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9. 16. 21:54

 

반년 넘게 아침 10시가 되면 뉴스에 신경을 쓴다. 전날 자정까지 집계한 코로나19 현황을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하루 10명 이내로 사나흘 진정돼 다행이라 여기면, 어딘가 소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한다. 벌써 수개월 반복이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는 건, 확진자 추이가 2학기 수업 방식과 연계될 거라 학교에서 통보한 까닭이다. 이러다 다음학기도 비대면 온라인수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법 바뀌자 나이 든 강사를 외면하는 와중에 구제해준 대학이 있어 강의를 구차하게 이어간다. 학생들이 후하게 평가했기 때문일지 모르는데, 자고로 평가는 엄정해야 한다. 다른 이를 평가하기에 앞서 평자는 자신을 냉정하게 반추해야 하건만, 요즘 대학마다 준비 없는 학생에게 선생에 대한 평가를 요구한다. 엄정할 수 있을까?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평가 결과는 시간강사에 혹독할 수 있다. 강사 지위를 박탈할 빌미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 연연하지 않기로 맘먹은 지 오래다. 누가 뭐라든, 수업 방식은 엄연한 개성이므로.

 

대학에서 진리를 추구한다고? 진리는 무슨. 진리가 만고불변이던가? 대학에서 선생은 자신의 소신으로 편견을 강의하고 학생은 수강한다. 싫으면 신청을 하지 않으면 된다. 실수로 신청해도 포기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강사 인력이 열악한 대학은 다른 소신을 강의할 선생을 소개할 여력이 없는데, 학생의 평가를 잣대로 강의를 없앤다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연구와 강의는 불가능하다. 대학에서 자리가 가장 불안한 자가 시간강사다. 평가에 목을 매는 순간 시간강사에게 소신은 기대할 수 없다. 쪼들리더라도 강의가 없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기는데, 이번에도 그 대학은 계약을 연장했다.

 

리액션(reaction).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진지한 질문과 뜨거운 토론? 학생의 취업이 최우선인 시대의 대학에서 과분한 덕목이다. 질문을 불편해하는 분위기에서 토론 없는 강의가 보통인데, 눈 마주칠 일 없는 비대면 온라인 강의는 교실과 리액션을 삭제했다. 프로그램에 따라 질문을 게시한다지만, 모니터에 거의 표시되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발음이 분명치 않다거나 목소리가 작았다는 불만이 올라오는데, 그것참. 강사 처지에서 해결해 줄 게 거의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번 강의는 형편없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가장 주목받은 환경운동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올 720일 상금이 100만 유로에 달하는 굴벤키안상(Gulbenkian Prize for Humanity)’'을 수상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지만, 17세 툰베리는 기후나 환경의 위기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최전선에서 지원하는 조직이나 프로젝트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언론은 덧붙였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가 대학에 입학했는지 궁금하다. 입학했다면 금요일 첫 수업에 강의실에 들어갈까? 스웨덴의 대학들도 비대면 온라인으로 수업할까?

 

청년의 앞날을 빼앗고 왜 공부하라 요구하는지 어른들에게 묻는 툰베리는 금요일이면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주도했다. 당장 기후변화를 막을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설 것을 기득권에 촉구하면서, 내일을 기대할 수 없어도 의무감으로 들어야 했던 수업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툰베리가 다닌 고등학교는 행동도 소중한 공부라고 인정했는지 그는 졸업했다. 스웨덴을 비롯해 유럽과 많은 국가의 청년들이 툰베리에 동의했고 우리도 일부 대안학교에서 동참했지만, 어느 나라나 인문계 학생이라면 대개 대학입학에 몰입했을 것이다.

 

대학은 왜 있을까?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세계 곳곳은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변과 그로 인한 재난에 거듭 휩쓸리는데, 대학은 어떤 소중한 일이라도 절실히 수행하는가? 온갖 이론과 해결책이 발굴 제안되는 곳이 대학인데, 사라지면 기상이변은 극심해질까? 그건 분명히 아니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현황을 이해하는 연구야 줄어들겠지만, 대학은 애초 기후변화를 예방하는 데 앞장서지 않았다. 오히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로 심화하는데 기여해왔다. 숱한 경험을 돌이키지 않더라도, 유명할수록, 거대할수록, 산업화에 앞장서온 대학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는데 최선의 능력을 발휘해왔다.

 

대학은 지식을 연마하는 곳인가? 그렇다. 하지만 기준을 기득권이 틀어쥐는 한, 지식의 편견 없는 다양성은 결코 보장되지 못한다. 산업화, 돈벌이를 위한 효율화에 치중하는 대학에서 쓸모없는 지식은 정 맞는다. 교수의 지시로 연마한 지식도 쓸모가 사라지면 버림받는다. 득세하는 자본과 권력의 호응하거나 아첨하는 대학일수록 청부지식을 생산하고, 그 성과를 과시할수록 유명해진다. 그런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열심히 공부할수록 하수인으로 입문하기 쉽다. 졸업 후, 화석연료를 과하게 소비하는 분야로 인생의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크겠지. 나중에 정신 차린 젊은이가 가끔 방향을 바꾸지만, 그들은 사회에서 부딪히며 대안을 찾을 뿐, 대학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졸업생의 인생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학은 없다.

