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12. 31. 15:55

 

지난해 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색다른 표지를 선보였다. 숫자 2020을 붉은 X자로 씌운 그림이었다. 하단에 역대 최악의 해라는 문구가 없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의미였다. 미국의 언론인은 2020년을 잊고 싶을 것이다. 우리도 다를 리 없다. 입시나 결혼을 준비하던 청년, 자영업자와 회사원, 남녀노소 누구든, 아름다운 기억은 거의 없으리라.

 

아버지를 임종한 상주는 몹쓸 짓 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서고금의 관혼상례에 이런 일은 없었다. 요양원에서 몸이 쇠약해지며 의식이 흐려지는 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뵙고 돌아서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모셔오자, 당신의 깊숙한 기억에 오롯한 자식과 손주를 마주하며 편안하게 마지막 길을 떠났다고 한다.

 

이번 학기도 수업을 온라인으로 마쳤다. ‘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강의가 끝났다. 그나마 잠시라도 교실에서 학생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자 대학은 선생 재량으로 교실 강의를 허용했다. 학생 대다수는 온라인 방식을 선호했어도 받아들이기 싫었다. 코로나19 상황이야 이해하지만, 교실 수업으로 환원된 마당에 학생과 선생이 얼굴을 마주하고 토론하지 못하는 수업이라면, 대학에서 차라리 모독이리라.

 

교실과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지성의 전당이라더니, 학교에 교육이 사라진 셈이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학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교실마다 카메라를 설치해 수업 이후 자동으로 강의 내용이 응용프로그램에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굳이 교실에 출석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편히 강의를 들을 수 있어 그런지, 학생 없는 교실에서 강의하는 경험도 생겼다.

 

사진: 고 김종철 선생의 녹색사상집. 철들기 전부터 우리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근대문명이 무엇인가? 생태계는 물론이고 조상에게 없던 파멸의 문화가 아닌가. 다 늦었더라도, 다음세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문명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그저 생존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문명, 바로 생존을 생각하는 문명은 '생태문명'이라는 걸 처절하게 되뇌는 책,

다음 학기는 어떨까? 6개월 이어지리라 예상하던데, 비대면 온라인 기술로 수업은 가능하겠지. 적당히 또는 허전하게 학점을 받았더라도, 학생들은 학년이 오르거나 졸업해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으리라. 온라인 기술이 없을 때 코로나19와 비슷한 감염병이 창궐했다면 어쩔 뻔했을까? 강의 없는 대학이 처음은 아니다. 1968년 전후 우리나라는 덜했지만, 세계 각국의 대학은 반전 물결에 휘말려 수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우리도 군사독재의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 비슷했다.

 

그 시절의 대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배운 게 없어서 허송세월로 지내지 않는다. 여느 때 대학생처럼 각계에서 자신을 일을 무난하게 해왔고 은퇴했다면 뜨거웠던 시절을 기억하리라. 설사 입학한 전공과 다른 분야라도 최선을 다했으리라. 전공을 마쳤더라도 직장에 다니면서 색다른 일에 도전할 기회가 많고 젊은이라면 대체로 무난하게 해낸다. 대학에서 전공이라는 거, 돌이켜보면 내세울 게 못 된다. 경험에서 배우는 일이 훨씬 넓고 깊다.

 

