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6. 2. 28. 12:00

스스로 찾아오는 겨울의 진객, 가창오리

 

가창오리는 겁이 많은가


매를 만난 유럽의 찌르레기 떼가 들판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현란하게 날아오르듯, 아침저녁으로 호수의 어스름 하늘을 수놓는다. 철새가 모인 호수를 기웃거리는 맹금류는 보통 낮에 활동하는데, 수십만을 헤아리는 가창오리는 장엄하면서 변화무쌍한 군무를 해질녘이나 해뜰녘에 펼친다. 수면 가득 새까맣게 점점이 앉은 무리. 가는 실처럼 녹은 한 숟가락의 설탕이 커다란 솜사탕으로 부풀 듯, 몇 마리가 물을 박차고 오르면 기다렸다는 양, 수면을 연이어 스치어 일제히 날아오르며 거대하게 덩어리지는 가창오리 떼. 아까부터 그 순간을 기다리던 탐조객은 그만 넋을 잃는다.


가없는 호수를 덮을 듯 퍼졌다 앞선 무리를 따라 물결치듯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주저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군무. 부셔지는 파도 같은 날개소리를 하늘에 퍼뜨리며 호수를 휘감으며 물결치다 소용돌이치며 솟아오르더니 비단치마 폭처럼 수면 닿을 듯 펴진다. 한줄기 짙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블랙홀에 휩쓸리던 군무는 이내 뭉게구름이 되어 너울거리다 하늘로 던진 투망처럼 흩어지고, 두 개의 강력한 자석에 끌리며 나누어지던 거대한 무리는 이내 방향을 바꾸며 느닷없이 교차하더니 다시 물결치며 치솟다 어머니 치마폭처럼 수면을 덮을 듯 퍼진다.


어스름하거나 여명이 밝아오는 호수의 하늘을 맘껏 수놓던 가창오리 떼는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 한 마리 부딪히지 않는 5분 여 군무를 마치고 어둠 저편 하늘로 고요하게 사라진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경이로움에 탄식하던 탐조객은 시려오는 뺨을 그제야 두 손으로 감싸며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을 뇌리에 남긴다. 벅차오른 감동을 주체할 길 없는 탐조객은 비로소 발길 돌리는데, 문득 시장기를 느낀다. 가창오리들도 멀지 않은 농경지로 낙곡 주우러 떠났을 터.


동 트기 전, 적막해진 호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가창오리들은 화려한 군무를 다시 펼칠 텐데, 그때까지 쌀쌀한 호숫가에 머물 수 없는 탐조객은 삼삼오오 버스에 올라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압도되었던 연속 장면을 지우지 못하는 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생태관광 안내자에게 말문을 연다. “몇 마리나 되었을까요?” 가창오리 떼가 모두 몇 마리로 구성돼 있는 게 궁금한 건 아닐지 모른다. 군무에 참여한 가창오리 수의 크기보다 조금 전의 감동을 되새기고 싶은 표현이지만, 안내자인들 정확히 알겠나? “20만 마리 쯤 될까요?” 20만 마리가 겨울철 우리나라로 날아온 가창오리의 전부는 아니다.


시베리아의 크고 작은 호수, 특히 바이칼호 주변에 흩어져 사는 가창오리는 혹한이 시작되기 전, 90퍼센트 이상의 개체들이 우리 서해안의 호수에 내려앉는다. 전북 고창의 동림저수지에 20만 마리 넘더니 찬바람이 며칠 일자 일제히 영암으로 날아가는 가창오리는 따뜻하고 먹이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천수만과 삽교호 주변에 머물다 금강 하구둑으로 이동하고 주남저수지에서 추위가 물러갈 즈음까지 머물다 번식지 시베리아로 돌아가던 가창오리의 군무는 천수만이 유명하다. 주남저수지의 수위가 오르면서 먹잇감을 찾을 수 없어 인근에 들판이 넓은 천수만으로 모이기 때문이라는데,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평야가 드넓은 천수만은 내내 괜찮을 수 있을까?


20041,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 한국 조류학자들은 전국 14군데 월동지역에 658천 마리의 가창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았고 그 중 90퍼센트 이상이 금강에 내려앉았다고 보고했으니 실로 대단한 숫자다. 저어새는 고작 3천 마리 남짓한데, 가창오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포함돼 있으며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어읜 영문일까? 멸종위기라니. 우리의 대표적 겨울 진객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한때 세계적으로 4만 마리까지 위축된 가창오리가 2007182만 마리가 우리나라로 날아왔다고 국립환경과학원이 밝힌 적 있다. 2006년의 3배가 넘는 수라고 말했는데, 우리나라를 찾는 가창오리의 수는 해마다 현기증 나게 들쭉날쭉하다. 눈 덮인 시베리아에 남는 건 물론 아니고 다른 나라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라는데, 집단 크기의 변동이 원래 심한 걸까? 여러 조류학자들이 동시에 모니터링에 나서 이번 겨울 우리나라를 찾아온 무리의 크기를 추정하는데, 이동이 잦아 파악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20만 마리가 머물던 동림저수지가 얼어붙자 15만 마리가 군무도 없이 떠나 영암호에 20여만 마리가 모여들었다는데, 또 어디로 갈지. 그곳은 안전할지.


모니터링에 나선 전문가는 저수지 주변의 논습지에 먹이가 되는 낙곡이 많지 않다고 걱정한다. 멀리 이동하며 먹이를 찾아 헤매다보니 저수지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는 게 아닌가. 그때 군무는 물론 생략하겠지.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를 찾기 시작한 가창오리는 주로 갯벌을 매립해 만든 너른 평야와 그 평야 주변에 조성한 호수에 내려앉는데, 그런 평야는 화학농법에 의존하고, 호수는 지속적으로 오염된다. 그래도 기계로 농사짓는 까닭에 낙곡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볏짚 사이에 유산균을 듬뿍 넣고 비닐로 둘둘 말아 축사에 사료로 넘기는 곤포사일로때문이다.


