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6. 11. 6. 16:35
 


1990년대 중반. 인천 앞바다에 자리잡은 덕적면 서포3리의 작은 섬, 굴업도를 방문했다. 불충분한 자료를 근거한 정부가 핵폐기물 처분장 적지로 굴업도를 강제 승인해, 외지인의 방문이 걸핏했던 때였다. 핵폐기장의 위기에서 벗어난 지 10여 년, 굴업도는 현재 조용하다. 핵폐기장 덕분에 잠시 알려졌지만 떠들썩한 방문객도 드물어졌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뉴스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세간의 기억에서 사라진 굴업도. 하지만 방문자의 뇌리에 굴업도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입자 고운 모래가 완만하게 드리워진 고즈넉한 해변에 노을이 빠알갛게 물들면, 맨발로 걷던 방문객들은 복받쳐오르는 환희로, 젖은 눈망울을 마주했을 터이므로.


뭇 남성의 지분거림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여쁜 여인이 소설 속에서 하나 같이 박명하듯, 섬 대부분의 땅이 외지인의 수중에 들어간 굴업도는 거듭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핵폐기물 오염의 위기에서 벗어나자 누드 해수욕장의 유혹에 빠질 뻔 한다. 인적 드문 해변에 모래밭이 펼쳐지면 옷을 벗어던져 버리고 뛰어들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던가. 당시 한 개발업자는 그렇게 말했다. 옷을 벗으니 자연 친화적이라고. 자신의 털을 벗어던진 이후 인간은 옷을 입어야 자연스러워졌건만 39세 먹은 개발업자는 어색한 규칙을 제안한다. 내국인은 마흔이 넘어야 입장할 수 있지만 외국인에게 나이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그가 염두에 둔 외국인은 어떤 인종의 나신이었을까.


제아무리 자신만만한 허우대의 소유자라 해도 옷 벗는 일이 아무데서나 흔쾌하지 않을 터. 찾는 이 드문 절해고도 굴업도가 긴장감을 풀어놓기에 더없이 좋은 곳일지 모르지만 빼어난 용모와 용기를 가졌다 해도 추우면 옷을 벗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에서 예외가 아닐지라도 삼한사온이 분명한 굴업도는 평소에도 바람이 드세며 추운 겨울이 대단히 길다. 여름 한철 찾아올 외국 벌거숭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풀어놓을지 긍정적으로 예측하기 몹시 어려운데, 늘씬한 외국인과 어울리려 몰려드는 마흔 넘는 한국 벌거숭이가 많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까. 돈보다 군살이 많은 40세 내국인도 옷 벗기 그리 흔쾌하지 않을 같다.


누드 해수욕장 유혹이 물 건너간 지 10년, 굴업도에 골프장 개발업자가 추파를 던진다고 한다. 50만 평 남짓의 굴업도는 모래바람이 여전한데, 골프장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린에 깔아야 하는 영국산 잔디는 바닷바람이 매서운 우리의 작은 섬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생태적 상식 이외에는 문외한인 까닭에 개장될 굴업도 골프장의 영업 이윤을 미리 짐작할 수 없다. 몇 가구 안 되는 주민들은 몇 푼의 돈으로 회유하고 부족한 지하수는 해수를 담수로 바꿔 해결한다고 치자. 이용객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추위나 바람이 거세기 때문만이 아니다. 덕적도 서포리에서 통통거리며 한 시간 남짓, 골프 가방을 든 손님들을 왕복으로 모셔야 할 작은 배는 풍랑에 유난히 약할 것이다.


“거, 무슨 소리 하는 거요? 대형 셔틀선박을 인천에서 운행하면 될 거 아니오!” 호통치고 싶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대형 선박은 굴업도를 쉬 드나들 수 없다. 부두와 그 접안시설이 부실하기 때문이 아니다. 굴업도 주위에 거대한 ‘풀등’이 가로막고 있다. “풀등? 풀등이라니?” 풀등은 바닷가에 자생하는 풀의 등이 아니다. 풀등은 바닷물이 썰면 바다 한가운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모래섬이다. 그런 풀등이 굴업도를 둘러싸고 있기에 선체가 깊은 대형 선박은 물이 썰 때 굴업도로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항로를 주기적으로 준설해도 소용없다. 모래는 바다 밑에서 움직인다. 그러니 덕적도까지 찾아온 골퍼들은 골프가방을 메고 흔들리는 통통배를 서포리에서 타는 수밖에.




1990년대 중반, 덕적도 서포리에서 작은 배를 빌려 굴업도로 향하던 일행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난데없이 하얀 포말이 일더니 모래밭이 넓게 드러나는 게 아닌가. 장엄하다. 바다 밑에서 편평한 땅이 서서히 솟아오르는 듯하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신비로운 현상을 보고 말문이 막힌 우리에게 선장은 “오늘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지요. 백중사리 때에는 길이가 5마일 폭이 1마일이나 된다니까요!” 한다. 말로만 듣던 풀등을 드디어 만난 것이다. 천천히 다가가는 배. 가까워질수록 드넓게 펼쳐지는 모래벌판은 부서지는 포말이 남긴 고운 모래톱을 부끄럽게 드러내고, 냉큼 뛰어내려 한 없이 한없이 뒹굴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남아있다.