현재 잘 나가는 직업 중 80%는 사라질 거라 많은 미래학자는 예견한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예전 전공 분야를 고집한다. 학과목을 맡는 교수가 여전하기 때문이리라. 대학이 직업학교는 분명히 아니지만, 졸업 후 전공을 찾아 직장을 선택하는 관례는 바뀌기 어렵다. 타성과 관성에 젖은 대학은 장차 사라질 직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고 대책 연구에 무감각하다. 그러니 코로나19 기억으로 2020년을 보낸 청년들이여. 괜스레 무기력할 이유가 없다. 지성에서 멀어져가는 대학이라면, 애틋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요즘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생산하는 자영업자는 즐거운 비명을 지를까? 알 수 없는데,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면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 코로나19는 이제까지 생태계의 모든 생물을 막무가내로 지배해온 인류에 새로운 각오를 요구했다. 영겁의 세월 모진 풍상을 겪으며 형성된 인천의 갯벌은 시방 어떻게 변했나? 세계 5대라던 갯벌은 비행장으로, 화력발전소와 공단으로, 휘황찬란한 초고층빌딩에 짓밟혔고, 그 자리는 대기권에 온실가스를 펑펑 쏟아낸다. 그러자 생태적 완충력을 잃었고 코로나19가 손쉽게 파고들었다. 인천과 우리나라의 수도권만이 아니다. 세계의 회색도시들이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백신이 널리 보급된 이후 떠오를 분야는 무엇일까? 대학은 분명히 아니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직업도 당분간 지위를 잃을 수 있다. 법조 관련 직업이 그럴 거로 미래학자들은 전망한다. 인공지능이 그럴싸한 소설과 시도 내놓는 세상이라니, 있는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써내는 기자도, 이익이나 권력을 지향하며 어떤 불순한 의도로 기사를 왜곡 남발하는 기자도 없어지겠지. 창의력이 필요한 직업군? 리얼리? 그렇다면 남을지 모른다. 분명한 건, 그 분야에서 남의 것 슬며시 베끼고 큰소리치던 인간은 도태될 테지.

 

전자출판이 자리를 잡자 신문사는 조판공과 식자공을 내보냈다. 전자자물쇠가 현관문을 차지하면서 남의 집 열쇠 구멍마다 접착제 짜넣던 자물쇠 자영업자는 자취를 감췄다. 다행인데, 앞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아직 훗날이라고 믿고 싶지만, 석유가 지배하는 일상이 지나가면 전기 가격이 오르며 부족해질 터.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얻는 전기는 아껴야 할 테니, 우리는 열쇠 수리공을 다시 소환할지 모른다. 전자출판? 무슨! 그때 원고지에 글을 써 출판사로 넘겨야 할 텐데, 가능하려나? 오른손 중지 첫 마디의 굳은살이 다시 딱딱해지기까지 구겨 버리는 종이가 예전처럼 많을까? 지레 걱정한다.

 

최근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 대응을 촉구하는 자리에서 인간은 자연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자멸과 같다라고 연설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공기와 물이 오염돼 해마다 900만 명이 사망한다.” 추산하면서 코로나196배에 달한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사람과 가축이 야생동물의 서식지와 서식공간을 빼앗으면 더 많은 바이러스와 질병이 동물에서 옮겨올 것으로 예견한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젊은이에게 새로운 일상을 열어달라고 부탁한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름도 복잡한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음식을 두루 맛보지만, 재료는 엇비슷하다. 채소와 과일, 곡물과 육류, 설탕과 알코올, 그리고 가공식품들이 그렇다. 가축과 농산물의 사육과 재배 과정을 살피면 지극히 단조롭다. 석유다. 석유가 없으면 지금과 같은 물량의 음식은 전혀 맛볼 수 없다. 하루만 정전돼도 탈출해야 하는 고층건물마다 텅텅 비는 순간, 어떤 직업이 주목받을까? 골프장 잔디를 걷어낸 자리에 농토를 조성하는 일자리는 어떨까?

 

근대화 이후 인류사회는 개발이라는 마패를 앞세웠다. 기득권의 탐욕을 위해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다양성을 희생시켰다. 개개인의 개성도, 생태계의 다채로움도 질식시켰다. 과정보다 속도를 중시했지만, 재생 불가능한 화석에너지를 남용해야 했다. 현란한 현대와 더욱 현란할 내일을 위해 파국 부를 핵에너지를 뽑아내는 무모함을 자랑했고, 나머지는 박수갈채를 보내야 했다. 그러자 코로나19가 엄습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행히 건강한 사람에게 치명적이지 않지만 새롭게 등장할 감염병은 어떨지 모른다. 기후위기로 영구동토가 녹으면 부패할 동물의 몸에서 어떤 인수공통감염증 바이러스가 빠져나가 고속도로와 국제공항을 따라 세계로 퍼질지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위험할지, 백신을 제때 개발할 수 있을지 누구도 점치지 못한다.

