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7. 1. 16:25

플라스틱 제로로 가는 여정

 

세종시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중견 공무원은 허건 날 저녁이 고민이다. 밖에서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자니 쓸쓸하고 무료하다. 가끔 총각 후배들 초대하는데 처음 환호하더니 이내 시큰둥한 게 아닌가. 맛이 뻔하기 때문이란다.

 

일주일 한 번에서 한 달 한 차례, 서울의 집을 다녀오면 잠깐 신선했던 냉장고의 풍요로움이 이내 시들해진다. 퇴근하며 반찬가게를 들리는데, 배고프면 조심해야 한다. 얇은 비닐에 둘러싸인 스티로폼 접시의 소담한 반찬마다 맛나 보이기 때문이다. 마음껏 사면 냉장고에 남아돈다. 먹성 좋은 후배를 모시지만, 그들도 지친다. 냉장고를 속절없이 차지하던 반찬들은 한꺼번에 쓰레기통으로 향하기 일쑤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저녁도 녹록한 건 아니다. 텔레비전 앞 소파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삼식이를 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가? 요리학원에 등록하는 남성이 많다는데, 무슨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 알지 못하는 한 사내가 묵은김치에 순두부를 넣고 끓여 보았다. 김치와 순두부의 오묘한 섞어찌개가 완성될 거라 굳게 믿었는데, 웬걸. 아무 맛도 내지 않았다. 사방팔방에 은근한 도움을 청했다. 귀한 친구의 묘방은 라면스프였고, 에라, 넣었더니 먹을만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아내에 이실직고 못 했다. 그랬다간 소파를 지키기 어려울 거 같아서.

 

라면스프는 작은 비닐봉지에 담겼다. 라면도 비닐봉지에 담긴다. 생각하니, 라면은 필시 비닐과 제 운명을 키운 거 같다. 비닐이 없었다면 늦도록 소파 고집하는 야식이, 나트륨 중독에서 당뇨로 직행하는 배불뚝이도 드물었겠지. 비닐 이후 기저질환자가 대거 늘었고, 오호통재라! 젊은이들이 가소롭게 여기는 코로나19가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 무섭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우리집 감자를 누가 재배했는지 잘 알던 시절, 짚으로 만든 꼬투리에 달걀 한 꾸러미나 반 꾸러미 담아 팔던 동네 가게는 주전자를 가지고 가야 막걸리를 한 되 퍼담아 주었다.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 가며 두부 한 모 사오던 아이는 이웃 농부가 광에 감자를 쏟아넣었다는 걸 짐작하면서, 신문지 없으면 두부와 생선은 사고 팔 수 없을 거라 믿었다. 유튜브가 신문을 대신하는 요즘은 어떨까? 비닐 없으면 두부부침과 고등어구이는 꿈꾸기 어렵겠지.

 

언제부터 전복을 라면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완도 일원에 여객선 드나들기 빠듯하게 집중된 전복 양식장 덕분인데, 그 양식장은 태풍을 조심해야 한다. 뒤집히면 스티로폼 조각들이 바다를 한동안 더럽힌다. 스티로폼으로 양식장을 띄우지 않는다면 전복이 라면에 들어갈 수 없고 우럭 매운탕이 주당의 최애메뉴로 등극할 수 없다. 비닐이 없다면 편의점에서 온갖 과자를 쉽게 만날 수 없고 짜장면과 짬뽕의 배달이 원활할 수 없다. ‘배달의민족은 대기업의 지위를 넘보기 어려웠겠지.

 

사진: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석유에서 비롯된 썩지 않는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석유는 고갈이 머지 않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선도국이 되어달라!” 코로나19 방역에 남다른 성과를 보이는 우리나라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서양학자의 당부가 그렇단다. 뿌듯하다. 4차산업이 궤도에 오르는 시점에서 한국은 방역을 넘어 민주주의와 경제의 선도국이 되어 달라고, 저명한 미래학자가 조언했다고 우리 언론이 전했다. 그도 그럴 게,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마스크와 방진복은 물론, 코로나19 감염을 빠르게 확인하는 진단키트를 세계 각국의 호응으로 수출한다. 우쭐해진다.

