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9. 24. 21:38

 

핵폐기장이 위협했던 굴업도. 170만 평방킬로미터 남짓한 그곳에는 아름다운 해변이 여럿 펼쳐져 있다. 고운 모래가 넓고 완만한 큰마을해수욕장과 바닷물이 만든 모래톱이 물결지는 목건너해수욕장만이 아니다. 갈색 모래가 이채로운 연평산의 해변도 근사하게 보전되었다. 1994년부터 주민과 인천시민이 힘을 모아 지켜낸 굴업도였건만,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섬 전체를 골프장과 요트장, 그리고 목욕시설을 갖춘 대형 위락시설로 파괴하려고 집요하게 나서기 때문이다.

 

한번 다녀간 이는 반드시 다시 찾게 만드는 굴업도 해변은 핵폐기장이 들어섰다면 틀림없이 버림받았을 것이다. 5천톤 핵폐기물 운반선이 오가는 섬에 놀러가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골프장이 생긴다면 해변은 보전될 수 있을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파 72타 18홀 규격 코스의 골프장을 만들려면 섬 여기저기를 뜯어내야 하고 규모가 큰 선착장과 방파제를 포함해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건물을 세울 텐데, 그를 위해 굴업도 둘레의 모래가 상당량 사라질 게 아닌가.

 

이름하여 ‘오션파크.’ 골프장을 위해 시민들이 굴업도를 지켜낸 게 아니건만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는 대기업은 거침이 없다. 하루 5천 명까지 맞을 예정이라는 오션파크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환경영향평가서를 내세워 고즈넉한 섬을 난장판으로 바꿀 텐데, 주민들은 어떻게 될까. 섬 밖으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 주민이야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겠지만, 굴업도 해변을 지키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어떻게 되려나. 5천명이 첨벙댈 모래 해변이야 일부 남기겠지만,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어디로 가야 하나. 한반도의 다른 해변은 시방 안녕한가.

 

검은머리물떼새는 천연기념물 326호다. 서해안에서 드물지 않고 우리나라 특산종이 아니지만 그렇다. 검은 두건과 망토를 두른 듯, 머리에서 목 아래, 목덜미에서 등 뒤가 시커멓고, 가슴과 배가 온통 새하얀 검은머리물떼새는 해변의 말쑥한 신사다. 40센티미터가 넘은 덩치를 절대 뒤뚱거리지 않는 검은머리물떼새는 붉은 다리를 내딛으며 천천히 서너 마리씩 해변을 걷는다. 대화를 나누듯 붉은 눈망울을 껌뻑이며 긴 붉은 부리를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지만 검은머리물떼새는 세계적으로 사라져간다. 그래서 천연기념물이다.

 

위태로운 집단이 동북부 시베리아 일원에 둥지를 치다 겨울이 오면 한반도 서남 해변으로 찾아오는 검은머리물떼새. 칼끝처럼 날카로운 부리로 갯지렁이를 파내거나 조개껍질을 벗겨 먹는 검은머리물떼새는 갯벌과 모래사장이 보전된 한반도에 드물게 날아와 겨울을 지내건만 문화재청은 국토해양부의 행정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아니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리아스식으로 길고 복잡했던 해안선이 직선으로 매립돼 공업단지와 아파트단지로, 거대한 비행장과 군사시설로 변하는 걸 방치했으니, 검은머리물떼새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1917년 영산강 하구에 알을 낳을 걸 일본의 조류학자가 발견한 뒤 1970년대 강화도 인근에서 우리의 조류학자가 몇 차례 검은머리물떼새의 알을 확인해 화재가 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 해변은 온전했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한반도를 찾은 대부분의 검은머리물떼새는 해변을 편안히 서성일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지구온난화로 덜 지독해진 시베리아보다 한반도가 더 따뜻해져 그랬을까. 세계 평균의 두 배 이상 뜨거워진 한반도에 남은 검은머리물떼새들이 서남 해안에 흩어진 작은 섬에서 본격적으로 둥지를 치기 시작했다. 가스전 개발과 수출항으로 거듭 파괴되는 시베리아에 몸서리쳤는지, 알 수 없다.

 

굴업도를 떠날 검은머리물떼새는 충남 서천군의 유부도로 가야 한다. 인적이 드문 유부도에는 금강하구에서 흘러나오는 고운 모래가 수천년 쌓인 갯벌이 넓고, 평소 즐기던 갯지렁이, 게, 조개, 굴이 많다. 9월에 들어서면 한반도 여기저기에서 태어나서 자란 수천마리가 운집하지만 유부도 해변은 아직 견딜만하다. 해변 개발이 극성인 2000년대의 한반도에서 그나마 유부도 갯벌은 천연기념물에 양보되지 않던가. 오션파크로 채색된 굴업도 골프장을 주민과 환경단체가 막아내지 못해도 검은머리물떼새는 기댈 갯벌이 남은 셈이다.

 

10월이면 5천여 검은머리물떼새가 유부도에 모여 군무를 벌인다. 진한 먹에 푹 빠진 듯 둘레가 검은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들고나는 바닷물을 피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내려앉아 10센티미터가 넘는 부리로 먹이를 탐색하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유부도 갯벌은 자신들의 해방공간임을 카메라 들고 다가서는 인간에게 엄숙히 선언한다. 금강하구둑 너머 군산시 경암동에 열심히 세우고 있는 70만 킬로와트 복합화력발전소 2기에서 온배수가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전이므로 아직까지는 그렇다.

 

굴업도의 골프장처럼 군산의 복합화력발전소 역시 신뢰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부당한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불렀지만 개발자는 막무가내다. 간신히 한반도에 정착해 시베리아 대신 유부도로 모이던 천연기념물 검은머리물떼새의 운명은 어찌될 건가.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한 환경부도 외면하는 마당이라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갈과 구별되지 않는 알 두세 개를 4월의 자갈밭에 낳는 검은머리물떼새는 둥지에 접근하는 사람을 매섭게 공격하니 힘을 모아보자. 붉은 눈을 부릅뜨고 날카로운 부리로 돌진하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절박함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서천군의 어민 291명과 지역 환경단체 13명은 유부도의 검은머리물떼새를 대신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계획 인가 취소 처분을 위한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다. 2003년 지율스님과 도롱뇽이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구간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을 때 한국의 대법원은 도롱뇽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며 시대착오적으로 기각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물새 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보전에 관한 국제 협약”, 다시 말해 환경올림픽이라 일컫는 제10차 람사 총회가 154개 회원국 대표가 모인 가운데 경남 창원에서 오는 10월 28일 대대적으로 개최되는 마당이 아닌가. 서천군의 군조인 검은머리물떼새는 소송 자격이 충분하다. 자연의 정언명령이 그러하다.

 

번식기마다 자갈밭을 지나는 트럭이 두려워 진저리치는 검은머리물떼새는 자신을 천연기념물과 보호야생동물로 규정한 인간에 의해 짓밟힐 위기에 놓여 있어도 해변의 신사답게 서천군 유부도와 굴업도를 의연하게 지킨다. 아직은 분명히 그렇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10월호)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굉장히 반가운 글이네요...
검은머리물떼새가 서천군의 군조인 것은 이 글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간 굴업도에 드나들며 쫌 봤다 해놓고선..^^;;;;
검은머리물떼새와 먹구렁이가 굴업도를 의연히 지키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