 

새로운 일상을 열어가자는 사람이 있다.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이후의 한국판뉴딜을 온라인과 그린뉴딜로 열겠다는데, 아리송하다. 있는 공항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지나 습지 또는 농경지를 조성하기는커녕 과거 정권이 오히려 무색하게 생겼다. 간신히 남긴 생태계마저 허문 자리에 공항과 화력발전소를 추진하지 않던가. 코로나19 이후에 어떤 퇴행으로 후손을 밀어붙이려는가? 비인간적인 비대면 사회인가?

 

지난 세기의 유력한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유한한 세계에서 상승적 성장이 지속할 것이라고 믿는 자는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경제학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코로나19를 초대한 근대문명은 이제 마패를 내려놓아야 한다. 저항한다면? 자식을 키우는 우리가 빼앗아야 한다. 근대문명보다 훨씬 길었던 생태문명으로 인류 역사는 안정적으로 지탱해왔다. 내 발이 현실에 있으니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없지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늦지 않게 대안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 (작은책, 20211월호)

 

지극히 타당하고 옳은 지적 말씀, 감사합니다. 무한성장이 가능할 것처럼 외쳐대는 생태 파괴론자들에게 내리치는 죽비입니다!

 
 
 

자원·에너지

디딤돌 2020. 12. 28. 14:55

 

자동차가 없을 때, 사람은 마차를 탔다. 마차가 늘자 거리는 말 분변으로 더러워졌지만, 자동차가 해결해주었다. 자동차가 늘자 하늘이 더러워졌다. 전기차와 수소차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자 그런 차에 충전할 전기를 위해 핵발전소를 100기 넘게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것참! 그러자 꿈의 에너지, 핵융합이 해결하겠단다.

 

KSTAR. K방역이 이니다. 축구장 4분의 1의 면적에 30m 높이의 핵융합 연구 시설, KSTAR에서 플라스마 상태의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섭씨 1억도에서 20181.5초를 유지하더니 2019년에 8, 2020112420초를 유지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연구진은 자랑했다. 핵융합 역사를 해마다 새로 쓴 우리 기술이 머지않아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게 될 거로 들떴고, 대통령은 감탄했다. 꿈의 에너지가 현실화되는 걸까?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헬륨 원자로 붙으며 중성자를 내놓으면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나 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35개 국가가 국제핵융합실험설비 ‘ITER’를 프랑스 남부에 대규모로 건설 중이다. 2025년 플라스마를 가동하고 2035500MW의 전력을 생산하리라 기대하는 ITER의 기술을 토대로 2050년이면 세계 각국이 핵융합 발전을 상업화하리라 전망하는데, 30년 후 우리는 에너지 문제를 산뜻하게 해결할 것인가?

 

그림: 핵융합 반응으로 에너지를 얻겠다는 이론의 허상. 중수소와 삼중수소의 핵울 융합해 헬륨 핵을 합성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확득하겠다는 상상도. 하지만 그를 위해 섭씨 1억도 이상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데, 그런 열을 담을 그릇은 세상에 없다. 핵융합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지만, 만에 하나 잠시 성공 허상을 보인다면 그 에너지는 결코 지역에서 생산, 관리, 자급하지 못한다. 초거대기업에 예속되어 지역과 후손, 그리고 생태계는 타탄을 면할 수 없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가 남아돌지만 자원고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나 국가는 그 상황은 어떨게 극복하려 들까? 지난 60년 이상 가당치 않은 허상을 그리면서 챙긴 막대한 예산은 돌이킬 수 없을 텐데, 실패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깨끗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라는 신기루는 실패할 터. 무엇보다 중요한 지속 가능한 생존은 현 세대의 반성으로 낭비를 줄일 때 의미 있게 다가오리라.

