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4. 00:54

 

해마다 8조 원 어치의 음식쓰레기를 버린다며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4인 가족이 대략 70만 원에 이르는 음식을 남겨 버린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요즘은 그 배 이상의 음식쓰레기가 배출된다고 한다. 가구당 150만 원에 달하는 셈이니 한달에 12만원 어치의 음식을 버리는 꼴인데, 이웃을 둘러보자. 그렇게 정신 나간 집이 있기는 있는 걸까.

 

사실 가정에서 버리는 음식쓰레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마구 쓸어가는 예식장 피로연장을 보면, 뜨내기를 단체로 받는 식당의 음식쓰레기가 상당할 테지만, 사실 거기보다 훨씬 많은 곳은 식품회사다. 식품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뿐이 아니다. 유통기간이 지났거나 나중에 밝혀진 식재료의 오염으로 겉보기 멀쩡한 상태로 쓰레기가 되는 가공식품의 양이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멜라민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버린 가공식품의 양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버리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국가가 인정하는 조리사 자격증이 없어도 엄마의 감자 요리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싹이 올라왔더라도 엄마는 식구들 탈나지 않게 잘 다듬는 까닭이다. 집에서 만든 빵도 그렇다. 식구들은 빵에 어떤 재료를 넣었는지 잘 알기에 문제가 생겨도 원인을 금방 파악할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앞집에서 만든 과자를 먹고 탈이 났다면, 곤란할 수 있겠다. 자칫 서먹해질 수 있으니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을 수 없다. 견딜 수 있다면 넘어가는 편이 나을 테지만, 음식에 문제가 있다면 먼저 그 집에서 물을지 모른다. 댁은 괜찮았냐고. 마안하다고. 그 집은 괜찮은데 우리집에 탈이 났다면? 식구 중에 특이체질이 있는지 궁금해지겠지.

 

어떤 과자회사 전직 간부는 아이에게 과자를 주느니 차라리 담배를 주라고 말했다. 물론 역설적인 주장이다. 아이에게 담배를 권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담배보다 종류가 많지만 하나 같이 위험한 과자의 첨가물들을 생각하고 그렇게 푸념했을 거라 이해하면 될 듯하다. 어떤 엄마들은 차라리 아이를 굶기잔다. 실제로 굶길 리 없는 엄마는 아이들이 즐겨 먹는 가공식품을 조사한 뒤 그렇게 한탄했다. 어떤 이는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고 경고한다. 더 이상 먹을 게 없다는 이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오죽하면 그럴까.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자. 남자 어른들에게 한때 인기가 높았던 육체파 여배우가 있다. 담배보다 습관성이 없고 몸에 미치는 악영향도 작으니 대마초를 허용하라고 주장하는 그는 자신의 주장에 답할 수 있는 국내외의 과학과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는데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한데 그이가 제시하는 증거는 오해를 부를 만하다. 대기업에서 세계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담배와 아는 사람과 숨어서 만들어 피우는 대마초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마초와 비교하려면 옛날 할머니들이 피웠던 곰방대 속의 담배를 택해야 했다.

 

생각해보자. 흡입을 위한 대마초의 판매를 정부에서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담배처럼 시장 석권을 노리는 기업에서 대마의 품종개량에 나설 것은 물론일 텐데, 대마초 제조 과정에서 첨가물을 다수 섞지 않을 거로 확신할 수 있을까. 설탕과 조미료를 비롯해 벌꿀, 박하, 수많은 향료, 그리고 접착제까지 포함하면 수백 종류에 달하는 첨가물이 고온으로 타면서 연기와 함께 폐 깊숙이 흡입되는 게 담배다. 많은 의사들이 흡연이 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첨가물에 있는데, 거기에 크든 작든 환각작용까지 더해질 대마초는 과연 담배보다 안전할까. 그런데, 과자회사 전직 간부는 담배에 들어가는 첨가물이 과자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엄마가 과자를 만든다고 하자. 온갖 재료를 넣어 빚은 밀가루를 프라이팬에 얹고 노릇노릇하게 구운 뒤 밥상에 올려놓을 것이다. 밀가루가 프라이팬에 들러붙으면 긁어내면 된다. 잘 살피며 구울 테니 버려야 할 정도로 탄 과자는 거의 없을 테지만, 있어도 그 과자에 들어간 비용 때문에 화를 내는 엄마는 없을 것이다. 식구나 이웃과 나눌 과자를 허투루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로 눈과 귀를 현혹하는 대기업의 과자는 어떤가. 여러 법규로 엄격하게 규제한다지만 엄마가 만들어주는 과자보다 안전하지 않다. 어떤 재료가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먹는 이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탈이 나도 원인을 모른다.

