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0. 6. 17:08

 

꽁치, 멸치, 한치는 치기어리다 치고, 준치, 삼치, 날치, 넙치는 그런대로 준수한데, ‘치’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제사상에 올라가지 못한다. 물고기가 아니지만 김치와 고치장도 올라가지 못한다. ‘치’가가 들어가는 음식은 왜 제사상에 올라가지 못할까. 조상님이 드시는 제사상에 어릴 ‘稚’자가 낀 음식은 배제하려는 걸까. 제사 마친 상에 김치와 고치장은 슬그머니 올라가는데 치자를 가진 생선은 여간해서 오르지 못한다. 가을 바다의 진미, 갈치도 그 점에서 마찬가지다.

 

갈치는 따뜻한 바다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일원의 연근해를 비롯하여 일본과 동중국해에 분포하지만 세계 온대와 아열대 해역에 널리 퍼져 있고 호주의 따뜻한 바다에서 볼 수 있다. 그 중 제주도 서쪽에서 겨울을 나는 우리의 갈치는 황해를 무대로 회유한다. 바다가 따뜻해지는 4월 황해 연안으로 올라와 알을 낳은 다음 주변 해역을 무리지어 머물다 바다가 서늘해지면 다시 제주도를 향해 내려가는데, 그때 불을 환히 켠 어부들은 부산해진다. 낮에 바닥 가까이 내려갔던 갈치들이 밤에 올라와 불빛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갈치는 칼 같다. 그것도 서슬이 퍼런 검이다. 5년생이면 40센티미터로 성장하고, 최대 150센티미터에 달하는 갈치는 몸이 검처럼 길고 납작하면서 구아닌 성분의 은백색 표피를 가진다. 채낙기 어선의 낚싯줄에 낚였다 뱃전에 몸을 떨어뜨리는 갈치는 버둥거릴 때마다 불빛을 눈부시게 반사시킨다. ‘갈’은 칼의 옛말이다. 급히 이동해야 하거나 먹이를 낚아챌 때가 아니라면 머리 뒤부터 꼬리까지 기다란 등지느러미를 나풀거리며 곧추서서 움직이는 까닭에 바다 속에서 검들이 춤을 추는 듯하다. 그러므로 ‘칼치’다. 어시장에 나온 사람들은 대개 “갈치”가 아니라 “칼치 주세요!”한다.

 

갈치는 가을의 생선이다. 먼 바다로 나가 저인망으로 여름과 겨울에도 끌어올리지만 가을에 주로 잡는다. 살이 단단한 그때가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치는 ‘가을치’가 아닐까. 가을치는 은갈치라야 한다. 낚시로 잡아야 피부의 구아민이 멀쩡해 은빛으로 번쩍거린다. 저인망을 끌어 몽땅 걷어올린 갈치는 먹갈치다. 그물에 덩어리져 올라와 급냉동되었다 해동되면서 구아민을 잃어 볼품이 없다. 아무래도 먹갈치는 은갈치에 비해 가격이 쳐진다. 소화가 안 되는 구아민을 제거해야하더라도 그렇다.

 

가을에 잡는 갈치는 가을에 담그는 김치와 잘 어울린다. 김장김치다. 배추 속에서 충분히 숙성된 갈치 토막을 한 입 베어 먹으면 바다 내음이 물신 입 안을 감싸며 김장김치의 맛을 한결 돋구어준다. 김장김치 속의 갈치. 지금은 식단을 고르거나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차려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고급 식당에 가야 겨우 알현할 수 있지만 갈치가 고급 생선으로 둔갑하기 이전만 해도 인천과 경기만 일원의 웬만한 가정에서 드물지 않았다. 길이가 길고 옆구리가 두툼하면 등뼈를 제거한 살을, 얇으면 뼈까지 썰어 포기 사이에 넣으며 담갔던 김장. 이제 추억이 된 치와 치의 조화다.

 

아직 갈치 자체는 추억이 아니다. 리아스식 해안이 직선으로 개발된 뒤 작황이 전 같지 않아도 조림과 구이로 쉬 변할 정도로 그물과 낚시에 흔쾌히 걸려준다. 초고층빌딩 개발 열기에 밀려 추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인 종로 피맛골은 이제 잊어야 한다니 남대문시장으로 가보자. 점심 때 한 방향으로 종종걸음 치는 시장상인과 시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참을 수 없는 냄새를 좇아 한 허름한 건물로 몰려들 거고, 뒤따르면 피맛골처럼 좁아도 이중삼중 복잡한 식당골목을 만날 것이다.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검게 그을린 양은냄비에 끓여내는 갈치조림과 관록을 자랑하는 석쇠에 구운 갈치구이 내놓는 게 한결같은 식당들. 저마다 원조임을 자부하지만 호주머니의 부담은 없다.

 

악착같은 저인망 선단의 남획에도 개의치 않고 우리 서해에서 갈치가 아직 잘 잡히는 데는 어떤 민망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해마다 13조 원에 달할 정도의 음식쓰레기가 버려진다던데, 그 쓰레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생활쓰레기매립장은 아니다. 고발당한다. 가정에서 모아 사료나 퇴비로 활용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식품가공공장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는 엄청나지만 13조 원을 다 채우지 못한다. 멜라민 파동 이후 버려진 식품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소각? 글쎄. 힌트 하나! 군산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황해상의 공해는 우리 정부가 정한 음식쓰레기 투기장이다. 누런 음식쓰레기를 거듭 쏟아내는 거대한 배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허겁지겁 입을 벌리는 생선의 명단에서 갈치는 제외되지 않는다.

 

최근 우리 바다에서 갈치가 갑자기 풍성해졌다. 씨알이 굵은 은갈치의 풍어가로 서귀포 어민들은 기름값 시름을 잊을 정도라고 언론은 전한다. 그런데 반갑지만은 않다. 지구온난화로 남해의 수온이 오른 뒤 나타난 현상이라는 게 아닌가. 제주 어민의 90퍼센트가 갈치조업에 나서면서 고등어 두 마리 값이었던 갈치가 지금은 고등어보다 싸다는데, 이런 작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서해의 음식쓰레기 투기장을 곧 폐쇄될 예정이라던데,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로 갈치의 회유에 차질이 생긴다면? 제주도의 명물인 갈치회나 갈치국은 물론이고 갈치조림과 갈치구이마저 고급 요리로 둔갑하는 건 아닐지.

 

올해 10월에도 어김없이 목포 앞바다는 갈치축제의 막을 올렸다. 먹성이 좋아 먼저 잡힌 동료의 살점까지 덥석 물어대는 은갈치를 초보자도 쉽게 낚을 수 있다던데, 3만원을 낸 관광객은 불빛을 보고 모여든 갈치의 집단 칼춤에 매료된 다음, 두툼하게 자른 무와 감자에 마늘과 생강으로 다진 양념을 넣고 대파와 함께 지글지글 끓여내는 갈치조림, 그리고 소금과 식용유면 충분한 갈치구이를 만끽했을 것이다. DHA가 많아 혈전을 막고 피부를 윤기 있게 하는 갈치에는 단백질과 지방은 물론, 칼슘과 철 그리고 비타민B군과 요오드가 풍부해 간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식욕을 증진시킨다고 철만난 인터넷 시장은 광고가 요란하다.

 

묵은김치와 찰떡궁합을 과시하기 시작한 갈치는 비록 추석상에 오르지 않아도 틀림없는 가을 바다의 진미다. 징후가 더 흉흉하기 전에 지나친 연안개발과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데 동의하면서, 우선 남획부터 자제했으면 좋겠다. (전원생활, 2008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