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20. 9. 28. 16:07

범람하는 치명적 에너지에서 벗어나려면

 

낚시꾼의 허풍은 탓할 게 아니라지만, 올해는 지나치다 싶다. 전에 없던 장마 때문인가? 양쯔강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황해의 염분을 희석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큰소리치고 나간 경험 많은 낚시꾼이 허구한 날 꽝이다. 커다란 우럭 서너 마리 선뜻 내주더니 올해는 고개를 젓는다. 해마다 심해지는 기상이변이 우리네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낚시꾼의 불만에서 그치지 않을 텐데.

 

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을 기록한 이번 장마는 중국에서 유별났다. 양쯔강을 막은 세계 최대의 싼샤댐을 무너뜨릴 위기를 몇 차례 모면했다던데, 이제 마음 놓아도 되려나. 싼샤댐이 무너지면 하류 지역의 핵발전소가 폭발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상당한 전기 생산과 관계없이, 전기 공급이 끊어지는 순간 위험해지는 방식이 핵발전이다. 20113월 대지진 이후 폭발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그랬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양쯔강 하구의 핵발전소가 폭발한다면 황해와 우리 서해안은 하루 만에 치명적으로 오염된다고 전문가는 예견한다. 우럭을 포함해, 서해안의 어패류는 일순 독극물로 전락할 수 있다.

 

사진: 중극은 현재 50기 가까운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있으며 그 중 11기가 우리 서해안과 인접한 자국 동해안에 위치한다. 그 중 단 한 기만 폭발해도 우리나라 서해안은 치명적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다. 산둥반도에 가동되는 핵발전소 1기가 후쿠시마 정도의 폭발사고를 일으킨다면, 우리 서해안은 하룻만에 치명적으로 오염된다. 위 사진을 그 모습을 보여준다. 서해안에서 잡히는 모든 수산물, 특히 갯벌, 갯벌에서 잡히는 어패류는 독극물에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 동해안에 10기 넘는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완공한 지 몇 년 되지 않는 최신형이라도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다. 설계수명 이내에 사고가 발생할 리 없다는 안전신화를 되뇌겠지만, 사소한 실수나 예측 넘는 재해에 폭발한 사례를 무시할 수 없다. 이제까지 폭발한 6기의 핵발전소는 막대한 방사선량을 치명적으로 유출했다. 그러므로 소비자와 환경단체는 관리 운영에 대한 투명한 감시를 요구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도,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국가들은 한사코 외면한다.

 

설계수명이 종료돼 폐기한 핵발전소는 안전한 걸까? 폭발하지 않았더라도 사용한 핵연료가 남는 한 장담할 수 없다. 폭발 가능성이 여전하고 치명적인 방사선을 막대하게 배출하는 사용 후 핵연료는 안전하게 폐기할 기술이 없지 않은가! 콘크리트 수조 안에 넣고 철저하게 관리한다지만, 위험은 거의 영구적이다.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 위험 요소다. 1그램 누출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플루토늄이 사용 후 핵연료 총량의 1%에 달한다. 참고로,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4000년이 넘는다.

 

25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우리나라는 이번 태풍으로 어떤 피해를 어느 정도 입었을까? 늘 그렇듯 함구했지만, 느닷없이 멈췄다. 대신 안전신화를 외쳤지만, 믿기 어렵다. 보험업계에서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1:29:300이다. 중상자가 한 명 발생한 사고가 있다면 같은 사고로 29명의 경상자가 있고, 사고가 일어날 뻔한 300명의 사례가 있다고 하인리히 법칙은 주장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사고는 600건이 넘는다. 기후위기로 우리나라와 주변 바다의 수온은 다른 곳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내년 이후에 얼마나 많은 태풍이 어느 정도의 위력으로 다가올까?

 

핵발전소 17기를 가동하던 독일은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다. 유명한 자동차 회사가 여럿인 독일은 2030년 이내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 천명한 바 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화석연료 발전소를 더 짓지 않겠다고 선언한 독일은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할 것을 약속하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9기를 바로 폐기했다. 안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지만, 산업국가의 지위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온실가스와 방사선을 내놓지 않는 기술을 선도하겠다는 의지인데 그 시기를 앞당기겠다 단언한다. 햇빛과 바람 에너지의 적극적 이용이다. 독일의 햇빛과 바람이 우리보다 특별히 강한 건 아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님, 가짜뉴스 그만하십시오!”