 

비닐과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우리는 코로나19커녕 일본의 수출규제도 이길 수 없었다. 플라스틱으로 적절하게 전기를 차단하거나 표면을 코팅하지 않으면 반도체가 정교하면서 가벼울 수 없다지 않던가. 결국, 석유다. 석유를 가공해 얻는 비닐과 플라스틱이 있어야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고 초고층빌딩으로 하늘을 찌를 수 있으며 제3세계 앞바다의 물고기 씨를 말릴 수 있다. 대형 어선으로 바닥에서 훑는 쌍끌이어업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거대한 그물이 있기에 가능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젊은 기자는 석유종말시계에서 갤런당 2달러인 석유 가격이 4달러가 되면 고등학생은 운전을 포기하고 부모차에 의지하면서 대화가 무르익을 거로 전망했다. 12달러로 오르면 승용차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웃이 살가운 마을이 도심에 늘어나고, 16달러가 되면 원양어선이 사라져 초밥은 자취를 감출 거라 예상했다. 나아가 20달러 이상 치솟으면 전투기를 띄울 수 없으므로 세계는 평화로워질 거라 상상했다. 재치 있는 상상인데, 석유가 고갈되면 비닐과 플라스틱은 귀중품으로 등극할 게 분명하다.

 

2007년 한 저널리스트는 파티는 끝났다에서 2005년 즈음 유정에서 퍼올리는 석유를 소비량이 초과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하지만 머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거라는 주장인데, 기껏 100여 년 전 존재를 알기 시작한 석유는 인류 역사에서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질 게 틀림없다. 지금은 석유 파티 중이다. 한데 파티는 일상이 아니다. 잠깐 즐긴 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석유를 모를 때 인류는 불행했을까?

 

패스트푸드는 석유 없이 불가능하다. 공장식 축산은 옥수수가 필수 사료이고 옥수수는 옥수수에서 얻는 열량의 10배의 석유를 동원해야 생산할 수 있다. 한 계절만 입으라는 패스트패션도 석유가 창조했다. 면직물에 개성을 넣어 염색한 티셔츠는 젊은이 방에 가득한데 못 입으면 유행에 뒤처지니 우울한가? 그렇게 광고하는데, 많은 옷에 플라스틱인 인조견이 섞인다. 세탁기 한 번 돌릴 때, 옷 한 벌에서 마이크로플라스틱 1500개 이상이 나온다고 영국 연구팀이 발표한 적 있다. 그 플라스틱은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침없이 통과해 바다로 나간다.

 

등지느러미 없는 돌고래 상괭이는 우리 서해안이 터전이다. 천연기념물이지만 죽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괭이 사체의 위를 조사하면 비닐이 가득하다. 쥐치 같은 물고기를 즐기던 상괭이가 왜 비닐을 삼킬까? 남획이 한몫했다. 쥐치가 없으니 아열대화된 서해안에 몰려드는 열대성 해파리라도 먹어야 산다. 양식장에서 빠져나오는 배설물은 해파리를 유인하는데, 허기진 상괭이 눈에 바닷물에 흐물흐물 찌든 라면봉지가 해파리로 보인다. 허겁지겁 먹었겠지.

 

바닷물에 삭으면 마이크로플라스틱으로 분리돼 우유처럼 해저로 내려간다는 비닐봉지들은 요즘 대형 식품점에서 찾기 어렵다. 하지만 바다로 이미 들어간 비닐, 스티로폼, 플라스틱은 막대할 텐데, 세포막을 통과하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생물의 생식과 성장을 방해한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소금에 포함되는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수돗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먹이사슬을 따라 인체에 스며들기 때문인가? 불임클리닉을 두드리는 부부가 늘어난다고 한다.

