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5. 8. 20. 23:18
 

신발은 물론 양말도 벗어야 한다. 들어가선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한다. 발목 또는 무릎까지 빠진 왼발을 꺼내 오른발 앞을 딛고, 푹 빠진 오른발을 꺼내 왼발 앞에 내밀며 걸어야 한다. 갯벌을 체험하는 방법이 그렇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수많은 게와 그들이 판 구멍과 멀리 날개를 번쩍이며 이리저리 나는 도요새 무리를 바라보며 대지의 원형질을 맨발로 느껴야 한다.


왜 맨발인가. 운동화나 슬리퍼는 안 되나. 안 된다. 슬리퍼는 물론 장화도 한번 갯벌 깊숙이 빠지면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운동화는 끈을 꼭 매야하지만 그래도 벗겨져 빠져나오지 않을 수 있다. 양말도 벗겨진다. 아무래도 맨발이 낫다. 하지만 대지의 따스함은 피부로 만끽해야 한다. 지구가 어머니라 하지 않던가. 우리는 어머니의 피부에 숫한 생채기를 남겼다. 도로, 건물, 운하, 댐, 매립, 쓰레기매립장을 세우고, 농약을 퍼부어 어머니 피부는 만신창이가 됐다. 우리는 이제 어머니의 피부와 부빌 수 없다. 신발을 신고 밟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직 갯벌은 예외다. 탕아를 아직 받아준다.


체험을 위해 조심조심 들어가는 사람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지만 일단 넘어지면? 그이는 일행에서 갑자기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된다. 끌어안으려 하는 그의 손과 가슴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넘어지고 자빠지고 주저앉고 눕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의 피부와 자신의 피부를 부비기 시작한다. 드디어 탕아들은 어머니의 아픔을 몸으로 깨닫는다. 그리고 반성한다. 그래서 갯벌체험은 의미가 있다.


최근 인천의 환경단체는 갯벌을 죽이는 갯벌체험행사를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솔선내서 갯벌체험행사를 기획했던 단체였는데 왜 반대하고 나선 것일까. 갯벌체험이 자연학습의 유행하는 기호가 되면서 갯벌이 혹사당하기 때문이다. 체험했던 사람들의 기쁜 기억들이 번져나가면서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작은 원인이지만, 학교나 단체마다 일과성 행사로 몰려드는 게 문제다. 강화와 영종도 일원의 갯벌마다 단체버스에서 토해지는 일단의 무리들이 사전 학습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가면서 갯벌이 다져진다. 수많은 인간들의 무게로 갯벌은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는 생명들을 잃는다.


인파에 밟혀 구멍이 막히면서 게와 조개와 소라와 갯지렁이와 낙지와 새우와 망둥이와 작은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이어 도요새와 물떼새와 오리와 기러기와 재두루미와 어민들까지 사라진다. 생명력을 잃은 갯벌은 전과 같이 산소를 생산해내지도 이산화탄소를 제거해주지도 육지에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불어주지도 못한다. 알을 낳던 물고기들이 외면하고 자정능력도 줄어들고 만다. 앞뒤 가리지 않고 체험하겠다고, 무턱대고 덤벼드는 사람들의 무책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갯벌은 쉬어야 한다. 뉘우치지 않을 탕아들 끌어안다 지쳤다. 이젠 어머니의 피부를 멀리서 바라보아야 한다. 안기려면 먼저 공부하고, 송구스런 마음을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찾아야 한다. 생업이나 연구목적 이외에는 삼가자는 뜻이다. 현재 인천 주변의 갯벌은 임시방편인 휴식년제보다 보전을 필요로 한다. 거의 매립돼 가녀리게 남은 갯벌마저 우리 세대에 질식사시킬 수야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인천인터넷뉴스, 200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