 

값싼 중국산 태양광 패널로 전국의 산야와 계곡이 중금속 오염에 노출되었다는 주호영 원내대표의 주장은 거짓이라면서, 끝장토론을 제안한 양이원영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판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대학 졸업 후 환경단체에서 탈핵운동을 지속해온 양이원영 의원은 편집된 자료로 햇빛 발전의 가능성을 폄훼하고 왜곡된 자료로 핵발전을 공개적으로 옹호한 정당의 원내대표 발언을 비판하며 실상을 공개했다.

 

2019년 기준으로 국내 태양광 패널의 77.8%는 국산이고 결정질 실리콘계 패널이므로 크롬,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현 정부 집권 기간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로 임야가 훼손되었다는 거짓을 정정했다. 전 정부 시절 산지 설치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산사태를 일으켰고, 태양광발전은 꾸준히 늘어 전체 발전량(91,368GWh)3.5%에 이른다고 알려주면서 “7, 8월에 태양광의 전체 발전 비중이 0.8%에 불과하다는 내용은 일부 자료를 편집한 악의라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같은 당 소속 의원은 핵발전 폐쇄 후 온 국토가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다면, 블랙아웃과 산사태가 일상화되는 미래를 점치면서 에너지전문가들의 합리적인 조언에 귀 기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거론한 전문가는 누구일까? 재생 가능한 에너지 분야는 아닌 게 분명한데, 양이원영 의원이 정정하고 나섰다. “향후 30년간 재생에너지 전 세계 투자액은 원자력보다 47, 석탄과 가스 등 화력발전보다 5배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 블룸버그 통신을 인용하면서 “2016~2018년 국내 고용 인원수에서도 원전(핵발전)3만 명 대에서 정체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분야는 계속 증가하여 2018년에는 원전 고용인원의 2배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핵발전 해체 이후의 그린뉴딜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밤에 전기 생산이 불가능한 태양광 발전은 흐리면 효율이 떨어진다. 한데 생각해보자. 재생 가능한 전기를 태양에 한정하는 건 아니다. 바람도 큰 자원이다. 세계는 지역에 맞는 다양한 방식을 동원한다. 흐린 날이라고 바람까지 없는 건 아니다. 거센 바람으로 풍력발전기가 이따금 부서지지만, 날개의 방향을 미리 조절하면 대개 안전하다. 바람도 없고 흐린 날이 계속된다면? 전국이 모두 그런 날은 드물지만, 그때를 대비해 환경 피해가 작은 가스화력발전을 요긴하게 준비하면 된다. 여간해서 멈출 수 없는 핵발전보다 훨씬 효율적이며 안전하다.

 

지금은 코로나19가 엄습한 시기다. 저렴하고 안전한 백신과 치료제가 충분히 배포돼 코로나19가 진정되어도 예전과 같은 삶은 이어질 수 없다고 사회학자들은 강조한다. 지구온난화를 부추긴 탐욕스런 삶은 인류와 생태계의 멸종을 염려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판 뉴딜을 제시한 정부는 그린뉴딜을 언급했는데, 무엇이어야 할까? ‘뉴딜은 새로운 일자리를 뜻한다. 그린뉴딜은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일자리일 텐데, 코로나19보다 더욱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창궐까지 억제할 새로운 삶을 모색해야 한다. 핵폐기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핵발전소의 폐기와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화력발전의 조속한 퇴출에서 그칠 수 없다.

 

에너지와 식량을 최대한 자급하며 차가운 돈보다 다정한 우정을 나누는 마을을 지향해야 한다. 핵이나 석탄으로 전기를 넘치게 생산하는 방식은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는 거대 산업에 적합하다. 그런 산업을 위해 고속도로를 뚫고 비행장을 확충하며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 고층빌딩과 아스팔트를 채우자 코로나19가 손쉽게 인류의 삶에 파고들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삶은 일찍이 간디가 역설한 마을, 자급자족 공동체에 있다. 간디는 70만 개의 마을이 느슨하게 연결된 인도를 소원했다.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필요한 만큼 덮고 숲과 습지가 건강한 마을에 생태계를 위협하지 않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간다면 전기는 자급할 수 있다. 모자라면 소비를 효율화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아껴야 한다.

