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7. 1. 13. 00:16

    

     제법 쌀쌀한 아침, 옷깃을 여미고 지하철역으로 서둘러 걷는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이 눈에 띈다. 한데 그 강아지, 모자가 달린 외투를 입었다. 따뜻할까. 가까운 이마트에서 개 외투 ‘한 벌에 만원!’이라며 세일하던데, 그 스웨터인가. 아무튼, 타고난 강아지 털이 무척 안타까워 보인다. 강아지에게 그 옷은 얼마나 불편할까.

 

시골 경작지 사이를 가르는 국도에 밝혀놓은 가로등은 농부에게 골칫거리다. 불빛으로 밤에 쉬지 못하는 벼는 가을이 와도 이삭을 패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농작물이나 추울 때는 추워야 하고 쉴 때는 쉬어야하는 법이거늘, 전기는 계절과 휴식을 빼앗는다. 어떤 이는 전기를 ‘잠 도둑’으로 규정하는데, 벼의 휴식을 빼앗는 가로수 벼에게 무엇일까. 가로수는 농부의 원성을 사는데 그치지 않는다. 벼의 처지에서 종자 생산을 가로막는 존재가 아닌가.

 

언젠가부터 도심의 나무들은 밤마다 수난을 강요당한다. 대형 빌딩 앞 자그마한 녹지에 장식된 조경수에 작은 전구들이 휘감겨 밤이면 경쟁적으로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나무는 그만 휴식을 잃었고, 모르긴 해도 그 나무들의 수명은 몹시 단축될 것이다. 가로수의 불빛으로 밤 같지 않은 밤을 보낼 텐데, 나뭇잎 사이를 휘감은 꼬마전구는 쉴 새 없는 탄소동화작용을 강요할 것이 아니겠는가. 24시간 불 밝힌 계사에서 밤낮 사료 먹으며 알을 낳는 닭은 2년도 못가 수명을 다하는데, 전구에 휘감긴 나무는 어떨까. 

 

겨울철 도시의 나무는 그 정도가 심하다. 휴식만 잃은 게 아니다. 부분적으로 계절까지 빼앗겼다. 전구의 열기가 수피를 자극하는 까닭이다. 나무에게 겨울은 봄을 위한 준비기간인데, 도심의 겨울나무는 잎눈과 꽃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꼬마전구의 거치대 역할이 강요된다. 봄을 준비하지 못하는 도시의 겨울나무는 대기오염에 시달리며 앙상한 가지마다 휘황찬란한 전구를 매달고 있을 따름이다.

 

장미는 일 년에 한 차례 꽃을 피워낸다. 하지만 화훼농장의 장미는 일 년에 여섯 번 꽃을 피워내야 한다. 덕분에 100송이 장미를 애인에게 한 아름 안겨주는 연인들은 행복에 겨울지 모르지만 장미는 제 수명을 잃었다. 30년 살던 장미는 6년이면 죽지만 화훼농가는 일찍 죽는 장미를 애도하지 않는다. 새로 품종개량한 나무로 바꿔주면 그만이기 때문인데, 온갖 화학약품에 찌들며 휴식마저 잃은 장미는 사랑의 메신저일 수 없다. 여유를 잃은 사랑은 지속되지 않는 법이므로.

 

휴식을 잃은 도시에 가로등을 밝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동차 사고는 물론 절도와 폭력 사고를 미연에 막으려면 가로등이 필요하다. CCTV를 위해서도 가로등 불빛은 요긴할 터인데, 가로등, 어쩌면 휴식을 잃은 도시의 한계일지 모른다. 휴식을 잃은 도시의 겨울나무를 위해 전구를 떼어낼 수 없을까. 회색도시의 가로에서 봄부터 오염된 대기를 정화해주던 겨울나무에 휴식을 배려하지 못할망정 수난을 강요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를 유혹하는 꼬마전구는 건물 벽이나 근사한 거치대를 세우면 되는 게 아닐까.

 

휴식이 부족한 생명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나무도 동물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온갖 불빛으로 휘황찬란한 도심일수록 범죄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에도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건강한 내일을 약속하는 휴식, 꼬마전구 거치대가 된 겨울나무에게 더욱 절실하다. (인천e뉴스, 2007년 2월)

아침고요수목원 요란한 전구를 보고 왔는데...거기 운영하시는분이 뭔 원예전공이라고...
저도 분명 스트레스받는다고 들었거든요...
참 인간이 이기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