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6. 19. 00:05
 

1학기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여름날 오후. 더위에 지친 머리는 아득해지고 참고서의 활자가 눈에 쉬 들어오지 않을 무렵, 창문 너머 어디선가 작게 ‘찌르 찌르르’ 들리는 소리는 막힌 머리를 풀어주곤 했다. 이른 여름부터 더위를 달래주던 여치였다. 고층 아파트가 도시 구석마다 즐비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채송화, 봉선화, 분꽃으로 아기자기한 꽃밭이 마당 한구석을 차지했던 70년대 이전의 도시가 대개 그랬다.

 

어찌 보면 길이나 생김새가 메뚜기와 비슷하지만 여치는 몸집이 두툼하다. 머리와 가슴 양 옆에 황색 띠가 있고 몸이 황색을 띌 경우가 많지만 그건 메뚜기도 비슷하다. 다만, 잎이 가늘고 긴 벼나 개천가의 풀밭에 많은 메뚜기와 달리 잎이 둥근 화초가 많은 인가에 잘 다가오는데, 여치는 메뚜기에 비해 날개가 짧다. 그래서 그런지 메뚜기보다 잘 잡혔고, 어른들은 여러 마리의 여치를 풀대로 엮은 초롱에 넣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곤 했다.

 

우리는 사실 여치를 몸통이나 날개 길이로 구별하지 않았다. 그저 낮에 집 근처에서 울면 여치, 논에서 잡으면 메뚜기라 말했다. 여치와 베짱이도 구별하지 않았다. 곤충도감은 날개가 꼬리를 길게 덮으면 베짱이, 날개 끝에 배보다 짧으면 여치라고 묵묵히 기록하고 있지만, 날개를 비벼 찌르 찌르르 소리를 내면 그저 여치려니 했다. 수컷은 양 날개를 비벼 대낮에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것이다.

 

충청북도 영동군의 포도와 복숭아밭에 여치가 떼를 지어 습격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3에서 5센티미터에 달하는 ‘갈색여치’들이 산자락에 조성된 복숭아밭을 뒤덮어, 잎은 물론 줄기와 막 자라오르는 열매까지 닥치는대로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살충제를 나누어주며 확산을 막으려 애를 쓰는 영동군 당국은 지난해부터 몰려들어 6만여 평의 과수원에 피해를 입혔던 여치 떼가 올해 한 달이나 빨리 습격해 미처 대책을 세울 시간이 없었다며 당혹해 했다.

 

지난 해 영동군의 일부에 그쳤던 피해가 이번에 영동군 전역을 넘어 옥천과 보은군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이자 농업과학기술원 연구팀은 잔뜩 긴장한다고 언론은 전한다. 외국의 기록영화에서 보는 메뚜기 떼의 재앙을 걱정한 모양이다. 6년 전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한 차례 발생한 여치의 집단 출현이 왜 최근 연속되는 걸까.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아직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여치의 발육과 산란과 식성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의심한다.

 

농업과학기술원 연구팀은 “2년 연속 겨울 기온이 높았고 주변에 활엽수림이 많아 우수한 식생 환경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참나무 잎 등을 주로 먹는 갈색여치가 지구온난화로 일찍 돋아나 딱딱해진 활엽수 잎 대신 부드럽고 당도 높은 과수의 순과 열매에 이끌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과수원 뿐 아니라 농작물까지 피해 입는 이유도 같을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피해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보다 넓게 나타난 여치들이 더 넓은 지역에 알을 집중적으로 낳을 경우, 내년은 올해의 피해 면적을 크게 초월할 거고, 그 정도는 해마다 심각해질 수 있다고 곤충학자는 경고한다.

 

대학에서 조사차 나온 곤충학자는 “체계적인 생태 연구를 거쳐 종합적인 방제 대책이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는데, 방제로 여치 떼의 습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 6배 이상 농약을 뿌리는 우리나라의 환경임에도 떼로 나타난 여치를 과연 어떤 살충제로 구제할 수 있을까. 디디티를 뿌려 퇴치했다 믿었던 메뚜기 떼가 더 무섭게 몰려왔던 예를 떠올리지 않아도 될까.

 

잎에 알을 낳아 붙이는 베짱이와 달리 2에서 3센티미터 깊이의 땅 속에 평균 110개의 알을 흩어 낳는 여치는 먹이가 부족할 경우 같은 종끼리 잡아먹는 이른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을 가져, 여간해서 밀집돼 서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여치 떼를 연구한 곤충학자는 개체 수가 늘어날 때마다 서식 면적이 빠르게 넓어질 것으로 걱정하는데, 지금 독성보다 현저히 강력한 살충제를 어느 농도로 얼마나 넓은 면적에 뿌려야 할까. 여치 잡으려다 여치 잡아먹는 새들까지 몽땅 퇴치하는 건 아닐까. 불완전변태인 유충으로 땅 속에서 겨울을 나는 여치를 없애려다 과일농사에 필수인 토양미생물도 사라지는 건 아닐지.

 

기술은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퍼지는 시간은 아주 짧은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어느 농부의 생각이 전해진 것일까. 아마 여치 떼의 습격에 화가 치민 농부는 마시던 막걸리를 남겼던 모양이다. 아침에 막걸리 병을 여치들이 수북이 빠져 죽어 있는 게 아닌가. 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과수원은 수백 개의 막걸리 병을 매달았다고 한다. 깔때기처럼 자른 윗부분을 남은 병에 거꾸로 끼워놓고, 그 안에 설탕을 녹인 막걸리를 담아 나뭇가지에 달아놓으면 20마리가 넘는 여치들이 빠져 죽는단다.

 

눈에 띄는 살충효과는 더디겠지만 막걸리 병을 이용하는 방식은 살충제보다 생태적으로 안전할 뿐 아니라 효과도 지속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살충제에 중독되지 않은 여치를 먹자고 새들이 몰려들 것이고, 땅강아지나 두더지가 여치 유충을 적당히 구제할 게 아닌가. 일은 좀 고되더라도 해마다 강력해지고 양이 늘어날 살충제보다 훨씬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농부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 과수원은 유기농업일 테니 복숭아나 포도를 제값으로 팔 수 있을 것이다.

 

여치가 최근 갑자기 늘어나는 것은 지구온난화만이 아닐지 모른다. 여치가 좋아하는 과일나무를 넓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심은 현상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농약을 하도 쳐서 천적은 드물어진 상태에서 먹을 게 지천이면 개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사탕수수를 끝없이 심자 사탕수수 잎을 갉아먹는 풍뎅이가 막대하게 늘어난 호주와 비슷한 예는 세계 곳곳에 끊임이 없다.

 

메뚜기와 여치 같은 메뚜기과 곤충에게 철사를 닮은 ‘연가시’라는 선형동물이 있다. 두께 1밀리미터 정도인 연가시는 여치의 몸에서 1미터 이상 자란다는데, 연가시는 주변에 깨끗한 웅덩이가 있어야 번식이 가능하다. 여치 몸에서 자란 연가시는 여치의 뇌를 자극, 웅덩이에 빠지게 해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연가시를 위해서도, 과수원과 농부와 땅의 건강을 위해서도, 생태계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서도 살충제는 해답이 아니다. 찌르 찌르르 우는 여치 소리를 반갑게 맞으려면 한 가지 과일나무나 농작물을 넓게 심는 농업을 삼가는 게 좋다. 웬만하지 않으면 여치는 떼로 농촌을 급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푸레골, 2007년 7월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