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12. 5. 00:51

    내년 김장도 올해 같기를

 

하늘이 파랗다. 분명 11월이건만 주말마다 비가 내렸는데,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다.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농사를 가르치는 장 선생은 정작 자기 밭의 수확과 파종이 늦어 안타까워하던데, 주말농장을 다니는 이도 오늘 같은 가을을 기다렸으리라. 주말농장이야 잘 여문 배추와 무를 뽑으면 빈터로 한겨울을 보내겠지만, 장 선생의 밭은 오늘 양파와 우리밀이 가지런히 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농약 전혀 없는 빵과 튼실한 양파를 내년이면 맛보겠지.


밖으로 열리는 유리창에 성에가 좀처럼 끼지 않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희한해하겠지만, 갈무리를 마친 농경지에 하얀 서리가 아침이면 내릴 것이다. 배추와 무는 커다란 트럭에 실려 도시의 농산물시장으로 떠났으니 바야흐로 김장철이 되었다. 마당이 없는 도시는 김장독을 대신하는 냉장고를 비워둘 테고, 농민들은 주문에 맞게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을 것이다. 염전은 여름 땡볕에서 굵은 땀방울을 연실 흘렸고, 어부들은 가을에 잡아올린 새우들을 충분히 염장했을 것이다.


어려서 본 김장은 일종의 축제 같았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 사이에서 기대에 찬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집안의 추레한 모습을 가리는 담장의 높이만큼 쌓아올린 배추는 근 200포기는 되었던 거 같다. 남자들은 김장독을 묻으면 그만이었는데, 여자들은 바빴다. 절이고, 무 채 썰고, 양념 준비하고, 양념과 버무린 무채를 배춧잎 사이에 넣고, 깊은 김장독에 차곡차곡 김치를 넣어 뚜껑을 닫는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뒷정리도 많았지만, 아까부터 기다리는 남자들에게 소주에 곁들인 보쌈을 내놓아야 했다. 마냥 뛰어다니던 아이들에게 몇 점 먹였고.


그때 대부분의 가정은 12월 중순에 김장을 했는데, 요즘은 11월 찬바람이 불면 시작한다. 양념과 젓갈류는 물론 배추와 무도 시장과 쇼핑몰의 식품매장에 사시사철 준비돼 있지만, 무엇보다 김치냉장고가 있으니 계절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역시 김장은 김장철에 해야 제 맛이다. 김치에 깃드는 유산균도 계절에 따라 다른 건지, 보통 한두 포기, 많아야 예닐곱 포기에서 그치는 김치는 아무리 맛이 좋아도 김장김치 같지 않다. 북적거리며 준비하는 분위기에서 기대가 증폭돼 그랬을까. 마치면 한겨울이 넉넉해져 그런 건 아닐지.

 


과학기술이 개입하는 우리네 요즘 김장

 

몇 해 전인가. 늦은 겨울 강화의 한 호텔에서 회의를 할 때였다. 저녁 만찬에 나온 순무김치는 특별했다. 순무 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밴댕이는 강화 특유의 향취를 입 안 가득 전해주었다. 김장철에 밴댕이는 잘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갯벌이 넓은 만큼 없지는 않을 터. 속알지를 때내고 머리를 잘라낸 밴댕이를 순무김치와 버무리면 봄철 입맛 돋게 하는데 그만이었을 것이다. 특히 강화에서.


순무는 강화에서 재배해야 독특한 향이 분명해지는데 밴댕이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서 그런가, 가을 밴댕이는 꼭 순무에 넣었다. 밴댕이가 적당히 발효된 순무김치 맛이 얼마 전까지 강화를 대표할 수 있었는데, 인천은 갈치를 김장배추에 버무려 넣었다. 지금이야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 커다란 상태로 잡아 올리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인천 앞바다에 갈치가 흔했고, 살을 발라내기 어렵게 작은 갈치는 그대로 토막을 내 양념에 넣었다. 2월 김장독 깊은 곳에서 꺼낸 김치 사이에서 찾아내는 갈치는 쫀득쫀득, 바다가 살아 있음을 단박에 알려주었는데, 갯벌이 거의 사라진 지금은 아니다.


