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1. 8. 15. 16:00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전단이 편지로 왔다. “아직도 안 받으셨나요?” 묻는 전단은 검진 비용의 90퍼센트를 공단에서 담당하니 서구 식생활에 익숙한 고객은 조기 진단으로 건강을 잃지 말라는 고마운 친절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친절을 이미 여러 차례 받은 처지에서 마음이 흔쾌하지 않는 건 왜일까. 가부장적이거나 상업적 친절이라는 냄새를 느낀다고 반응하면 좀 지나친 걸까.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에서 원장으로 은퇴한 어떤 의사가 사석에서 자신은 건강검진을 여태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까닭을 묻자, “무서워서!”라고 답했다며 그 은퇴 의사의 친구인 선배는 실소했는데, 그 선배는 해마다 사원 개인에게 마치 크나큰 권리라도 선물하는 양, 건강진단 다녀올 것을 해마다 회사는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나이들은 만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당연한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무게 잡는 의사들의 과잉 전문성이 불편하다며 모를 권리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토로했지만 회사는 알고 싶었을 게다. 미리 정리할 사원이 누구일지를.

충성스런 고객에게 특별한 배려처럼, 구형 손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주겠다는 호들갑스런 전화를 극성스레 받는다. 멀쩡한 전화기를 바꾸라니!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배터리 성능도 좋은데 왜 바꾸라는 겐가. 할부금 시한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기능을 더한 제품을 내놓는 세태에서 재고품을 처리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헐값의 프린터를 내준 뒤 고가의 잉크나 토너를 파느라 여념 없는 업체의 상혼과 비슷한 건 아닐까. 아무튼, 옛 번호를 고집하는 손전화는 아직 내손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탈퇴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라이버시 유출에 진저리를 친 경험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언론은 귀띔했다. 진저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기심을 과시하는 누리꾼들이 공개하지 않은 개인 정보를 신상털기라며 인터넷에 흘리자 관음증과 더불어 조회가 폭발하지 않던가. 이런 와중에 손 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모를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아갈 소지가 다분하다. 사전 허락 없이 사용자의 행적을 감시하던 손전화기 제조회사가 고발되었고, 벌금이 부과된 게 엊그제다.

건강 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전자피부가 나온다!”며 독자에게 가슴 벅찰 것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잘 휘어질 뿐 아니라 견고한, 가로 2센티미터 세로 1센티미터에 두께가 37마이크로미터의 전자피부를 문신처럼 심장 가까이 붙이면 환자의 심박수나 체온은 물론 근육의 움직임과 뇌파의 변화까지 24시간 감지하며 주치의에 연결한다는 언론기사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을 시작했다는 과학자의 소견을 소개했다. 다만 생체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거리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 원거리 전송이 필요한 의료기기 적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덧붙이면서.

전자피부의 가능성을 타진한 과학자의 순진한 의도는 기술개발 속도를 미루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스마트폰 기술과 범지구위성합법시스템(GPS)을 활용한다면 미약한 생체신호가 담당의사의 손전화 모니터에 전달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이미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세계 과학기술의 추이를 분석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를 기반으로 만든 칩을 피부에 이식할 경우,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의 맞춤의학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담당의사는 컴퓨터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적절한 약품을 그때그때 처방할 뿐 아니라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는지, 먹지 않고 독한 술을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만큼 마시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호자에게 일러바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전자피부에 개개인의 DNA칩을 넣어 환자, 아니 모든 국민의 피부에 태어나자마자 이식한다면 어떠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될까. 집 잃은 개를 얼른 찾게 할 뿐 아니라 함부로 버린 개의 임자를 꼼짝없이 잡아내고, 물린 이가 예방주사 접종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자칩은 개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이 훨씬 빼어나고 비싼 DNA전자피부가 전하는 은밀한 정보를 병원은 물론이고 행정망의 중앙컴퓨터와 연결한다면 생활은 무시무시하게 편해질 게 틀림없다. 말썽 많은 주민등록증이나 인감증명이 지갑에서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출입국 수속을 위해,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공항에서 길게 기다릴 이유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1990년대 말, 인감증명과 건강보험카드의 기능을 포함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을 편의를 앞세우며 추진하려는 정부에 시민단체는 맞서야 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로 시민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들이 은행이나 보험회사, 그리고 기업에 흘러들어갈 경우 빚어질 감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치며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계획을 철회했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살아나려 한다. 전자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일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 시민과 달리 정부는 아쉬움이 큰 모양인데, 그 실체가 도대체 뭘까. 전국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는 폐쇄회로 카메라보다 효율적인 그 무엇은 감시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까.

