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6. 8. 13:13

   갯벌까지 자본에 넘기려나

 

어디에 내놔도 풍미가 좋은 천연 조미료는 아무래도 어패류, 그 중 조개가 으뜸 아닐까. 1980년대, 한 마리에 7천 원 하던 대청도 홍어는 언제나 신선했고 가마솥 가득 끓이는 동죽은 무료로 무한 리필이었다. 소주가 5백 원이었으니 당시 둘이 만원이면 하루가 충분했는데, 요즘 인천 갯벌에 동족도 드물어졌다. 갯벌이 매립돼 동죽을 잡을 공간이 대단히 좁아졌지만 맨손에 작은 쇠스랑을 잡고 하루 한 차례 갯벌을 찾아갔던 아낙들이 세대를 이어주지 못한 채 거반 은퇴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천 해안선은 리아스식이 아니다. 자 대고 주욱 그으면 그뿐이다. 매립되었기 때문이다.


시화호를 조력발전 시설이 설치된 직선 제방으로 건너면 대부도가 나타난다. 대부도의 해변에 바지락 칼국수 전문 식당이 줄을 잇는데, 요즘은 영 흔쾌하지 않다. 맛이야 예전과 비교해 손색이 없고 칼국수에 바지락도 잔뜩 들어있지만, 식당 문을 열기 탐탁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칼국수에 넣는 바지락이 다른 것이다. 커다란 바지락을 듬뿍 넣었던 예전과 달리 자란지 얼마 되지 않는 자잘한 조개들까지 우수수 들어가는데, 작은 바지락을 갯가의 아낙들이 채취했을 리 없다. 갯벌을 흡입하며 어린 바지락까지 휩쓸어가는 약탈적 채취였을 가능성이 높다.


2006412일 계화도의 한 주민이 능숙한 바닷길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고 류기화여사. 그는 10여 년을 새만금 간척사업 유역인 계화도 갯벌에서 남편과 동고동락하며 백합을 채취해 남매를 고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키워낸 갯가의 억척 주부였다. 새만금 간척공사로 33킬로미터가 넘는 제방이 틀어막자 갑자기 바닷물을 잃은 1억 평이 넘는 갯벌은 급작스레 썩어갔지만 하루에 두 차례 열리는 갑문을 따라 바닷물이 조금 드나들던 갯고랑에 백합은 남아 있었다. 가슴 높이의 그레를 끌며 어린 백합은 잡지 않았기에 면적 당 생산량은 변함이 없었지만 비좁아진 갯벌에 생계를 의탁해야 하는 그는 바닷물이 가슴까지 들어와도 그레질을 멈출 수 없었다. 한데 제방 때문에 갯고랑이 변하자 그만 익숙한 바다에서 발을 헛딛고 만 것이다.


바닷물이 썰면 드러나던 새만금의 갯벌은 얼마나 광활한지 그 끝을 볼 수 없었는데, 세계 최장이라는 제방이 거의 틀어막자 그레 대신 거대한 장비가 갯벌로 들어섰다. 백합이 묻혀 있는 갯벌을 마구 흡입해 자디잔 조개들까지 휩쓸어가려는 자가 자본을 투입해 들이닥친 것이다. 새만금 갯벌을 잃고 시름에 잠긴 갯가의 맨손어민들은 그런 짓을 상상하지 못한다. 백합들이 썩어갈 걸 생각하며 가슴앓이를 한 어민과 달리 장비를 끌어들인 자는 이번 기회에 한밑천 뽑으려는 듯 야만적인 채취에 밤낮을 가리자 않았다. 간척사업을 주도하는 측의 양해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폭이 10센티미터가 넘고 5센티미터 가까운 높이의 껍질을 가진 백합은 향이 아주 진할 뿐 아니라 해감이 불필요해 요리도 쉬었다. 잘 닦은 대파 반으로 뚝 잘라 들통에 넣고 쌓인 백합 높이만큼 물을 부어 끓이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진미를 선보였다. 하지만 고급 패류인 백합만으로 탕을 끓이는 호기는 어민이든 관광객이든 자주 부릴 수 없었다. 다만 새만금 갯벌을 지키려고 찾아갔던 운동가들은 가끔 호강할 수 있었다. 어민의 마음 덕분이었는데,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정든 계화도 주민들이 다 떠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기계로 흡입한 자잘한 백합은 맛이 덜 할 뿐 아니라 먹기 미안한 탓이다.


최근 물러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정권에서 얼토당토하지 않은 법을 마련하려고 혈안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사활을 걸고 통과시키려 한다는 수산업법갯벌양식어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과 제정이 그것으로, 갯벌의 보전을 위해 애를 써온 환경단체는 갯벌 민영화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갯가 어촌계가 지속 가능하게 채취하던 맨손어업을 국내와 자본이 장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법의 개정과 제정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당치 않다. 역사 이래 공유수면인 갯벌까지 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주려는 행정은 기업 친화적 정부의 말기적 의도라고 환경단체는 풀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환경단체는 대기업의 상표가 붙은 낙지와 바지락이 유통되는 기이한 현상을 상상하며 냉소하지만, 그나마 일부 갯벌에서 채취한 어패류로 제한될 수 있다. 벌교의 꼬막이 어떤 상표를 달지 궁금한데, 갯벌의 현실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새만금 일원의 백합도, 영흥도와 선재도의 바지락도 전 같지 않다. 하다못해 인천의 동죽도 자취를 감춰 가는데, 대기업은 어느 갯벌부터 어패류를 탕진할 것인가. 곰소만이나 가로림만과 같이 바닷물이 온전히 밀고 썰며 수려한 경관과 다채로운 생물상을 보전하는 갯벌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채취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많은 자본을 들여 본격 흡입준설을 감행해도 투자 대비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기업은 어떤 후속 조치를 계획하려 들까.