진도나 무창포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과 또 달리, 바다 한 가운데를 헤치며 뭍이 되는 풀등을 바라보면 피안의 세계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다. 포말이 부서지며 펼쳐지다 포말과 함께 사라지는 풀등은 신기루가 아니다. 물이 썰 때 잠시 나타났다 물이 밀 때 자취를 감추는 바다의 무릉도원이다. 경탄스럽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풀등은 뛰어드는 이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진하게 허용할 것 같다. 풀등에 들면 세파에 찌든 떼, 숱한 오해와 변명 따위를 모두 잊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풀등에 남아 차오르는 바다에 몸을 맡기면 세상만사의 시름을 다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가슴까지 밀려오는 바닷물을 끌어안다 다가 다가오는 작은 배에 몸을 실으면 다시 살아나는 짜릿함으로 가슴이 저미지 않을까.


풀등은 굴업도에 국한하지 않는다. 연안부두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해도를 펼치면 인천 앞바다 자리잡고 있는 풀등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래가 가득한 굴업도 주변은 물론이고 부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크고 작은 섬 주위에도 두루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인천 앞바다에 풀등이 많을까. 10미터가 넘는 조수간만의 차가 낳은 자연현상임에 틀림없지만 원인을 더 추적해 보자. 풍화작용에 약한 한반도의 고생대 암석층은 빗물에 뜯어져 강모래로 한강에 쌓이고, 홍수가 들면 한강은 품어 안았던 막대한 모래를 인천 앞바다에 오랜 세월 동안 내놓고 또 내놓았을 터. 인천 앞바다로 나온 모래는 하루 두 번, 막대하게 밀고 써는 바닷물을 따라 바닥을 배회하다 크고 작은 섬 근처에 쌓이고 또 쌓였으리라.


해수면이 낮아질 때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인천 앞바다의 풀등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다. 거대한 조수에 쓸리거나 가끔 내습하는 태풍에 밀려 조금씩 이동하니 배태랑 선장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경험이 일천한 어부는 새로 발간한 해도나 뱃길을 안내하는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물이 썰 때 풀등에 얹히면 작은 배는 밀물이 들 때까지 꼼짝달싹 못하고 주저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풀등은 여보다 안전하다. 바다 속에 바위를 감추고 있는 여는 조심성 없이 다가오는 작은 배를 여지없이 부셔버린다. 해안의 갯벌이 넓은 인천 앞바다에는 풀등도 많지만 여도 많다. 여를 감싸는 풀등도 더러 볼 수 있다.


천혜의 풀등은 가슴 미어질 듯한 풍경만 한없이 베풀어 주는 건 아니다. 풀등의 드넓은 모래는 바다의 천연 정화장치이자 바다생물의 인큐베이터다. 한강이 토해내는 육지의 영양염류는 모래 틈에서 치자어의 훌륭한 먹이가 되니 어패류들은 풀등에 흔쾌히 산란한다. 개흙이 많은 인천 앞바다지만 풀등 주변은 맑다. 갯벌의 검은 입자가 모래 틈으로 배어들어가는 까닭이다. 깨진 조개껍질이 흩어져 따끔한 해변이나 따개비가 붙여 살을 에는 갯바위와 달리 곱고 깨끗한 모래가 일망무제로 드러나는 풀등은 인천 앞바다 아니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다. 해양수산부가 그 일대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당연한데, 그 가치를 세상에 외치고 싶도록 자랑스러운 우리의 풀등이 현재 위기에 쳐했다.




풀등이 흩어져 있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안은 해수욕장이 곳곳에 잘 발달돼 있다. 아니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해마다 수십억 원을 들여 모래를 뿌리지 않으면 해수욕장을 개장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모래가 바다로 걷잡을 수 없게 쓸려나가기 때문이다. 해변의 모래만 사라진 게 아니다. 15미터에 달했던 인근 모래섬이 5미터 이하로 줄어들더니 10미터도 되지 않던 바다 속 모래바닥이 30미터 이상 깊어졌다. 사연이 무엇일까. 바다모래 채취다. 수도권의 건설현장에 공급하기 위해 20여 년 전부터 모두 20억 입방미터 이상의 바다모래를 채취했기 때문이다. 최근 3년 동안 해변에 모래를 덮느라 쏟아부은 돈은 40여 억 원, 20년 동안 공유수면 점용 사용료로 걷어들인 돈은 1400여 억 원. 옹진군은 산술적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셈일까.


