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8. 19:18

 

들어가는 글

 

‘신종플루’라. 이름이 참 무책임하다. 인플루엔자, 줄여서 플루, 다시 말해 독감 바이러스는 어떤 바이러스보다 변형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신종플루가 변형되어 나타나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나. ‘또신종플루?’ ‘다시신종플루?’ ‘자꾸신종플루?’ 아무튼, 우리 정부의 작명 솜씨는 세계보건기구(WHO)를 주무르는 미국보다 한 수 아래인 게 분명하다. 미국은 ‘인플루엔자A H1N1’이라 했다. 변형되어도 B부터 Z까지 여유가 있지 않은가.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독점으로 생산하는 스위스의 제약회사 ‘로슈’는 시방 세계에서 몰려드는 돈을 갈퀴로 모으느라 정신이 없겠다. 돈을 싸들고 먼저 보내달라는 국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던가. 신종플루가 유행하기 전에 세상에 나온 만큼 로슈가 신종플루의 출현을 예상하고 타미플루를 개발했을 리 없다. 계절 독감 치료제로 만들었는데 신통방통하게 신종플루에 효과가 있어 떼돈을 벌어들이는 건지 모른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이니 봐달라고 바싹 엎드렸던 우리나라도 타미플루 구입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았으니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처럼 재고를 충분히 확보했을 게다. 지레 겁먹고 마음 졸이지 않아도 무방하리라. 내 집에도 차례가 왔던 걸 보면.

 

미술대학 신입생인 큰 아이는 걸핏하면 작품 만든다며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기회로 밤새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는데, 아무리 젊어도 술과 피로로 찌들자 기침과 열을 동반한 호흡기 질환이 왔던 모양이다. 평소라면 그냥 감기일 거로 믿고 지나갈 일이었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조교는 학교 보건소로 냉큼 보냈고 보건소는 다짜고짜 근처 거점병원으로 토스했다. 때는 추석 전, 확진검사비 10만원을 내라는 말에 고개를 젓는 학생이 보나마나 고위험군이 아니라고 판단한 의사는 타미플루 10정 들이 한 갑을 선뜻 내주고 손 턴 게 뻔했다. 그리 심하지 않은 열과 잦은 기침은 신종플루와 증세가 비슷하다지만, 감기나 계절 독감도 대개 그렇다. 신종플루도 아닌데 타미플루를 먹으면 내성이 생겨 정작 감염되었을 때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지만 그건 다음 이야기일 뿐. 확진 결과 기다리다 치료 시기 놓치는 것보다 있는 타미플루 얼른 내주는 게 났다고 여겼을 테고, 아이도 동조했을 거다.

 

아침저녁으로 한 알, 하루에 두 알 먹는 타미플루를 이틀 먹자 아이는 차도를 보였고, 다 먹기 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에 진정 신종플루가 왔을 수 있다. 붙어다니던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는 학원에 신종플루 확진환자가 있었다 하고, 그 친구도 잠시 열과 기침이 심했다는 걸 보면. 타미플루를 먹고 아이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어쩌면 먹지 않았어도 쉬 나았을지 모른다. 확진환자보다 10배 이상의 사람들이 별 증상 없이 지나간다는 전문의사의 발언을 미루어보면. 아이는 사실 저보다 동생과 부모에게 전염되는 걸 막으려고 타미플루를 먹었다. 식구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걱정했다기보다 신종플루 환자라는 의혹만으로 학교와 사회에서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했겠지.

 

신종플루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았던 아이는 1주일 내내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다. 게임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거. 신종플루가 치명적이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학교에 가기 싫어 신종플루에 전염되려는 이 땅의 청소년들의 기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종플루에 걸리려고 예방수칙을 역이용하는 학생이 많다고 언론은 개탄했는데, 학생들이 등교를 왜 거부하려 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언론은 신종플루로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이가 늘어나면서 관련 주식이 강세를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구온난화 테마주가 잘 나간다더니, 신종플루 핑계로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지려 하는 아이들에 비해 돈벌이에 약삭빠른 어른은 개탄스럽지 않은가. 의젓한 어른의 행동이었나. 하여튼, 불안을 팔아 돈을 버는 상품으로 신종플루도 입시 교육 이상 손색이 없는 모양이다.

