까? 그러므로 기본소득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다시 던졌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당연히 자신의 일을 계속 할 것이라고 대답한 그는 잔업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기본소득을 복지 차원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복지보다 사회정의를 지향한다. 기본소득이 추가되면 돈벌이를 위한 잔업은 사양할 것이다. 잔업을 강요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잔업이 필요한 일거리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잔업이라면 많은 보수를 받는 비정규직이 대행할 수 있겠고, 생산비가 다소 늘어나겠지만 품질은 향상되겠지. 사회정의가 실현된 사회로 거듭날 텐데, 저녁이 있는 소비자는 어떤 기업의 제품을 선호할까?


사회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에서 소비자는 생태정의에 눈을 뜰 게 틀림없다. 직원을 착취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도 거부할 것이다. 유럽의 많은 국가는 핵발전을 포기하고 태양광과 풍력발전에 투자를 늘린다. 자동차와 화력발전소의 내연기관은 지구온난화를 촉발할 뿐 아니라 미세먼지를 내뿜는다. 향후 20년 이내에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 나라들은 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멈추려는 사회적 합의에 나선다.


후손이 누려야 할 행복을 빼앗으며 오늘 자신의 즐거움을 챙기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건강한 생태계가 삶에서 가까울수록 행복은 커지고 지속된다. 새소리가 들리는 숲이 가까운 마을이라면 범죄 발생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속도로를 위해 산을 파헤치는 정책을 마다한다. 설악산을 빨리 편안하게 오르려고 케이블카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200마리 남짓한 산양의 보전을 위해 등산로를 줄이자는 제안을 환영하지 않을까? 사회정의는 그렇듯 생태정의로 확산될 텐데, 강퍅한 삶을 예방하는 기본소득이 그 길을 안내하리라 생각한다.


자유로의 낙화물 수거원에게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해당 지자체 청사 앞에서 집회하기보다 부당한 일을 당장 때려치울 게 틀림없다. 낙화물을 방치할 수 없는 지자체는 대책을 세워야한다. 안전을 보장하면서 보수를 획기적으로 높이겠지. 태안화력발전소를 비롯해 전국의 화력발전소는 설비를 안전하게 바꿀 것이다. 낙엽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미화원도 보수가 넉넉한 자신의 일에 만족할 것이다. 돈벌이 시간을 줄인 만큼 취미생활을 즐기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


재원이 모자란다면 기본소득 대상의 폭을 조정하면 된다. 자신이 평생 즐겁게 일할 방향을 찾으려는 청소년부터 제공하면 어떨까? 재산 물려준 뒤 용돈이 부족해 전전긍긍하는 노인부터 제공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농촌에서 땅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농사짓는 농부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면 건강한 먹을거리의 생산과 보급이 지금보다 늘어나지 않을까? 그런 농산물을 받는 도시의 소비자는 농민을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독일 메르켈 총리는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찾아 다시금 깊게 사죄했다. 일본과 다른 점인데,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써놓은 아우슈비츠 정문 안쪽에 강제로 수용된 사람들의 공포는 끔찍했을 텐데, 비정규직을 외면하지 못하는 우리 청년들의 노동은 과거 강제수용소와 크게 다를까? 김용균의 어머니는 1년이 지나도록 거리를 떠나지 못한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인데. 기본소득은 진정 노동을 자유롭게 만들지 않을까? (작은책, 20201월호)

국가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 겠네요...

오늘도 기쁜 날!
좋은 내용 잘 보았습니다.
새로운 한해 잘 시작 하시길…

이곳도 들러 주시길....생명의 양식도…
http://blog.daum.net/henry2589/344009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