 

1억도가 넘는 온도를 어디에 보관하나? ‘토카막이란 자기장이면 된단다. 방사능도 사고 위험도 없단다. 전문적인 답변은 아무리 들어도 어렵다. 1억도로 부족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전문가들이 해결하겠지. 막연히 기대하는 시민은 세금을 추가할 따름인데, 온난화 추세를 멈추지 못하면 생태계는 2030년 멸종위기에 몰릴 것으로 환경 전문가는 경고한다. 핵융합을 더욱 서둘러야 하나?

 

전기는 사용하는 에너지의 일부다. 석유는 고갈이 눈앞인데, 앞으로 모든 에너지를 전기가 대신할 수 있을까? 핵융합이 제공할 에너지는 넘치는데, 식량과 다른 자원이 부족하면 어떡하나? 피비린내 나던 역사를 기억해보자. 힘이 넘치는 국가의 탐욕은 어떤 궁리로 이어졌던가. 60년 동안 장담으로 이어졌던 핵융합. 이번에는 성과가 있을까? 한데, 성과가 있어야 하나? 혹시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의 과욕은 아닐까?

 

식량, 에너지, 돌봄은 지역에서 자급해야 지속 가능하다고 현자는 말한다. 핵융합은 중앙집중적일 수밖에 없는데, 생태계의 산물인 인간도 생태적 기반을 잃으면 생존할 수 없다. 생태계 대부분을 평정한 인간이 핵융합까지 손에 쥔다면 내일은 온전할까? 다음세대를 위한 공간은 남을까? 지금 충분히 잘 사는 인간은 후손의 행복을 위해, 에너지든 자원이든, 욕심을 자제해야 옳지 않을까? 핵융합이 성공하는 날, 인간이 멸종하는 건 아닐까?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12. 23. 00:44

 

지난 518. 망월동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는 모습을 벅찬 마음으로 시청한 일단의 인천시민들이 삼삼오오 답동성당 교육관으로 모였다. 살벌했던 군사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세상에서 환경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먼저 떠난 선배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조금만 더 견디면 그토록 염원했던 세상, 나라다운 나라가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텐데, 모인 사람들은 먼저 떠난 선배를 기리며 무척 아쉬워했다.

 

1994518, 당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터넷을 들춰보았다. 광주항쟁 14주기를 맞은 통일 시대 민주주의 국민회의 추진위는 김영삼 정권을 향해 학살 책임자들의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공정한 수사와 소추를 요구했다는 짤막한 기사가 올라 있다. 그로부터 4일 뒤 나락 한 알에 우주가 있다고 설파한 장일순 선생이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년 전 수술했던 위암의 재발이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건재하다면 우리 나이로 90. 연로하더라도 기뻐했을 텐데, 장일순 선생은 아쉽게도 생전에 당신이 염원하던 민주주의를 우리와 더불어 체감할 수 없다.

 

병세가 악화되어도 병상에 누워서도 기력을 모아 이현주 목사와 노자 이야기를 마무리한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한 교육자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한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을 창설한 생명운동가다. 그는 몸에 좋은 유기농산물만 골라서 먹는 짓은 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면서 솔선했다. 자신의 몸과 땅을 위해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싶어도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농민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당부였는데, 위암이라니. 어쩌면 순교한 건지 모른다.

 

사진: 녹색연합 작은것이아름답다에서 2020년 11월 30일 간행한 책. <지구별 생태사상가>

 

 

나와 너는 천지만물과 더불어 하나

 

장일순 선생은 생전에 이렇다 할 논문이나 원고, 번듯한 책 한 권 남기지 않았지만 많은 이는 생태 사상가로 생각하며 그의 정신을 기린다. 대학에 적을 두고 정규적인 강의를 맡지 않았어도 제자를 자임하는 이가 많다. 내 땅에서 함께 살아온 어른을 기억하는데 인색해야 하는 분위기가 은근히 강요되는 세월이 최근까지 이어져왔다. 핸드폰 문화는 집안의 어른도 무시하지만,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가까워도 많은 사람들이 장일순 선생을 잊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을 기리고 싶은 생태 사상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먼발치에서 만난 적 있는 이라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다정다감할 뿐 아니라 따뜻하다고.