 

남동공단의 어떤 중소기업 사장은 인재를 구하지 못한다고 언제나 하소연하는데, 자기 아이들은 일찌감치 유학을 보냈다. 회사를 물려주려고? 그건 아닌데, 대학 졸업한 아이가 보장이 없는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내는 모습을 어떤 부모가 반길까? 사실 중소기업 직무를 위해 대학을 졸업해야 할 이유는 그다지 없다. 대학 졸업장이 필요할 정도로 전문성이 분명한 대기업 직무도 드물다. 예의와 상식이 있다면 전공은 물론, 대학 졸업과 관계없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범위가 대부분이다.

 

대학은 왜 있을까? 대학교수의 일자리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지나치게 냉소적인가?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김연아를 배출했다고 지금도 자랑하는 그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적해 유일하게 승점을 올린 이세돌 9단은 중학교 중퇴다. 그는 스스로 공부했는데, 요즘 많은 프로기사는 대학을 노크한단다. 체면 때문인가? 전문대학에서 손톱 미용 분야가 새롭게 뜨는 모양이다. 그 학과의 노련한 교수는 무엇을 강의할까? 손톱의 위생이나 해부학적 특성일까?

 

이 글을 쓰는 자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전에 대학을 어렵게 졸업했지만, 아들에 거금을 투자한 할아버지는 물려받은 농사를 지었다. 전문직업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을 박사까지 공부시켰지만, 교수가 못된 박사는 자신의 아이 모두를 대학 졸업으로 이끌지 못했다. 졸업한 아이도 전공과 관계없는 일에 매진하고, 복학을 포기한 아이는 제 인생의 갈피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남 보기 번듯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유예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는데, 사실 두 아이 모두 자신이 원했던 전공과 관계없는 일에 도전한다. 대학은 젊은이의 인생항로를 스스로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대학입학을 위해 퍼부었던 청년 시절의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코로나19가 없었던 시절, 불과 두 세대 전? 이웃은 다정하고 서로 돕던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데 대학은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특히 대학에 적을 둔 지식인에게 묻고 싶다. 대학을 이대로 두고 포스트 코로나19”를 논할 수 있나?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창궐에 커다란 원인을 제공한 기득권, 그 기득권에 편입하고자 버둥거리는 대학을 이제 버려야 옳지 않을까? 대학이 사라진다면 어떤 세상이 다가올까? 소비자의 필요에 바로 반응하는 중소기업은 인재로 넘치지 않을까? 심각해지는 코로나19와 기후위기는 필연적으로 식량위기를 부를 텐데, 내일을 위한 농업에 투신하는 젊은이들이 지역에 늘어나지 않을까?

 

대학은 언제부터 사회의 필수 통과의례가 되었나? 동서고금을 살펴봐도 그리 오랜 이야기가 아니다. 기득권에 아첨하는 지식이 넘치는 세상이 되면서 대학은 인재 창출보다 진입장벽 구축에 몰두한다. 학위는 독선이다. 각종 자격증도 비슷하다. 학위증과 자격증 장사꾼을 위한 대학이나 학원은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관측 이래 최대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요즘, 그들만의 성장과 번영을 추동하는 대학은 존재 가치를 잃었다, 한계를 외면하는 경제성장은 후손에게 범죄행위일지 모른다. 생존을 억압하므로. 후손의 행복을 생각하는 목록에서 빠져나간 대학은 이제 어떤 가치를 찾아야 할까?

 

물려받은 열쇠수리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유럽의 젊은이가 우리 언론에 소개된 적 있다. 20여 년 전인데, 그 나라도 요즘 디지털 자물쇠를 도입했을지 모른다. 그 열쇠수리공은 디지털 기술을 익혔겠지만, 기후변화와 코로나19는 자본이 강요하는 에너지 소비를 혐오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시대가 열리면 수천 년부터 우리 곁을 지켰던 열쇠수리공이 돌아오겠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지금보다 지속가능하려면 조판공이 사라진 출판계도 바뀔 텐데, 대학은 어떤 준비에 나서야 할까?(가톨릭일꾼, 2020년 가을호)

 

게재된 제목은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시대에도 대학이 필요한가?>로 바뀌었습니다만, 제 글 의도와 다소 차이가 있어서 블로그는 제가 보낸 제목으로 올립니다.