모래가 사라지면서 김양식이 사양화된 옹진군의 어획고는 형편없이 낮아졌다. 모래에 산란하는 새우가 드물어지면서 물고기 작황이 현저히 감소하고, 해양 생태계가 변화하자 맨손으로 채취해온 조개들이 집단 폐사하니 어민들의 소득은 곤두박질쳤다. 고기잡이로 이어온 지역의 문화가 퇴색되는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외지인의 모래 채취선은 이제 여름 한철 관광객까지 내몬다. 모래채취로 돈을 버는 군청을 그렇다 치고, 바다 잃고 관광객마저 잃은 주민들은 세금 낼 돈도 없다. 고향을 지키는 그들은 무얼 먹고 사나. 자갈밭으로 변한 해안을 겨우 덮을 정도로 뿌리는 모래는 여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데, ‘밑 빠진 백사장에 모래 붓기’는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참다못한 주민들이 행동에 나서지만, 업자에게 이윤을 보장하는 한 바다모래 채취는 중단되지 않는다.


모래채취는 넓고 아름답던 대이작도, 승봉도, 덕적도의 해변만 볼품없게 만들지 않았다. 보상금의 분배를 놓고 볼썽사나운 주민갈등이 유발되는 것도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천혜의 풀등을 당대에 사라지게 한다는 점이다. 생존기반을 잃은 어민들과 생태계 교란을 염려하는 환경단체의 거듭된 민원으로 옹진군에서 1년 전에 도입한 휴식년제를 도입했지만 잠시였다. 옹진군은 1년 만에 채취허가를 다시 내준 것이다. “휴식년제 필요성에 관한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이를 수용할 수 없다”며 으름장 놓은 건설교통부의 한 사무관은 “시군에 주어져 있는 채취허가권을 정부가 회수하도록 골재채취법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골재파동을 막을 것”을 천명했다는데, 정부가 지정한 생태계보전지역을 정부가 거덜내려는가.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전라남도 신안과 진도군이 모래채취를 불허하는 가운데, 휴식년제에 앞선 옹진군의 고위 공무원은 “서해의 모든 해역에서 바닷모래가 생산되는 만큼 옹진군이 바닷모래 채취로 더 이상 희생을 당할 수 없다”면서도 “바닷모래는 국가의 주요 건설자재인 만큼 현실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현실성 있는 대책은 무엇일까. 1년 후 휴식년제 해제는 설마 아니었을 텐데, 타 지역의 바다모래 채취일까. 공유수면 점용료는 해도에 표시된 지방단체가 챙기지만 풀등을 유지하는 모래는 해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경기도나 충청남도에서 퍼내는 모래가 인천 앞바다의 풀등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의 모래도 마찬가지다. 이제 휴식년제로 값이 오른 바다모래의 채취량이 더욱 늘어날 게 뻔한데, 굴업도와 이작도 앞의 풀등은 언제까지 보전될 수 있을까. 주민의 삶과 바다 생태계는 남아날 수 있을까.




수도권매립지 인근에는 산처럼 쌓인 건축폐기물 야적장이 있다. 주변을 압도하며 야적된 건축폐기물은 부도난 사업자를 여러 번 바꿔칠 정도로 재활용이 더디다는데, 건축폐기물 재활용이야말로 풀등도 살리고 수도권 건설경기를 유지하는데 가장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바다모래 채취 속도를 앞서가는 건설경기를 인천 앞바다가 책임질 수 없는 노릇인데, 지은 지 20년이면 경쟁적으로 재개발하는 아파트 공사 현장마다 재활용 가능한 모래가 막대하게 폐기하지 않던가. 재활용 기술력을 잘 발휘해 모래 뿐 아니라 자갈과 시멘트도 완전 분리한다면 골재채취로 파헤쳐진 하천과 시멘트 광산으로 토막나는 백두대간의 생태계도 지켜낼 수 있다. 일거양득 그 이상이 아닌가.


바다모래를 사용하는 것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는 계산은 매우 잘못되었다. 해양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어획고의 감소는 계산에 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풀등의 눈부신 경관을 잃어야 한다는 점도 비용에 산출하지 않았다. 자신의 역사이자 문화인 바다에서 버림받은 주민들의 고통을 비용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인천 앞바다에 사람보다 먼저 터 잡고 살아온 무수한 생명가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외부효과로 편의적으로 빼돌린 항목을 포함한다면 건축폐기물을 재활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으로 계산될 게 분명하다. 당장 지불해야 하는 재활용 모래의 비용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은 최근 감당하기 어렵게 치솟는 분양가와 투기열풍을 미루어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고질적 하청구조 하에서 하도급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걱정이라면,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풀등과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라는 으름장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이며 환경친화적이 아닌가.


최근 인천의 한 환경단체에서 가녀리게 남은 풀등을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었다. 섬 정상에서 바라본 풀등의 아름다움은 애절하기 그지없는데, 모래가 거의 쓸려가 버린 해수욕장은 황량하다 못해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풀등은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우리가 예서 그 숨결을 끊어야 하나.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 하고 토인비가 말했다던가. 지속 가능하는 못한 문명은 예외 없이 붕괴했는데, 우리는 콘크리트 문명 뒤에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풀등이 그 바로미터가 되는 건 아닐지. (해양과문화, 14호, 2006년 하반기)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저도 풀등이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골재채취.. 그 대안으로 내 놓은 건축폐기물 재활용.. 그 연구에 대한 비용을 과연 정부에서 내 놓을 것인지도 의문스럽군요. 이래저래 걱정만 느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