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6. 14. 09:10

《강은 살아있다》, 최병성 지음, 황소걸음, 2010.

 

그리스와 월드컵 일전으로 응원 없는 거리가 한산했던 그 시각, 4대강은 시뻘건 피를 콸콸 흘렸다. 굴삭기로 밤낮없이 뜯겨나간 강어귀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로 불어난 황토를 연실 토해냈건만 강가에서 천렵하던 기억을 간직하는 시민 대다수는 그 시각 붉은 티셔츠를 입고 열광하고 있었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이 노동조합을 탄압으로 하던 바로 그 시각.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회색도시일수록 강변으로 떠나고 싶은 시민이 많은 것과 관계없이,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 태양을 공전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굽이쳐 흐르는 한반도의 4대강은 현 정권의 삽날 아래 급살당하고 있다. 온갖 생물이 어우러지던 금모래와 은모래를 잃고 숨을 헐떡인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야 바다도 강도, 그리고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성경 말씀을 가슴에 새긴 한 목사는 강변의 아름다운 교회를 남겨두고 현장으로 나가야했다.

 

강은 흘러야 건강을 유지하는 생명이다. 하느님의 창조세계에서 생명을 물려받은 모든 가치들의 비빌 언덕인 강이 죽으면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럼에도 모래와 자갈을 경부고속도 위에 수십 미터 쌓을 정도로 파낸 뒤 10미터가 넘는 철근콘크리트 제방과 보로 가로막아 강을 죽일 참인가. 오로지 토목자본의 일시적 탐욕을 위해 후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차마 볼 수 없던 최병성은 청지기가 되겠다고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려 《강은 살아있다》를 펴냈다. “살리기”라는 말로 언어를 모독하면서 언론을 억압하며 자행하는 악행의 실상을 자식 키우는 시민들에게 알려야 했다.

 

홍수와 가뭄은 강의 생명현상이다. 지금 우리보다 잔혹하지 않았더라도, 감히 강의 생명현상을 방해했던 유럽과 미국과 일본은 원래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면서 재해를 막으려 애를 쓴다. 청계천은 복원인가. 복원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해야 했건만 온갖 문화재를 치워낸 자리를 번지르르 꾸민 배수로에 불과하지 않던가. ‘4대강 사업’이 녹색뉴딜이라고? ‘녹슨 삽질’로 규정하는 최병성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진실을 전한다. 거짓을 이기려면 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물 부족 국가’일까?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고 철새의 낙원이 되며 수질을 개선할 수 있을까? 정권이 힘을 잃는 순간 들통 날 거짓으로 일관하는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면 시민들은 행동에 나설 것이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면 행동하게 된다. 빗물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는 장마철이 곧 온다. ‘4대강 사업’이 부를 공사현장의 작은 재앙은 머지않아 제방붕괴와 같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텐데,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데 분노가 인다.

 

이번 62지방선거의 결과는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시민의 의견을 소중히 듣지 않은 자의 독선과 오만은 반드시 심판된다는 사실이 새삼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강은 살아있다》는 월드컵과 장마의 열기 속에서도 독자의 마음가짐을 더욱 다지게 할 게 틀림없다. 행동으로 이어질 유권자의 마음가짐이다. (시사in, 2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