취향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요즘 인천에서 담그는 김장의 젓갈은 다채롭지 않다. 가을에 잡은 새우로 만든 추젓이나 1년 이상 백령도나 대청도 인근에서 숙성한 까나리액젓이 주종을 이룬다. 까나리액젓은 최근 일이고, 육젓은 전부터 김장에 넣었는데, 매립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인천 앞바다는 갯벌만 잃은 게 아니다. 모래도 막대하게 사라졌다. 수도권의 하늘 모르게 치솟는 건물을 위해 퍼올려진 모래의 양이 어마어마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모래는 매립하는 갯벌의 위에 쏟아 부어졌다. 그래서 모래가 쓸려나간 해안은 좁아지고 방풍림은 뿌리를 드러냈으며 세계적으로 인천 이외에 그 유래가 없는 풀등도 자취를 잃어간다. 바닷물이 썰어 낮아져도 모래가 나타나지 않는 거다. 그러자 새우가 전처럼 잡히지 않는다.


바닷모래로 세워 올린 아파트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인천에 인구는 급증했고 그들 모두 김장을 담근다. 새우젓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뜻인데, 갯벌이 명맥만 유지하는 소래포구에 넘쳐나는 새우젓은 어디에서 왔을까. 새우젓만이 아니다. 인천 앞바다에서 드물어졌거나 아예 잡히지 않는 생선과 여러 젓갈들이 승용차 몰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화려하게 유혹한다. 바닷모래가 넉넉했던 덕적도 인근에서 주머니 긴 그물로 연실 잡아올리던 새우들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건만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는 새우젓을 산더미처럼 쌓았고, 강화는 해마다 새우젓 축제를 준비한다.


과학기술 덕분이다. 인공위성으로 새우 집단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동력선과 잡아둔 새우를 얼려두는 냉동시설, 그리고 바닷물에서 소금을 얼른 추출할 수 있는 건조시설이 준비돼 있는 한, 새우젓은 사시사철 넘친다. 어디 새우젓뿐인가. 장마철 지나야 파종하던 김장용 배추와 무는 경기도와 강원도의 산간에서 일 년 내내 심고 수확할 수 있다. 비닐멀칭과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농기계가 있고, 커다란 트럭이 농산물시장으로 즉각 배달하기 때문으로, 모두 석유를 펑펑 소비하는 과학기술이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보자. 과학기술이 돕지 않는다면 이맘때 몰리는 김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석유가 모자란다면 김장 비용은 반비례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가전회사에서 열심히 개발해 텔레비전으로 광고하는 김치냉장고가 없다면 김칫독을 묻을 수 없는 아파트는 김장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과학기술의 찬란한 승리다.


 

걱정스런 내년 이후의 김장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농토와 바다가 있기에 오래 전부터 적응해온 우리는 제철에 김장을 담가 겨울을 지낼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의 덕분에, 그리고 값싼 석유 덕분에, 우리는 제철보다 앞당겨 김장김치를 먹는다. 생활협동조합이 아니라면 김장용 양념 무채에 양식 굴을 넣고 가을부터 호강할 수 있지만 요즘 과학기술은 과도하다. 차라리 지나치다. 내의 차림으로 겨울을 지내게 해줄 정도로 에너지를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발전소마다 바다의 온도를 높여놓았다.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화력발전소는 공기의 온도까지 높이는데, 같은 용량의 화력발전소보다 2배나 많은 온배수를 쏟아내는 핵발전소는 바다의 생태계를 크게 흔든다. 새우잡이 그물이 찢어져라 올라오는 해파리는 바다 수온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젠 그 수준을 넘어선다. 수온변화는 애교가 되었다. 이맘때 제주도 모슬포에서 성황리에 잡아 올리는 방어를 삼가는 게 좋은 이유는 회유하는 방어의 특성 상,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분출된 방사성 물질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장에 넣는 멸치젓이 걱정인 이유 역시 후쿠시마 해역을 멸치가 회유하는 탓이다. 김장에 꼭 넣는 젓갈에 방사성 물질까지 포함시킬 수는 없건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 아직 갯벌에서 잡히는 해산물은 괜찮다고 하므로. 영광 핵발전소가 갯벌을 향해 막대한 온배수를 토해내지만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걱정이다. 들리는 소문이 흉흉하다.