 

슈퍼마켓 선반에 올라오기 무섭게 동이 나는 항균 세제는 요사이 필수품일까. 신종플루를 포함해 세균의 99.9퍼센트를 제거해준다고 광고하는 손 세정제들은 보통 비누보다 크게 비싸지 않고 거품도 잘 나며 향기도 좋다던데, 이참에 집안의 비누와 샴푸를 몽땅 없애고 아예 항균 세제를 쓸까. 올 여름에는 아폴로눈병이 대폭 줄었다던데, 신종플루나 아폴로눈병이 아니라도 자주 손 닦는 거야 말릴 일이 아니지만, 생각해보자. 주의사항이 유별난 항균 세제 덕분에 광고 문구처럼 손의 세균이 싹없어졌다고 하자. 이제 그 손으로 일을 해야 한다. 연필, 문고리, 가방끈 들을 잡을 때마다 무수히 많은 세균들이 금방 붙을 텐데, 다시 항균 세제를 찾아야 하나. 99.9퍼센트의 세정력에 손을 맡기기보다 중요한 건 내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일이다. 항균세제는커녕 비누도 사용하지 않았던 우리 조상은 언제나 청청했다. 신종플루는 물론이고 계절 독감도 요즘보다 훨씬 드물었을 것이다.

 

 

독감 유전자의 경이로운 변이 속도

 

신종플루라고 우리 정부가 작명하기 전에 세계보건기구는 돼지독감(Swine Flu.)이라 칭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러스의 내부에 존재하는 유전자 8가닥이 모두 돼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멕시코 남부 베라크루스 주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양돈 다국적기업, 미국계 ‘스미스필드 푸드’에서 증세가 시작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그 바이러스의 내부 유전자를 분석하니 북미의 돼지독감에서 기원한 게 분명하므로, 돼지독감이라 명명한 건 정당했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돼지고기가 팔리지 않자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에 압력을 가했고, 미국의 우산 하에 있는 국제수역사무국(OIE)까지 명칭 변경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추정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 전문가들이 명칭 변경에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가.

 

미국이 작명한 ‘인플루엔자A’까지 이해하겠는데, 이어지는 ‘H1N1’은 무슨 암호인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 하도록 전문가 냄새나게 붙인 H1N1은 독감 바이러스의 표면에 수없이 돌출된 단백질 구조 두 가지를 지칭한다. 막대처럼 돌출한 헤마글루티닌과 끝이 버섯처럼 부푼 뉴라미니다아제가 그것이다. 바이러스의 내부 유전자가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숙주의 세포막을 여는 기능을 하는 헤마글루티닌은 16가지, 숙주 세포 속에서 새로 복제된 무수한 바이러스를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뉴라미니다아제는 9가지로 밝혀져 있으니, 독감 바이러스는 현재 144가지가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헤마글루티닌이든 뉴라미니다아제든, 앞으로 얼마든지 종류가 늘어날 수 있다. 그중 H1N1은 1918년 창궐해 당시 세계 인구의 1퍼센트에서 5퍼센트 정도인 5천만에서 1억 명 정도 사망하게 했다고 알려진 스페인독감과 같은 형태다.

 