넓은 아스팔트가 한산해진 야심한 밤,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횡단보도로 찾아갈 때 저기 경찰차가 보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횡단보도 도착 전에 길을 건넜더니, 경찰 순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남발하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민중의 지팡이를 믿어 안심하고 건넜다는 핑계를 귀전에도 듣지 않으며 도로교통법 운운하던 경찰은 전과가 없으니 봐준다며, 더 바쁜 일이 있었는지 가던 길로 휑하니 사라져갔다.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남이 보든 말든, 순찰차의 작은 단말기로 모든 범죄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에서 더욱 가깝게 다가온 전자주민등록증이 걱정인데, 최첨단을 찬미하는 과학기술은 전자피부를 가볍게 넘어설 세상을 장밋빛으로 그린다.

전자피부의 쌍방향 정보는 주치의와 환자의 스마트폰 사이만 맴돌까. 그런 정보는 고객의 수가를 조절하고 싶은 보험회사에서 반색하고 이윽고 가입을 거부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어떤 이의 입사를 원하지 않겠지만 그 정도는 약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자신호의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편의에 사로잡힌 개인은 중앙이 은밀히 수집해 분류할 뿐 아니라 가공하는 정보에 굴복할 뿐, 중앙의 의도를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철두철미한 감시사회에 내팽겨진 개인은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면 저절로 병원 고객으로 등록되면서 나아가 디지털 치매에 들어간다. 현관 자물쇠의 번호를 기억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전자신호 체계에 소외된 이는 디지털 학대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작은책, 201110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9. 17. 21:04

 

프로야구 정기리그가 잔여 일정을 마쳐가면서 지역 연고 팀의 성적이 실시간으로 궁금해진다. 막판까지 재미있게 꾸려가려는지 경기마다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저녁 무렵 집에 있다면 시청하며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지만 벗과 술잔을 기울일 때면 오리무중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손안의 DMB로 시청하는 젊은이가 보인다. 다가가 물으면 일단 경계하다가 응원하는 팀이 같다는 걸 확인했는지 이내 웃으며 대답해준다. 이기고 있노라고.

 

추석 연휴를 맞아 손안의 스마트폰이 길동무가 될 거라는 기사가 나왔다. 실시간으로 교통상황을 알려줄 뿐 아니라 고속도로변의 휴게소와 식당의 별미도 소개해줄 테니 짜증내지 말고 다녀오라고 귀띔한다. 귀성할 일이 없으니 기사가 살갑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 스마트폰이 확산되었다는 뜻일 게다. 스마트폰의 유용성은 더 있을 것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별안간 아픈 이가 나와도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안내해주니 안심해도 되거나,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고속버스 안에서 영상을 주고받으며 연인과 소곤댈 수 있겠지. 하지만 답답하다. 그 좁디좁은 화면에 눈과 귀를 고정할 뿐, 주위의 이웃과 소통을 한사코 거부하지 않던가. 그렇게 시간을 오래 보내면 눈은 괜찮을까. 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사회는 본디 어울려져야 자신도 이웃도 건강할 수 있는데.

 

어느새 핸드폰이 없으면 민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 카페는 물론이고 세미나 참석 신청서를 제출하려 해도 핸드폰 번호가 없으면 안 된다. 택배도 대화도 불가능하다. 초등학생에서 은퇴한 노인까지, 이제 핸드폰이 없는 이와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된 셈인데, 그뿐인가. 핸드폰이 시시때때로 요구하는 비밀번호는 한두 가지가 아닌데, 잊은 번호를 돌이키는 과정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요즘 공기나 물처럼 필수재가 된 핸드폰, 사용료는 그에 상응하지 않을 만큼 아직 비싸다. 생존을 위해 손에 쥐어야한다면 핸드폰의 종류와 기능을 다양화해 가격 때문에 소외되는 이 없도록 배려해야 옳은 게 아닐까.