 

후손 위협하는 줄 모르고 휘황찬란한 초고층 거대도시와 탐욕스런 산업을 소박하게 개편하는 그린뉴딜로 시작해야 한다. 이익을 독점하려는 다국적기업을 마을의 작은 기업으로,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에서 소농과 가족농으로 바꾸자. 적지 않은 일자리가 한동안 창출될 것이다. 그 이후 마이삭과 하이선, 그보다 더욱 강해질 태풍이 와도 핵발전소는 결코 고장이 나지 않을 것이다. 사라질 것이므로. (작은책, 202010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20. 9. 23. 17:58

 추석을 앞둔 요즘, 짙어지는 파란 하늘은 하얀 구름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감과 밤이 익어가며 가을이 무르익는다. 곧 기러기들이 찾아오겠지. 유난히 길었던 올 장마가 그쳤어도 빗방울은 멈추지 않지만, 계절의 변화가 분명하니 고맙기 짝이 없다. 다가올 겨울에 어떤 이변을 벌어질지 불안하더라도 가을은 일단 편안하다. 고층빌딩 숲으로 비좁아진 도시의 하늘 아래에서 가을을 반긴다.

 

사실 인천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가장자리는 불그죽죽하다. 코로나19로 번잡했던 인천공항은 크게 진정되었다. 산업단지의 공장 가동도 주춤했지만, 인천의 바닷가를 차지한 거대한 석탄화력발전소와 간선도로를 메우는 자동차들은 여전히 배기가스를 내뿜는다.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내연기관이 멈추지 않았으니 대도시의 하늘과 저녁노을은 명징하지 않다. 이맘때 가평 유명산은 파란 물이 뚝뚝 덜어지는 하늘을 보여주겠지? 흑산도는 수평선 불태우며 내려앉는 석양을 선보이리라.

 

지난 97푸른하늘의 날을 맞아 대통령은 석탄화력발전소 10기를 임기 내에 추가 폐쇄하겠다고 약속했다. 푸른하늘의 날?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개최한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한 시민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대통령이 20199월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 다시 제안해서 12월 공식 채택된 기념일이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푸른 하늘을 위한 국제 맑은 공기의 날'(International Day of Clean Air for blue skies)”으로, 1주년을 맞아 발표한 대통령의 약속으로 미세먼지를 상당히 배출해온 낡은 석탄화력발전소가 머지않아 사라지겠지.

 

나아가 대통령은 2034년까지 2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폐쇄하고, 대신 2025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전기를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덧붙였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약속이 실현되면 발전소가 원인인 미세먼지는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를 줄이지 않는다면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폐쇄되는 만큼 설비를 개선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다면 미세먼지 개선 효과는 무너질 것이다. 게다가 굴뚝으로 배출되는 화력발전소의 초미세먼지는 설비를 개선해도 걸러낼 수 없다.

 

푸른하늘의 날 1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기후변화도 언급했다. 코로나19와 연거푸 3차례나 닥친 태풍을 기후변화가 초래한 재난의 사례로 들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전환해야 할 필요를 강조한 것이다. 다행인데, 석탄화력발전소 30기의 폐쇄로 위기로 치닫는 기후변화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대통령은 아쉽게 석탄화력발전소 신축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안전한 에너지를 언급했지만, 핵발전소의 폐쇄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번 태풍으로 우리 핵발전소 6곳이 멈췄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는 전에 없는 기상이변을 일상화하는데, 내년에 어떤 태풍이 얼마나 다가올까? 그 대책도 시급하다.

 

사진: 제주도 남쪽 해안의 풍력단지.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환경단체는 한국을 기후악당 국가로 지목한다. 그도 그럴 게, 자국에 짓는 것으로 모자라는지 다른 나라까지 가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세우지 않는가? 기후위기를 넘어 인류와 생태계의 멸종을 염려하는 해외 환경단체는 우리 대통령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선언을 어떻게 바라볼까? 유럽 국가 대부분은 내연기관 가진 자동차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국 자동차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는 우리나라를 미덥게 여길까?

 

우리나라의 재생 가능한 전기 생산량은 3% 내외에 불과하다. 풍력이나 태양광 전기를 3배 이상 늘려도 50%를 넘나드는 다른 국가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생산량에 비교할 처지가 못 된다. 푸른하늘의 날을 제안한 국가답지 않다. 대통령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분야에서 66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다. 풍력이나 태양광 일자리는 화력이나 핵발전 분야보다 3배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환경단체는 주장한다. 그것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핵발전소 규모로 새만금 일원에 태양광 발전을 집중하기보다 동네 지붕과 아파트 베란다마다 태양광 패널을 붙인다면 일자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환경단체는 정부에 그린뉴딜을 촉구하는데,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로 화답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3배 확대에서 그칠 수 없다. 낡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그칠 게 아니다. 멀쩡한 석탄화력발전소도 폐쇄하고 모든 핵발전소를 서둘러 폐로하면서 동시에 재생 가능한 전기 생산을 30배 이상 늘릴 수 있어야 옳다. 바람직한 일자리의 획기적 창출은 물론이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그뿐인가? 핵발전으로 인한 방사능 확산 위험성과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인다. 전문가는 우리의 햇빛과 바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요구한다. 생태계의 안정을 해치는 파국적 개발을 멈추고 생존을 위해 훼손된 자연을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이후에 다시 엄습할 제2 3의 코로나를 예방하려면, 우리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 위주의 사용에서 그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낭비를 현저히 줄여야 한다. 핵발전소 6기가 한꺼번에 멈춰도 남아도는 전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산업 설비와 가전제품의 효율화에서 더 나아가 절약으로 전환해야 한다. 많이 불편해도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수도권의 하늘은 전국, 세계의 하늘과 연결돼 있다. 하늘이 푸른하늘을 기념하는 날 하루만 맑을 수 없다. 요즘의 맑은 하늘이 에너지 소비가 많은 겨울과 여름으로 이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코로나19와 기상이변을 부른 우리 삶을 반성하며 돌이켜야 한다. 멀지 않은 후손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지금여기, 2020.9.21.)