 

유럽은 적어도 2040년까지 자동차나 석탄화력에 필수인 내연기관을 없애겠다 선언했지만, 석유를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고갈 앞둔 석유를 태워 없애기보다 어떻게든 활용하겠다는 의지인데, 산업문명을 조금이라고 고수하려면 대안이 없기 때문이리라. 석유 고갈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인류는 생존해야 하고 코리아19보다 심각한 감염병도 견뎌야 하는데, 비닐 없이 두부 한 모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떤 준비에 나서야 할까? 시장바구니는 아니다.

 

자동차 없이 살 수 있을까? 도로를 대거 없앤 자리를 온갖 생물이 어우러지는 생태공간으로 바꾼다면 코로나19는 지금처럼 전파될 수 없다. 비행장이 사라지면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넘나들지 못한다. 자동차와 비행기를 모르는 인류 조상은 해외여행을 인생 바구니의 마지막 목록에 넣지 않았다. 열대과일을 사시사철 먹지 않아도 배곯지 않았다. 해안의 드넓은 갯벌이 복원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안전하고 맛있는 전통음식을 실컷 맛볼 것이다. 마을에서 자급자족 가능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살려낸다면, 석유가 거의 필요 없을 텐데.

 

머리 회전이 빼어난 인류는 석유 없이 행복한 내일을 구상할 텐데, 어쩌면 조상의 삶에서 힌트를 얻을지 모른다. 그런데 걱정이다. 혹시 석유 분해하는 미생물이나 곤충의 유전자를 분리하는 건 아닐까? 벌써 그럴 조짐이 있다. 과학기술이 탐욕스런 산업의 노예가 된 요즘, 불길함을 엄습한 생명공학 기술로 석유 분해 유전자를 이 생물 저 생물에 넣는 게 아닐까? 그럴 경우, 생태계가 한꺼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대안은 무엇일까? 인류의 초심이다. 석유 모르던 시기를 눈여겨보자. 진정한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일상이 거기에 있을지 모르는데, 땅과 물과 사람이 살아나는 마을이다. 간디는 인도가 70만 개의 마을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립을 의미한다. 의식주에서 에너지와 돌봄까지 자립할 수 있는 마을이다. 그런 마을에 비닐과 플라스틱이 뭐 필요하겠는가? 몽상이라고? 무슨!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 아닐까? 그 길을 우리가 선도하면 어떨까? 후손으로 이어질 지속 가능한 행복의 어쩌면 유일한 길일지 모르는데. (가톨릭일꾼, 2020년 여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6. 29. 23:09

 

날이 더워지니 하루 만보를 걸으려면 오전이 좋다. 선선한 밤이 더 좋지만, 약속이 이어지면 건너뛰기 일쑤다. 약속 없으면 보통 아침 먹고 집을 나서는데, 온라인 강의 파일을 보내면 그만인 시간강사 처지라서 오전을 활용할 수 있다. 학교 방문할 기회를 잃었어도, 그나마 다행인가?

 

할머니의 코로나19 감염이 중학생과 초등학생으로 이어졌다는 인천발 뉴스가 나왔다. 해당 학교에 검사 설비가 급히 마련되고 전교생이 검사했다고 덧붙인 기자는 당분간 온라인 수업이 이어질 거라 전했다. 할머니는 어디에서 감염되었을까? 어설픈 물건 팔기 위해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인들 불러모으는 방문판매 공간일까? 지하철 인천시청역 구내의 탁구장은 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는데, 탁구장도 코로나19 감염 통로가 되었다. 교회와 클럽, 콜센터와 택배회사. 우리네 세상의 약한 고리에서 연실 탈이 났다. 어디가 남았을까?

