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6. 11. 16. 14:51

 

     요즘 대학의 큰 강의실은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비치돼 있다. 어두운 교실에서 편집한 영상화면을 비춰주며 강의하는 교수의 모습은 새롭지 않다. ‘첨단 강의’는 빔프로젝트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닝 e-learning’ 이라 이름붙인 온라인 강의를 모니터 앞에서 들여다보는 학생도 적지 않다. 첨단으로 갈수록 사소한 고장이 잦지만 문제는 학생들과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꺼번에 많은 학생을 상대할 때 효과적인 첨단 강의는 수강생의 이해 정도를 따지지 않는다. 학생의 개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얼마 전 정부는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는 전용면적 25.7평이 아니라 85평방미터 이하라 해야 한다. 벌금을 피하려면 하는 수 없다. 금 한 돈은 몇 그램일까. 그건 중요지 않다. 1986년 1월 28일, 발사 60초 만에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유가 서로 다른 도량 단위였다. 표준화를 기반으로 첨단으로 치닫는 세계화 시대에 미터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양성을 배려하는 문화와 전통은 세계화의 걸림돌이다.

 

첨단일수록 복잡하고, 복잡할수록 정교한 공업기술사회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 농작물도 축산물도 예측 가능해야 하고 법과 경제는 물론 교육도 예측 가능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된다. 교육부가 아니다. 교육인적자원부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미터법을 원한다. 원어민 교사는 미국 영어를 구사해야 하고, 강남 고액학원에서 진두지휘하는 논술을 달달 외워야 대기업에 줄 서 들어가는 일류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정 맞을 모난 개성은 교육인적자원부도 기업도 원하지 않는다.

 

신도림역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지하서울역 선로에 장애인들이 연좌농성하기 때문에 지하철이 지연되고 있다고. 눈앞의 현상만 들여다보고 내놓는 해석은 천박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 이 땅의 장애인들은 심심풀이로 지하철 선로를 점거할까. 안내방송 마이크를 잡은 지하철 노동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의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 임금임상을 원하는 그들도 가끔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불사하지 않던가. 시위대의 거리행진 대열에 자신의 자동차로 돌진한 사람은 파업을 하지 않을까. 운전자를 두둔하는 중앙 일간지의 기자는 파업이 불필요한 직장을 다니는 선남선녀일까. 남을 그의 처지에서 배려하지 못하는 기사는 획일적인 사회에서 누구에게 충성할까.

 

건강한 숲은 키 큰 나무만 즐비하게 심은 여의도나 뚝섬과 모습이 다르다. 상층을 이루는 나무보다 중층, 중층보다 훨씬 많은 하층에 무수한 나무들이 자라 올라간다. 크고 작은 나무들의 생존이 배려되는 숲은 앞으로 닥칠 환경변화를 너끈히 이겨낼 것이다. 삼계탕용으로 집단 사육하는 닭은 극도로 육종돼 유전자가 아주 단순하다. ‘과학축산’이 권장하는 엄격한 방식으로 사육해야 35일 만에 뚝배기에 쏙 들어가지만 창문이 열리기라도 하면 몰살된다. 반면 발로 흙을 헤집고 다니는 마당의 닭은 모진 풍파에도 끄떡없다. 간장독과 아이들은 밖에 내놓아도 겨울에 얼지 않는다 했는데, 아파트에 간장독이 사라진 요즘, 겨울이 여름 같고 여름이 겨울 같은 획일적 환경에 길든 아이들은 대입준비 선행학습으로 친구 사귈 시간이 없다. 겨울에 내놓을 수 있을까.

 

방아쇠를 당기는 힘은 남여에 차이가 없으므로 여성도 군대에 갈 수 있다는 표어를 보았다. 같은 논리로, 남성도 군대 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기린은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으려 목이 길어진 것이 아니다. 입 높이의 나뭇잎을 양보하다 그렇게 진화된 것이다. 다양한 환경으로 적응하는 개체들을 배려하는 생태계에서 기린은 목이 긴 개성을 갖게 되었다. 생태계는 그렇게 다양해진 생물종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건강하고 아름답다. 사람도 생태계의 자손이다.

 

순환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생태계에는 개성이 존중된다.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생태적으로 건강하다. 표준을 강요하는 획일적 신자유주의에서 생태사회는 한낱 꿈이어야 하나. (환경과생명, 200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