20141월 동림저수지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발생 농장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닭과 오리, 그리고 메추리와 같은 가금을 모조리 살처분하는 고역이 반복되었는데, 그해 겨울, 조류독감으로 전국에서 무려 1천만 마리의 가금이 알락사와 거리가 멀게 도살되었다. 방역당국은 동림저수지의 가창오리를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8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했는데, 떼죽음했다던 가창오리는 동의했을까? 환경부는 서슬 퍼렇게 청새 먹이주기 행사를 금지했는데, 죽은 가창오리는 20만 마리 중 고작 100여 마리. 책임을 뒤집어쓴 가창오리는 억울하지 않았을까?


광범위한 갯벌 매립이 걷잡을 수 없자 겨울철새들은 내려앉아 먹이 구할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수천 킬로미터를 쉼 없이 날아와 몸무게가 절반 이하로 줄었고 허기지건만 먹이가 풍부하던 갯고랑이 통 보이지 않는다. 충분한 먹이를 먹으며 봄까지 허약해진 몸을 추스르고 시베리아의 얼음이 풀릴 즈음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가 새끼들을 낳아야하지만 쉽지 않다. 어쩌다 독감에 걸려 내려앉아도 먹이를 먹으며 금방 회복되었지만 먹이를 찾지 못한다. 잡식이라도 주로 낙곡을 찾는 가창오리의 사정도 비슷하다. 갯벌이 농토로 바뀌면서 먹이가 늘어난 덕분에 커다란 저수지를 다른 겨울철새와 공유하며 해마다 수를 늘릴 수 있었는데, 이런! 낙곡이 줄었다.


몸이 40센티미터인 가창오리는 암수가 확연히 다르다. 멀리서 보아도 쉽게 구별할 정도로 얼굴이 화려한 수컷은 갈색 눈의 앞과 뒷부분을 반달 같은 노란색 깃이 태극처럼 휘감고 그 뒤를 흰 테두리가 있는 초록색 깃으로 감싸 태극오리로 불리지만 온몸이 갈색인 암컷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눈 아래 흰 점과 턱이 특색인 암컷은 수컷 무리와 섞이지 않는다면 다른 오리 종류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수십만 마리가 모이니 천적의 위협에서 집단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어도 군집성인 까닭에 집단이 줄어들면 생존하기 어려워지는 특징을 가진다.


100억 마리에 달했던 북미의 나그네비둘기는 백인들의 광포한 사냥으로 70만 마리로 줄었다. 미 당국은 뒤늦게 보호에 나섰지만 그 크기로는 집단이 회복되지 못하고 멸종하고 말았다. 가창오리는 어떤가? 좁은 월동지에 너무 많은 개체가 몰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취약종으로 지정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20125월 개체수가 많다며 멸종위기종에서 해제했다. 게다가 조류독감 유포 혐의를 씌우며 먹이주기까지 엄금했다. 멀리서 스스로 찾아온 진객을 반갑게 맞기는커녕 내쫓으려 성화다. 가창오리는 진정 조류독감을 퍼뜨렸을까?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로 협력기구’(EAAFP)는 성명을 내며 가창오리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H5N8 같은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비좁은 공간에서 가혹하게 사육되는 가금에서 흔한 질병이며 철새 무리가 가금에 전파한 사례는 없다면서 감염된 철새들은 매우 빠르게 죽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은 가금이나 사람 이동과 비교하면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가창오리가 원인이라면 도래하기 시작하는 12월 초 이전에 폐사해야 옳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군집성이 강한 까닭에 가금 콜레라로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희생된 적은 있지만 조류독감 협의는 생뚱맞았다.


200810, 우포늪이 있는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총회가 열렸다. 우리도 철새가 찾는 습지를 보전하겠다고 세계에 천명한 것인데, 가창오리는 만족스러웠을까? 동아시아-대양주 이동 철새의 주요 월동지인 한국의 환경부는 이들 철새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는데, 여태 조류독감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창오리가 올겨울도 잊지 않고 찾아와 군무를 펼쳐주니 고맙고 반갑다. 염치없지만, 내년 이후에도 계속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중앙Sunday, 2016.1.28.)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3. 7. 21:28


날씨가 아직 선선해 주위에서 보이지 않지만, 흔히 중국매미라고 말하는 주홍날개꽃매미는 포도나무에 물이 오를 때 눈에 띄게 늘어난다. 전에 없던 주홍날개꽃매미는 왜 요즘 극성일까? 중국에서 누가 잡아와 해마다 풀어놓을 리 없는데, 편서풍 타고 날아오는 걸까? 편서풍은 전에도 불었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정착한 걸까? 중국 원산인 가죽나무가 도처에 늘어나는 것과 무관할까? 도시의 척박한 땅에 든든하게 뿌리 내리는 가죽나무는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가는데, 주홍날개꽃매미는 가죽나무의 수액을 무척 좋아한다.


가죽나무는 초대받지 않고 도시를 푸르게 만드는데 일조하지만 원치 않은 곳까지 빠르게 퍼지면서 도시에서 드물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돼지풀과 달리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여름날 그늘을 만들어 주니 퇴치 대상인 외래종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드물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 안정된 고유 생태계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미국자리공처럼 더는 번지지 못한다. 포도나 감귤나무, 그리고 가죽나무 수피에 빼곡히 달라붙는 주홍날개꽃매미도 마찬가지다. 천적이 없으니 아직 천방지축인 주홍날개꽃매미도 머지않아 조절될 것이다. 황소개구리가 조절되는 사정과 비슷해질 것이므로.


