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8. 26. 21:54

 

기상이변. 식상한 단어가 되었다. 도무지 경각심을 주지 못한다. 이변이 일상이 된 세상, 얼마나 파국적인 이변이 닥쳐야 긴장할까? 되풀이되는 기상이변 기록에 시큰둥해하는 사람들은 아파트 가격 상승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 더위였다는 1994년의 기억은 희미하다. 다음으로 더웠던 2018년 여름은 형벌 같았지만. 이듬해 여름이 덥지 않았다. 다시 와도 견디겠다 싶은데, 2019년은 겨울이 더웠고 제설차가 필요 없었다. 최초의 기록이지만, 도시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숲은 달랐다. 조경 전문가는 늘어날 해충을 걱정했고 올봄 매미나방 유충이 걷잡을 수 없었다.

 

2020년 첫 기상이변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길고 수량이 많은 장마다. 단단한 기반 위의 고층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의 처지에서, 화면 보기 미안한 뉴스가 하루하루 이어진다. 농촌 마을의 농경지가 모조리 물에 잠겼다. 흙탕물에 집과 농토를 잃은 농부는 망연자실한데, 재난을 보여주던 방송사의 다음뉴스는 채소가격 상승이다. 농부의 어려움보다 도시 소비자를 자극해야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일까?

 

수확 앞둔 작물을 출하하지 못하는 농민의 안타까움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풀며 어느 정도 달랠지 모른다. 그런 게 혜택이라면 혜택일 텐데, 소외되는 농민은 있으리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농민은 그렇다 치고, 가격이 오른 식자재를 구입해야 하는 도시 소비자는 길고 긴 장마의 희생자일까?

 

농촌 없는 도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소비자에 판매할 농작물이 부족한 순간 도시는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다. 농작물뿐인가? 먼 곳의 맑은 물을 받아 오염시켜 밖으로 내버리는 도시는 외부에서 전기와 가스, 통신망을 가져와 쓰레기를 만들고 손을 턴다. 흙탕물에 잠겼던 가재도구를 닦을 물은 물론, 마실 물도 모자라는 농부는 장마 속보를 안락하게 시청하는 도시인을 먹여 살린다.

기상이변이라는 말. 언제 일상 언어로 등극했을까? 19988월 강화는 하루 620밀리의 빗물을 감당해야 했다. 아들 토일이를 재운 수필가 박광숙 선생은 두려움을 빈들에 나무를 심다에 담담하게 전했다. 바다가 인근인 강화에 산사태는 드문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상처가 남았다. 이후였을까? 심심치 않게 들리던 기상이변!” 어느새 식상해졌는데, 파국을 염려하는 감성 소유자는 내년 이후에 어떤 식상함으로 전율해야 할까?

 

한 언론은 지난 5년 통계를 풀이했다. 여름 집중호우 희생자의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 고령자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정보 수집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것이다. 출연한 전문가는 경험에 의지하는 나이든 농부는 지금의 집중호우는 과거와 다른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기상특보 등을 유의해야하지만 하천이나 계곡 등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강조했다.

 

젊었던 시절의 경험에 의존하다가 기상이변이 일상인 요즘에 사고를 피하지 못한다는 건데, 노인의 잘못일까? 비가 거세게 내리면 노인은 안전한 집에 머물러야 마땅한 걸까? 도시인의 상식이다. 이번 기상이변에서 90대 노인은 논밭이 제방 붕괴로 침수되는 모습은 평생 처음이라고 증언했다. 기후변화가 기후위기로 이어지는 요즘, 집중호우가 예전과 다르다는 거, 경륜 있는 농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러므로 어른이기에 논밭에 더 나가야 했다. 나이든 농부가 논둑을 걷기만 해도 벼는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잎사귀를 바르게 펴지 않던가.

 

물꼬를 보러 나왔을 80대 농부가 급류에 휩쓸렸고 숨진 상태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는 무너진 제방이 토하는 급류에 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에 없는 이번 제방 붕괴의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의 영역이더라도, 합리적 의심이 세간에 모인다. 관측 이래 최대 수량이지만, 장마철 집중호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낙동강에서 발생한 제방 붕괴는 이명박 정권이 밀어붙인 ‘4대강 사업과 무관할까? 섬진강의 붕괴는 상류 대형 댐의 급작스러운 방류와 관계가 없을까?

 

여러 기상전문가가 지적하듯, 올 장마는 지구온난화가 빚은 재난이다. 북극해의 빙하가 녹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름에도 찬바람에 둘러싸인 북극권이 누적되는 온실가스로 따뜻해지면서 냉기를 단단히 붙잡는 상층의 제트기류가 헐거워진 결과라고 주장한다. 북극권의 냉기가 아래 위도 지역으로 내려가는 이유가 그렇다는 건데, 온난화의 문제는 더 커진다. 빙하 녹은 북극권이 군청색 바다로 바뀌면 하얀색 빙하에 반사하던 햇살이 바다에 흡수돼 수온이 상승한다는 게 아닌가. 전문가들이 알베도라 말하는 현상이다. 여파로 제트기류는 더 헐거워지고 툰드라지대 기온이 오른다. 올여름 섭씨 38도를 넘나든 시베리아에 한반도 면적의 산불이 발생했다. 영구동토층 아래 얼어붙은 메탄이 스멀스멀 분출되며 불탔다. 우리 금수강산이 빗물에 젖었을 때 유럽은 햇볕에 타들어갔다는데, 북극의 알베도 현상과 무관할까?

