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6. 3. 24. 17:10
 

제가 잘 알고 존경하는 영문학자 한 분이 계십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그 분은 지구는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형국이라고 비유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 그런 측면이 강합니다. 기왕 떨어지는 것, 모르겠다, 에이 모르겠다, 즐기자? 그래야 할까요? 아닙니다. 세상이 그렇더라도 우리는 극복해야 합니다.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시민운동은 그렇게 자포자기하지 않아야 가치가 있겠죠. 시민운동, 힘들어도 희망을 찾아 가는 행동입니다. 그런 시민운동은 따라서 낙천주의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민운동가만이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나서야 할 일이구요. 고등학교만 마치고 침팬지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나 제인 구달 여사는 현재 세계적인 침팬지 학자가 되었습니다. 그 분이 쓴 책 『희망의 이유』도 절망적인 상태에서 희망을 찾자는 절박한 마음의 발로입니다.

 

서로 개성을 존중하는 풀무학교의 건강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자라나는 학생들, 졸업, 아니 창업하면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대학도 부딪혀야 할 사회의 한 부분입니다. 사전에 충격을 견딜만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늘은 여러분들께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창업하면 만날 환경이니까요.

 

『아픈 아이들의 세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세대’라고 한 시대의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이길 잘 하는데, 생태경제학을 공부한 저자는 2000년대 첫 세대인 지금을 그렇게 규정했어요. 아픈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발생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거지요. 아주 작은 입자에 해당하는 피엠텐(PM10-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미세입자)의 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사람, 특히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아져요. 지금 태어나는 아이의 80%가 아토피라고도 하는데, 서울 시내만 해도 태어난 아이 주변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신도시 개발과 같은 대형 공사장이 있고, 피엠텐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건설공사장 만이 아닙니다. 자동차 배기가스, 공장굴뚝들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에서 많은데, 서울엔 피엠텐은 물론 그보다 위험이 큰 피엠2.5의 먼지도 많습니다. 거의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데, 여러분이 창업하고 맞아야 할 도시 대부분이 이런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죠.

 

공기만이 아닙니다. 공기와 더불어 먹을거리도 문제입니다. 막 입대한 젊은이 40%에서 정자 기형이 발견되고 정자의 활력도 떨어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어두운 앞날을 말해주는 징후 아닙니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왜 아토피를 갖고 태어날까요? 아이보다 엄마와 아빠가 살아가면서 처해왔던 환경문제의 결과입니다. 오염된 공기와 먹을거리, 아이 낳기 전에 먹고 마시며 부딪힐 수밖에 없던 과정이 그렇게 피할 수 없게 하는 것이지요. 정자 기형원인도 술, 담배, 피로와 스트레스들이 누적되어 나타나는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떠돌던 말을 말씀드려야겠군요. 부모 특히 임신 중인 엄마에게 들어온 오염물질은 태내의 아기의 몸에 높은 농도로 축적됩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터졌을 때 수많은 방사성물질이 사방으로 날아갔습니다. 반경 8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일본도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니 유럽은 얼마나 심각했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암 걸리지 않으려면 아이를 가져라, 그러면 아이의 몸에 방사성물질이 축적될 것이다, 그 아이는 암에 걸려 태어나 불행해질 확률이 높으니 낙태해 지워라, 이런 식입니다. 방사성물질에는 요오드가 많고 요오드는 갑상선 호르몬의 주요 성분입니다. 갑상선 암이 체르노빌 폭발 후 구 소련에서 급증한 사실은 무엇을 웅변할까요.

 

여의도에 ‘엽기토끼’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키우다 지친 애완용 집토끼를 여의도에 슬쩍 풀어놨는데 그 녀석들은 어찌나 빠른지 통 잡을 수가 없답니다. 그놈들끼리 번식하면 생태계 교란이 생길 텐데 걱정입니다. 그 토끼들은 통 먹을 게 없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먹다버린 햄버거 조각, 통닭, 피자 조각 같은 걸 게걸스럽게 먹는다는데, 배가 고플 때에는 아기들이 들고 있는 음식도 뺏으려 덤비기까지 한다니 엽기토끼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반면에 태국 어떤 사원에서 호랑이를 키우는데 밥만 계속 줬더니 상당히 순하답니다. 개가 짖어도 무서워한대요. 먹는 음식에 따라 성격이 바뀌는 예는 많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성격형성에 환경과 문화의 영향이 크지만 먹을거리가 심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겁니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과자나 사탕을 많이 먹으면 중금속이 몸속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결과 와 비슷하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판단력이 둔해져 매사에 신경질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범죄율도 높아지겠지요.