중국에 주홍날개꽃매미의 천적이 있을 게 틀림없다. 굳이 그 천적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이 땅의 거미와 사마귀가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는 게 아닌가. 생소한 겉모습이 섬뜩해 그런지 아직 조심스러워하지만 박새와 직박구리 들도 덤벼들지 모른다. 황소개구리를 조절하는 백로와 수달의 생태계와 생태적 지위를 우리가 보전해야 하듯 도시에 녹지를 늘리며 박새와 직박구리를 보호한다면 가죽나무는 물론 과수원에 피해를 주는 주홍날개꽃매미도 조절될 텐데, 민원에 휘둘리는 조급한 행정이 걱정이다. 살충제를 뿌린다면 일을 그르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호주는 캥거루가 풀을 뜯던 벌판을 밀어내고 단일품종인 사탕수수를 끝없이 심었다. 처음 보는 사탕수수에 섣불리 덤벼드는 해충이 없었지만, 웬걸. 얼마 안 가, 사탕수수 이파리를 갉아먹는 풍뎅이가 걷잡을 수 없게 늘어났다. 내성을 키우는 풍뎅이를 살충제로 제거하기 어려워지자 호주 정부는 수소문 끝에 하와이에서 축구공 반 덩치를 가진 갈색 두꺼비를 들여왔다. 풍뎅이를 게걸스레 먹어치운다는 소문을 들은 건데, 이런! 그 두꺼비가 말썽을 피울 줄이야. 한 배에 만 개가 넘는 알을 낳는 하와이 두꺼비는 사방에 널린 풍뎅이로 배를 불리며 수를 늘리더니 풍뎅이 이외 토종 곤충까지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하와이에서 엉금엉금 기던 두꺼비들이 평지에 마음껏 수를 늘리더니 무리지어 펄쩍펄쩍 움직이는데, 멀리서 보면 땅이 물결치는 듯했다.


피부의 독샘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두꺼비지만 호주의 특산종인 크로커다일 악어는 두꺼비를 먹을 수 있게 진화했는데 그만, 덩치 큰 하와이 두꺼비를 먹고 죽어 자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제야 여론이 비등해졌다. 사탕수수 농가를 위해 애써 모르는척했던 당국에서 그제야 방제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천적이 없는 하와이 두꺼비 두 마리에 생맥주 한 컵으로 원주민들을 유인했건만 늘어나는 개체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거다. 하와이에서 그 두꺼비의 천적을 들여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호주 당국의 고심은 깊어졌다는데, 이후 사탕수수 밭을 없앴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변화무쌍한 조류독감의 위험성

 

1차대전 말기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스페인에서 발원하지 않았다. 중립국인 스페인 언론이 사실 그대로 검열 없이 보도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던 건데, 1918년부터 1919년까지 1차대전 사망자 900만을 크게 초월하는 2000만에서 5000만 명이 세계 곳곳에서 희생되었을 것으로 자료는 추정한다. 시체와 배설물이 널린 겨울철 참호에서 굶주려 지친 병사를 비롯해 유럽인 200만 이상을 죽게 만든 스페인독감은 인도 빈민 1200만을 희생시키고 일제 강점기의 조선 백성 14만의 생명을 스러지게 했다. 통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당시 세계 인구의 최대 5%가 희생되었으며 55만이 죽은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0년 이상 단축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문가들이 인플루엔자(influenza)라고 말하는 독감을 A, B, C, 세 가지로 구별한다. C는 흔한 감기이고 B는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겨울철에 잘 감염되는 독감으로 오래 전 사람 사이로 들어와 순화된 모습이지만, 야생의 모습을 가진 A는 매우 위험하다. A형 독감은 통상 오리나 물새류에서 기원해 가금과 가축을 거쳐 사람에게 전해지는데, 놀라운 속도로 변형을 만들어내므로 백신을 만드는 과학자와 기업을 긴장시킨다. 변형을 거쳐 병원성이 치명적으로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스페인독감을 H1N1형이라고 말한다. 2009년 세계를 긴장시킨 신종플루는 H1N1형이었고 3년 전 닭과 오리를 비롯한 가금 600만 마리 이상 생매장하게 만든 조류독감(AI, Avian Influenza)H5N1형이었다. 그중 고병원성 조류독감일 경우 발생한 장소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가금을 모두 살처분해야 했던 반면, 저병원성 조류독감은 발생 반경 300미터 이내의 가금을 살처분해야 했다. H9N2형이 우리나라에 자주 출현하는 저병원성 조류독감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든 철새나 가금이든, 독감은 바이러스이고 내부 유전자를 감싸는 표면에 두 가지, hemagglutinin(Ha)neuraminidase(Na) 항원을 가진다. Hhemagglutinin, Nneuraminidase를 뜻한다.


약간 타원체인 독감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에서 대못처럼 보이는 Ha항원과 버섯처럼 보이는 Na항원이 빽빽하게 박힌 단백질 중합체 껍질로 싸여 있고, 껍질 안에 8가닥의 RNA 유전자를 가진다. 사람이나 가금의 세포막을 뚫어 RNA 가닥들을 숙주 세포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Ha항원은 15가지 변형이 있고 숙주 세포 안에서 충분히 복제된 RNA 가닥들을 숙주 세포 밖으로 나가게 하는 Na항원은 9가지가 분리되었다. 따라서 독감 바이러스는 이론적으로 135가지 항원형이 현재까지 가능하지만, 자연에서 발견되는 항원형은 그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새로운 항원형은 계속 늘어날 수 있는데, 출현이 기록된 기존 항원형은 세계 여러 국가와 지역마다 다르고, 사람은 물론이고 가금과 가축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검출되는 항원형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감의 고독성 여부는 주로 항원형으로 구별하지만 예측치 못한 치명적 위험성은 8개의 RNA 가닥에서 나온다. 스페인독감은 애초 그다지 위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귀향을 위해 모인 병사들 사이에서 치명적으로 유전자가 변형되어 세계로 빠르게 퍼졌을 것이라고 관련 자료들은 전한다. H1N1형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사의 몸에서 변형된 RNA 가닥이 호흡으로 다른 병사에게 전파되고, 고향에서 세계 곳곳으로 광범위하게 전파했을 텐데, 처음 돼지독감이라 했던 신종플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까지 가진 돼지독감의 RNA 가닥이 병원성이 커진 상태에서 사람 사이에 창궐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했다.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간 8가닥의 RNA 사슬은 짧은 시간에 많은 복제 사슬을 만들고 밖으로 나가는데, DNA와 달리 복제가 정교하지 못하다. 복제 과정에서 염기서열이 달라진 수많은 변이가 만들어진다는 거다. 그 결과 독감의 병원성이 높아질 수 있고, 최첨단 과학기술이 서둘러 치료제를 개발해도 소용없게 되는 순간이 빨라질 수 있다. 학자들은 독감의 RNA 사슬은 보통 바이러스의 DNA 사슬보다 100만 배나 많은 변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귀향한 병사들이 급속히 전파한 변형 RNA 사슬은 새해 벽두부터 철새들을 경계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H5N8형 조류독감과 어떻게 다를까.


