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8. 7. 12. 20:47
 

 

자동차가 질주하는 아스팔트를 따라 긴 시간 도시를 걷는다는 것. 제 정신에 할 짓이 아니다. 창을 꼭 닫은 승용차가 아스팔트에 파열음을 일으키며 비웃듯 지나치는 거리를 땀에 젖어 걷는 일에서 낭만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상은커녕 먼지가 일고 시끄러우니 짜증스럽다. 그래도 지하철 몇 정거장의 거리를 한 시간 남짓, 걷는다. 도시 환경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땀에 젖어 걷는다.

 

옆으로 자전거가 휙 지나간다. 새로 단장한 보행자도로 옆에는 붉은 아스콘을 입힌 자전거도로가 나란히 이어진다. 눈이 내리면 고생스럽긴 해도 자전거는 여름에 특히 시원할 하리라. 이동 시간이 걷기보다 짧겠지. 한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도로로 걷는다. 보도블록보다 편한 모양인데, 마주 오는 이를 피해야 할 때 잠시 신세지는 경우가 없지 않더라도 나는 되도록 붉은 아스콘을 밟지 않는다. 자전거를 위한 도로의 필요성을 주장한 처지가 아닌가.

 

자전거도로에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자동차도로보다 안전하니 무서운 게 없는 듯,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를 휘젓고 누빈다. 언젠가 자전거도로로 다가오던 맞은 편의 전동휠체어가 갑자기 보행자도로로 옮기기에 하는 수 없이 자전거도로로 피했더니 뒤에서 웬 오토바이가 경적과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친다. 오토바이도 놀랐겠지만 거긴 자전거도로다. 차도를 이용할 자신이 없는 운전자는 오토바이를 세워두어야 옳다.

 

집에 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큰 녀석이 홍성농업고등기술학교로 진학한 뒤 작은 녀석이 간혹 이용하던 자전거는 학습지 2년 치를 구입한다는 조건으로 받은 거지만 아이들은 학습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베란다 정리를 위해 잠시 현관 밖에 내놓은 지 며칠 만에 자전거는 없어졌는데, 아이들은 그리 아쉬워하지 않는다. 지금 누군가 잘 이용하겠지. 오토바이가 무서워 자전거를 이용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회의나 강의, 그밖에 이러저런 약속을 위해 서울과 인천을 오갈 때에 자전거는 짐이다. 더구나 저녁에 술 기울여야 할 약속으로 이어지지 않던가. 자전거는 아무래도 집에서 학교와 시장과 관공서를 왕복할 때 편리하다.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의 출퇴근에 이용하는 것이야 좋겠지.

 

해질 녘, 도시의 보행자도로는 운동 삼아 걷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그들은 아주 씩씩하다. 위아래로 흔드는 팔과 앞으로 내딛는 발동작이 여간 아닌 그들 앞에 얼쩡거리면 부딪혀 나동그래질 것 같다. 휴일이나 밖에 나갈 일이 없는 평일, 일부러 시간 내어 걷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럴 때는 저녁 전이나 밤 시간을 이용해야 마음이 편하다. 볼일이 있어 밖에 나온 듯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교차로 신호에 따라 발길을 부지런히 옮긴다. 그렇게 씩씩한 이를 피하며 동네를 한 시간 정도 돌다 생활협동조합 매장에 들려 이것저것 사들고 집에 올 때도 많다.

 

얼마 전, 지하철 여러 정거장을 걸어 고교동기의 상갓집에 갔다. 오랜만에 악수를 나누던 친구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땀에 푹 젖은 모습에 의아해하더니, 한 시간 이상 걸었다고 하니 더 놀란다. 자동차를 파는 친구는 무모하다고, 의사인 친구는 무식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들은 배가 나와 고민이다. 그래서 골프를 하지만 도무지 살이 빠지지 않는단다. 걷는 걸 엄두내지 못하는 그들은 은근히 내가 부러울 게 틀림없다. 날씨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2년을 걷자 뱃살이 빠진 내 모습을 보았으므로.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별 운동이 못 된다. 골프채 휘두를 들어가는 힘이 운동의 거의 전부가 아니던가. 잔디 위를 걷는 거리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18홀 대부분의 길을 전동 카트에 의존하고 골프가방은 캐디에 맡긴다. 골프 마치고 일행과 먹고 마시는 열량이 적지 않아 살이 더 찌고, 내기골프로 거의 점철되니 기분이 상할 때가 많다고 고백한다. 50대에 즐길 적당한 운동이 골프라고 둘러대곤 하지만, 골프와 골프장이 시민사회와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외면하기 부담스러울 것이다.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슨 일로 화가 치밀 때, 무작정 걸어보자. 한참을 걷다보면 화가 난 원인이 돌이켜지고, 상대를 이해하면서 내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동네를 어슬렁거리다보면 독촉되는 원고의 지지부진하던 실마리가 풀린다. 불현듯 영감이 떠오르는 거다. 잠이 통 오지 않을 때, 아파트를 한 바퀴 천천히 돌면 아침까지 단잠을 이을 수 있다. 오로지 걷기 때문이다.

 

우리 도시는 사실 계절과 관계없이 걷기 불편하다. 에어컨 실외기가 여름을 더욱 후텁지근하게 하고 겨울에는 외투 속에 흐르는 땀을 주체하기 어렵게 하지만, 매연에 고통스러워하는 가로수를 보는 일이 무엇보다 불편하다. 걷는 동안 내 폐는 안녕할 수 있을까. 자전거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보행을 방해하며 주차된 자동차도 많건만, 바삐 스쳐가는 경찰들은 걷는 이의 안전에 도무지 무감각하다.

 

도시에 오솔길을 배려할 수 없을까. 그런 길을 5분 걸으면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유럽처럼 만날 수 있게 우리의 도시를 가꿀 수 없는 것일까. 가족과 나온 이웃을 반갑게 만나는 공원은 기후변화 시대의 도시를 한층 시원하게 만들어줄 텐데. 그런 생각에 잠기며 날씨가 제법 쌀쌀한 오늘도 도시를 걷는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야곱의 우물,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