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6. 12. 08:44

 

1970년대 후반. 대청봉 정상까지 한걸음에 오른 청년들이 화채봉으로 향했다. 가본 적도, 가는 길도 몰랐지만 좋다더라는 소문을 믿고 막연히 걸음을 재촉했던 사내들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황했다. 슬금슬금 좁아지던 길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돌아나가야 옳았지만, 누가 앞장섰는지 건각들은 내친 김에 덤불을 헤치며 계곡을 내려갔다. 그러길 두어 시간. 날은 어둑해졌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적 없는 물길을 첨벙이다 넓은 바위가 편평해지면 계곡은 꼭 낭떠러지로 이어졌다. 양손에 든 기타와 가방을 진작 내버린 일행은 배낭과 엉덩이를 질질 끌며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썩은 나무에 발을 의탁하던 친구가 그만 머리와 다리를 뱅글뱅글 돌리며 아래로 떨어져 박히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우리는 거의 울상이 되었는데, 어리둥절한 채 허공을 바라보는 친구. 배낭 덕분에 멀쩡했다며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이튿날 반나절을 더 헤맨 끝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인적 없던 계곡을 벗어났지만, 헤진 바지에 엉덩이를 드러내며 첨벙이는 순간에도 청년들은 생생한 기억을 전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 친구들은 지금 흩어져 살지만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인다. 누구라도 심각하게 다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치러야했다면, 다시는 마음 편하게 만나지 못했으리라.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내 이럴 줄 알았지. 우물쭈물하다가라고 썼다던데, 우리는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치거나 독선으로 치달아 일을 그르칠 때가 잦다. ‘아라뱃길로 이름을 분칠한 경인운하가 그렇다. 기획 단계부터 비판적 검토가 빗발쳤지만 정부는 독선으로 밀어붙였다. 경인운하에 현재 화물을 실은 배가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18킬로미터에 불과한 경인운하를 오가는 화물선에 화물을 실으려는 화주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 잘 뚫린 도로로 20분이면 넉넉한데 어떤 화주가 트럭과 화물선에 물건을 거듭 옮기며 하루 이상의 시간을 버리고 초과운임을 받아들이겠나.


경인운하는 애초 계양산 일원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예방하려 계획된 굴포천 방수로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자. 수해가 빈번한 곳에 마을은 형성될 리 없다. 계양산 인근의 다남동과 벌말은 김포평야가 주변에 온전할 때 수해는 거의 없었다. 드넓은 논이 빗물을 완충했던 건데, 부천시 중동과 상동 신시가지의 대단위 아파트, 인천시 삼산동과 계산동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김포평야가 개발되면서 사정이 바꿨다. 아스팔트와 철근콘크리트에 쏟아진 빗물은 낮은 곳을 향해 거침없이 휩쓸리기 시작한 것이다.


갯벌 매립으로 공업단지나 신도시를 조성할 때 충분한 면적의 유수지를 확보하듯, 아파트단지를 넓게 만들 때 반드시 수해를 완충하는 습지를 확보해야 했지만 외면했다. 아파트를 더 지어 분양했을 따름이다. 그러자 수해는 애꿎은 지역으로 전가되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할 사고가 여태 발생하지 않은 4대강의 16개 대형 보 역시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도도하던 강물을 틀어막았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어떤 물폭탄을 상류지역에 떨어뜨릴지 모르는데, 신중하게 관리한다면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누가 시장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 20091, 주민 5명과 경찰 1명을 불에 타죽게 한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어떤 논의로 진행될까? 초고층 빌딩이 화려했던 애초 계획은 희생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투자자에게 보장되는 돈벌이가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사업 규모와 내용이 바뀌면 다시 진행될까? 용산역 주변의 개발은 규모가 비슷한 독일 베를린의 화물철도터미널 개발의 예와 크게 대비된다.


동서로 분단된 이후 50년 동안 사용하지 않자 우리의 비무장지대처럼 온갖 풀과 나무들이 가득 들어왔지만 다시 철도화물터미널로 환원하는데 이견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쉬움을 표시하며 보전을 제안했고, 절차는 중단되었다. 이후 개발과 보전의 타당성과 방향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고 논의 과정에 베를린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배려되었다. 수십 차례의 공청회 끝에 철도 환원과 녹지 보전을 반영하는 최종 2안을 상정하기로 했고, 시민들은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녹지는 보전돼 있다.