가을이 깊어 가면 전국의 보건소는 독감백신 주사를 맞으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독감백신을 담은 작은 박스를 열면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종이가 있고, 들여다보면 대응하는 독감의 항원형들이 인쇄돼 있을 것이다. 독감 백신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대응하는 항원형이 다양하다. 따라서 거리가 먼 나라에서 백신을 수입해도 소용없고, 지난해 쓰고 남은 백신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지역에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항원형들을 연구자들이 새롭게 조합해 만든 백신을 해마다 보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독감 바이러스가 동일한 숙주 세포에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 그때 다른 바이러스에서 숙주로 각각 들어간 RNA 가닥들은 세포 안에서 유전자를 무작위로 교환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RNA 사슬의 다양성은 무한대에 이른다. 병원성도 천차만별로 늘어날 것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독성 여부에 따라 반경 300미터나 3킬로미터 이내의 가금을 모조리 살처분하는데, 희한하게 돼지도 불문곡직 죽인다. 조류독감은커녕 돼지독감에 감염되지 않았어도 여지가 없는 이유는 돼지 호흡기의 세포에 있다. 조류와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 Ha 항원에 친화적인 수용체를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가금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이따금 감염시키지만 그 바이러스는 여간해서 사람 사이로 전파되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를 거치면 달라진다. 이후 사람 사이로 빠르게 퍼질 수 있는 까닭에 다짜고짜 살처분하는데, 돼지는 억울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독감 전문가들은 독감 바이러스가 무한히 창궐하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의 인구가 희생될 가능성을 경고하는데, 조류독감에서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을 그 온상으로 보았다. 그는 이듬해 슬럼을 써야했다. 많은 나라의 대도시에 산재한 슬럼에는 굶주림에 지쳐 면역력이 떨어진 저소득계층이 빼곡히 모여 산다.

당장 가금을 위협하는 우리나라의 2014년 조류독감부터 생각해보자. 2010년 중국 장수성의 청둥오리에서 한 차례 발견된 바 있던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8형은 4년 만에 하필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다. 사람에게 전파된 적이 아직 없다는데, 내내 안심해도 좋을까? 과연 겨울철새인 가창오리가 H5N8형을 전파했을까?

 

 

오갈 데를 잃은 겨울 철새

 

드넓었던 김포평야의 일부를 매립해 만든 김포공항은 부천시 방향으로 넓은 습지에 둘러싸여 있다. 비행기 소음 민원을 잠재우려고 공항공사가 구입한 논이 30년 가까이 방치되면서 습지로 환원된 것인데, 그 습지에 천연기념물 황새를 비롯해 멸종위기 맹금류들이 다양하게 찾아든다. 어류와 양서류에서 들쥐까지, 먹이가 되는 다수의 생물이 다채롭게 서식하기 때문이다. 매우 희귀한 금개구리도 볼 수 있건만, 공항공사는 그 저절로 생긴 습지에 골프장을 조성하려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공항공사는 주장하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다. 습지가 사라지면 쉴 곳과 먹이 터를 잃은 새들이 우왕좌왕하다 충돌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거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굽어 살피는 인천 자유공원 근처의 한 식당에는 십자매와 같은 관상조류가 날아다닌다. 식탁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손님들이 항의하지만 그런 적 없다는 주인의 대답이 그때마다 돌아온다. 새들은 사람이 앉아 있거나 다니는 공간을 피한다는 거다. 베란다에 십자매를 풀어놓은 한 주부도 비슷한 경험을 말한다. 베란다 전체를 둥지 삼아 날아다니지만 빨래대 주변에 얼씬하지 않는다는 건데, 해마다 우리나라의 습지를 찾은 겨울철새는 오리농장을 왜 기웃거렸을까. 200312월 이후 거의 한 해 걸러 발생하는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왜 그 전에 없었을까. 가금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농장이 그때라고 없었던 건 아닌데.


철새들은 겨우내 한 자리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동틀 때와 해질녘, 수십만 군집이 하늘을 수놓는 장관을 한결같이 연출하는 가창오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철새들은 먹이와 쉴 곳을 위해 한반도의 습지를 오르내린다. 추우면 남쪽으로 내려가고 풀리면 올라간다. 백두대간에서 기원해 황해까지 굽이쳐 흐르는 강들이 해안에 고운 흙을 오래 전부터 내려놓으며 드넓은 갯벌을 펼쳐놓자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언젠가부터 철새들은 내릴 곳을 찾지 못한다. 온갖 철새를 맞았던 갯벌과 육지의 습지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갯가의 농민들이 삽으로 경작지를 늘리려던 소박한 매립이 2000년대에 들어 굴삭기를 앞세운 정부와 기업 주도로 거대해졌다. 공단으로, 신도시로, 공항으로 뭉텅뭉텅 자취를 감춘다. 광활한 갯벌을 해수면 이상 메우려면 그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바깥 갯벌이 망가진다. 개펄과 모래를 막대하게 준설해 매립지를 채우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유역에서 여름을 보내는 철새들에게 우리 습지는 대안 없는 겨울 터전을 제공한다. 습지가 사라지는 요즘, 시베리아 일원에도 개체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을 게 틀림없는데, 겨울철 내려앉을 곳이 줄어들수록 도태되는 철새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멸종으로 접어드는 철새도 생길 것이다. 봄가을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새도 사정은 비슷하다. 마도요가 날아와야 봄을 느끼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매립 자제를 우리에게 간곡하게 요청하건만 한국은 마이동풍이다. 갯벌이나 조간대 상태인 공유수면을 매립하면 내 땅이 되는 공유수면매립법이 자본의 탐욕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3년 전 겨울,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발굽가진 가축보다 훨씬 많은 600만 마리의 가금이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1 서슬로 생매장되었다. 하지만 살처분된 닭과 오리와 메추리 중 조류독감에 걸린 개체는 없었다. 몇 군데의 철새 배설물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때 철새는 떼로 죽지 않았다. 떼죽음은커녕 조류독감으로 죽은 사체도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2003년부터 이제까지 2500만 생명들을 파묻었지만 정작 조류독감에 감염된 가금은 121마리에 그친다.(한겨레, 2014.2.6.)


