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9. 29. 00:02

     공장식 개 사육이 불 보듯

 

본디 육식동물인 개는 이가 날카롭다. 서열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생결단으로 싸운다. 상처를 입거나 심하면 죽는다. 그런 개를 집단 사육한다면 사육장은 난장판이 되고, 소음으로 민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피한 곳에서 사육하는 이른바 개 농장은 지금도 민원의 대상이다. 한 마리가 짖으면 연쇄적으로 짖어대므로 많은 농장은 미리 고막을 뚫지만 소용없다. 성대를 제거하지 않는 한, 예민한 코가 낯선 이와 사료 냄새들에 반응해 짖는 행동을 연쇄적으로 유발하는 탓이다.


개 농장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보통 철망으로 만든 좁은 공간에 가둬 사육한다. 두 마리 이상 넣으면 서로 물어뜯을 수 있으니 이빨 몇 개를 미리 뽑기도 하는데, 그런 폭력은 심한 스트레스와 질병으로 이어지고, 질병은 개 농장 전체로 전파될 수 있다. 또한 그 스트레스는 개고기를 먹는 이에게 전해질 수 있다.


사회 일각에서 개고기 도축 합법화로 위생적인 도축과 투명한 사업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개고기 도축 합법화는 명실상부하게 개를 식용으로 사육해 어린 상태에서 죽이겠다는 국내외 선언과 다르지 않다. 외국 일부 인사의 비난을 문화상대주의라며 백안시하지만 개고기가 남겨야 할 전통 음식문화로 보기 어렵다.


고기 먹기 어렵던 시절, 동네의 개는 무더위에 모내기하다 지친 농민들의 보양식이었지만 지금은 고기가 지천인 세상이다. 사냥하던 선조답게 신체 구조가 날렵할 뿐 아니라 울타리에 들어와 정을 나누던 개를 고기용으로 사육한다는 건 오히려 전통을 모독한다.


개고기 합법화는 공장식 축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개고기를 광고하여 판매를 촉진하는 일 또한 단속 대상일 수 없으니 소비는 늘어날 테고, 개 사육장은 자본에 의해 거대 집단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민간의 감시를 차단한다면 동물 사육에 기본이 되어야 할 복지는 무시될 것이다.


개를 집단으로 사육하려면 미리 부리 끝을 뭉툭하게 잘라내는 닭이나 꼬리와 고환을 뜯어내는 돼지처럼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뽑아내거나 고막을 뚫는 폭력으로 부족하다.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옥수수 축내는 송아지처럼 바꿔야 한다. 자본은 덩치 빨리 크고 순해터진 강아지만 꾸역꾸역 낳는 개를 품종개량하려 들지 않을까.


개도축 합법화가 되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겠다고 벼르는 이가 있다. 수육이나 전골 이외에 3분 개요리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고 개 통조림이 대형 슈퍼마켓에 버젓이 진열돼 해외 언론의 주목받을 것이다. 인생을 반려하기 위해 개를 입양한 시민은 몰론, 대외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은 해외의 부정적인 기사를 볼 때마다 참담한 심사를 달래기 어려울 것이다.


비위생적으로 사육할 뿐 아니라 혐오스럽게 도살하는 농장이 이따금 보도돼 눈살 찌푸리게 하지만 그건 행정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현행법으로 충분히 단속 계도할 수 있다. 고기용으로 허가받지 않은 이상, 목적에 맞는 시설을 갖추고 복지에 신경을 쓰며 사육한다면 민원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후미진 식당의 개고기든, 복중이 아니라 사시사철 먹자고 붙인 사철탕이든, 고기가 지천인 세상에 이젠 자제할 때가 되었다. 사람은 맛과 재미, 그리고 호기심으로 개고기를 먹지만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켰던 개는 목숨을 잃는다. 도축을 합법화하면 대부분 강아지 상태에서(한겨레, 2012.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