지금부터 90년 전, 1차대전 참호 속의 무수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스페인독감은 발생 초기인 봄에는 조용히 지나갔지만 여름에 변형되자 느닷없이 무서워졌다. 사람의 왕래가 요즘과 달랐어도 유럽을 휩쓴 당시 바이러스는 세계 곳곳으로 퍼졌고 특히 인도에 참혹한 피해를 안겼다. 시체가 하천에 둥둥 떠내려오는 걸 본 시골 사람들이 놀라 도시에 파고들었는데 그만 그들이 모인 슬럼에 바이러스가 집중 창궐했다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도 14만 명이 사망했다는데, 일본은 27만, 미국은 55만, 유럽은 200만, 인도는 무려 18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역사는 묵묵히 참상을 기록한다. 현재 그리 치명적이 아닌 신종플루는 무시무시했던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와 표면의 단백질 구조가 같다지만, 독성의 차이가 두드러진 걸 보아 내부 유전자는 판이하게 다를 게 틀림없다. 90년 세월 동안 인간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환경을 뒤바꿔놓았으니 독감 바이러스도 변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독감은 사실 어떤 바이러스보다 경이로운 변이 능력을 가졌다.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아제의 다양성만이 아니다. 내부의 유전자가 DNA인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달리 RNA로 구성된 독감 바이러스는 정확성이 아주 떨어져 복제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변이체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DNA를 가진 바이러스보다 대략 100만 배나 빠르다고 《조류독감》의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놀라워한다. 스페인독감도 그랬을 거다. 한데 무수히 많은 변이체 중에서 하필 독성이 강력해진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만연될 줄이야.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당시의 공포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는데, 사실 스페인독감 이후 거의 10년 주기로 맹독성 독감이 반복되었고, 많은 경우 변이체가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메랑이 될 정도로 농약의 독성을 갱신해왔지만 사람의 과학기술이 잡초나 해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건 경험적으로 입증되는 정설이다. 거듭되는 최첨단보다 잡초와 해충의 변이가 훨씬 빠르기 때문인데, 항생제도 마찬가지다. 대략 20분마다 분열하는 우리 몸속의 세균은 항생제가 배설돼 나가기까지 10시간이면 충분히 내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10시간 동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거푸 분열한다면 세균은 5억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는데, 그중 한 마리에 내성이 생기기만 해도 어렵사리 만든 항생제는 다음에 소용없게 될 것이다. 예방주사도 마찬가지다. 변형된 세균에 대처할 예방주사는 다시 개발해야 할 게다. 바이러스는 어떤가. 세균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세균보다 훨씬 빠른 게 보통인데 독감 바이러스는 보통 바이러스의 100만 배라니. 효과가 아무리 빼어난 백신을 공들여 개발해도 금방 쓸모없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보건소를 찾는 이에게 접종하는 독감백신은 작년 비축분과 염연히 다르다. 올해 유행할 독감이 작년과 같을 리 없기에 보건소는 해마다 백신을 새로 준비해야 하고, 그를 위해 세계의 관련학자들은 정보를 활발하게 교환하며 연구를 거듭한다. 계절 독감의 백신은 한 가지 바이러스만 예방하지 않고 주사를 맞았다고 모든 항체가 공평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접종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를 텐데, 그건 신종플루 백신도 마찬가지일 게다. 여러 나라의 제약회사에서 성공적으로 개발한 신종플루 백신은 시방 경제 여력이 있는 국가부터 본격적으로 접종되고 있다. 다행히 이렇다 할 부작용이 보도되지 않고 신종플루의 전파 속도도 주춤해진다고 하는데, 걱정은 남는다. 이미 신종플루 변이체 출현이 여러 차례 보도된 마당에서 백신의 효과가 얼마나 유효할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의 저주

 

신종플루의 8개 유전자는 출처가 복잡하다. 북미와 아시아의 돼지 뿐 아니라 사람과 조류에서 기원한 유전자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재조합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한 숙주에 두 가지 이상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들어간다면 각 바이러스는 복제 과정에서 내부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고 심지어 그 유전자의 일부도 교환하며 뒤섞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숙주에 동시에 침투한 두 독감 바이러스는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아제의 종류와 무관하게 오만가지로 변형돼 빠져나올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조류를 감염시킨 바이러스가 돼지를 감염시킨 뒤 재조합돼 빠져나와 사람을 공격한다면? 그 바이러스의 유전자에는 조류와 돼지에서 기원하는 유전자를 모두 가질 수 있겠다. 이번엔 다시 돼지를 숙주 삼는다면? 그 돼지는 사람에서 기원한 유전자의 공격도 받겠지. 바로 신종플루의 실체다. 돼지와 사람과 닭이 가까이 몰려 있다면? 재조합은 식은 죽 먹기로 이뤄질 수 있겠다.

