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2. 11. 30. 11:39

   갯벌은 생명의 터전, 후손의 허파

 

역시 가을은 깊어져야 제 맛인가. 이파리를 떨어뜨려 더욱 파리해진 가로수 가지 사이로 하늘이 새파랗다. 산간계곡에 살얼음이 끼고 아침이면 들판에 서리가 내리겠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 서리도 성에도 실종되었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하고 싶다.


가슴을 씻겨주는 시리도록 시원한 바람은 갯벌을 타고 들어온다. 적어도 인천은 그렇다. 그리 멀지않은 과거, 사막화되는 중국 서편의 얼어붙은 땅을 지나 중국 동편의 공장지대를 훑는 바람은 황해를 건너 인천으로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갯벌을 통과해야했다. 하지만 상당한 갯벌이 매립된 지금, 꼭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시원하다. 계절의 변화가 요즘처럼 고마울 때가 없다. 4년 전에는 이맘때까지 계속된 더위로 갯벌에 보툴리늄 균이 창궐했고, 그 여파로 수많은 철새가 죽어나가지 않았나.


요즘 인천의 갯벌에 철새는 찾아오는가. 깊어가는 가을답게 날씨가 차고 보툴리늄 균이 창궐하지 않은 만큼 찾아오긴 왔고, 겉보기 별 탈은 없어 보이는데, 철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게, 모조리 매립돼 초승달만큼도 남지 않았으니 찾아와도 내려앉을 곳이 없지 않은가. 몇 년 전만 해도, 매립으로 위축되더라도 빼곡하게 내려앉았는데, 요사이는 그렇지 않다. 인천의 갯벌이 좁아지는데 그치는 게 아닌가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넓고 깨끗하며 생태적 다양성이 빼어나던 인천의 갯벌이 이제 그 질이 형편없게 퇴색된 걸까.


올봄, 작년에 이어 저어새들이 대거 찾아와주었다. 쪼그라지는 갯벌이라도 먹이가 풍성하기에 알도 많이 낳고 자라는 새끼들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길러낼 수 있었기 때문인지, 서너 해 전부터 꾸준히 날아왔던 저어새가 올봄, 어김없이 찾아와 참 고마웠다. ‘송도11공구로 그마저 매립 예정되어도 왔기 때문인데, 찾아온 저어새들은 다 자란 새끼들과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떠났다. 그들은 웬만하면 내년 봄이면, 연어가 모천을 찾듯 다시 찾을 텐데, 인천의 갯벌은 더는 저어새들을 끌어안지 못할 것 같다. 불안하게도, 이 가을, 치명적으로 오염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에 사는 생물에게 육지의 황토는 치명적이다. 1995년 중부지방을 관통한 태풍 제니스는 지금은 신도시로 매립돼 사라진 송도 갯벌의 수많은 조개들을 일거에 죽게 만들었다. 물론 태풍이 가무락이나 바지락, 그리고 송도 갯벌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동죽들을 떼로 죽인 직접 원인은 아니었다. 태풍 불어온다고 조개들이 죽어간다면 우리 해안에 어패류들이 터 잡았을 리 없는 일. 송도신도시 부지를 만들려고 드넓은 갯벌의 조간대에 느닷없이 육상의 황토가 퍼부어졌는데, 그때 불어닥친 태풍이 그 흙을 갯벌에 퍼뜨렸고, 그만 천 여 조합원이 4년 동안 채취할 조개들이 죽어 널브러진 것이다.


육지의 흙은 갯벌 생물에 그만큼 치명적인데, 지금 송도11공구에 그런 징후가 역력하다. 저어새 떠난 사이, 본격 매립하려고, 인간이 만든 법률에 의거 공사를 강행하면서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갯벌 한 가운데 황토를 높게 쌓지 않았나. 그 흙은 하루 두 차례 밀고 써는 바닷물에 섞이며 알량한 갯벌에 골고루 퍼지고 있다. 태풍처럼 강력하지 않아도 밀물과 썰물로 퍼지는 황토는 바다 생물이 파놓은 갯벌의 크고 작은 구명들, 그리고 조개들의 숨구멍을 틀어막을 것이다.


     파란 하늘에 가득한 산소는 대부분 바다에서 사는 단세포식물이 만든다. 조간대가 드넓은 갯벌은 심대하게 만들고, 그 덕분에 인천은 오래 전부터 넉넉했는데, 시방 위기다. 먹이를 찾을 수 없자 찾아오는 철새마저 줄었다. 무슨 뜻인가. 갯벌 매립은 철새 먹이만 줄어들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깊은 가을, 가슴 시리게 차가운 바람에 섞인 산소가 줄어든다. 다음세대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거다. 저어새 떠난 갯벌에 철새들이 앉지 않는 현상은 우리의 내일을 예고한다. 갯벌은 자연의 허파인데, 허파의 매립을 막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깝다. 파란 하늘 아래 후손에게 죄스럽고, 심호흡하기 민망하다. (기호일보, 201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