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6. 5. 26. 21:17


하필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렸을 때 마스크 없이 만보를 걸었다. 저녁 무렵 하늘은 그리 뿌옇지 않아 안심한 게 화근이었을까. 그날 이후 목을 간지럽히던 감기는 보름이 지나도록 몸을 떠나지 않는다. 사실 피로가 겹친 상태에서 무리하게 걸은 면도 있다. 휴일도 거르지 않은 강의와 회의, 그리고 이어지는 뒤풀이를 일주일 이상 개근하면서 하루 만보를 고집했으니, 미세먼지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는지 모른다.


걷는 이 코앞에 미세먼지를 내뿜는 경유 차량에 대기오염 저감장치 부착을 아직도 의무화하지 않는 정부는 마스크 착용만 되뇌는데, 황사나 미세먼지를 걸러준다는 마스크는 만보걷기와 동반하기 어렵다. 선선한 밤이라 해도 이마에 땀이 솟을 정도로 걸을 때, 미세먼지용 마스크는 호흡을 가쁘게 만든다. 공기정화기가 가동되는 실내 헬스클럽에 등록해야 하나. 기계에 몸을 맡기기 싫으니 맑은 날 더 걷기가 자연스럽다 생각하는데, 그것 참! 맑은 날의 절반 이상은 미세먼지 상태가 나쁘다.


미세먼지가 나쁜 날이면 환기는 삼가야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실내로 들어온 미세먼지는 어떡하나? 공기정화기로 해결하라는데, 공기정화기가 신접살림 목록에 오를 날이 멀지 않겠다. 환기가 어려운 실내는 대체로 건조하다. 가습기가 필요해지는 대목인데, 요즘 섬뜩해진 가습기는 신혼부부의 가전제품 목록에서 빠졌을까? 사실 첨가하는 살충제가 문제를 일으켰지 가습기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내막을 대충 알았으니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다른 살충제를 넣을까? 대부분의 살충제는 대개 자연에 없는 화학물질인데.


가습기에 수돗물을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끌미끌해진다. 더 지나면 물이 증발하면서 가습기에 자국을 남긴다. 곰팡이가 만든 흔적이란다. 생수도 마찬가지다. 증류수는 괜찮다지만 비용부담이 크다. 곰팡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집안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입주하기 전부터라면 그 곰팡이와 사람은 공생하는 셈인데, 가습기에 곰팡이가 생기면 몸에 얼마나 나쁜 걸까? 살충제의 부작용을 감춘 광고는 그 궁금증을 외면하고 효능만 강조했다.


곰팡이가 싫으면 가습기를 자주 닦으면 된다. 닦기 귀찮아 살충제를 넣을 텐데, 물을 충분히 머금은 수건을 여기 저기 널어도 실내 건조를 웬만큼 예방할 수 있다. 문풍지 한 장으로 바깥공기를 차단했던 시절, 방마다 빨랫줄이 있었고 전깃줄에 매달려 흔들리던 회중전등은 빨래 그림자를 방바닥과 벽에 너울거리게 했다. 난방이 허술하고 냉방을 꿈꾸지 못했던 시절, 우리는 미세먼지주의보를 몰랐고 감기도 흔하지 않았다. 빨래나 수건을 건조대에 보기 좋게 걸어두면 어떨까? 가전제품과 화학약품에서 그만큼 해방될 텐데.


유럽 가정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하니 식기세척기도 우리 가전제품 목록에 등재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열성적인 광고와 그 가전제품을 자주 보여주는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겠지. 식기세척기에 어떤 세제를 넣을까? 세탁기 세제와 다를까? 메르스 바이러스로 전국이 긴장할 때 강력하다는 손 세정제가 불티나게 팔렸다. 일반 비누가 메르스 바이러스를 씻어내는데 효과가 훌륭하지만 시민들은 손 세정제를 앞 다투어 구입했지만 세정력이 강할수록 피부에 해롭다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손 세정제로 피부에 이상이 생긴 피해자를 주목한 언론이 없으니 소비자는 진상을 파악할 도리가 없는데, 가습기 살충제 피해자는 1500명이 넘고 파악된 사망자만 239명이다.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화학제품의 수가 수만 가지를 넘는 세상에서 우리는 불안하다. 평생 먹는 식품첨가물이 300킬로그램을 초과한다는데, 환경호르몬은 도처에서 스멀거린다. 하나 같이 허용기준치 이내라는 걸 앞세우지만, 경험상 안심하지 못한다. 허용기준치 이내인 화학제품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두 가지 이상 몸에 들어올 경우 어떤 상승효과가 있는지 전문가들도 알지 못하는 세상이 아닌가.


몸에 해로운 화학제품에서 악취가 나도록 제조하는 경우가 있다. 부탄가스가 그렇지만 가습기 살충제보다 독성이 강한 모기약은 향기를 좋게 제조했다. 모기약 광고가 향수 광고를 흉내를 내니 모기약을 뿌리고 출근하는 사람이 등장할까 겁난다. 엄격하게 안전성을 연구했을 화장품은 마땅히 안심해야 할까? 화학물질의 안전성은 넘어가자. 화장품과 자외선 차단 크림, 그리고 치약에 들어간 미세한 플라스틱은 썩지 않고 생태계 먹이사슬을 돌고 돌아 사람의 몸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부메랑이다.


미국은 미세한 플라스틱의 사용을 규제하려는 법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무소식이다. 화장품의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화학섬유로 만든 옷 한 벌을 세탁기로 세탁하면 1900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나온다고 영국 BBC방송에서 보도한 적 있는데, 화학섬유를 규제한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미세 플라스틱을 대신할 천연 물질은 많지만 금방 상해 조금씩 냉장보관하면서 사용해야한다니 귀찮을 거 같다. 화학섬유 없이 맵시 있는 옷은 만들기 어려운 걸까?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맵시가 조금 모자란 옷을 당당하게 입으면 어떨까? 안 보이던 맵시가 오히려 돋보일 텐데.


지금까지 예로 든 화학물질은 애교에 불과하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퍼붓는 다국적기업 몬산토의 화학물질, 제초제 라운드업의 주요 성분인 글라이포세이트에 비교하면 가소로울 지경이다. 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그 성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었는지 거의 파악하지 못했다. 몬산토가 돈과 권력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연구자에게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미 발생할 피해는 끔찍하고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텐데, 무슨 사연이 숨었는지 어느 국가도 규제에 나서지 않는다.


미세 플라스틱 없는 치약으로 이를 닦을 수 있듯,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고 건강한 농산물을 얼마든지 재배할 수 있다. 손 세정제 없이 온갖 균과 바이러스를 씻어낼 수 있고 살충제 없이 실내의 건조를 막을 수 있다. 화학섬유가 들어가지 않은 옷으로 개성을 창조하고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광고를 앞세우는 산업체의 광고에 속지 않아도 건강한 대안을 너끈히 찾을 수 있다. 바로 자연스러움이다. 조상의 지혜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움으로 자신과 생태계의 건강을 훨씬 도모할 수 있다. (작은책, 2016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