 

낸시 드빌은 광우병보다 더 위험한 공장 가공식품을 판매하는 까닭에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기린원, 2009)고 주장하는데, 대기업의 가공식품을 보자. 히트 상품이 나오자마자 유사 상표가 범람하는 풍토에서 그런 식품들은 첨예한 경쟁을 치러야한다. 경쟁 회사보다 빨리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까닭에 한꺼번에 반죽한 많은 밀가루에 미각을 자극하는 식재료를 섞어 구울 텐데, 구워낸 후 식재료 본래의 맛과 향이 변질될 수 있다. 따라서 한번 맛을 본 소비자들이 계속 선택하게 만들려면 갖은 향료를 넣고 보기 좋게 꾸며야 하는데, 그러자면 식용이라 칭하는 색소를 다양하게 첨가해야한다. 자동화된 공장의 어느 공정에서 반죽이 막혀 생산이 정지된다면? 공장은 원인을 찾아 반죽을 제거하고 다시 기계를 가동을 하는 불편보다 그로 인해 입을 손해에 더 민감해할 것이다. 따라서 식품회사는 반죽이 기계에 들러붙지 않기를 바랄 거고, 그에 필요한 물질을 미리 첨가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맛과 향이 변성되면 안 되므로 관련 화학물질이 다시 첨가할 텐데, 그런 물질들은 인체에 좋을 리 없다.

 

평소 기업윤리를 강조하던 대기업의 과자를 사먹고 탈이 났으므로 당연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아주 순진한 소비자가 된다. 문제를 순순히 인정하는 순간 기업은 자신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과자에 들어간 수많은 첨가물들은 하나 같이 기준치 이하를 과학적으로 만족시켰고 공장의 시설 기준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더 없이 위생적이다. 게다가 같은 과자를 먹고 탈이 났다고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집요하게 보상을 요구한다면 식품회사는 개인의 특이체질 때문에 나타난 증상을 빌미로 문제를 제기하는 별스런 소비자로 취급하다가 급기야 영업방해로 고발할 수 있겠다. 소비자는 어떤 물질이 탈을 일으켰는지 밝히기 어렵다.

 

소비자는 배가 아픈 원인이 과자 때문이라고 얼른 생각하지 못한다. 과자와 함께 먹었던 음료수도 있지만 그 전에 먹은 패스트푸드도 의심할 수 있다. 밤을 새도 일을 마치지 못해 생긴 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짐작할 수 있고, 유통기간이 지난 제품을 구입한 게 문제라며 자신을 탓할 수 있다. 일단 몸이 아프니 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았고 비용도 치렀다. 회복되면 잊고 말지만 같은 증세가 계속되거나 심화되면 병원비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자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나중에 뇌리를 스쳐도 이미 시간이 지났고, 과자봉지에 깨알 같이 채워진 글씨를 세심히 읽어도 소용이 없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수많은 성분들을 무슨 목적으로 얼마나 첨가했는지 도무지 설명이 없지 않은가.

 