 

비말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공원이나 거리를 걸을 때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꼭 쓰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멀쩡해 보인다. 사실 그럴 것이다. “거짓말 강사로 알려진 젊은이가 나타난 이후, 인천이 감염 핵심지역처럼 오해받기도 했는데, 이제껏 300만 인구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300명이 안 된다. 대략 만분의 일이므로 방사능 허용기준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만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릴 확률인 1밀리시버트 이하의 방사능은 안전하다는데, 코로나19의 위험성은 암보다 분명히 낮다.

 

유전자가 DNA인 바이러스보다 100만 배 가깝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RNA로 구성된 코로나19는 갑자기 나타났지만, 없던 바이러스는 아니다. 1930년대 가축에서 존재를 알았어도 의학계가 주목하지 않았다.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던데, 발견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가축 사이에 무증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데, 사람 사이에 증상 없이 빠르게 퍼지면서 무서워졌다. 작년 겨울에 중국 무한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코로나19는 올해 봄부터 세계 모든 국가의 뉴스를 잠식하고 말았다.

 

하루 확진자가 10명 아래로 이어지면서 마음을 놓았던 시민들은 거짓말 강사 이후 확연하게 늘어나는 상황에 적잖게 당황한다. 문제의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그 젊은이는 학원에서 강의한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우리의 탁월한 추적 시스템 덕분에 발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원망해야 하는가? 비말이 전달될 거리에서 마스크 없이 춤을 추었기에?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거리두기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거짓말을 해 역학조사를 더디게 했고 그로 인한 감염자가 늘어서? 거리두기 연장으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져서? 그렇긴 하겠다.

 

사진: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에 더 많은 피해를 안긴다. 또한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중앙집중 체제의 허점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출처@인터넷)

 

한데 생각해보자. 거짓말이 죄가 되는가? 십계명이 분명하게 선언했듯, 거짓말은 만악의 근원임이 틀림없다. 거짓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어느 전직 대통령은 어릴 적 가훈이 거짓말하지 말자!”였다고 토로한 적 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거짓말탐지기의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를 판별하기에 탐지기의 성능이 정교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란다.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거라고 한 전문가가 풀이했다. 우리 법에 따뜻한 구석이 있는지 그때 알았는데, 한 젊은 학원강사의 거짓말은 확산에 다소 기여했을지언정,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은 아니다.

 

이태원 클럽 감염자에 외국인도 있었다. 그가 주한미군인지 모르는데, 요즘 30명을 넘나드는 확진자 중에 해외 원인은 크게 줄었다. 14일 격리를 각오하고 입국하는 해외의 방문자는 98% 가깝게 줄었다지만, 주한미군은 어떤가? 우리가 그들의 입국에 앞서 인천공항처럼 검역할 수 있는가? 그 방면에 상식이 없어 섣불리 짐작할 수 없지만, 이태원 클럽에서 퍼져나간 코로나19는 그 이전과 유전자가 약간 다르다. 10명 이하로 확진자를 줄었을 시절의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종식되었는지 모른다. 이번 바이러스는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G그룹이라고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게 누적 확진자가 늘어나는 유럽과 미국에서 거리두기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른다. 노인과 기저질환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코로나19 때문에 굶어죽게 생겼다는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일까? 코로나19에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막힌 경제의 문을 조금씩 열겠다 의지일 텐데, 걱정이 앞선다. 입국자 증가로 항공사의 숨통은 다소 풀리겠지만 검역과 치료에 헌신하는 모든 국가의 보건 관계자 부담은 무척 늘어나겠지. 확진자 발생으로 교문 닫는 학교도 늘어날지 모른다.

 

코로나19는 중국 무한의 화남시장이 근원지일까? 무한의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가 시발점일까? 거액의 연구비를 미국에서 받아온 그 연구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미국은 위험도가 높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연구를 다른 나라에 의뢰하거나 비밀리에 남의 나라에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무한에서 코로나19 변형을 연구했는지 모른다. 그 연구에 미국의 지원이 있었는지 역시 모르고 알 도리도 없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탄저병을 미군 주도로 연구하는지 알 도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코로나19의 원인이 중국? 미국? 박쥐? 천산갑? 역시 모르는데, 꼭 알아야 하나?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 따로 있다.

