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0. 3. 31. 23:20

 

4월은 영어로 April. 알파벳 R이 있다. R이 있는 달에 굴을 먹어야 한다고 대선배는 귀띔했는데, 단골 주점은 3월이 지나면 굴을 내놓지 않는다. 인천에서 흔히 덕적도 석화라고 말하는 생굴은 4월이면 제맛을 잃는 탓이다.


바닷물이 차가워지면 덕적도의 작은 배는 고래 등처럼 둥글게 솟아오른 섬 가장자리의 양지바른 바위에 옷 든든하게 입은 아낙 한둘을 내려놓는다. 쪼그려 앉아 곱은 손으로 작은 글을 껍질을 따는데, 인천사람들이 석화라 말하는 잔굴이다. 해지기 전까지 열심히 손을 바삐 놀려도 한 주전자 채우기 어렵지만, 가격은 실하다. 절반을 깔아놓은 한 접시에 2만 원을 받으니 단골 주점에 주머니가 궁한 젊은이는 거의 없다. 떠들썩하지 않으니 편하다.


수업 개시 전에 귀찮은 회의 마치고 모처럼 둘러앉은 학회 임원들에게 단골 주점의 이맘때 명물, 덕적도 석화 한 접시를 대접했다. 숟가락으로 수북하게 떠서 앞접시에 내려놓은 뒤 양념간장을 솔솔 뿌려서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모두 만족하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동석했던 이가 전화를 했다. 지신은 괜찮았는데 몇 분이 속 불편해했다는 게 아닌가. 막걸리가 몇 순배 돌았고 안주도 여럿 나왔지만, 굴 이외에 모두 익힌 해산물이었다. 굴이 문제였나? 아닌 게 아니라 2월 말인데, 석화가 전 같지 않게 통통했다. 알을 준비하기 턱없이 빠른 계절이건만.


올봄 경칩은 35일이었다. 3월은 영어로 March. 알파벳 R이 분명히 있지만, 단골 주점은 석화 내놓기 꺼릴 듯한데 개구리는 이미 알을 낳았다. 대부분 북방산개구리다. 지리산 남녘은 한 달 전에 낳았다는데, march는 행진이라는 뜻인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배웠다. 동면하던 개구리가 알을 낳고 활동을 시작하니 그렇게 이해할 만한데, 북방산개구리는 벌써 알을 낳았다. 올봄이라면 강원도 도롱뇽과 두꺼비도 알을 낳았을지 모른다.


지난 12월부터 2월까지, 전국 평균 기온이 섭씨 3.1도였다고 기상청이 발표했다. 기상 관측 이래 1973년 이후 가장 높아. 평년보다 2.5도 정도 따뜻했다고 덧붙였다. 연수구 구도심에서 송도신도시를 잇는 교각 아래 6대의 제설차는 겨우내 한 차례도 움직이지 못했다. 기상청은 이례적으로 따뜻한 남풍이 1월에 자주 유입돼 전국에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지만, 기상이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사진: 2019년 호주 6개월을 불태운 산불의 한 모습. 10억 마리 이상의 "자연의 이웃"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출처는 인터넷)



얼어붙은 물이 녹기 시작할 때, 북방산개구리 수컷들이 리드미컬한 목청을 높이면 얼핏 비슷해도 작고 날씬한 한국산개구리가 슬그머니 경연장에 다가온다. 논에 흔한 참개구리는 4월 중순 물 고인 논에 모여 기를 쓰고 울지만, 그보다 먼저 논을 기웃거리는 청개구리는 작은 몸에 어찌나 우렁찬지 귀가 따가울 지경인데, 도시 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려면 관광버스로 2시간은 나가야 한다. 운 좋으면 방죽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두꺼비들을 만날 수 있지만, 웬만한 부모는 어릴 적 동네의 어귀에서 늘 보았다. 두꺼비는 이른 봄마다 자신이 태어난 방죽을 찾는데, 물 고인 논과 방죽이 더불어 드물어지면서 두꺼비는 그만 보호 대상이 되었다.