 
 
 

도시·인천

디딤돌 2020. 9. 12. 23:04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의 저자 최영준은 어린 시절을 인천에서 보낸 분이다. 40대 말 물 맑고 경치가 그만이지만 인적이 드문 홍천강변에 7천 평의 땅을 구입해 강의 없는 주말이면 찾아가 농사를 짓던 저자는 어느새 8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대학교수를 은퇴하고 홍천강변에 주저앉은 그이는 주민이 되었는데, 삶터인 홍천강변은 요즘 예전의 모습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을까? 승용차로 어렵게 드나들던 비포장도로가 번듯하게 포장된 후 땅값이 사정없이 올랐을 텐데,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출간 10년이 지난 요즘도 주경야독을 즐길까?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밭을 일구다 잠시 땀을 식힐 때,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자칭 사업가들이 은근히 다가와 꾀었다는 이야기가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에 나온다. 펜션을 지으면 편안하게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으니 자신들에게 땅을 맡기라고 얼렀다는 건데, 그렇게 땅을 잃고 고향에서 쫓겨난 주민이 당시에 많다고 썼다. 지금은 더하겠지. 땅 투기꾼이거나 투기를 조장하는 무리가 기웃거리면 시골이든 섬이든 금세 망가진다. 물려받은 농토는 겉보기 근사한 펜션단지로 변해 초기 돈벌이가 신통하지만 이내 비슷한 시설과 경쟁하게 되고, 펜션 손님 바라지하다 은행빚 갚지 못하면 고향을 떠나고 만다. 아스팔트 신작로가 없었다면 생기지 않을 일이었는데, 백령도에 공항이 생기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최근 백령공항 건설사업이 백지화될 위기라 주민들의 실망이 크다는 보도가 나온다. 주민의 숙원인 공항이 무산되면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이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언론은 보도했다. 그럴까? 공항이 없으면 지원사업은 껍데기로 전락할까? 주민에게 중요한 지원사업마저 백지화되었다는 걸까? 아리송하다. 3m 이상 파도를 견딜 2천톤 급 여객선의 도입을 이야기하는데, 여객선 도입은 백령공항 유무와 무관하다. 공항이 생기면 있던 여객선이 철수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날씨가 궂으면 원활한 통신이 불가능해 학생들 온라인수업이 어렵다는데, 공항이 생기면 원활해지는가?

 

지난 정부는 흑산도와 울릉도, 그리고 백령도에 50인승 소형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의 신설을 약속했다. 약속 전에 주민과 얼마나 충실하게 논의했는지 모르는데, 공항은 삽 뜨기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주민은 찬성하지만, 환경단체가 반대하기 때문일까? 사실 대부분 주민은 어떤 공항이 어디에 들어서는지, 지역에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줄지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공항건설과 관계하는 업자와 공항 개통 이후 투자할 자본의 논리가 횡행할 따름이었다.

 

접근성을 이야기하는데, 어디를 향한 접근성인가? 주민들이 서울까지 한 시간 거리가 되길 바라는 건가? 3파고는 거센 바람이 만들고 그런 바람이 불 때 50인승 비행기는 이착륙하지 못한다. 바다가 잔잔한 날 대도시로 나갈 주민의 주요 목적은 무엇일까? 나이 많은 대다수 주민은 병원을 찾거나 친지를 방문할 텐데, 시간 다툴 일은 아니다. 고액의 탑승비를 감당할 이용객은 관광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을 위해 호텔이나 고급 펜션에 투자할 주민은 거의 없다.

 

울릉도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으로 부두가 파괴되고 연락선이 좌초되었다. 서둘러 복구해야 한다. 하지만 부두 파손이 공항 필요성을 부각하는 건 아니다. 그 정도의 재해라면 바닷가에 건설될 소규모 공항도 견디기 어렵다. 자주 발생하지 않더라도,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긴급환자의 수송에 비행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드시 50인승 비행기가 대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기동력이 월등한 헬기도 가능하지 않은가. 서해5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섬지방에 서울을 한 시간 내 접근할 목적의 공항은 급하지 않다. 헬기 투입 전까지 환자를 안정시킬 수 있고 평소 지역의 진료와 공중보건에 대비할 거점 병원이 훨씬 시급하다.

 

공항이 생겨 관광객이 대폭 늘어나면 주민의 소득도 어느 정도 늘어나겠지만, 홍천강변을 비롯해 경관 좋은 시골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주민의 편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해야 옳지만, 안타깝게 살상은 그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5도는 어떤지 궁금한데, 원활한 통신을 위한 공공투자는 바로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보조금 없다면 어떤 선사도 머뭇거릴 테니, 2천톤 급 여객선의 도입은 주민의 처지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

 

두무진과 서풍받이를 비롯한 천혜의 경관을 여기저기에 펼치는 서해5도는 비행장 유무와 관계없이 인천의 자부심이다. 통일 이후에도 아름다운 경관이 후손에게 보전되려면 주민들의 삶도 불편하지 않게 보전되도록 살펴야 한다. 그를 위한 열린 논의가 먼저 열리길 바라면서, 주민 섣부르게 호도하며 성급히 추진하는 비행장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천시민과 서해5도 주민이 절실하게 인식하면 좋겠다. (인천in, 202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