논의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납득 가능하게 절충한 2개 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냈고, 논의가 충분한 만큼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개발을 선호했던 시민들도 즐겨 찾을 만큼 철도화물터미널 부지의 녹지는 베를린의 자부심이 되었다는데, 위험사회를 펴낸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위험사회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개발 방향과 시기를 결정했다면 용산역 주변의 주민과 경찰의 생명은 희생되지 않고 투자자의 적정 이익도 보장되었을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경인운하는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없었을 게 틀림없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반대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해 잔뜩 만든 프랑스의 핵발전소들은 시방 낡았다. 아무리 엄격하게 관리하고 통제해도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니 가동을 급작스레 중단해야할 때가 많다. 지금까지 7등급 규모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의 원인은 제각각이었다. 앞으로 어떤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할지 점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관리와 운영이 투명하다면 사고 확률은 줄어든다. 부정과 비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뿐 아니라 수명연장이나 폐쇄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이므로.


기계가 낡으면 고장은 필연이다. 구조가 복잡한 기계는 고치기 어려운데, 핵발전소가 특히 그렇다. 후쿠시마에서 보았듯, 낡은 핵발전소의 사고와 고장이 미치는 파장은 상상을 불허한다. 시민들이 납득할 정도의 민주적 토론 끝에 자국 핵발전소의 가동을 즉각 멈추거나 차례로 폐쇄하고 있는 독일은 프랑스에 전기를 수출한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햇빛과 바람으로 전기를 충분하게 생산하는 까닭에 핵발전소가 멈출 때마다 전기가 부족해지는 프랑스에 수출할 수 있다는 거다.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 태양과 바람은 간단한 발전설비만 요구한다. 사고 규모가 작아 주민들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대부분의 인공 구조물은 금방 부서지거나 고장을 일으키겠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연결하는 유러터널은 예외적으로 천년 정도 버틸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지역의 환경이 안정적이고 시공이 철저했다는 건데, 유러터널은 공사 전부터 철두철미한 검토를 거쳤다. 기술과 경제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는 물론 인문과 사회 영역까지 놓치지 않았기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관리하는 까닭에 사고가 없었다.


완공되었지만 경인운하와 4대강 사업은 내세운 애초의 목적을 충족시킬 구조물이 아니다. 그 시설은 토목자본에 경이로운 이익을 안겼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설계 시공하고 관리 운영하는 발전소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걸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배웠다. 노후해 폐기해야 선박을 적당히 수리해 규정 이상의 화물을 대충 싣고 안전조항을 무시할 때 어떤 참사를 빚을 수 있는지 우리는 세월호에서 보고야 말았다.


지하수가 넘쳐흐르는 땅은 핵폐기물 처분장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 지금 핵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경주가 그렇다. 장차 어떤 사고를 일으킬까? 지구온난화는 해수면 상승 뿐 아니라 태풍과 해일을 거세게 만드는데, 파고를 완충해오는 갯벌은 끊임없이 매립된다. 우리 내일은 안녕할까? 사고 가능성을 외면하는 개발은 눈앞의 탐욕에 충실하지만 내일의 안전을 백안시한다. 이제 안전을 등한시하는 독선적 개발은 멈춰야 한다. 시민과 함께 다시 검토해 개발의 방향과 성격을 바꿔야 한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다. (작아, 20146월호)

 
 
 

도시·인천

디딤돌 2007. 8. 1. 15:37
 

작년 인천환경원탁회의 일원으로 일본 요코하마를 다녀왔다. 요코하마는 인천과 여러모로 닮았다. 외세의 압력으로 개항된 작은 포구가 거대도시로 탈바꿈했다는 점, 유사 깊은 문화재는 드물어도 근대사 유물이 곳곳에 보전되었다는 점, 바다를 매립해 개발하고 구도심 여기저기를 재개발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한데, 개발 정책과 그 과정에 시민참여 정도는 사뭇 다르다.