수명을 다해하는 핵발전소에 엉터리 부품을 사용했다는 의혹은 사고를 연상케 한다. 자연재해가 사고로 이어진 후쿠시마는 지진대 위에 지었는데, 어떤 전문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보다 우리 핵발전소의 위험 요소가 훨씬 크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정도의 사고가 난다면 인천 앞바다의 갯벌마저 광범위하게 오렴시킬 게 분명한 영광 핵발전소도 예외가 아니다. 영광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갯벌에서 건져올리는 어떤 어패류도 먹을 수 없다. 어쩌면 젓갈이 없는 김장김치를 맹맹하게 먹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서해안에 세운 핵발전소만이 아니다. 중국 동해안, 다시 말해 우리 서해안을 바라보는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떨 것인가. 우리는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있지만 중국엔 없다. 감시 없다면 어떤 시설도 안전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김치냉장고를 구비한 덕분에, 생활협동조합에서 절인배추를 공급하는 덕분에, 아니 배추를 절여서 전해주는 유기농민 덕분에, 그리고 첨가물 없이 추젓을 담은 어민 덕분에, 11월 중순, 우리집은 김장을 일찍 마칠 수 있었다. 지구로 쏟아지는 태양의 입사각도가 좁아지면서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지만 햇빛이 드는 한낮은 따사롭다. 적당하게 익은 겉절이와 생굴로 버무린 김장용 무채로 휴일의 늦은 아침을 넉넉하게 먹은 오늘, 파란 하늘 아래 잎사귀를 잃은 가로수는 파리해보이지만, 깊어진 가을이 한결 여유롭다. 이런 호강,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푸른두레생협, 201212월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6. 8. 13:13

   갯벌까지 자본에 넘기려나

 

어디에 내놔도 풍미가 좋은 천연 조미료는 아무래도 어패류, 그 중 조개가 으뜸 아닐까. 1980년대, 한 마리에 7천 원 하던 대청도 홍어는 언제나 신선했고 가마솥 가득 끓이는 동죽은 무료로 무한 리필이었다. 소주가 5백 원이었으니 당시 둘이 만원이면 하루가 충분했는데, 요즘 인천 갯벌에 동족도 드물어졌다. 갯벌이 매립돼 동죽을 잡을 공간이 대단히 좁아졌지만 맨손에 작은 쇠스랑을 잡고 하루 한 차례 갯벌을 찾아갔던 아낙들이 세대를 이어주지 못한 채 거반 은퇴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천 해안선은 리아스식이 아니다. 자 대고 주욱 그으면 그뿐이다. 매립되었기 때문이다.


시화호를 조력발전 시설이 설치된 직선 제방으로 건너면 대부도가 나타난다. 대부도의 해변에 바지락 칼국수 전문 식당이 줄을 잇는데, 요즘은 영 흔쾌하지 않다. 맛이야 예전과 비교해 손색이 없고 칼국수에 바지락도 잔뜩 들어있지만, 식당 문을 열기 탐탁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칼국수에 넣는 바지락이 다른 것이다. 커다란 바지락을 듬뿍 넣었던 예전과 달리 자란지 얼마 되지 않는 자잘한 조개들까지 우수수 들어가는데, 작은 바지락을 갯가의 아낙들이 채취했을 리 없다. 갯벌을 흡입하며 어린 바지락까지 휩쓸어가는 약탈적 채취였을 가능성이 높다.


2006412일 계화도의 한 주민이 능숙한 바닷길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고 류기화여사. 그는 10여 년을 새만금 간척사업 유역인 계화도 갯벌에서 남편과 동고동락하며 백합을 채취해 남매를 고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키워낸 갯가의 억척 주부였다. 새만금 간척공사로 33킬로미터가 넘는 제방이 틀어막자 갑자기 바닷물을 잃은 1억 평이 넘는 갯벌은 급작스레 썩어갔지만 하루에 두 차례 열리는 갑문을 따라 바닷물이 조금 드나들던 갯고랑에 백합은 남아 있었다. 가슴 높이의 그레를 끌며 어린 백합은 잡지 않았기에 면적 당 생산량은 변함이 없었지만 비좁아진 갯벌에 생계를 의탁해야 하는 그는 바닷물이 가슴까지 들어와도 그레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한데 제방 때문에 갯고랑이 변하자 그만 익숙한 바다에서 발을 헛딛고 만 것이다.