 

장일순 선생은 진정 책 한 권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을까? 서점가에 분명 장일순이라는 저자의 책이 버젓이 진열돼 있는데. 하지만 장일순 선생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이 발간되는 걸 바라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분명한 자신의 말이 세상에 나오면 출판사와 출판인이 치도곤을 당할 수 있기에 글쓰기를 억제했고 출판을 한사코 만류했다. 녹색평론사에서 발간한 나락 한 할 속의 우주는 어렵게 찾아낸 강연이나 대담의 기록을 나중에 묶었고 삼인 출판사의 노자 이야기세 권은 공저자인 이현주 목사가 주로 정리했다.

 

우리 현대사는 얼마 전까지 엄혹했다. 장일순을 두려워하는 자는 입을 봉쇄하려 들었다. 군사정권을 진두지휘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자, 장일순 선생에 눈을 부라린 자는 얼마 전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였다. 정통성 없는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자에게 민중은 무서운 존재다. 도산 안창호의 맥을 잇는 대성학원을 세우고 사회대중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그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빌미로 3년 동안 옥고를 치렀지만 박정희 정권은 탄압을 이어갔다. 감시의 눈초리를 번득이니 태어나 살아오던 원주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군사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를 마냥 바라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1970년대 초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와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가두시위를 주도한 장일순 선생은 독재정권의 눈에 가시였는데,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의 복구와 농민의 생존을 도모하면서 장 선생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궁극적으로 건강한 사회의 실현을 생각한다면 투쟁에서 머물 수 없다는 걸 체득하고 공생의 논리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각오로 이어졌다. 19831029일 도시와 농촌을 직접 연결하는 한살림을 원주에서 창립하기에 이른다. 이후 선생은 생명운동에 남은 생을 헌신했다.

 

한살림과 같은 생활협동조합은 농촌의 생산자 조합원과 도시의 소비자 조합원이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한다. 유기농산물은 원칙적으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지만 유기농업은 농사 방법의 차이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유기농산물은 땅과 하늘과 사람, 생산자와 소비자, 사람과 땅속의 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농업으로 생산한 농작물이고 그렇게 짓는 농업이 유기농업이다. 유기농업은 지금 우리의 삶에 조상의 삶과 얼이 깃들어 있다는 걸 반영해야 할 뿐 아니라 후손의 행복과 건강하게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땅 속의 미물을 죽이는 농약은 결국 사람의 건강을 해친다. 다채로운 생태계의 얽히고설킨 조화를 단조롭게 만드는 농약은 결과적으로 이웃과 허물없이 나누던 음식을 거대한 기업이 지배하는 상품으로 바뀌게 했고 그 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는 소외되고 말았다. 다국적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간 식량산업은 막대한 자금 이상으로 석유가 동원되지 않으면 절대 유지될 수 없다. 다국적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씨앗이 단순화된 농작물인데, 그 농작물의 유전자마저 조작하며 규모를 키운 자본은 농산물 독점에서 그치지 않았다. 가축의 유전자까지 획일화해 공장식으로 사육하기 시작하자 세상은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 들로 돌이킬 수 없게 온통 오염되고 지구는 걷잡을 수 없게 온난화되었다.

 

삼라만상은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 한 그루의 장대한 나무도 눈에 띄지 않는 씨앗에서 움트고 나무는 자라는 과정마다 미생물과 곤충은 물론 거대한 동물의 터전이 된다. 곤충이 낳은 알은 애벌레가 되어 딱따구리의 몸으로 들어가고, 딱따구리는 나무를 쪼아대면서 미생물을 밀어넣는다. 미생물이 들어간 나무는 늙으면 쓰러져 흙으로 되돌아간다. 참나무 한 그루는 700종류의 곤충에게 터전을 내어주는데 농약 세례를 받는 근린공원의 꽃나무는 나비 한 마리의 접근을 가로막으니 새들이 외면한다. 그 아래 뛰어노는 우리 아이들의 코는 농약을 피하지 못하고 아토피에 시달린다. 그래서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고 일찍이 설파했는지 모른다.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장일순 선생은 붓의 달인이다. 표정이 있는 난을 치고 의미를 담은 서화를 남겼다. 선생은 당신이 지원하는 단체를 도우려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지만 자신의 붓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봉산동 자택에서 시내까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족했지만 반나절이나 걸었다고 장일순 선생을 잘 아는 이는 회고한다. 눈을 마주치는 주민과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라는 건데, 하루는 군고구마 장수가 쓴 군고구마 팝니다. 글씨에 탄복했다고 한다. 투박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깃들었다는 아닌가.