 

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증상으로 감염되는가? 원래 그랬을까? 변형된 결과일까? 그런 변형이 코로나19 이외에 없을까? 감기나 독감은 어떨까? 사라졌다 믿는 사스와 메르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데, 백신은 물론이고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는 그 바이러스는 진정 사라졌을까? 드물게 남아있지만, 변형된 뒤 증상이 가볍고 뚜렷하지 않아 모르고 지나는 건 아닐까? 사람과 동물을 모두 감염시킨다는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되고, 무섭게 변형될 가능성은 없을까? 티베트나 툰드라 지대의 영구동토층에 인수공통바이러스는 얼마나 얼어붙어 있을까? 온난화된 지구에 다시 창궐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될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할 연구는 진행되고 있는가?

 

고양이와 애완견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하는데, 문제를 일으킬 만큼 자주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데, 모피를 위해 밍크를 밀집 사육하는 네덜란드의 한 축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비위생적인 축사에서 끔찍하게 사육하는 밍크까지 감염되었다는 소식은 없는데, 비참한 사육환경은 밍크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계란과 삼계탕을 위한 양계장은 어떤가? 걸핏하면 조류독감이 창궐하는 까닭은 동물복지는커녕 비위생적으로 밀집시킨 공장식 사육과 무관하지 않은데, 잊을만하면 구제역을 창궐하게 하는 공장식 돼지 축산은 어떤가? 젖소와 고기용 소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바이러스 무방비지대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볼 때, 인간은 블루오션이라고 주장했다. 퍼져나가기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일 텐데, 도시 주변을 농촌이 감싸고 건강한 생태계가 사람 거주 지역 밖에 드넓게 펼쳐졌던 예전에는 아니 그랬다. 현재 비행기와 고속도로를 타고 퍼지는 감염성 질병은 코로나19만이 아니다. 효율을 위해 타고난 다양성을 없앤 생명 산업에 예외가 없다. 공장과 다름없는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의 수경재배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소품종으로 광활한 농토를 채우는 미국의 옥수수밭과 콩밭도, 세계 소비량을 만족시키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밭도, 마치 한 그루처럼 똑같은 세계의 바나나농장도, 재선충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소나무도 비슷하다. 유전적 다양성과 더불어 환경 적응력마저 잃었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이동해보라. 차창 밖 풍경으로 어디가 인천이고 부천이며 의정부인지 분간이 어렵다.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이 가득한 공간에서 거리두기 못하는 사람은 코로나19를 불러들였다. 만보 왕복하면 직접 빚은 만두를 내놓는 작은 식당이 있다. 식품회사 만두와 달리 예전 맛을 기억하게 하는 식당으로 걷는 길에 가로수라도 울창하면 좋을 텐데, 여름이 깊어지기 전부터 회색도시는 뜨겁다. 얇아 숨쉬기 편한 마스크가 나왔어도 반갑지 않다. 마스크보다 책임 있는 정책이 아쉽다. (작은책, 20207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20. 5. 28. 23:04

 

포스트 코로나19는 뉴노멀이어야 한다?” 언론에 자신을 드러낸 지식인의 말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 전처럼 살아갈 수 없으니, 싫든 좋든 우리는 새로운 일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인 모양인데, 아리송하다. 지식인들이 어쭙잖게 사용하는 언어는 시민을 향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이라면, “뉴노멀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일 텐데,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아야 할까?

 

하루 누적 확진자가 50명에서 30명으로, 10명 이하로 내려가며 다소 안심했다. 해외 유입 사례를 제외하고 한두 명에 그치니 숨쉬기 편해질 즈음, “코로나 개나 줘라!”라며 춤추던 클럽에 방문한 용인66확진자가 나오면서 공들인 탑이 무너졌다. 긴 시간의 반창고가 남긴 의료인의 얼굴 흉터, 장갑 벗자 드러난 의료인의 불어터진 손 앞에 미안하기 짝이 없다. 하루 사이에 40명 넘게 늘어난 확진자가 조용히 전파했거나 23차로 전파할 코로나바이러스는 얼마나 될까? 피로감을 이겨내며 견딘 세월, 아득하다.