 

불행인가 다행인가, 요즘 유행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아직 모른다. 인터넷으로 사용할 수 있다지만 가입하지 않았다. 다양한 문자와 영상 소식을 개개인의 네트워크를 통하며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아무래도 화면이 큰 스마트폰이라야 제격을 텐데, 아직 구입하지 않았다. 가입을 권유하는 다정한 친구는 많지만 아직 그럴 생각이 없다. 스마트폰도 구입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년 넘게 탈 없이 사용하는 핸드폰이 있기 때문이지만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소식과 의견을 주고받자고 가입을 권했던 친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유용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4대강 사업’ 공사 현장에서 떼죽음한 민물고기를 공사업체가 은폐하려 할 때 실시간으로 그 현황을 알린 활동가는 퇴로를 막으며 취재를 방해하려는 공사업체의 압박까지 중계할 수 있었다. 4대강 사업 주체는 공사 중인 보 위에 올라 농성하던 활동가의 실시간 중계를 막으려 배터리 충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역구 관리에 여념이 없는 정치인과 팬 관리에 신경써야하는 연예인은 물론이고 증권 시세에 민감한 투자가나 신속한 배송을 자랑하는 택배업자도 요긴할 것이다. 전교생에게 스마트폰을 나누어준 대학은 강의는 물론이고 교양의 폭을 넓히는데 사용할 거라 희망하고, 기업은 출장 중인 사원에게 긴급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리고 화상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그렇듯 스마트폰은 사용자에게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을 모양이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여성의 얼굴만 보고 다짜고짜 만나자는 남성, 거북한 욕설을 보내며 반론을 펴는 행태는 당하는 이에게 어처구니없는 스트레스를 안기지만 약과에 불과하다. 별별 기능을 다 가진 손 안의 컴퓨터에 공개할 수 없는 정보가 많을 텐데, 해킹될 수 있다. 사적인 자료나 회사의 중요한 정보, 그리고 은행계좌들을 추적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 자료를 복제해 빼돌리거나 왜곡할 수 있다. 지금도 핸드폰을 쥔 자의 위치를 엇비슷하게 추적하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지리정보시스템(GPS)과 연계할 경우 의사와 아내는 환자와 남편의 위치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빅브라더는 예비 고객과 범죄자와 정적과 산업스파이와 빚쟁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손금 들여다보듯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다.

 

지금 열심히 복원 중인 남대문이 멀쩡했을 때였던가. 한 텔레비전 광고는 어처구니없었다. 남대문이 국보1호라는 버스 안내방송이 나오자 엄마 무릎에 앉은 꼬마가 “국보 2호가 뭐야?”하고 묻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순간 광고는 핸드폰 글자판을 얼른 두드려 국보2호를 알아내는 시민의 민첩한 모습을 보여주며 실시간 검색이 가능한 포털 사이트의 기능을 자랑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겨우 말문이나 열 정도의 아이가 국보2호를 궁금해 할 수 있나. “국보가 뭐야?”하고 물어야 정상이 아닌가. 그건 그렇다 치고, 스마트폰은 국보2호 이상의 정보도 척척 제공한다고 자랑한다. 내장 카메라에 비치는 건물이나 거리를 전송하며 만날 장소를 확인할 뿐 아니라 상응하는 영어 단어를 말로 찾을 수 있단다. 모를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스마트폰의 그런 기능이 얼마나 필요할까. 더 좋은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전까지 과연 몇 번이나 사용할까.

 

신당동 맛집이 어디인지 친지나 선배에게 듣는 게 낫다. 내 입맛이 다른 이와 같지 않으므로 직접 찾아가 먹어보는 게 훨씬 확실하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분위기가 만연되면 텔레비전에 출연했다는 걸 대문마다 붙인 식당이 동네마다 수북한 것처럼 포털 사이트의 광고에 신경을 쓸 맛집이 늘어날 테고, 그만큼 맛도 특색을 잃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말하려 할 때 적당한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단어를 묻는 자신이 더 초라하지 않을까. 능수능란한 외국어는 필요한 자가 스스로 노력해 연마해야 한다. 단어를 몰라 의사소통에 불편해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서로 친절할 수 있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고마워할 수 있다. 실시간의 수많은 정보? 역시 거의 요긴하지 않다. 집에서 미리 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을 살피면 대개 충분하다. 정보의 양보다 분석과 판단력이 더욱 중요하다. 오히려 쏟아지는 정보가 판단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던가.

 

세상에는 무시하고 싶은 상식이 있는가 하면 모를 권리가 있다. 자신의 사주팔자와 건강상태도 모르고 지나는 게 편할 때가 많지 않은가. 남의 가족사나 재산변동 내력이 내 믿음과 우정과 사랑을 방해할 수 있다. 애인이나 식구가 내 위치를 시시콜콜 아는 것이 피곤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궁금한 마음에서 신비스러움이 샘솟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정도 사랑도 깊어진다. 시시콜콜 알면 재미가 반감된다.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내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꼭 점검해야 하는 건 아니다. 위중한 환자는 나들이를 삼가는 게 옳을 것이다. 꽉 막히는 귀성이나 귀경길은 스마트폰도 제대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많은 이가 같은 교통 정보에 의존하다보면 엉뚱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공연히 뚫린 길 찾다 낭패를 보기보다 그저 그 시간 마음 편히 즐기는 게 낫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책을 읽거나 한숨 자는 것도 좋겠지.

