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4. 1. 21. 23:04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치고 상대방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듣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한 다음,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수정하는 이 보기 어렵다. 해외의 유명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한데, 힘겹게 공부해서 그런가? 과학기술도 그런 점에서 뒤지지 않는다. 공부는 반드시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좋든 싫든, 많은 사람과 부딪히는 일상에서 훨씬 많이 배우는데, 대개 그렇다.


18세기 귀족 맬서스가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지만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큰일이라고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가난한 자들을 먹어 살리느라 골머리를 앓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경제나 과학자들은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 만다. 식량 증산을 유도한 녹색혁명이라는 과학기술이 해결했다는 거다. 20세기 초, 암모니아 가스를 냉매로 사용하던 원양어선의 배관에 이상이 생기면 수리하는 선원은 생명을 잃을 수 있었지만 프레온가스를 사용하면서 그런 위험에서 자유로워졌다. 과학기술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과학기술 덕분이라는 확신은 과학자의 자부심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경제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아니 자신이 선도했다고 경제가 큰소리친다. 부족한 식량을 증산시키는 기술과 안전한 냉매의 개발을 과학자에 의뢰한 측이 경제라는 거다. 다국적기업이 그들이다. 물론 기술개발에 성공한 과학자는 명성과 그 못지않은 부를 챙겼을 것이다. 녹색혁명을 이끈 미국의 과학자 노먼 볼로그는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모르긴 해도 돈도 꽤 벌었을 텐데, 프레온가스 특허를 가진 과학자도 돈방석에 앉았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프레온가스 생산업자와 그 냉매를 넣는 냉장기기를 만드는 자본이 훨씬 큰돈을 벌어들였다. 농업 관련 다국적기업의 막대한 성장은 또 어떤가.


프레온은 오존층을 파괴했다. 부랴부랴 과학자들은 대체 냉매를 개발했지만 오존층을 건드리지 않는 새 냉매는 프레온가스 이상 지구온난화를 촉진한다. 참고로 프레온가스는 이산화탄소의 2만 배 가까이 온실효과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앞으로 오존층도 건드리지 않고 온실효과도 피하는 냉매를 다시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는 과학자는 큰돈을 벌어들일지 모른다. 지금 그 목표로 기업에 연구비를 받는 과학자가 많을 텐데, 새로 나올 냉매는 부작용이 과연 없을까. 프레온가스로 열광할 때 세상 사람들은 오존층이 무엇인지 몰랐다.


노먼 볼로그는 기아를 걱정해 다수확 곡식을 개발했을지 모르지만, 농작물이 상품으로 바뀌자 기아가 만연한 지역에 식량은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 지역에도 옥토가 있다. 기름진 땅을 다국적기업이 차지해 서양에 높은 가격으로 팔아넘기는 플랜트농업에 주력하면서 기아는 더욱 늘어나지 않았던가. 막대한 이익을 채운 녹색혁명은 시방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석유로 가공하는 농약과 비료, 석유를 들이키는 무거운 농기계 없이 경작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는데, 미생물과 지렁이를 잃은 땅은 황폐화되고 말았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 듯 홍보되는 과학기술은 거대해지고 자본에 독점될수록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내며 그 책임을 혜택과 거리가 먼 지역의 사람과 생태계 그리고 다음세대에 떠넘긴다. 석유의 막대한 소비 없이 가동되지 않는 산업은 석유 소비가 거의 없는 지역의 재해 규모를 키웠다. 지난 11월 초 필리핀을 덮친 태풍 하이옌이 그 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자국의 가난한 지역을 항구적으로 오염시켰고 태평양 해양 생태계를 망쳐놓았다. 다국적기업의 농작물에 의존하는 지역일수록 고통이 클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더욱 심화되는 풍수해와 석유 위기로 식량 가격이 급등할 게 틀림없는 까닭인데, 우리나라가 그렇다.


많은 이들은 여전히 과학기술을 기대한다. 지구온난화도 에너지와 식량 부족도 해결할 것으로 막연히 믿는다. 생산하는 농작물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수경재배 수직농장을 콘크리트로 높게 짓고, 그 에너지는 핵에서 얻으면 된다는 식으로 경제학자는 낙관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핵폐기물 안전처리 방법을 모른다. 핵융합으로 해결하면 될까? 과학기술은 콘크리트를 친환경적이며 오래 사용하도록 개발해낼까?


큰돈 들여 개발할수록 가난한 이는 혜택에서 제외될 텐데, 기다리면 떡고물이 떨어질까? 그런 경우가 없지 않지만, 떡고물이 전해질 때면 부작용은 더 커지고, 그 피해는 약자나 소외된 자에게 예외 없이 집중된다. 탐욕스런 경제가 과학기술을 지배한 탓인데, 자본이 지배하는 과학기술은 거대해지기만 한다. 거대과학은 지불 능력이 없는 자를 외면하기 일쑤다.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핵발전과 화력발전이 그렇다.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이 그렇다.


수렵채취로 돌아갈 수 없다면 어느 정도의 기술은 필요하다. 지역에서 나누며 자급하는 농작물과 태양광 전기는 거대 시설과 큰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다.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에 필요한 도구는 지역에서 서로 도우며 만들고 고칠 수 있다. 자연과 다음세대에 영향주지 않는 중간기술이다. 거대과학이 일으킨 문제는 더욱 거대한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다. 거대과학 독선에서 벗어나 중간기술을 도모해야 한다. (야곱의우물, 20142월호)

좋은 글 스크랩해서 가져 갑니다. 감사합니다.
포스팅구경하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