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6. 16. 08:01

 

사람 사이에 조용히 확산하는 코로나19처럼 과일나무 사이로 전파되는 과수화상병이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충청북도의 사과 과수원을 중심으로 조용하고 빠르게 창궐하는 모양이다. 1780년 미국의 사과 과수원에서 발견된 과수화상병은 불에 탄 듯 나무들을 말려죽인다는데, 우리나라는 2015년 안성의 배 과수원에서 처음 관찰된 이후 해마다 늘어나더니 올해 극성이라고 언론이 보도한다. 현재 전국의 1%400여 사과 과수원에 전파되었지만, 이런 추세라면 전국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리라.

 

바이러스인 코로나19와 달리 세균으로 전파되는 과수화상병은 코로나19처럼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다고 한다. 잠복기가 3년에서 20년 정도로 길뿐 아니라 감염 초기 증상이 없어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당국은 걱정한다. 일부 가지에 증상이 분명해도 멀쩡한 가지는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는 까닭에 코로나19처럼 감염이 의심스러운 과수원을 전수조사해야 할 형편이라는데, 확산을 막으려는 당국은 감염된 나무의 반경 100이내 모든 과일나무를 잘라내 파묻고 향후 5년 동안 과수원을 금지한다고 한다.

 

사진: 요즘 가장 많이 소비되는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로 흔하디 한하지만, 곰팡이 오염으로 멸종 위기에 있다고 한다. 상업적 효율화를 위한 극단적 품종개량의 역풍이다.

 

과수화상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섭씨 25도에서 29도의 습한 날씨에서 창궐한다고 한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이 지나더니 올해는 모내기 시작 전부터 비가 잦았다. 고온다습한 날씨를 좋아하는 세균이 면역력 약한 과일나무에 침투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분석한 농업기술원 담당자는 한반도의 아열대화를 촉진하는 지구온난화와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당국은 공급 부족으로 올 추석에 사과 가격이 오르는 걸 걱정한다지만, 누구보다 농부의 어려움이 크겠지.

 

지구온난화가 과수원의 위기를 불러온 건 이미 오래전이다. 대구 일원이 주산지라고 배웠던 1970년대에서 50년이 흐른 요즘, 사과 주요 생산지는 충청북도가 차지한다. 하지만 심각해지는 온난화를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강원도가 사과 주산지의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벌써 경기 북부와 강원도에 사과 과수원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기후 전문가는 북한 지역으로 올라갈 가능성까지 점친다. 사과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과일나무 사정이 비슷한데, 전에 없던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면역력이 낮아졌다는데, 과일나무의 면역력은 왜 요즘 약해진 걸까?

 

바나나는 주로 뿌리로 증식시키는 다년생 풀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가장 팔리는 바나나는 캐번디시 품종인데, 사실 한 그루나 마찬가지다. 생산성이 좋은 바나나 한 그루를 찾아내 그 뿌리를 늘려서 광범위하게 심었기 때문인데, 곰팡이 감염이 퍼지면서 현재 캐번디시 품종은 멸종위기라고 한다. 품종을 극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타고난 유전다양성을 잃었고 거듭된 화학농업으로 면역력마저 잃자 그만 곰팡이 공격에 무력해졌다는 건데, 과수화상병에 속수무책인 사과는 아니 그럴까?

 

전 세계의 아몬드 소비는 대부분 미 캘리포니아에서 담당한다. 살구 씨앗과 비슷한 아몬드의 생산 효율성을 위한 품종개량은 유전다양성을 크게 위축시켰다. 밀집시켜 광활하게 재배하는 과수원에 질병이 창궐한다면? 가격이 오른 사과를 제사상에 올릴 우리는 아몬드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과일뿐 아니라 딸기, 토마토, 감자가 그렇다. 옥수수와 콩이 그렇다. 조류독감 발생으로 살처분되는 닭,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돼지가 그렇다. 생산성을 위해 타고난 유전다양성을 거의 지운 농작물, 과일, 가축이 그렇다. 한두 품종으로 획일화하여 공장처럼 광범위하게 사육하고 재배하는 현대 농업이 대부분 면역력을 잃었다. 질병에 속절없다.

 

석유를 가공한 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최적으로 동원하는 공장식 농업, 그렇게 생산한 곡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공장식 축산은 인간의 면역력을 약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삶 역시 다양성을 잃었다. 동물 사이로 조용히 전파되기에 무시했던 코로나19가 동물에서 사람 사이로 퍼지면서 노약자와 기저질환자에 치명적인 질병으로 돌변했다. 치료제와 백신이 근본 대안일 수 없다. 유전다양성을 확보해 면역력을 회복해야 재앙은 심화, 반복되지 않는다. (지금여기, 20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