 

대학생에게 리포트 과제가 실시간으로 나가고 회사원에게 시시때때로 보고서 제출이 요구된다면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인생들은 피로와 스트레스에 젖어 그만 창의력과 판단력이 흐려질 것이다. 쉴 시간을 빼앗기는 구성원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궁하면 통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리포트를 요구하는 교수나 보고서를 독촉하는 상사도 쉬어야 할 때 쉬고 싶은 인생임에 틀림없다. 어차피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처리하는 일. 신뢰하기 어려운 가짜와 엉터리가 판칠 것이다. 하루 한두 차례 열어보는 이메일에 스팸이 가득하듯, 없어도 그만이거나 없는 게 더 나을 정보들이 눈과 귀를 더욱 성가시게 하는 세상이다. 실시간 영상이 무차별로 전송되면 어떤 세상이 연출될까. 어른과 이웃과 친구의 충고와 친절과 우정을 귀찮거나 불필요하게 만드는 가상공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군중 속의 고독을 넘어 외톨이가 될까 두렵다.

 

모르는 이가 보내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무책임한 문자와 영상은 그냥 넘어간다고 치자. 잘 아는 이, 잘 아는 이와 아주 친하다는 이가 보낸다면 모른 체하기 어렵다. 시도 때도 없이 보챈다면 회의 중이든, 강의 중이든, 공연을 보는 중이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답을 했을 때 반론이 쏟아진다면 낭패다. 예를 들어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닐 것이다. 백자 남짓한 공간에 어떻게 수돗물 불소화가 위험한지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것인가. 잘못된 상식이 뇌리를 지배하는 이웃을 짧은 글로 설득하기 어렵지 않은가. 4대강 사업이 후손에게 필연적으로 안길 재앙도,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인한 생태적 위험성도 여러 사람에게 한두 마디로 선동하듯 이해시킬 수 없다. 질의마다 서툴게 문자를 두드리자니 피곤하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으니 다정한 친구와 선배와 후배들이 이해해주길 간곡히 바랄 따름이다. 얼굴 마주보며 대화하는 기쁨, 그를 위한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시대에 뒤쳐지는 걸까.

 

최근 정부에서 전자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겠다고 나섰다. 힘겨운 반대운동으로 어렵사리 백지화한 지 십 수 년 만이다. 어떤 언론은 정부의 말을 전폭 수용해 마치 개인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정책인 듯 보도했지만, 그런가. 그 기자는 역사나 문화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거나 권력에 아첨했을 가능성이 높겠다. 주민등록증 겉면 대신 내장 칩에 수록할 정보는 무엇일까. 주소와 이름뿐일까. 십 수 년 전, 시민의 편의를 내세우며 인감정보, 보험과 은행 거래 정보들을 담으려 했다. 행정전산망과 연결한다면 전과도 조회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정보들은 오직 빅브라더나 그의 허락을 받은 자만이 열람, 분류할 수 있으니 무시무시한 감시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은밀한 정보가 다양하게 가진 스마트폰 역시 빅브라더만 접근하는 중앙컴퓨터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가입하기 싫다. (인천in, 2010.9.?)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을 걱정하시는거죠^^
네 그점이 걱정의 심연이라면 당장 쉴 틈을 없애는 게 현상의 걱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밥 먹는데 아이폰으로 인터넷 하고 있는 친구한테 버럭 화를 냈었거든요. 정말 공감갑니다..ㅠㅠ
요즘 유행하는 수단에 대한 이의를 달았더니 제 블로그가 처음으로 왁자지껄합니다. 다소 어리중절하면서, 찾아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빅브라더의 트위터에 몇명의 졸개들이 팔로우란 미명아래 사탕발림을 하고 있을지요?! 세상은 결국 조그마한 문명의 이기에 의해 귀가 멀고 눈에 보여지는것만이 그들의 세상이 되고 그렇게 중독되어 인간과 소통의 단절을 초래하고 결국 삭막한 세상이 될터.....지금 여기서 더는 빠르고 쉽게 살기 보다는 좀 불편하게 살더라도 땀내나고 사람 내 나는 7080으로 돌아가고 싶네요.
늘 감사합니다. 공감해주시니 고맙구요. 내일을 생각해서라도 주위를 돌아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손자가 참 귀엽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