 

겨울철새가 날아올 때면 정부는 조류독감 대책을 세운다. 담당 공무원은 발생 즉시 그 축사를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에 안전반경을 긋고, 그 안에서 사육되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같은 가금류를 모조리 살처분할 것이다. 멀쩡히 살아있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위해 철두철미하게 죽이고 말 것이다. 조류독감이 H5N1과 같은 고병원성이라면? 안전반경은 10배로 확대될 것이다. 안전반경 안에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면? 돼지까지 불문곡직 죽일 것이다. 조류가 아니라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다짜고짜 살처분할 것이다. 축사에서 종일 일하는 사람을 이따금 감염되게 만들기도 하는 조류독감은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퍼져나가지 않지만 조류독감이 돼지를 거치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돼지에서 사람에게 옮겨가면 이후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전파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독감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3개월 동안 증상이 없는 돼지는 호흡기 세포의 표면에 돼지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사람과 조류의 독감도 달라붙는 수용체가 있다고 한다. 돼지 세포에 들어간 두 가지 이상의 독감 바이러스가 제멋대로 재조합된 뒤 빠져나와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경우에 따라 속수무책일 수 있다는 거다. 신종플루가 그랬을 거다.

 

신종플루가 시작된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 스미스필드 푸드 인근 마을은 양돈장에서 무단 배출한 분뇨 때문에 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왔고 신종플루가 세상에 알려지기 직전인 올 2월에는 주민의 60퍼센트인 1800명이 급성 호흡기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멕시코 보건당국이 감기라고 단정했다지만 신종플루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텐데, 당초 돼지독감이라 했던 신종플루는 왜 100만 마리나 되는 스미스필드 푸드의 돼지들을 눈에 띄게 공격하지 않았을까. 100만 마리를 일일이 조사하지 않았을 테지만 일부 돼지는 감염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신종플루를 돼지에 전파한 사례는 보고된 적은 있었다. 신종플루는 그 돼지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은 모양인데, 사람의 감기처럼 돼지에게 별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돼지에 대한 예외 없는 공장식 축산 구조로 볼 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독감은 A와 B, 그리고 C형으로 구별한다. C형은 감기로 약화된 형태고 B형은 주로 면역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을 괴롭히는 겨울 독감이다. 과거에 A형이었지만 오랫동안 인간 사이에서 순화된 결과라고 전문가는 풀이하는데, 굳이 통계를 내지 않아 그렇지 B나 C형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제는 주로 조류독감에서 기원하는 독감 A형이다. 겨울철새가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조류독감은 양계장의 닭들을 처참하게 몰살시키는 질병으로 우리 뇌리에 각인돼 있다. 갯벌 주변의 호수나 강 하구에 바글거리는 대부분의 철새들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감염된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왜 떼로 죽을까. 제아무리 고약한 독감이 창궐해도 양계장의 닭처럼 떼로 죽는 생물은 자연에 일찍이 없었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조류독감처럼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있었을 독감도 그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치명적이었다면 역사가 반드시 기록했을 테니까.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왜 사람이 사육하는 가금류만 무더기로 죽이는 걸까. 그것도 최근에 유독.

 

독감을 앓는 겨울철새는 먼 길을 동행하지 못했을 테니 우리나라를 찾은 철새는 별 증상 없이 바이러스만 가지고 왔을지 모른다. 그 독감 바이러스가 사육 중인 닭이나 오리에 침투하려면 철새의 배설물이 하늘에서 에어로졸처럼 퍼졌다 축사로 스며들어야 가능할 텐데, 그런 일은 철새들이 도착한 이후에 발생했을 것이다. 날아오는 도중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철새는 배설할 게 없다. 허기진 상태에서 갯벌의 갯지렁이나 들판의 나락들을 잔뜩 먹은 철새들이 해안 여기저기의 갯벌이나 호수로 이동하면서 배설했을 테고, 그때 바이러스가 포함된 배설물의 일부가 환풍기가 돌아가는 양계장으로 스몄겠지.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에도 조류독감으로 죽어가는 철새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서해안의 갯벌이 예전처럼 드넓었다면 겨울철새는 굳이 먼저 온 철새들로 바글거리는 호수에 비집고 끼어들 이유가 없었을 거다. 갯벌이 매립돼 사라지자 좁아터진 호수나 매립지 주변의 유수지라도 감지덕지 내려앉을 수밖에 없고, 온갖 철새들로 뒤엉킨 호수에서 배설하며 물을 마시다 질병을 서로 전파하게 되었을 것이다. 조류독감도 물론 공유할 테고. 먹이를 먹고 체력을 이내 회복한 철새들은 별 증상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기진맥진 날아왔다 제대로 먹지 못한 철새는 면역력까지 약화되었을지 모른다. 그런 녀석들은 결국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죽은 모습으로 수집되었고,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철새가 날아올 때면 철새 이동 구간의 담당 공무원과 양계농가에 비상이 걸리지만 뾰족한 대책은 세우지 못한다. 그저 조류독감이 발생한 축사를 신속히 폐쇄하고 안전반경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돼지를 바삐 살처분할 따름이다. 지침에는 안락사시킨 후 매장하는 것으로 분명히 규정돼 있지만 시간과 일손이 부족한 현장은 달리 진행될 때가 오히려 많다.