바닷물이 썰면 드러나던 새만금의 갯벌은 얼마나 광활한지 그 끝을 볼 수 없었는데, 세계 최장이라는 제방이 거의 틀어막자 그레 대신 거대한 장비가 갯벌로 들어섰다. 백합이 묻혀 있는 갯벌을 마구 흡입해 자디잔 조개들까지 휩쓸어가려는 자가 자본을 투입해 들이닥친 것이다. 새만금 갯벌을 잃고 시름에 잠긴 갯가의 맨손어민들은 그런 짓을 상상하지 못한다. 백합들이 썩어갈 걸 생각하며 가슴앓이를 한 어민과 달리 장비를 끌어들인 자는 이번 기회에 한밑천 뽑으려는 듯 야만적인 채취에 밤낮을 가리자 않았다. 간척사업을 주도하는 측의 양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폭이 10센티미터가 넘고 5센티미터 가까운 높이의 껍질을 가진 백합은 향이 아주 진할 뿐 아니라 해감이 불필요해 요리도 쉬었다. 잘 닦은 대파 반으로 뚝 잘라 들통에 넣고 쌓인 백합 높이만큼 물을 부어 끓이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진미를 선보였다. 하지만 고급 패류인 백합만으로 탕을 끓이는 호기는 어민이든 관광객이든 자주 부릴 수 없었다. 다만 새만금 갯벌을 지키려고 찾아갔던 운동가들은 가끔 호강할 수 있었다. 어민의 마음 덕분이었는데,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정든 계화도 주민들이 다 떠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기계로 흡입한 자잘한 백합은 맛이 덜 할 뿐 아니라 먹기 미안한 탓이다.


최근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정권에서 얼토당토하지 않은 법을 마련하려고 혈안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사활을 걸고 통과시키려 한다는 수산업법갯벌양식어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과 제정이 그것으로, 갯벌의 보전을 위해 애를 써온 환경단체는 갯벌 민영화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갯가 어촌계가 지속 가능하게 채취하던 맨손어업을 국내와 자본이 장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법의 개정과 제정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당치 않다. 역사 이래 공유수면인 갯벌까지 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주려는 행정은 기업 친화적 정부의 말기적 의도라고 환경단체는 풀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환경단체는 대기업의 상표가 붙은 낙지와 바지락이 유통되는 기이한 현상을 상상하며 냉소하지만, 그나마 일부 갯벌에서 채취한 어패류로 제한될 수 있다. 벌교의 꼬막이 어떤 상표를 달지 궁금한데, 갯벌의 현실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새만금 일원의 백합도, 영흥도와 선재도의 바지락도 전 같지 않다. 하다못해 인천의 동죽도 자취를 감춰 가는데, 대기업은 어느 갯벌부터 어패류를 탕진할 것인가. 곰소만이나 가로림만과 같이 바닷물이 온전히 밀고 썰며 수려한 경관과 다채로운 생물상을 보전하는 갯벌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채취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많은 자본을 들여 본격 흡입준설을 감행해도 투자 대비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기업은 어떤 후속 조치를 계획하려 들까.


장봉도 앞바다의 모래에서 티타늄을 추출하겠다는 기업이 있었다. 광활한 갯벌에서 희토류라 일컫는 티타늄을 채취하기 위해 갯벌을 파헤치려는 사업이었지만 당시 시민사회는 티타늄을 핑계로 결국 그 넓은 바다를 매립하려는 저의를 의심했다. 티타늄 추출로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업 내용을 변경한다면 자격을 내준 지방정부는 사업 자체를 반려할 수 있었을까. 이제까지 경험은 부정적이다.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면 한번 자리 잡은 기업은 여간해서 내보내기 어렵다는 걸 누차 증명했다.


문제의 법은 갯벌의 이용에 치중한다. 200712월 태안 앞바다에 허베이스피리트 호가 흘린 원유로 인한 어민 보상이 분명하지 못했으므로 제정하려 한다는 정부의 이유는 갯벌의 사유화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유사 이전부터 이어왔을 갯가의 맨손어업과 관행어업의 특성 상, 세무서에서 판단할 영수증 처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보상액을 판정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세금이나 보상액 산정의 편의를 핑계로 수 천 년 공유수면, 다시 말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던 갯벌을 대기업에 넘겨도 된다는 겐가.