전북 고창과 부안군의 오리농장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집단 폐사가 일어난 지난 117일의 바로 다음날, 전북 고창군의 동림저수지에 20만 마리 이상 모여 있던 가창오리 무리 중 90여 마리가 사체로 발견되었다. 실마리를 찾았다는 겐가? 정부는 1000마리 이상 떼죽음했다고 부풀린 보도자료를 서둘러 돌렸고, 언론은 받아쓰기에 충실했다. 사체 중의 일부에서 기다렸던 조류독감 H5N8 항원형이 검출되자 정부는 가창오리가 원인이라고 단정적으로 발표했고, 귀가 얇은 언론사의 자동차와 카메라와 헬기가 철새 도래지를 수시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맹독성 약재가 포함된 방제액을 공중으로 내뿜는 대형 트럭과 작업자가 드나들더니 항공방제를 위한 헬기가 굉음을 터뜨렸다. 철새들은 그만 쉼터에서 쫓겨났다.


허기진 철새들은 부지런히 먹이활동에 나서야하는데 발암물질이 포함된 방제액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방제액이 아니더라도 요즘 철새에게 먹이활동은 전 같지 않다. 갯벌의 어패류가 크게 줄었지만 오래 전 갯벌을 매립해 만든 논에 낙곡이 사라진 것이다. 추수를 마친 들녘에 볏단이 깔끔하게 수거된 이후의 일이다. 탈곡한 볏짚은 자체로 비료다. 조상은 땅을 기름지게 하도록 논에 볏짚을 남겼지만 농협에서 화학비료와 유기질 비료를 주문해 해결하는 지금은 건포 사일리지를 위해 싹 쓸어간다. 볏짚에 붙은 낙곡을 먹으러 철새가 모여들고, 철새가 흘린 배설물이 훌륭한 거름이 되었지만, 하얀 비닐에 둘둘 말린 건포 사일리지는 철새를 거부한다.


2000년대에 들어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는 미국의 곡창지대를 가뭄에 시달리게 만드는데, 최근 심각해지면서 국제 곡물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식량 자급률 23%에 불과한 처지에도 우리 정부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규모를 늘려야 경쟁에 밀리지 않는 목장은 치솟는 사료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건포 사일리지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높이 1.2미터에 지름 1.5미터로 뭉친 500킬로그램 정도의 볏짚 사이에 유산균을 넣어 5겹 이상의 비닐로 둘둘 말아 밀폐해 놓으면 건포 사일리지가 완성된다. 이후 2개월 지나면 수입 곡물사료를 대체할 만큼 영양 좋은 볏짚 사료가 된다. 200평 한 마지기에서 5만원에 거래되는 건포 사일리지가 2개 나오니 농가는 약간의 부수입을 챙기게 되지만 들판은 철새의 배설물을 잃었고, 철새는 굶주리게 되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철새들을 기다리는 건 위축된 습지다. 그 습지에는 이미 먼저 온 철새들로 빼곡하다. 철새들로 가득한 호수에 전망대를 설치한 사람들은 철새 관광으로 떠들썩하지만 사람들의 냄새와 소음을 반기지 않는 철새들은 이래저래 불안하다. 습지를 따라 남북으로 부지런히 오고가지만 먹을거리는 통 보이지 않는다. 오리와 닭 농장을 분주하게 오고가는 트럭이 흘린 사료라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인데, 충분할 리 없다.


정부의 보도자료를 언론이 받아쓴 뒤로 지방의 철새 전망대는 속속 폐쇄되었고 철새를 바라보는 언론과 관료의 눈은 차가워졌다. 정부는 야생조류 먹이주기 가이드라인을 급조했다. 먹이주기 행사의 자제를 요청하면서, “공존을 위해먹이를 최소한으로 주라는 가이드라인은 조류독감이 발생한 농가에서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점, 철새가 내려앉는 호수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먹이주기를 제한한 것이다. 그렇다면 철새들은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먹이를 먹고 다시 호수로 돌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금 농장을 지나치며 배설물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철새가 쉬는 호수 주변에 충분히 뿌릴 것을 수정 주문했고, 다행스럽게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

 

 

공장식 축산과 전염병의 청궐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감염된 철새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왔을까? 철새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약하게 감염돼 날아왔다면 시베리아 지방에 H5N8형 바이러스가 검출되어야 마땅하지만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가창오리를 비롯한 철새가 찾아온 지 3개월이 되었는데 왜 도래지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는지 되묻는다. 철새는 농장의 가금에 비해 면역력이 현저히 높다. 철새에서 H5N8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가 없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이제까지 고병원성 조류독감들은 밀집 사육하는 농장에서 발생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 오히려 농장에서 발생한 오리의 H5N8 바이러스가 철새를 감염시켰고, 수십 만 마리 가창오리 무리 중 극히 일부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조류독감까지 얹히자 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 정황을 미루어, 되래 철새가 오히려 희생되었다는 주장이다.


가창오리와 일부 다른 철새의 사체에서 H5N8 바이러스가 최초로 검출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건만 철새의 배설물이나 사체에서 같은 바이러스를 찾아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장의 조류독감 전파는 계속된다. 철새 대부분은 무사하거나 이내 회복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예산을 퍼붓는 눈물겨운 방제에도 가금 사이의 전파는 왜 막지 못하는 걸까. 해외 상황을 해마다 예의주시한다면서 왜 조류독감은 반복되는 걸까. 우리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금을 사육하는 국가와 농장 대부분이 조류독감을 피하지 못한다.