 

중복 날 우리나라의 모든 군인은 영내 식당에서 닭이 한 마리 들어간 삼계탕 한 그릇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다. 그를 위해 아마 100만 마리의 닭을 준비해야 할 텐데, 차라리 병아리에 가까운 그 닭은 몸의 크기나 무게가 거의 똑같다. 기계로 처리하는 까닭에 제각각이면 고장의 원인을 제공한다. 기계를 위해 닭의 유전적 다양성을 오차 범위 내로 위축시킨 것이다. 부화 후 딱 35일 키우면 삼계탕 뚝배기에 쏙 들어간다. 그런 삼계탕용 닭을 육종하기 위해 축산과학은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 근친교배를 반복시켰을 것이다. 삼계탕 용 닭만이 아니다. 튀김과 산란을 위한 닭이 그랬고, 용도에 맞는 병아리로 부화될 유정난만 죽어라고 낳아야 하는 암탉도, 그 암탉들과 죽을 때까지 짝짓기 해야 하는 수탉이 그랬을 것이다. 닭만이 아니다. 오리도 메추리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먼저 벌어들이기 위해 최대로 좁힌 공간에 최대한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의 진면목이다. 개성이 말살된 축산동물의 유전적 다양성은 몰수되었고, 그런 만큼 축산동물은 타고난 면역을 잃어 질병에 약해졌으며, 밀집된 실내에서 부대끼는 만큼 질병은 쉽게 번지게 된 거다. 항생제를 사전에 처방해도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가금류만이 아니다. 꿀벌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에 의한 극도의 근친교배와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진 벌을 밀집시키는데 있다. 아카시아 꿀을 위해 봄이면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하는 우리처럼 미국은 아몬드 나무의 꽃이 필 때 전국의 벌통이 캘리포니아로 몰렸다 흩어진다. 질병이 쉽게 퍼질 수밖에 없다. 유전적 다양성이 억압된 개체들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건 돼지와 소도 마찬가지다. 수명과 임신 기간이 긴만큼 닭처럼 극단적으로 육종하지 못했어도 용도에 따라 품종을 개량한 뒤 분리해 사육하는 건 똑같다. 사육과 음식문화가 다른 까닭에 소는 대륙과 국가마다 맛과 생김새가 조금씩 차이나지만 돼지는 세계가 거의 공통이다. 몇 마리 안 되는 수컷의 정액을 집중 사용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거래하기까지 한다. 아직 소나 돼지에 고병원성 독감이 창궐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치명적인 구제역은 조류독감 이상 무섭다. 광우병의 원인도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개 도축이 합법화된다면 우리나라는 개도 돼지처럼 육종해 사육할 것이다. 삼복중의 라디오 토론장에서 패널로 나온 어떤 육종학자는 벼르고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위생적 도축을 명분으로 도축을 허가한다면, 이후 우리나라의 개는 어떤 모습으로 토실토실하게 육종돼 밀집 사육하게 될지, 상상에 맡긴다.