알을 바가지 크기의 덩어리로 낳는 북방산개구리와 참개구리, 그리고 조랑박 크기로 낳는 한국산개구리는 겁이 많다. 천적을 보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드는데, 이른 여름 포도송이처럼 낳는 무당개구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피부독을 믿는지 모르는데, 염주처럼 수초 사이로 알을 길게 늘어놓은 두꺼비는 도무지 겁이 없다. 피부 독에 혼비백산한 뱀과 족제비도 외면할 걸 잘 알기 때문일까? 보란 듯 떼로 몰려다니는 방죽은 올챙이들도 천적의 인기척에 수초 아래 숨어드는 다른 올챙이들과 달리 아랑곳하지 않지만, 5월 중순 자동차 바퀴를 조심해야 한다. 엄지손톱 크기의 어린 성체들은 야심한 시간, 호수 주변의 아스팔트에서 처참해질 가능성이 크다.


가끔 텔레비전 광고에 등장하는 우리나라의 개구리들은 대개 미국 개구리 소리를 낸다. 생태 의식 없는 광고회사가 손쉽게 미국 자료를 사들이는 모양인데, 경칩을 맞은 얼마 전 인터넷에 마스크로 입을 가린 개구리가 등장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한국에 없는 개구리를 경칩 모델로 데뷔시켰는데, 그렇듯, 올봄은 개구리보다 코로나19가 깨웠다. 이후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아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자청하며 봄을 구속했다. 개강을 2주 연기했다지만, 젊은이들은 그때 봄을 만끽할 수 있을까?


화강암 모래가 맑은 물과 장단을 맞추며 흐르는 중상류 하천에 모래무지가 한했는데, 요즘 4대강에서 자취를 감췄다. 낙동강 상류 내성천의 감돌아 흐르는 모래 속에 황급히 몸을 감추던 흰수마자는 이 시간 어디로 그 가녀린 몸을 숨겼을까? 대형 보를 철거해 모래톱이 되살아나면 회룡포에 다시 선보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적인 생태학자가 늘어난다. 독성 녹조가 끈적이는 무산소 수괴를 견딜 고유 담수어류는 드물 테니까. 대형 보가 모래와 강물을 가로막자 찐득한 펄 범벅이 된 4대강에 수많은 동식물이 사라졌다. 망가진 생태계에 화가 스민다.


흐트러진 생태계를 파고드는 외래종은 국립공원의 미국자리공과 도시 하천의 돼지풀만이 아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생물다양성이 유지되는 생태계가 주위에 보전되었다면 변화된 RNA 바이러스라고 해도 일순 창궐할 수 없다. 그물코처럼 조화로운 먹이사슬에서 조절되면서 다양성을 유지할 텐데, 시방 우리와 세계의 인류사회는 코로나19 창궐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생태계를 붕괴한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부메랑이다.


지난해 기상이변은 유별났다, 6개월 이어진 호주 산불은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이 절명할 정도로 생태계를 불사르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화마를 잠재운 빗물은 상처받은 생태계를 어루만지겠지만 퍼부은 폭우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보다 더 더웠던 유럽의 불볕더위가 인도를 휩쓸며 경작지를 태웠고 러시아와 알래스카의 동토를 불살랐다. 영겁의 세월 쌓여 매장된 메탄이 30도 가까운 더위에 녹아 타오른 동토의 불길은 한반도 면적을 넘었다는데, 올여름은 잠자코 지나갈까? 거대한 산불과 폭염을 부른 여름철 기상이변은 겨울철에 폭한을 부르는데, 북미 나이아가라 폭포가 얼어붙더니 난데없이 태국과 인도 심지어 이집트까지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균형을 잃은 생태계는 기상이상을 불러들인다. 주홍날개꽃매미는 전에도 중국에서 날아왔지만 안정된 생태계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해의 더위와 가뭄은 그런 곤충들의 폭발적 증가를 걱정하게 만든다. 조경업무로 공직을 마친 선배는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지나면 해충이 늘어났다는 경험을 돌이킨다. 동면 중인 알과 애벌레가 얼어 죽지 않는 탓이라는데, 그건 과수원과 농토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밀은 6.0%, 쌀은 3.2%. 옥수수는 7.4%, 콩은 3.1% 생산량이 감소한다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연구팀이 분석했는데, 해충 때문이라고 한다. 살충제와 제초제의 사용량이 늘어나고 토양 생태계가 더욱 황폐해지는 걸까?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1922<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다. 수백만 1차대전 희생자들이 파묻힌 대지에서 생명이 깃들지 못하는 봄을 한탄했다고 문학평론가는 해석한다. 눈 한 번 내리지 않은 따뜻한 겨울에 개구리가 알을 낳았다. 혼란스러운 생태계에 태어난 생명이 앞으로 온전할지, 올해 4월은 잔인하지 않으려는지, 걱정이 커진다. (작은책, 202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