일본의 저널리스트 야마모토 히로토는 《오염된 몸, 320킬로그램의 공포》(여성신문사, 2006)에서 평생 우리가 먹는 식품첨가물이 자그마치 320킬로그램이라고 지적하면서 가공식품 포장지에 기재된 개개의 첨가물이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 소상하게 밝히지만 그 때문에 식품회사가 곤혹을 치르는 건 아니다. 식품에 섞여 들어오는 양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일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모든 물질은 독이다. 다만 양과 농도가 문제일 뿐, 밥도 독이 될 수 있다. 독이 될 정도로 먹자면 그 전에 배가 터져 죽고 말 것이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안전이 확인된 정도, 다시 말해 ‘기준치 이내’로 첨가했으니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얼마든지 제기하라!” 하고 강변한다면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소비자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식품회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식품첨가물의 기준치는 안심할 만할까. 기준치는 역학조사나 축적된 경험으로 산출된 수치가 아니다. 새로 개발한 식품첨가물의 안전성을 역학조사로 충분히 확인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야 하므로 기업이 선호할 리 없다. 실험에 사용한 동물의 절반이 죽을 때까지 투여한 양을 과학적으로 ‘LD50(lethal dose 50%)’, 다시 말해 ‘반수치사량’이라 하는데, 대부분의 기준치는 동물실험으로 얻은 몸무게 당 반수치사량을 사람에 적용하면서 구한다. 다만 ‘마지널 이펙트’(marginal effect)라 하여, 사람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동물에서 얻은 수량을 줄이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기준치를 허용기관에서 실험해 산출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이 화학물질인 식품첨가물을 개발한 기업에서 기준치의 수량을 제출하고 정부기관은 서류를 검토해 시판을 허가할 뿐이다. 수준 높은 연구자와 장비가 많고 예산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미국의 FDA(식품의약품안전청)도 숱하게 개발되는 화학약품의 안전 기준치를 일일이 연구해 검토할 수 없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개발회사에서 책임지는 원칙으로 허가해주는 게 보통이다.

 

동물실험의 결과를 사람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을까. 미국의 저명한 의사인 레이 그릭과 역시 저명한 수의사 진 스윙글 그릭은 《오만과 탐욕의 동물실험》(다른세상, 2005)과 《가면을 쓴 과학 동물실험》(다른세상, 2006)에서 동물에서 얻은 결과를 사람에 적용할 경우 위험할 때가 오히려 더 많다는 걸 근거를 들어 고발한다. 그렇다면 식품첨가물이 기준치를 만족하므로 안심해도 좋다는 식품회사의 논리는 가당치 않은데, 더 큰 문제는 상승작용이다. 기준치를 만족하는 개개의 식품첨가물이 체내에서 만났을 때 위험성이 상승할 수 있는데, 한두 가지가 아닌 화학물질의 상승작용을 일일이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안전성 여부는 인체에 대한 광범위한 역학조사와 오래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문화에 따라 다양하지만 누구나 확신하는 전통 식품의 안정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가공식품은 많은 농산물을 섞어 한꺼번에 조리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는 게 보통이다. 그때 성분표시가 생략되거나 왜곡된 1차 가공식품이 2차 가공 과정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멜라민이 포함된 분유를 재료로 사용한 가공식품이 그랬다. 성분 표시가 명확하더라도 열이나 압력을 가하며 가공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물질이 합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물질은 제품 포장지에 표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안정성을 미리 확인할 수 없다. 담배가 그런데, 과자가 담배보다 더하다니 걱정이다. 가공식품의 첨가물만이 아니다. 미생물을 제거하려 농작물에 조사한 방사선이 식품에 예측할 수 없는 물질이 섞이게 할 가능성도 있고 가축과 양식어류에 포함된 항생제가 인체에 들어가 항생제 내성을 강화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예 타고난 유전자를 교란한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그런 농작물을 재료로 가공한 식품, GMO는 괜찮을까.

 

유기농업을 고집하는 근교에서 밤샘회의를 할 때 경험했던 일이다. 장마철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었다. 회의마다 늦는 이가 꼭 있게 마련인데, 그는 미안했던지 근처 가게에서 포도 한 상자를 사왔다. 준비해간 유기농 포도를 먹어치운 먹은 우리는 그 포도까지 다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동이 트기 무섭게 일어나야 했다. 얼굴에 달라붙으려는 파리들의 집요함 때문이었는데, 이상한 건 유기농 포도 껍질에 바글거리는 파리들은 나중에 사온 포도의 껍질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는 점이었다. 오래 두어도 상하지 말라고 농약을 뿌렸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준 시골의 집주인은 아침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렸는데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진정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걸까.

 

‘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은 자신의 아이들이 아토피와 같은 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원인이 가공식품이라는 걸 간파하고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시공사, 2000)를 써야 했다. 공급자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첨가한 화학물질이 아이들과 소비자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대안을 제시했다. 그건 주부가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을 구입해 집에서 조리해 가족과 나누는, 불과 한 세대 전에는 아주 자연스런 밥상, 다시 말해 상식에 있었다. (사이언스올, 2009년 5월 첫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