 

 

면역이 약한 요즘 젊은이들

 

11월 초 현재, 세계적으로 6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하루에 9천 명 가까운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하는 우리나라도 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다른 질병에 노출되었거나 나이가 든 고위험군 환자였다. 정체를 몰라 허둥댈 수밖에 없었던 초기 상황에서 벗어난 다른 나라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나라나 치료제 처방이 늦어 숨을 거둔 젊고 건강했던 이가 없진 않을 것이다. 건조해지는 겨울이면 전파 속도가 빨라지므로 더 지켜볼 일이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백신을 본격적으로 투여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치료제가 충분할 뿐 아니라 의료 체계도 양호해 공포를 일으킬 정도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을 거로 전문 의사들은 예상하면서 학생들이 백신 주사를 맞고 방학에 들어가면 이내 주춤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다만 스페인독감처럼 강력해진 변이체가 만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남아 있다.

 

같은 H1N1이라 그런가, 90년 전의 스페인독감처럼 신종플루도 많은 젊은이들이 감염되는 양상을 보인다.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과 관계없이 젊은 감염자가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단순히 바깥 활동이 많기 때문일까. 요즘 단위 부대의 지휘관들은 울상이다. 휴가 다녀온 병사는 무조건 1주일 격리시켜야 하니 도무지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거다. 영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게 해도 감염자가 발생하기도 한다는데, 공교롭게도 자대에 막 배치된 신병이거나 제대를 앞둔 선임 병장에 많다고 한다. 군기나 체력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신종플루 감염은 어쩌면 면역을 약화시키는 패스트푸드나 첨가물이 듬뿍 들어간 음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입대 전과 제대 후의 젊은이일수록 식품첨가물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어진 건 분명하므로.

 

1990년대 초 덴마크 연구진이 21개 국가에서 1만5천 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정자 수를 비교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50년 만에 정자 수의 45퍼센트가 줄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영국과 일본도 잇달아 같은 결과를 보고했다.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 말하는 ‘내분비 교란 물질’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짐작하는데, 정자 수 감소와 기형 정자는 가공식품을 즐겨 먹는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고 덧붙인다. 우리나라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분비 교란 물질만이 아니다. 항생제와 여성호르몬이 포함된 계란과 우유, 그리고 그 가공식품도 문제를 일으키지만 평생 320킬로그램 먹는다는 식품 첨가물도 예외가 아니다.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인 식품회사 전직 연구실장은 “아이에게 과자를 주느니 차라리 담배를 주라고!” 경고할 지경이다. 면역이 약한 아이들에게 아토피 피부염이 증가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인데, 입맛을 길들이는 가공식품을 어려서부터 먹어온 젊은이에게 아토피가 많은 걸 미루어보면 그들의 면역도 과거와 다를 게 틀림없다.

 

뉴욕은 미국에서 19번째로 학교 급식 목록에서 우유를 뺀 주가 되었다고 한다. 젖소가 신선한 바람과 이슬을 머금은 풀을 초원에서 뜯는 게 아니라 축사에서 오로지 유전자가 조작된 옥수수와 콩만 축내는 까닭에 우유에 비만과 당뇨를 유발시킬 칼로리는 넘치지만 균형 잡힌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결핍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우유의 역습》에서 저자 티에리 수카르는 우유를 완전식품으로 알고 먹어댄다면 비만, 당뇨, 심근경색 뿐 아니라 골다공증이 유발되고 발암 위험이 높아진다고 증언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국의 낙농협회에서 노발대발할 내용이지만 우리를 포함한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우유. 이 땅의 젊은이들도 입에 달고 다닌다. 첨가물이 듬뿍 들어간 과자와 더불어, 아침 대신.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요즘의 많은 젊은이들은 김치를 외면한다. 세련된 서구적 취향을 가진 듯, 김치를 외면하는 걸 자랑스레 여기기도 한다. 한데 김치를 찾는 이는 다른 국가에서 늘고 있다. 일본은 물론이지만 2003년 치명적 호흡기 질환 ‘사스’로 국가적 공항 상태에 빠졌던 중국도 김치 소비가 늘어난다. 최근 중국에 가면 손님상에 기본으로 김치를 내놓는 고급식당을 자주 보게 된다고 여행자들은 말한다. 얼마 전 뉴욕에서 김치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값비싼 인삼이나 홍삼이 아니라도 김치가 면역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김치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영양분이 풍부한 우리 전통 식품은 조리 방법이 우수하다. 영양분 파괴를 최소화하고 면역력을 높인다. 우리는 어떤가. 잎채소는 대개 날로 먹고 김치와 깍두기는 콩과 더불어 발효해 먹으며 나물은 데쳐 먹는다. 밥은 끓여 먹고 전은 얇은 기름에 부쳐 먹으며 고기는 구워 먹는다. 기름에 빠뜨려 튀기는 음식은 거의 없다. 한데 요즘 젊은이는 거의 반대 순서로 조리한 음식을 즐긴다. 그것도 출처가 불분명한 살코기 위주로.