 

대구의 신천지교회 신자인 ‘31이후, 대구와 경북에서 걷잡기 어려웠던 경험처럼 서울과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황망해진다. 지친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달 이상 한산했던 시장에서 조심스레 문을 연 상인에게 걸어 잠그라고 권할 수 있을까? 학생과 만날 마음으로 들뜬 전국의 교사들에게 넣어둔 동영상 수업 장비를 꺼내도록 요구할 수 있을까? 초록이 녹색으로 짙어지도록 손잡기를 자제한 연인에게 공원 출입을 제한할 면목이 있을까?

 

사진: 박쥐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 코로나바이러스의 개념.

 

마스크 사려는 줄이 이제 없다고 한다. 정해진 요일에 석 장까지 살 수 있지만, 머지않아 필요한 만큼 구할 수 있으리라 언론은 예측하던데, 마스크를 찾기 어려운 국가는 여전히 많다. 만들기 쉽거나 수요가 한정된 물건을 수입에 의존했던 유럽과 미국과 일본이 그렇다. 수출한 물건이 줄었다는 풍문으로 마트마다 화장지 사재기가 극성이던 부자나라들의 사정은 요즘 편안해졌을까? 확진자와 사망자 추세가 가라앉는다는 신호가 나오자 긴장이 풀리는 국가들은 코로나19 진정 이후의 일상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출석 수업이 예고되었다. 입시 앞둔 고등학교 3학년부터 2학년과 1학년으로 이어지고 급식 시간을 분리한다는데, 급식 담당자의 노고가 늘겠지만 수당도 늘 거 같지 않다. 용인66번 확진자 때문에 출석 수업이 연기된다면? 급식 농산물을 공급하던 농부들의 고통이 심각해질 텐데, 다행인가? 만발의 준비를 마쳤으니 시행하겠다고 교육당국은 약속했다. 하지만 감염자가 발생하면 동영상 수업으로 되돌리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은 어떤가? 필요한 실습이 아니라면 이번 학기는 인터넷 비대면 수업으로 일관하겠다는데, 학생이나 교수나, 학습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열악한 수업을 고집하느니 차라리 시설 완벽한 온라인 대학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면 대학가의 식당과 카페들이 잇달아 문을 닫을 텐데, 세계 모든 대학이 온라인으로 개편된다면? 하버드대학교 입학생이 5천만을 헤아릴 거라는 우스개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중국 유학생의 발길이 멈추자 유럽의 손꼽히는 대학마다 비명을 지른다는데, 우리 대학들은 모조리 폐교하는 거 아닐까?

 

감염 초기 젊은이들이 바이러스를 조용히 전파하게 만드는 코로나19는 한 나라의 진정으로 안심할 존재가 아니다. 감염병 담당자는 긴장을 멈출 수 없는데, 철저한 거리 두기가 연장될수록 지쳐가는 사람들은 익숙했던 일상이 더욱 간절해진다. 일상의 관계가 끊어져 생기는 고통만이 아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빈털터리가 될 위기에 몰린다. 많은 국가와 도시에서 코로나19 시국을 극복하려고 재난수당을 속속 편성하지만, 언제까지 제공할 수 있으려나.

 

세계 보건당국의 협력으로 효능 있는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돼 널리 보급한다면 비로소 한숨을 돌릴 거라는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때까지 재난수당이 이어져 세계 시민들이 코로나19 시국을 견뎌냈다고 하자.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세계로 번진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덕분에 꺾였다고 하자. 이착륙하는 비행기로 국제공항이 예전처럼 혼잡해지고 대형호텔과 크루즈선에 여행자가 가득하며 고속도로마다 자동차로 예전처럼 미어터질까? 공장지대와 대도시의 대기가 다시 시커멓게 오염돼 초미세먼지로 뒤덮일까? 그런 때로 되돌아가야 할까?