이제 더 팔 게 없었다고 생각한 걸까. 조상이 온전하게 우리에게 넘긴 갯벌까지 민간 자본에 넘기려는 현 정권은 갯벌에 깃든 자연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갯벌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 그리고 경관의 수려함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해마다 서식지에서 찾아와 겨울을 나는 철새와 봄과 가을 들려 제 몸무게의 배 이상 먹이를 먹으며 번식지와 서식지를 왕래하는 나그네새는 우리 손에 당장 입장료를 떨어뜨리지 않지만, 보는 이에게 편안함과 생태계의 빼어난 아름다음을 선사한다. 수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면 갯벌을 인수한 자본은 서식지 파괴를 걱정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은행 이자 이상의 수익을 요구하는 게 자본이다. 주주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자리를 보전할 수 없는 경영인에게 철새나 나그네새의 안위가 중요할 리 없다.


대기업은 갯벌에서 채취하는 어패류의 양과 질에 관심을 한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패류 체취 수익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관광지로 개발하고, 관광이 신통치 않으면 매립할 수 있다. 자연의 풍광이 온전히 살아 있는 가로림만이라 할지라도 관광수입보다 조력발전의 수익이 더 높다면 사업 방향을 바꾸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갯벌을 사들일 기업이 투자자 국가 소송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FTA를 맺은 국가, 다시 말해 자신의 이익을 위하 우리의 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자본이라면, 우리는 사업의 변경을 제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형평성을 이유로 어패류 채취가 아니라 관광, 또는 조력발전으로 갯벌을 파괴하려 해도 막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후 갯벌을 잃은 우리와 자연은 어떻게 될지, ‘갯벌 사유화에 적극적인 정부는 주민과 후손을 생각한 대책은 준비했을까.


갯벌은 유사이전부터 이제까지 한반도의 생명을 훌륭하게 보듬어 왔다. 계절과 관계없이 영양가 넘치는 어패류를 무한히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육상에서 단위 당 가장 높은 영양가를 갈무리할 수 있게 하는 논의 3배 이상인 갯벌은 인체에 비교해 허파와 자궁과 콩밭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지구 산소의 70퍼센트를 공급하는 바다의 식물성플랑크톤이 가장 많은 곳이 갯벌이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갯벌은 허파다. 육상에서 쏟아져 나려오는 유기물질을 조간대의 식물성플랑크톤과 그에 이어지는 생태계에서 정화해주니 콩팥이다. 그뿐인가. 우리의 식탁에 풍요롭게 올라오는 어패류의 산란장이 되므로 자궁이다. 인구가 많은데 경작지가 좁아도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갯벌이 게 있고, 건강하기 때문이었는데, 마구 매립되면서 위축되더니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아무리 기업 친화적이라 해도 현 정권은 지나치다. 순리를 보아도 시민 없는 정부 없고 소비자 없는 기업은 없다. 후손 없는 시민과 소비자도 없지 않은가. 시민 무시하는 정부는 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하고 소비자 생각하지 않는 기업의 탐욕은 후손의 이름으로 응징되어야 옳다. 후손과 소비자와 시민을 생각하는 사회라면, 정의 차원에서 그렇다. (두레푸른생협, 20126월호)

지나친게 아니고 미친정권입니다. 대합이 그립습니다. ㅡ.ㅡ;;

 
 
 

도시·인천

디딤돌 2012. 3. 14. 12:04

생태적 가치 이상인 인천 갯벌

 

봄은 눈이 녹으면 온다. 삼라만상 생명체가 물로 생명현상을 이어가는 한, 생명이 움트는 봄은 눈이 녹아야 온다. 나무도 봄이 와야 실뿌리를 땅에 내리며 꽃눈과 잎눈을 펼치고, 북방산개구리도 알을 낳으러 얼음이 풀린 계곡에서 물이 고인 논으로 빠져나간다. 겨우내 갯벌 깊숙한 곳에서 추위가 풀리길 기다리던 생물들도 눈이 녹았으니 움츠렸던 몸을 일으킬 것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식물성 플랑크톤이 번성할 테니 알을 낳아야 한다. 삼라만상의 동물들은 그렇듯, 제 새끼들이 깨어나는 시기를 먹을 게 많을 때로 맞춘다.