 

 
 
 

생태계·동물

디딤돌 2020. 9. 16. 21:59

 

라틴문학을 세계에 알린 백 년 동안의 고독. 마콘도 마을에 정착해 100년 동안 흥하고 망한 가족 이야기를 담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967년 소설은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깨알 글자로 500페이지 넘는 소설을 몽환적이라 평론가는 칭송했는데, 얼마나 감미롭게 숨넘어가는지,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바나나 농장 노동자 이야기가 나온다. 바나나는 수선화나 튤립처럼 뿌리로 증식시키는 다년생 풀이다. 그 무거운 열매 덩어리를 껍질이 아직 푸를 때 따서 농약 통에 풍덩 빠뜨렸다. 꺼내길 반복하던 노동자들은 망가진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쉬거나 화장실 시간도 부족했고 농약 묻은 손을 닦을 기회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생계비에 모자랐던 노동자들은 광장에 모여 저항했는데, 모두 사살되고 말았다. 광장을 에워싼 건물 모퉁이의 기관총을 난사한 농장주는 사체를 바다에 내버리고 손을 털었다. 마르케스는 다국적기업의 폭압을 고발한 거였다.

 

그림: 세계에서 주로 생산하는 바나나는 캐번디시 품종으로 유전다양성이 거의 없어 곰팡이에 쉽게 감염돼 전문가들은 멸종위기를 염려한다.  

 

노동자들은 그로미셀 품종을 재배했을 게 틀림없다. 1960년대까지 세계를 풍미했으니까. 그 품종은 이제 자취를 감췄다. 뿌리를 썩게 만들며 창궐하는 곰팡이 때문이지만, 다행인가? 캐번디시가 빈자리를 메웠다. 요즘 우리가 주로 먹는 품종인데, 사실 그로미셀보다 풍미가 덜하다는데, 캐번디시도 같은 곰팡이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나나가 멸종위기라는 소문이 돈다. 여전히 저렴하게 수입하는지, 마트의 지하 식품매장과 거리의 좌판에 가득한데. 무순 영문인가?

 

유전다양성이 완벽에 가깝게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필리핀에서 재배하든 파나마에서 재배하든, 뿌리로 분양한 바나나의 유전자는 한 그루처럼 같다. 그래야 생산에서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은 최고의 효율로 막대한 이윤을 독점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이 먹자 덤비는 곤충이나 곰팡이 같은 존재다. 미리미리 듬뿍 뿌리는 제초제와 농약으로 처리하는 다국적기업도 당황했다. 그로미셀을 쓰러뜨렸던 곰팡이가 더욱 강력해져 다시 나타날지 짐작하지 못했고, 강력한 농약도 소용없었나 보다. 기다렸다는 듯, 폭압을 소환했다. 곰팡이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농장을 모조리 불태운다. 과거 노동자를 살해하듯.

 

기업 이윤을 위해 조상의 유전자 대부분이 제거된 농작물이 파국에 휩쓸리는 운명은 바나나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세계 소비량의 80%를 점령한 아몬드도 비슷하다. 2월 중순 한꺼번에 꽃 필 때, 꽃가루 수정을 위해 북중미와 남미 그리고 유럽에서 캘리포니아 아몬드밭으로 몰려오는 꿀벌의 운명은 집단붕괴현상으로 이어졌다. 멀쩡해도 구제역 핑계로 살처분하는 세계의 모든 돼지, 근처에 조류독감바이러스가 있다며 죽이는 닭, 오리, 메추리가 그렇다. 기상이변에 맥 못 추는 사람은 어제까지 온전할까? (갯벌과물떼새, 2020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