 

점점 뜨거워지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 차가운 기단과 한반도에서 경합하며 오르내리다 한동안 비를 뿌리던 장마는 농사의 기반이었다. 장마철 빗물을 믿고 농부는 벼농사와 밭농사를 준비해왔다. 장마철 지나자마자 한반도를 지배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세에 눌려 우리는 열대야에 시달렸는데, 올해는 달랐다. 북쪽의 차가운 기단이 밀리지 않자 기상청은 관측 이래 신기록을 다시금 발표했다. 위기에 빠진 기후는 인류와 생태계의 멸종을 걱정하게 만드는데, 내년 이후 어떤 이변이 발생할까? 장마철이 아니라 우기를 맞아야 할까? 뜻밖에 혹독한 마른장마를 겪을까? 기상이변의 메뉴는 우리가 종잡지 못한다.

 

사진: 미국의 거대한 단일농업.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무거운 농기계에 의존하는 농업은 토양생태계의 다양성을 비효율로 취급한다.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막대한 제초제와 살충제 역시 석유를 가공했으며 농기계로 수확한 단일 품종의 농산물을 전 세계에 공급하며 운송, 저장, 가공, 폐기하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석유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다국적을 넘어 초국적을 지향하는 단일 품종의 농업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농촌의 물웅덩이를 모조리 없앤 요즘, 농경지는 재해 완충력을 잃었다. 기계화를 위해 산비탈과 구릉지의 논밭을 절도 있게 바꿔놓은 게 화근이었다. 주민이 함께 사용하던 방죽을 관개용으로 개조한 저수지와 작은 보에 물을 가둔 인근 하천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면서 집중호우에 대비할 여유를 잃었다. 4대강 사업이 키운 대형보와 물을 천문학적으로 담은 다목적댐은 농부의 경륜을 비웃는다. 한꺼번에 연 수문이 토해내는 급류는 못 보던 패턴이다. 기억에 없는 지구온난화가 파국을 빚었다.

 

비가 내리면 농촌의 어른은 물꼬를 살피러 나온다. 내 논과 이웃 논의 물량을 조정하는 일상이다. 천수답에 의존하던 시절, 물꼬는 이따금 이웃 사이에 드잡이를 일으켰지만 대개 우애의 물길을 터주었다. 수천 년 이어온 우리 땅의 천수답은 저소득 국가의 창피한 후진농업이었을까? 욕심이 빚은 착각이다. 기계화와 관개를 선진농업으로 배운 우리는 석유 지원 없는 농업을 상상하지 못한다. 종자의 선택과 파종, 경운과 수확, 운송과 저장, 그리고 가공과 폐기에 이르는 과정에 들어가는 석유는 막대하고,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될 거라는 예상에 눈을 감는다. 거대 자본이 개입할수록 농업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갖지 못한다.

 

코로나19는 초고속 초고층 철근콘크리트 문화가 빚은 재난이다. 화석연료 과소비가 빚은 파국의 다른 모습이다. 재난이 일상이 된 농촌도 다르지 않다. 다국적기업이 강요하는 다수확품종을 획일적으로 심고, 품종에 맞춘 농사법으로 농촌을 길들이면서 비롯되었다. 다양성을 잃은 농업은 감당하기 어려운 질병을 불러왔다. 조류독감과 구제역만이 아니다. 전에 없던 농경지와 과수원의 질병도 마찬가지다. 집중호우로 제방이 무너지고 물꼬 보러 나온 노인이 급류에 휩쓸리는 현상도 탐욕의 산물이다. 가족농, 소농 시절에 없었다.

 

집중호우에 나이든 농부가 논둑에 나선 풍습이 정겨웠던 시절, 코로나19는 없었다. 생태적 완충력으로 감염된 이웃은 지역에서 치유되었을 텐데, 우리는 탐욕에 젖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일상은 정부가 얼마 전에 발표한 그린뉴딜에 없다. 재난을 생태적으로 완충하던 조상의 삶에서 희망을 구해야 한다. 몽상일까? 다음세대의 생존이 달렸는데 불가능해야 할까?

 

1950년대, 석탄으로 난방하던 영국은 치명적 스모그를 경험한 뒤 삶의 방식을 바꿨다. 상상하기 어려웠어도 난방연료 목록에서 석탄을 없앴다. 석유에서 벗어나는 농업, 지역에서 자급하는 농사는 불가능하지 않다. 코로나19를 모르던 시절의 전통이었다. 우리나 세계나. (작은책, 2020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