 

아들의 등록금을 간신히 마련한 할머니가 원주역에서 소매치기당한 사연을 들은 장일순 선생은 무작정 대합실에 나가 몇 날을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디로 가려는 것은 물론이고 누굴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앉아 있기만 하니 궁금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초지종을 들었고 이내 소문은 원주 시내에 퍼졌다고 한다. 그렇게 원주역에 앉아 있길 일주일. 고개를 숙이고 찾아온 소매치기는 남은 돈을 내놓았고 할머니에게 돌려주었다는데, 다음날 그 소매치기를 찾아 나선 선생은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지? 용서해주게.”하며 소주잔을 권했다고 한다.

 

소매치기와 대학생, 할머니와 군고구마 장수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은 장일순 선생에게 양주나 맥주보다 누구나 마음 편하게 기울이는 소주나 막걸릿잔이 어울렸겠다. 개구리와 메뚜기와 거미, 그리고 모든 유충들이 우글거리는 논밭이 비옥한 소출을 내주고 그런 논밭에서 생산한 농작물이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은 조그만 엘리트 의식도 갖지 않았다. 자신을 한 알의 씨앗으로 생각한 장일순 선생은 후배에게 나대지 말고 기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가? 선생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도무지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래서 등 떠밀려 시작한 추모 사업은 소박하고 더디다.

 

위암으로 누웠을 때 노자의 도덕경을 함께 읽으며 물 흘러가듯 나눈 이야기를 이현주 목사는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정리했다. 그 무렵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나서려는 목수에게 장일순 선생은 노자 있나?” 물었고, 책은 있지만 읽지 않은 목수가 머뭇거리자 선뜻 여비를 내주었다는 일화를 최성현은 좁쌀 한알에서 소개했다. 장일순 선생 10주기를 맞아 장일순을 기리는 모임에서 장 선생과 얽힌 이야기들을 나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에 엮었다. “속지 마시오들. 세상에 글한테 속는 것만큼 맹랑한 일도 없으니까라 말했던 장일순 선생의 책은 대략 그 정도에 그친다.

 

군사정권 시절의 진정한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은 201012월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쳤다. 리영희 선생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분석할까? 세월호 침몰 뒤의 기자들의 행태를 기레기라 비판한 민중과 촛불을 들었을 텐데, 바뀐 정권에게 어떤 충고를 아끼지 않을까? 장일순 선생과 비슷한 연배이지만 깍듯이 선배로 모셨던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잇는 군사정권에 어려 차례 고초를 겪고 4차례 옥고를 치렀다. 리영희 선생은 마음이 울적하거나 허전할 때 훌쩍 원주로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파킨슨씨병으로 말년에 고생하다 유명을 달리한 리영희 선생이 장일순 선생과 이 시간 생존한다면 원주로 떠나 기쁜 마음 나누고 싶지 않을까?

 

장일순 선생이 떠난 원주. 하지만 체취가 남은 원주는 여전히 성지 같은 곳이다. 생전에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말씀을 들은 적 한 차례 없지만, 만났다면 무척 반갑게 맞아주셨을 거 같다. 그래서 자택이 있는 자리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 같다. 요즘 말로 힐링될 성싶은데, 게을러서 여태 찾지 못했다. 집터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선생이니 개발광풍에서 집터를 보전하기 위해 자손이 애를 썼을 거 같지 않은데. 핑계를 앞세운 처지가 못내 아쉽고 송구스럽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다시금 제창되었는데.

<지구별 생태사상사> 260-269쪽, 작은것이아름답다 2020년 11월 30일 펴념.

작은것이아름답다, 2017년 6월호, 78-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