 

40여 년 전에 기획해 24년 전에 착공하고, 착공한 지 12년 된 ‘미나토미라이’는 요코하마 앞바다를 매립해 신도시를 개발하는 지역이다. 미쓰비시 조선소 터와 인근 바다를 추가 매립한 미나토미라이는 송도신도시의 30분의1에 불과한데 이제 절반 개발했고, 나머지는 앞으로 20년 동안 시민의 의견을 들으며 재정 여건에 맞춰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나토미라이를 추진하는 요코하마 시투자회사는 기획 단계부터 시민참여를 보장한 까닭에 민원도 투기도 배제될 수 있었다. 요코하마보다 재정이 열악한 인천은 어떤가.

 

인천시는 응봉산 자유공원에 옛 만국공원 시절의 건축물 5동을 복원하고자 27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성명서를 발표, “밀어붙이기식 오만으로 오욕의 역사를 희화화하는 데 앞장서서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중대한 역사적 과오를 범하려 하고 있다.”면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제기된 문제점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는데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그 방면에 문외한으로 누구의 주장이 정당한지 알지 못하지만, 참여 주체인 시민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배다리 우각로를 보자. 시는 인천항 물동량의 원활한 수송을 도모하고 구도심의 효율적인 가로망 체계로 균형적인 지역발전과 인근 주민들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신흥동 삼익아파트에서 금창동과 송림1동을 거쳐 수도국산과 동국제강을 잇는 폭 50에서 70미터의 도로를 2011년까지 개설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도로개설에 반대하고 있다. 우각로는 인천의 문화와 역사가 밀집된 곳이다. 요코하마는 도시에 산재한 근대 유물을 보전하려 관련 시민단체를 적극 지원하며 애를 쓰는데, 시민 의견을 묻지 않고 사업을 시작한 인천시는 이제라도 주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가. 공개적인 논의를 민주적으로 거쳐 대안을 마련하려 충분히 노력하는가.

 

우각로에 위치하는 우리나라 철도의 효시인 도원역, 최초 사립인 영화학교, 민중교육 100년 역사를 지닌 창영학교, 민중의 고달픔과 함께 해온 배다리 양조장과 가난한 이가 찾던 헌책방 거리는 얼마 남지 않은 향수이자 지울 수 없는 근대 생활문화다. 최근 공예거리를 정비하고 있는 주민들이 보전하려 애쓰는 인천의 문화를 자동차와 개발의 속도를 위해 짓밟아도 되는 것인가. 인천시민은 멀리서 찾아온 손님과 어디를 가면 좋은가. 매립된 갯벌? 그 위에 짓는 분양가 높은 아파트? 초국적자본을 배려하는 초고층 빌딩? 그도 저도 아니라면 자동차 타고 도로만 질주하면 된다는 건가.

 

시민들의 의견을 먼저 묻는 일본도 과거에는 밀어붙였다. 민원이 들끓었고 그로 인한 상처도 깊었다. 타산지석을 시금석으로 여겨야 할 후발자 인천시는 오히려 개발독재에 가깝다. 구태를 답습한다. 투기 부를 개발을 위해 문화와 환경을 파괴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역사가 없으면 뿌리가 없다. 뿌리 없는 도시에서 시민의 삶은 삭막할 수밖에 없다. 세계 신흥도시들은 시민들의 정주의식을 위해 없는 추억도 만든다. 이야기가 깃든 도시를 창조하려 시민들과 함께 노력하건만 인천은 있는 문화마저 파괴하다니.

 

인천의 문화는 마땅히 보전해야 한다. 열강의 조차였던 만국공원만이 복원의 대상일 수 없다. 배다리, 수문통, 호구포, 먼머리, 먼우금, 독각다리…. 시민의 정서가 깃든 터전은 많다. 문화를 수용하는 시민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도시는 자동차와 자본을 위한 개발 투기장이 아니다. 시민들이 사는 곳이다. 시민을 존중하는 행정은 언제까지 시 관심 영역의 밖에 있어야 하나. (인천신문, 2007.8.3)

^^잘 읽고 ... 퍼갑니다~~
이글을 읽고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로잡을 사람은 누군가? 그들을 누가 무슨 방법으로 돌이킬수잇는가?아니그들이 이글을 읽기나 할 것인가? 그렇다고 이런유의 글을 그칠 수가 잇는가? 이는 자네와 같은 지식인의 몫일세 난단지 뒤따를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