 

3월이 오면, 깊은 바다에서 꼼짝 않던 주꾸미들이 일제히 해안으로 다가온다. 때를 맞춰 어부들은 속이 빈 소라껍질을 밧줄로 엮은 소라방으로 주꾸미들을 유인할 텐데, 소라방을 풀어 넣으면 올라오던 주꾸미들이 제 집처럼 소라껍질 안으로 들어가 잠시 냉기를 견딜 터. 그때 밧줄을 뱃전에서 끌어당기는 어부는 잠시 후, 쌀쌀한 바닷가를 바라보며 입맛 다시는 이맘때 관광객의 식탁에 데쳐 올려놓을 주꾸미들을 식당에 부려놓을 것이다. 3월이 되면 주꾸미는 참 부드럽다. 남해안에서 인천 앞바다로 시기를 달리하며 올라오는 주꾸미는 오래 전부터 이맘때 주민에게 실한 단백질을 제공해주었다.

 

주꾸미만이 아니다. 겨우내 갯가의 두꺼운 얼음 아래 몸을 숨기던 숭어들도 산란과 성장을 준비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 갯벌 표면은 옅은 녹색으로 빛난다. 식물성플랑크톤이다. 커다란 입을 벌려 플랑크톤을 정신없이 훑어먹던 숭어들이 조간대에 미리 펼쳐놓은 정치망에 걸려들 테고, 주변 식당들은 손님맞이에 분주할 것이다. 육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유기물이 밀물과 썰물을 타고 조간대에 고르게 퍼지면 갯벌을 터전 삼는 생물들은 봄부터 활기가 넘친다. 식물성플랑크톤은 동물성플랑크톤에 이어 해삼과 멍게를 먹이고, 크고 작은 조개와 게와 밴댕이와 숭어가 자랄 터. 유사 이전부터 갯가를 터 삼는 사람도 자손을 번성시킬 수 있었다.

 

인천 갯벌은 예로부터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넓었고, 한강과 임진강과 예성강이 쏟아내는 고은 흙과 유기물이 많은 만큼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었다. 천연기념물 황복이 임진강에 올라 알을 낳는 것도, 2미터를 훌쩍 넘는 왕털갯지렁이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식하는 것도 갯벌이 있기에 가능했다. 봄과 가을이면 시베리아에 부챗살처럼 펴져 살던 온갖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가 깔때기처럼 강화도 인근의 갯벌에 모여들어 제 몸무게 두 배 가까이 먹어치운 뒤 다시 호주와 동남아시아 일원으로 부챗살처럼 날아갈 수 있는 건, 순전히 갯벌에 게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헤이룽 강과 알류산열도에서 머물던 오리 종류들이 겨울철 강화 일원에 내려오는 이유도 같다.

 

사람에게 실한 단백질을 무한히 제공하는 갯벌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자 수많은 철새와 나그네새의 소중한 휴식처를 제공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넓은 조간대는 재해를 완충한다. 높은 파고를 무너뜨려 해안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더욱 거세지는 태풍과 파도, 그리고 지진이 일으키는 쓰나미도 완충한다. 작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의 원인이 된 지진 이후의 쓰나미는 해안을 집중 개발한 지역에 더욱 커다란 피해를 안겼다. 그렇다면 요사이 인천은 안전할까. 서해안도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태풍의 안전권에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데.

 

깊은 가을의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강화 남단의 분오리돈대에 올라 동막갯벌을 바라보자. 하늘과 노을에 반사된 드넓은 갯벌이 붉게 물들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 줄 모를 때, 하늘을 파도처럼 층층이 가르며 끼룩끼룩다가오는 기러기 떼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뇌리에 새긴다. 예서 시방 숨 쉬는 자신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하고, 함께 찾은 가족, 친구, 애인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게 한다. 서먹하고 소원했던 기억은 어느새 사라지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돈독함을 나누며 분오리돈대를 내려갈 수 있다. 장엄한 자연경관이 우리에게 베푸는 혜택이다. 세계 5대 갯벌의 중심부인 인천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강화갯벌이 바로 그렇다.