 

 조류독감 파동이 난 적 있죠? 텔레비전 화면에 죽어 널브러진 닭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를 피하는 닭이 있었지요? 유행병이 돌면 거의 다 죽는데 몇 마리 사는 경우입니다. 왜 병이 돌만 거의 다 죽을까요? 영국에서 구제역이 돌 때 양을 키우는 목장은 모든 양을 강제로 도살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양에 옮겨지기 전에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 양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구제역을 수습하고 나니 우연히 새끼 양 1마리가 살아 있었다는 걸 알았죠. 그 녀석은 어떻게 살았을까, 구제역에 이기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였기 때문입니다. 축산과학자들은 그 개체를 이용해 구제역을 이길 수 있는 품종을 개량할 수 있을 거라 좋아했다 합니다. 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류독감이 돌면 거의 죽어버리고, 어쩌다 살아남은 닭도 다른 지역에 감염되는 걸 막기 위해 강제로 죽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개체는 질병에 이길 품종을 개량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문제는 극도의 품종개량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위축시킨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다양성이 줄어들수록 환경변화에 취약하고, 약간의 특이한 질병이 돌아도 몰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육하는 닭, 소, 돼지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용도에 맞게 극도로 품종 개량한 가축들은 엄격한 조건 속에서 세심하게 사육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에너지, 유전자가 조작된 곡물사료들을 먹여야 합니다. 병에 걸리지 말라고 미리 항생제를 주고, 빨리 자라라고 성장호르몬도 먹입니다. 그런 가축과 가축에서 나오는 낙농제품과 가공식품을 결국 우리가 먹겠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패스트푸드, 똑같은 공부, 똑같은 생각을 강요당하면서 개성이 사라지지만 경쟁이 치열한 획일적 인간상이 만들어집니다. 만약 세계 농구 제패를 위해 키 큰 사람으로 품종 개량하는 일을 200년만 하면 온 나라 사람들이 다 똑같이 농구에 능한 키 큰 사람들이 되겠죠? 그런 특성이 유지되려면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하겠죠. 이런 세상을 예견해 쓴 것이 소설이 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여기선 용도에 맞춰 사람을 공장에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약으로 모두 비슷한 수준의 행복한 느낌을 갖게 조절되며 규정된 행복을 강요당해 살다 나이 차면 스스로 화장터에 가서 죽습니다. 죽음 몸은 재활용되지요.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는 열대우림이 가득한 아름다운 섬인데, 미국 식민지죠. 미국 음식을 주로 수입해 먹습니다. 그곳에서 엽기적인 사례가 벌어졌습니다. 울거나 떼를 쓸 때마다 달걀노른자를 주면 조용해지는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생후 7개월 되자 몸 은밀한 곳에 2차성징의 상징인 털이 나옵니다. 그러더니, 세돌 되자 월경을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사먹는 미국산 계란에 여성호르몬이 과다하게 들어갔던 것입니다. 철망에 갇혀 죽을 때까지 계란을 낳는 닭의 사료에 계란을 더 낳으라고 여성호르몬을 지나치게 많이 주었던 거지요. 끔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초등학생 사이에 성폭행이 일어났습니다. 남자 아이든 여자 아이든 전에 없이 몸이 성숙해졌습니다. 아이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점점 영악해지고 사나워집니다. 이는 먹을거리와 관계가 깊습니다.

 

소를 한 3년 키워 10년 정도 우유를 생산하던 때는 15마리 정도 키우는 목장이면 지역의 유지였습니다. 지금 그 정도의 작은 목장은 없습니다. 다 망하고 말았죠. 요즘 첨단으로 억지 품종 개량된 젖소는 2년이면 첫 임신을 하고 5년 동안에 우유를 쏟아냅니다. 착취된 소는 금방 지쳐버리지만 목장주는 곧 폐기처분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 고급 젖소는 유전자 다양성이 작아 관리하는데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십여 마리의 규모로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기업처럼 거대해진 목장은 유전자 조작한 곡물로 만든 사료를 기계화, 자동화된 시설로 주고, 움직임이 적게 관리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우유를 생산하겠지요. 소의 위장은 되새김질해야 합니다. 그런데 축산을 효율적으로 계산해내는 과학자들은 되새김질을 에너지 낭비로 생각합니다. 사료를 갈아서 줍니다. 이것저것 섞은 배합가루사료로 만들어 소한테 먹이니 소는 되새김질을 못해 안절부절 못하지요. 당연히 병에도 잘 걸리겠죠? 그러면 또 돈 들잖아요. 그러면 귀찮아지니까 아예 처음부터 항생제를 먹이에 섞어 줍니다. 그렇게 우유는 1.5배 나오지만 목장은 돈 더 벌고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경쟁을 잃어 망하기 싫다면 큰 빚을 지며 새로 개발된 기술을 들이기 위해 최첨단 투자를 감행해야 합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원래 우유체질이 아닙니다. 우유를 끊은 사람은 어른이 되면 우유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우유 계속 먹으며 자라면 물론 소화를 시킬 수 있습니다만, 우유에 포함되는 성분이 걱정입니다. 소처럼 머리보다 몸이 먼저 자라는 아이들, 비타민이나 유기물보다 단순히 지방과 칼로리만이 높은 우유를 먹으면서 전쟁영화와 갱영화를 봅니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배려, 사랑, 우정의 가치보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화면에서 남에 대한 음모와 협잡, 인권 유린을 자기도 모르는 새 배우고 말죠. 획일적인 세상에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가치에 매몰되니까요.