가금을 밀집 사육하는 농장과 달리 자유롭게 축사나 마당을 돌아다니는 유기농 양계장은 조류독감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걸 언론은 보도했던데, 사실 그런 농장은 예외에 속한다. A4용지 만한 면적에 두 마리 꼴로 밀집시키는 대형 양계장은 살코기용이든 산란용이든 사육환경이 열악하다 못해 끔찍하다. 본성을 최대로 억제하는 농장은 먼지와 악취로 뒤범벅이고 깃털을 잃은 가금들은 배설물은 뒤집어 쓴 채로 항생제가 포함된 유전자조작 곡물 사료를 연실 먹어댄다. 축산자본이 그런 사육환경으로 키우는 품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소의 비용과 시간 안에 정해진 크기로 자라야 하는 가금은 규격화된 조건에서 사육한다. 그래야 하루 100만 마리 이상 도살해 자동으로 가공 포장하는 기계의 허용 오차 범위 내로 들어간다.


축산자본의 최첨단 기계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품종의 가금은 유전자가 단순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가 단순하면 모든 생명은 질병에 취약하다. 따라서 그런 가금은 엄격한 사육조건을 만족시켜야 과학축산이 계산한 이윤이 보장된다. 농장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인큐베이터와 같이 획일적인 사육환경을 공장처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가금뿐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돼지도 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품종이 획일화되기 전, 앓더라도 대부분 회복되었던 구제역에 발굽을 가진 가축은 속절없이 희생된다. 대부분의 철새가 끄떡없는 조류독감에 가금이 맥없이 희생되는 이유가 그렇다.


병원성이 아무리 강해도 빼곡하던 가금이 모조리 조류독감으로 죽는 건 아니다. 일부 살아남아 방송 카메라를 피해 겅중겅중 달아나지만 살처분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 농장주가 유난스레 비정하기 때문일 리 없다. 살처분을 옹호하는 정부는 확산을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이라고 둘러대지만, 기실, 국제시장의 신뢰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처분이라는 중립적 용어로 초점을 흐린 살해 방법은 정당한가. 밀폐된 축사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안락사시킨 뒤, 땅에 파묻어야 한다는 규칙은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인력과 시간의 부족을 핑계로 구덩이에 멀쩡한 가금을 몰아넣고 흙을 덮어 질식사시킨다. 현장 인부에 정신적 외상을 남길 정도로 우리의 가금 살처분은 참혹하다.


2009년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에서 발생한 돼지독감은 미국계 양돈 다국적기업 스미스필드푸드의 세계 최대 농장에서 기원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멕시코는 정부에서 스미스필드푸드에 개선 조치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그 방면 과문해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멕시코 정부의 조치를 무력화한다. 만일 미국계 가금 사업자가 우리나라에 둥지를 친다면 우리는 조류독감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우왕좌왕해온 정부의 뒷북행정을 보면, 차단은커녕 날아드는 미국계 축산자본의 손해배상 청구서와 해결할 수 없는 민원으로 골치 아플 것이다.


가창오리 사체에서 H5N8형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고 조류독감의 주범으로 단정할 수 없는 건 상식인데, 정부는 왜 서둘러 철새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웠을까. 농림부 역학조사위원인 한 전문가는 모든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철새가 아닌 가금에서 만들어져 왔다는 게 인플루엔자 학계의 정론이고 고병원성 AI가 철새에서 만들어질 수도, 만들어진 사례도 없다고 식량농업기구(FAO), 그리고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과 주장을 같이하면서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검출된 H5N8 바이러스는 2010년 중국 장쑤성의 가금 시장의 오리 한 마리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로, 철새가 이때 감염됐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이 소설을 쓰면 안 된다고 비판했건만(미디어오늘, 2014.1.30.), 정부는 철새 기원론을 철회할 생각이 여전히 없어 보인다.

 

 

부드러운 살코기의 부메랑

 

영국과 유럽연합은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일단 해당 농가의 가금류에 국한해 살처분하고, 안전반경 3킬로미터 이내 가금의 엄격한 이동제한으로 전파를 막는다고 한다. 오랜 경험이 그런 방제 정책을 정착시켰을 텐데, 허둥대지 않으면 가능한 모양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섭씨 75도에서 2, 68도에서 5분 이상 노출되면 죽는다고 하니, 충분히 삶거나 튀기면 먹어도 관계없다고 식품 전문가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안전반경 이내라고 해도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은 닭과 오리, 메추리와 칠면조까지 모든 가금을 예외 없이 생매장하는 행위는 지나치다. 국내에서 사육하는 가금은 거의 나라 안에서 소비한다. 수입하는 국가의 신뢰를 구하려고 광범위하게 살처분하는 처사는 잔혹하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수입국의 신뢰를 구할 수 있다. 안전반경 밖의 가금이라는 걸 증명하는 방법을 택하면 가축의 생명을 경시하는 살처분은 없어도 된다.


논산시 연산면에는 1980년 천연기념물 265호로 지정된 연산오계를 보전하고 있다. H5N8형 바이러스가 다가옴에 따라 농가는 정부의 잔혹한 조치를 최대한 피하려고 안전한 지역으로 연산오계를 분산해 보호한다고 한다. 강화의 한 농부는 양계장에서 버리려던 산란용 암탉을 마당에 풀어놓았다. 마당에서 벌레를 찾아 땅을 뒤지며 본성을 찾더니 이내 깃털에 윤기가 돌고 알도 잘 낳는다면서 그 농부는 이야기했다. 마당에 풀어서 대대로 사육해온 연산오계는 조류독감이 휩쓸어도 대부분 이겨낼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깊게 해보자. 살처분하지 않아야 오히려 조류독감에 이겨낼 가금을 보전할 수 있다. 아무리 심각한 독감이 돌아도 대부분 사람들이 이겨내듯, 면역력이 회복되면 닭도 오리도 메추리도 능히 견뎌낼 것이다. 이겨낸 가금으로 개체를 늘린다면 조류독감 중에서 많은 항원형은 심각한 질병의 목록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본성에 적합하도록 가금을 마당에 풀어놓아 면역력을 높이며 기른다면 도류독감에 감염된 농장일지라도 집단 살처분은 불필요해지지 않을까? 조상은 그렇게 길렀을 것이다. 동물복지가 개선된 축산이 가능해진다.