 

갯벌 1그램에 수 십 억에서 수 조 마리나 있다는 식물성플랑크톤이 불러들이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생물체의 총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 생물들이 호흡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산소는 바로 갯벌의 식물성플랑크톤이 담당한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활발하게 제거하는 일도 식물성플랑크톤이 맡고, 탄산칼슘 껍질을 가진 조개와 게도 일부 분담한다. 갯벌은 색이 어둡다. 그만큼 햇볕을 잘 받으므로 여름철 뜨거운 육지로 습기를 내놓는다. 그런 갯벌이 편서풍 지대의 서쪽에 있는 우리나라는 복 받았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깊은 산이므로 평야가 좁지만 예로부터 많은 인구가 모자라지 않게 먹을 수 있었던 상당한 이유는 갯벌이었다. 강화 일원만이 아니다. 갯벌을 인체에 비견했을 때, 허파와 콩팥, 그리고 자궁이 되어준 까닭에 먼 조상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서편에 기댄 민중의 삶은 안정될 수 있었다.

 

이젠 아니다. 강화갯벌은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4대강 사업이 가로막은 대형보가 모래와 고운 흙의 흐름을 차단했지만 조력발전으로 갯벌 자체가 수장 또는 매장될 처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전기를 알량하게 생산을 위해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얻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부어서 식물성플랑크톤과 조개와 게들을 죽이거나 쫓아내려고 하지 않은가. 그러니 한반도의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갯벌이 제공해주던 양질의 단백질이 사라지는 만큼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수입할 텐데, 그런 육류는 대부분 석유 없이 생산은 물론 운송과 저장도 불가능하다. 그뿐인가. 육지로 불어오는 산소와 습기가 그만큼 줄어들고, 태풍과 지진과 파고와 쓰나미로 인한 파괴력은 돌이킬 수 없게 무서워질 게 틀림없다.

 

머지않아 인천 갯벌의 우아한 상징이 된 저어새가 날아올 것이다. 인천시가 송도신도시 인근에 손바닥만큼 남은 11공구마저 매립하면 애써 맞을 저어새는 먹이를 찾아 즉각 떠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실제 작년과 재작년 저어새가 먹이활동을 한 주요 갯벌이 바로 11공구가 아니던가. 저어새와 더불어, 갯벌에서 온갖 단백질과 해조류를 무한하게 얻은 사람도 숨을 쉬어야 산다. 그리고 내 발이 자연과 닿아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비로소 이웃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정주할 수 있다. 갯벌은 인천에서 그런 기댈 언덕이었는데, 어느새 회색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로에 자리를 다 내주게 생겼다. 한데, 회색의 철근콘크리트에 포위되거나 아스팔트가 강요하는 속도에 지친 사람들은 이웃에게 차갑지만 자연의 숨결에 둘러싸인 사람들은 따뜻하다. 그래서 유서 깊은 도시들은 도시의 완성을 녹색으로 본다. 그래서 공원이 도심을 넓게 차지한다. 바다와 강을 소중하게 여긴다.

 

근대 들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지 않은 어촌에서 거대한 도시로 면모를 거듭 일신한 인천에 나무가 우거진 녹지가 부족하더라도 갯벌이 드넓기에 언제나 주민들의 삶은 안정되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무엇 하나 지원되지 않으면 잠시도 버틸 수 없게 허약해졌다. 다만 바다를 곁에 두고 있다는 이유로 화력발전소가 밀집돼 전기는 과잉 생산하고, 사용하는 전기의 두 배 정도를 서울과 경기도에 공급할 따름인데, 남은 갯벌마저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

 

인천에 300만 가까운 인구가 터 잡고 살고 있는데, 조력발전이라니. 어찌 그런 발상이 가당했던 걸까. 인천에 주소를 둔 시민들의 행동이 약했던 걸까.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는 갯벌이라는 자연을 죽이면서 얻을 수 없다. 인천에 조력발전은 안 된다. 봄을 맞은 갯벌에서 생명의 찬가가 아닌 장송곡부터 듣고 싶지 않다. (인천in, 201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