 

 

나가는 글

 

최근 신종플루 위기 단계를 ‘관심(Blue)’, ‘주의(Yellow)’, ‘경계(Orange)’를 넘어 최상위인 ‘심각(Red)’으로 격상한 정부는 행정안전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 재난 안전 대책본부’를 발족하고 동시에 전국 시군구에 단체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지역 대책본부’도 가동시켰다. 2006년 ‘국가 전염병 재난 단계’를 만든 이래 처음이다.

 

심각 단계를 계기로 소방방재청은 민방위교육을 전면 중단했고 교육과학부는 학생에 대한 예방접종을 앞당기기로 했으며 국방부는 그를 돕기 위한 군의관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472개 거점병원의 병상을 입원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중환자를 위한 병상을 추가한 정부는 전 국민의 20퍼센트에게 처방할 수 있는 1100만 명 분의 치료제를 연말까지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감염자의 증가 추세에 따라 범정부 차원에서 신종플루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정부의 의지를 천명한 담당 고위 관료는 “현재에도 심각 단계에 준하는 방역 대책과 사회적 차단 조치를 취하는 만큼, 단계 격상으로 인해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일사불란한 정부와 달리 시민은 딱히 할 일이 없다.

 

고위험군이 아니면 치사율이 고작 0.01퍼센트에 불과한 신종플루는 현재 무시할만한 질병의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해마다 7천명이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해 안전하다거나 만5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보다 무섭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신종플루 때문에 여행과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는다면 국내총생산이 5.5퍼센트나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언론은 홈쇼핑과 온라인 교육업계가 활황을 맞았다고 소개하면서 매출 실적이 배 가까이 늘어나 주식시장에서 대박이 난 기업에 마스크와 세정제를 파는 회사도 포함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현재의 독성이 약하다 해도 경제적인 두려움만이 신종플루 걱정거리의 전부가 아니다.

 

손만 잘 씻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정부의 홍보에 따라 휴지나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과 제체기를 한 뒤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며 손을 바로바로 닦는 시민들은 증상이 계속되면 확진검사 비용을 들고 거점병원으로 달려야 할 따름이지만 여전히 불안해한다. 정부와 언론의 이야기도 혼란스럽지 않던가. 그러자 의협심 익명의 의사가 인터넷에 나서서 “타미플루는 충분하고 백신은 안전하니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며 다독거린다. 고마운 일인데, 그들도 변형된 신종플루의 위험성은 배제하지 못한다면서 손을 잘 씻자고 물러선다. 아니, 손을 잘 씻는다고 신종플루의 변형까지 막을 수 있다던가. 녹색으로 위장한 온갖 개발로 환경이 더욱 교활하게 파괴되는 이때, 신종플루의 변형은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을 텐데,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개인의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노릇이 아닐까.

 

한겨레21 최근호(784호)는 “김치와 인삼의 면역력에 기대려는 문명사회가 궁색하다 여긴다면 신자유주의 문명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것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눈이 크게 떠지는 대목이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박상표 편집국장은 “산업화 이전까지 인간과 바이러스는 비교적 평온한 공생관계를 유지했지만, 산업혁명 이후 생태계 파괴, 지구온난화에 따른 자연재해, 초국적 거대기업 중심의 공장식 축산업, 신자유주의 이후 빈곤층 증대 등이 바이러스 대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한 ‘한겨레21’은 철새의 서식지를 빼앗아 조류 인플루엔자를 앞마당에 불러들이는 4대강 개발 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을 그런 성찰 중의 하나로 거론했다.