요즘 우리가 먹는 고기는 지나치게 부드럽다.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다. 그런 살코기를 위해 지나치게 어린 가축을 도축한다는 사실을 먹는 이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을 한 차례도 낳지 않은 물고기를 남획하는 어업을 우리는 비윤리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살코기의 출처는 어떤가. 성체에 훨씬 미치지 못한 가축을 도살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서 즐겨 먹는다면 이율배반이 된다. 소든 돼지든, 닭이나 오리든, 축산자본은 사람 나이로 따져 7살 이내의 가축을 도축한다. 어리다고 덩치가 작은 건 아니다. 극단적 품종개량으로 덩치를 키웠을 뿐 아니라 성장호르몬으로 빠른 시간에 자라도록 만들었다. 살코기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슴살을 먹는 닭을 1년 동안 키운다면 몸무게가 이론적으로 200킬로그램까지 자란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물론 그 전에 도축하지만, 도축할 때조차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골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오리도 마찬가지다. 근육 사이에 지방이 많을수록 부드러워지므로 움직임을 최대로 억제하고, 얼른 살찌게 하는 사료를 항생제와 배합해 먹인다. 본성에 맞지 않는 사료와 가혹한 사육환경은 어린 가금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만 항생제 때문에 도살 전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과하게 먹는다.


소비자가 부드러운 살코기를 찾기 때문에 사업자가 부응한 것이라고 축산자본은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소비자를 그리 유도한 건 자본이다. 부지불식간에 듣고 보게 되는 광고에 길들어진 결과, 소비자들은 어느새 턱 근육이 약해졌다. 연하지 않다면 고기를 씹어 삼키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태어나 도살될 때까지 본성이 억압되고 스트레스와 공포에 휩싸인 가금과 가축의 살코기는 비만과 성인병만 앞당기고 확산하게 했을까?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장애 증후군이 요사이 아이들 사이에 늘어나는 원인과 무관할까? 아토피 증가의 원인이 부드러운 살코기의 과식과 관계없을까? 개 도축이 합법화된다면 우리나라는 개까지 가혹하게 사육할 것이다.


부드러운 살코기는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과 같은 부메랑이 되어 공장식 축산을 공격한다. 부메랑은 더 있다. 비만이나 성인병,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장애 증후군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본의 탐욕이 원인이든 소비자의 욕심이 원인이든, 거듭되면서 생태계는 점점 단조로워지고 지구온난화는 거세지는데, 석유위기는 가속되고 기상이변이 심화되면서 국제 곡물가격을 높인다. 탐욕과 욕심이 커질수록 다양성을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는 위축되고 평화는 깨진다. 부드러운 살코기의 대량 생산을 위해 많이 죽이고, 많이 먹고, 많이 버리는 풍토는 결과적으로 불안한 사회를 이끌었다. 그런 상황에 질병은 더욱 깊어지는데, 영리병원이 우리를 기다린다. 부메랑이다.


탐욕이 이끈 생태계 변화는 가죽나무와 주홍날개꽃매미의 과잉 출현에서 그치지 않는다. 갯벌이 메워지고 강이 흐름을 잃으면 생태계는 단조로워지고, 생태계가 단조로워지면 생명은 건강을 잃는다. 과학기술이 위기를 잠시 뒤로 미룰 수 있다지만, 그 혜택은 정의롭지 않다. 또한 과학기술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우리가 던진 부메랑이 증명하듯, 과학기술의 한계는 분명해졌다. 탐욕을 부추기는 과학기술에 성찰 없이 길들어지자 호미를 막을 문젯거리를 가래로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조류독감은 한 예에 불과하다. 꿀벌이 사라지고,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위기는 심화되고 경고는 무서워지는데 우리는 탐욕을 반성할 준비가 되었나. 조류독감 전문가들은 1억 명 이상 사망할 조류독감의 창궐을 경고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흐름이 가로막힌 낙동강은 달성군 가창면을 멈칫멈칫 흐른다. 가창면에서 이름을 딴 가창오리는 영어로 ‘Vikal duck’이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 주변과 레나강 유역에서 여름을 보내는 가창오리는 거뜬히 회복되었다. 조류독감 전파자라는 혐의를 여태 벗지 못하지만 고맙게도 군무를 멈추지 않는다. 무던한 가창오리는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석양을 배경으로 군무를 언제까지 보여줄까. 우리에게 달렸다. 먹이주기의 활성화를 이야기하는 건 물론 아니다.(녹색평론, 20143-4, 135)

녜 조류독감도 철새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먼저 처음발생한곳부터 정밀한 역학조사 진행하였다면 좋으련만
그먼길을 날아온 철새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니
사람도 감기에 걸리면 먼길 여행갈수 있을까요
벗님 글은 언제나 가슴 조이게 하는 다큐 한 편으로 바뀌어 눈 앞에 그려집니다.
그걸 보며 슬퍼하고 아파하고 분노합니다.
더 많은 이가 읽고 알아야 할 텐데!
고마워요.
좋은 포스팅이네요!
포스팅구경하고가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1. 9. 09:37

 

에일 정도는 아니지만 뺨이 시리도록 차가운 11월 중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찬란한 빛을 잃어갈 즈음,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는 아까부터 기다리던 탐조인들을 탄성에 젖게 한다. 안면도가 파고를 막아주는 천수만, 그 천수만과 연한 서산 A지구와 B지구 간척지는 1990년대 이후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와 같은 10여 종의 천연기념물, 기러기와 청둥오리를 비롯한 수십 종의 겨울철새들이 찾는 안식처가 되었다. 그중 가창오리는 20만을 헤아린다.