장봉도 앞바다의 모래에서 티타늄을 추출하겠다는 기업이 있었다. 광활한 갯벌에서 희토류라 일컫는 티타늄을 채취하기 위해 갯벌을 파헤치려는 사업이었지만 당시 시민사회는 티타늄을 핑계로 결국 그 넓은 바다를 매립하려는 저의를 의심했다. 티타늄 추출로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업 내용을 변경한다면 자격을 내준 지방정부는 사업 자체를 반려할 수 있었을까. 이제까지 경험은 부정적이다.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면 한번 자리 잡은 기업은 여간해서 내보내기 어렵다는 걸 누차 증명했다.


문제의 법은 갯벌의 이용에 치중한다. 200712월 태안 앞바다에 허베이스피리트 호가 흘린 원유로 인한 어민 보상이 분명하지 못했으므로 제정하려 한다는 정부의 이유는 갯벌의 사유화를 정당화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유사 이전부터 이어왔을 갯가의 맨손어업과 관행어업의 특성 상, 세무서에서 판단할 영수증 처리가 어려운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보상액을 판정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세금이나 보상액 산정의 편의를 핑계로 수 천 년 공유수면, 다시 말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영역이던 갯벌을 대기업에 넘겨도 된다는 겐가.


이제 더 팔 게 없었다고 생각한 걸까. 조상이 온전하게 우리에게 넘긴 갯벌까지 민간 자본에 넘기려는 현 정권은 갯벌에 깃든 자연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갯벌의 문화와 역사적 가치, 그리고 경관의 수려함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해마다 서식지에서 찾아와 겨울을 나는 철새와 봄과 가을 들려 제 몸무게의 배 이상 먹이를 먹으며 번식지와 서식지를 왕래하는 나그네새는 우리 손에 당장 입장료를 떨어뜨리지 않지만, 보는 이에게 편안함과 생태계의 빼어난 아름다음을 선사한다. 수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면 갯벌을 인수한 자본은 서식지 파괴를 걱정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은행 이자 이상의 수익을 요구하는 게 자본이다. 주주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자리를 보전할 수 없는 경영인에게 철새나 나그네새의 안위가 중요할 리 없다.


대기업은 갯벌에서 채취하는 어패류의 양과 질에 관심을 한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패류 체취 수익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관광지로 개발하고, 관광이 신통치 않으면 매립할 수 있다. 자연의 풍광이 온전히 살아 있는 가로림만이라 할지라도 관광수입보다 조력발전의 수익이 더 높다면 사업 방향을 바꾸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갯벌을 사들일 기업이 투자자 국가 소송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FTA를 맺은 국가, 다시 말해 자신의 이익을 위하 우리의 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자본이라면, 우리는 사업의 변경을 제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형평성을 이유로 어패류 채취가 아니라 관광, 또는 조력발전으로 갯벌을 파괴하려 해도 막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후 갯벌을 잃은 우리와 자연은 어떻게 될지, ‘갯벌 사유화에 적극적인 정부는 주민과 후손을 생각한 대책은 준비했을까.


갯벌은 유사이전부터 이제까지 한반도의 생명을 훌륭하게 보듬어 왔다. 계절과 관계없이 영양가 넘치는 어패류를 무한히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육상에서 단위 당 가장 높은 영양가를 갈무리할 수 있게 하는 논의 3배 이상인 갯벌은 인체에 비교해 허파와 자궁과 콩밭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지구 산소의 70퍼센트를 공급하는 바다의 식물성플랑크톤이 가장 많은 곳이 갯벌이다. 그만큼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갯벌은 허파다. 육상에서 쏟아져 나려오는 유기물질을 조간대의 식물성플랑크톤과 그에 이어지는 생태계에서 정화해주니 콩팥이다. 그뿐인가. 우리의 식탁에 풍요롭게 올라오는 어패류의 산란장이 되므로 자궁이다. 인구가 많은데 경작지가 좁아도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갯벌이 게 있고, 건강하기 때문이었는데, 마구 매립되면서 위축되더니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아무리 기업 친화적이라 해도 현 정권은 지나치다. 순리를 보아도 시민 없는 정부 없고 소비자 없는 기업은 없다. 후손 없는 시민과 소비자도 없지 않은가. 시민 무시하는 정부는 민이 주인인 민주사회에서 퇴출되어야 마땅하고 소비자 생각하지 않는 기업의 탐욕은 후손의 이름으로 응징되어야 옳다. 후손과 소비자와 시민을 생각하는 사회라면, 정의 차원에서 그렇다. (두레푸른생협, 20126월호)

지나친게 아니고 미친정권입니다. 대합이 그립습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