 

인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키 작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중학생이 자기가 힘이 세다는 것을 키 큰 후배에게 보여주려고 다짜고짜 지나가던 초등학생을 때려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인천은 녹지가 가장 좁은 도시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오르거나 내려갈 때 처음 만나는 사람이 좁은 등산로에서 어깨를 부딪치곤 합니다. 그럴 때 화를 내건가요? 아니죠. 서로 격려하며 물도 나누어줍니다. 녹지 속 인간의 아름답고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녹지가 없는 도시 뒷골목을 연상해봅시다. 모르는 이와 어깨가 부딪치면 우린 겁부터 먹지요. 회색도시는 그만큼 삭막한 것입니다. 인천에서 끔찍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잘 설명합니다. 인천만이 아닙니다. 불쌍한 도시인들은 아스팔트, 시멘트 공간에 갇혀 지내며 친구보다 컴퓨터에 빠지고, 내용물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무엇인지 모를 재료는 넣어 싸게 파는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져 웃음을 잃으며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점점 음식은 맛이 있니, 없니 하며 이분법으로 구분합니다. 농작물 고유의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패스트푸드의 강력한 향기에 맛을 느끼는 능력이 단순해진 것이지요. 피자나 햄버거는 재료를 마구 섞어놓은 음식이죠. 어떤 상태의 것들이 얼마나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릅니다. 표준화와 예측가능을 위해 획일화시켰습니다. 맛도 모양도, 조리방법은 물론 종업원의 친절도, 손님이 줄서서 먹고 나가는 방식도 예측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맥도날드화’라고 말합니다. 전 세계가 획일적으로 단순해지는 거죠. 다국적기업이 만든 기준에 맞춰야 하니까 개성은 사라지고 개개인은 다국적기업이 원하는 대로 길들어집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는 광고도 세계가 똑같습니다. 1위를 롯데리아에 밀리는 우리나라만 광고가 조금 다릅니다. 불편한 의자에 셀프서비스, 주차도 무료가 아닌데도 줄 서서 기다리는 고객들이 값이 싸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광고로 그렇게 교육받은 결과입니다. 손님도 맥도날드화의 일부가 되는 거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고 하나요? 맥도날드화된 세상에서는 다양성이나 개성은 조금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디 맥도날드 햄버거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수  많은 정치, 경제, 문화, 제도, 사상, 교육들이 거의 표준화되었습니다. 그런 현상이 모여 나타난 결과가 아토피입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마구잡이로 던진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대책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더 큰 부메랑을 던지는 것일까요. 여기저기에서 우리가 던진 숱한 부메랑들이 윙윙거리며 달려드는데 말입니다.

 

속상하고 말 게 아니라 극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나를 찾으십시오. 휴대폰, 내방, 내 옷… 개성 있는 것 같지만 다 같아요. 그 안에 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 속에서도 나라는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이제 푸른 숲과 넓은 들과 함께 하는 풀무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개성을 찾아 만끽하세요. 장차 내가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을 개성을 찾아 벅차게 꾸며내세요. 식성, 취미, 특기도 물론 개성입니다. 개성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토피라는 걸 낳게 한 주어진 맥도날드화된 삶의 획일적 편의를 극복합시다. 나는 나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 푸른 숲을 날마다 보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규격화되지 않은 공부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살지 않습니까? 영어, 과학고, S대라는 그들이 만든 표준화에 주눅 들지 말고 나를 찾는 공부를 스스로 하면서 건강하게 먹고 숨 쉬면서 나를 찾는다면 창업 후 만날 험한 세상에서 이웃과 건강하고 자신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풀무농업고등실업학교, 2005년 강연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