 

주택가에 퓨마가 기웃거리고 큰길에 사슴과 코요테가 활보하는 상황은 흥미로울 뿐, 이어지기 어렵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19로 대오각성한 사람들이 삶터를 크게 줄이고 조상의 소박했던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 한, 상상하기 어려운데, 어쩌면 코로나19는 인류에게 탐욕을 버리라고 강하게 요구하는지 모른다. 점보 비행기가 1분마다 이착륙하는 비행장? 수십만 호텔과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관광지? 수만 명의 박사와 수백만의 대학생을 배출하는 대학교? 끝없이 펼쳐지는 유전자조작 옥수수밭? 구제역과 조류독감 빈발하게 하는 공장식 축산? 탐욕이 이끈 그런 장면, 코로나19 시국 이후에 가당한가?

 

사진: 코로나19가 가지고 온 새로운 일상을 재치 있게 표현한 그림. 하지만 마스크와 손씻기에서 그칠 수 없다. 

 

422일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인한 국난 극복과 절박한 생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 “한국판 뉴딜을 천명했다. 그를 위해 240조 원의 예산을 동원할 정부는 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7대 기간산업에 자금난을 덜어주어 고용을 안정시키고, 대리운전 기사 같은 특수고용직의 고용 안정과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교역국의 어려움이 깊어지면서 가중되는 금융시장 위기와 소상공인 지원으로 실업을 막겠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는 57, 한국판 뉴딜의 밑그림을 제시했다.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 부양성 뉴딜과 확연히 구별되는 디지털 기반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혁신을 가속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힌 장관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의 디지털화를 주요 사업으로 내놓았다. 코로나19 이후의 경제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상당한 금액의 추경이 불가피하다는데, 디지털로 일자리가 확보되나? 한데 환경단체가 생각하는 그린뉴딜’, 다시 말해, “기후변화와 경제 문제를 동시에 풀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같은 친환경 사업에 대규모 투자하여 경제를 살리는 정책은 쏙 빠졌다.

 

지난 4월 말, 19세 이상 16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국민 60% 이상 그린뉴딜을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현 정부는 그린뉴딜을 정녕 모르는 걸까? 상식이 부족해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이 소외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지만, 화력이나 핵발전 분야보다 일자리를 월등하게 창출하고 경제성장은 물론 기후위기와 미세먼지를 극복하게 할 그린뉴딜은 유럽과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한 지 오래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린뉴딜이 코로나19 이후의 일상과 관계없다고 본 것일까?

 

벚꽃 개화가 가장 빨랐던 올해는 얼마나 더울까? 심화하는 온난화는 기상이변을 일으키는데, 녹아내리는 티베트 영구동토층에 어떤 바이러스가 잠들어 있을까?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사람과 동물 모두 감염시키는 인수 공통질병이 많을 거로 전문가는 예상한다. 영구동토층의 바이러스는 한국판 뉴딜로 통제 가능할까? 디지털 기반으로 감시가 편안해질 빅브러더는 코로나19 일상에 지친 시민들을 순식간에 검색해 입맛대로 분리할 수 있겠지.

 

생태적 완충력을 잃자 변화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자급기반 잃은 우리 농업은 코로나19 이후를 걱정하게 하는데, 한국판 뉴딜은 한두 사람의 일탈로 모두를 허탈하게 만든 코로나19의 일상을 염려하지 않는다.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 이후에 바람직해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안내할 의지가 없다. 생태계와 농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환경단체의 그린뉴딜도 함량부족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한국판 뉴딜?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이 이전보다 안전할 거라 절대 기대할 수 없다. (작은책, 202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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