 

1989년 완공되면서 모습을 광활하게 드러낸 서산간척지는 농경지가 3000만평에 이르고 1300만평에 달하는 두개의 담수호가 펼쳐진다. 간만의 차가 큰 만큼 물살이 거세 어려움을 겪을 때, 폐선을 동원해 물길을 차단하고 물막이를 마무리한 이른바 ‘정주영’ 공법은 지금도 획기적 토목공사로 손꼽히는데, 그래서 생긴 간척지 중 B지구의 부남호에 해마다 가창오리가 떼를 지어 찾아온다. 부남호의 가창오리들은 추위가 깊어지면 물이 얼지 않는 금강하구로 내려가는데, 이때 금강하구에는 다른 습지에서 날아온 가창오리까지 50만 마리 넘게 운집해 형용할 수 없는 경이를 연출한다.

 

수면 가득 점점이 앉은 무리. 그 한 군데에서 몇 마리가 물을 박차면 기다렸다는 듯 연이어 수면을 스치며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는 탐조객의 뇌리에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가없는 호수를 덮을 듯 퍼졌다 앞서는 무리를 따라 물결치듯 휩쓸려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셔지는 파도와 같은 날개소리를 하늘에 남기며 호수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휘돌아 감다 다시 소용돌이치며 방향을 바꾼다. 블랙홀에 빠지려는 듯, 하늘의 좁은 통로로 몰려들다 이내 부챗살처럼 활짝 퍼지던 거대한 무리는 자석에 끌리는 듯, 방향을 바꾸며 하늘 저 꼭대기까지 치솟아 오르다 펼쳐지기를 5분 남짓.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 호수의 여기저기를 파도치듯 교차하면서 한 마리도 부딪히지 않는 경이를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인 탐조객에서 아낌없이 선사한 후,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벅차오른 가슴을 주체할 길 없는 탐조객들은 시린 뺨으로 흐르는 눈매의 이슬을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쉬움 속에 발길 돌리는데, 문득 시장기를 느낀다. 가창오리들도 멀지 않은 농경지로 낙곡 주우러 떠났을 것이다. 밤에 먹이를 먹는 가창오리들은 동 트기 전에 다시 화려한 군무를 펼치며 돌아올 텐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탐조객은 삼삼오오 버스에 올라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압도되었던 연속 장면을 잊고 싶지 않은 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비로소 말문을 연다. “몇 마리나 되었을까요?” 가창오리 떼가 몇 마리인지 궁금했던 게 아니다. 군무의 크기를 헤아리기보다 조금 전의 감동을 되새기려는 의지다.

 

2004년 1월,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은 전국 14군데 월동지역에 65만 8천 마리의 가창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았고 그 중 90퍼센트 이상이 금강에 내려앉았다고 보고했다. 실로 대단한 숫자다. 한데, 환경부에서 보호야생동물로 지정한 가창오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포함돼 있으며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희귀하다. 여름이면 러시아와 몽골의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90퍼센트 가까이 우리나라의 습지로 날아오는 가창오리는 세계적으로 80만 마리에 가깝건만 전문가들은 왜 멸종을 걱정할까. 서산간척지와 금강하구는 습지가 넓을 뿐더러 주변에 기계로 경작하는 논이 넓어 낙곡이 충분하다. 지방단체는 많은 예산을 감당하며 나락을 남기거나 논에 물을 빼지 않으며 보살피려 애를 쓴다. 그런데 멸종위기라니. 우리의 대표적 겨울 진객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국립환경과학원은 2007년 1월, 82만 마리의 가창오리를 비롯해 우리나라 내륙과 해안 습지에 사상 최대의 겨울철새가 날아왔다고 밝혔다. 가창오리는 2006년의 3배에 달했으며 2002년부터 겨울철새의 방문이 증가한다고 전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측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겨울철새 증가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들었다. 번식지가 확대되고 먹이가 증가한 걸 그 이유로 풀이하는데, 그런 반가운 일을 전문가는 왜 걱정스러워하는 걸까. 지구온난화가 우연치 않게 만든 이상적인 조건이 지속될 리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를 찾기 시작한 가창오리는 주로 갯벌을 매립해 만든 너른 평야와 그 평야 주변에 조성한 호수에 내려앉는데, 그런 평야는 화학농법에 의존하고, 호수는 지속적으로 오염된다. 매립이 계속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는 얼마 남지 않는 갯벌에 내려앉거나 주변 호수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밀집되면 질병이 쉽게 창궐한다. 실제로 천수만을 비롯하여 전국 철새도래지에서 조류 콜레라와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보툴리즘균이 최근 거푸 발생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정작 문제는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몸이 40센티미터인 가창오리는 암수의 생김새가 완연히 다르다. 멀리서 보아도 드러날 정도로 얼굴이 화려한 수컷은 갈색 눈의 앞과 뒷부분을 반달 같은 노란색 깃이 태극처럼 휘감고 그 뒤를 흰 테두리가 있는 초록색 깃으로 감싸 ‘태극오리’로 불린다. 하지만 온몸이 갈색인 암컷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눈 아래 흰 점과 턱이 특색인 암컷은 수컷 무리와 섞이지 않는다면 다른 오리 종류와 구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창오리는 군집성이다. 수십만 마리가 모이니 천적의 위협에서 집단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어도 군집성 조류는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면 보전이 어려워지는 특징이 있다. 100억 마리에 달했던 북미의 나그네비둘기는 백인들의 광포한 사냥으로 70만 마리로 줄었다. 뒤늦게 보호에 나섰지만 그 정도 크기로는 집단이 회복되지 못했고,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가창오리는 보전될 수 있을까.

 

얼마 전,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총회가 마무리되었다. 우리도 철새가 찾는 습지를 보전하겠다고 세계에 천명한 것이다. 가창오리의 처지에서 만족스러울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군무를 펼쳐주니 고맙고 반갑다. 염치없지만, 내년 이후에도 계속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원생활, 200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