 

어처구니없게 ‘살리기’를 앞세우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도 당연히 반대해야겠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 조류독감과 신종플루의 변형을 최대한 억제하려면 겨울철새가 깃드는 갯벌을 송두리 째 매립해 온실가스 마구 배출할 개발에 몰두하는 행위와 더불어 조수의 흐름을 제방으로 막으며 갯벌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는 조력발전도 경계해야 하고 공장식 축산과 함께 권력자가 가치를 규정한 획일적 사고에 복종을 강요하는 우리의 줄 세우기 교육도 반드시 돌이켜야 한다.

 

결국 선조의 자연스러운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게 결론인지 모른다. 지구의 자정능력과 자신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행위, 다시 말해 생태계의 자연스런 질서를 교란하는 개발을 막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때 가장 건강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지 모른다. 11월 7일자 한겨레 신문에 쓴 이계삼의 말처럼 “자연은 신종플루를 통해 이 가공할 재앙을 향한 경고등을 크게 한번 깜빡인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면 아직 돌이킬 수 있을 때 자연스러움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종플루는 인간의 오만한 행위에 반성을 촉구하는 자연의 준열한 죽비일 것이다. 지금은 경고를 보내는데 머물지만 죽비는 곧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환경과생명, 2009년 겨울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4. 19. 03:53

 

기상 관측 이래 4월 최고의 더위가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3월 더위 이후에 맹위를 떨칠 때, 남동공단유수지와 길 건너 외암도유수지를 찾았다. 작년 늦은 가을에서 이른 겨울, 기억을 따라 내려왔던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어나가 인천의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발을 동동 굴려야 했던 곳이다. 지금 그곳은 목하 공사 중이다. 아암도에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확장하느라 파일 내리치는 굉음이 고막을 자극하는 가운데 수많은 중장비가 들락거린다.

 

너른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남동공단은 바다를 연하는 남쪽 자리, 승기천이 갯벌로 빠져나갔던 곳에 남동공단유수지를 넓게 남겼다. 빗물을 완충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채워둔 물을 사용하려는 의도였지만 한번도 활용된 바는 없다. 사실 갯벌을 평탄하게 매립한 곳에 유수지는 필요하다. 풍수해가 있을 수 없는 갯벌 위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깔았으니 당연하다. 내리는 비는 어디론가 낮은 곳으로 흘러야하는데 매립지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넘치는 빗물이 공장이나 건물에 스며들도록 놔둘 수 없으니 빗물을 받는 하수도는 유수지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남동공단의 남쪽에 조성된 유수지는 한쪽으로 편중되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게다가 빗물을 받아야 하는 관에 공장 폐수관로를 잘못 이어놓는 일이 초기에 잦았다. 조성되자마자 폐수가 고이며 악취가 진동했으니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인근에 승기하수종말처리장이 생기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남동공단과 연수구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한 오폐수가 정화돼 모이고, 하수관로가 다시 정비되면서 빗물이 흘러들자 남동공단유수지가 개과천선한 것이다. 아직 악취는 남았어도 철새가 날아들고, 철새를 반기는 시민들이 보전의 목소리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조수간만의 차가 유난한 인천의 바닷물이 오랜 세월 밀고 썰며 만들어낸 남동공단 이전의 인천갯벌은 참으로 완만하면서 넓었다. 육지에서 쏟아지던 흙과 모래를 먼 바다로 가지고 나갔다 다시 바닷가로 되가지고 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갯벌에는 생명들이 가득했다. 그 생명들이 먹고 숨 쉬며 후대를 이어오면서 갯벌은 육지에서 쏟아지는 영양염류를 정화했고 갯벌을 구성하는 막대한 식물성플랑크톤은 대기를 정화했다. 그 갯벌의 일부가 남동공단으로 매립돼 사라졌어도 나머지가 광활했을 때 갯벌을 미처 떠날 수 없었던 주민들은 맨손으로 수많은 어패류를 채취해왔고, 덕분에 시민들은 인천의 풍요로웠던 풍미를 조금이나마 기억할 수 있었다.

 

송도신도시를 위해 남동공단 너머의 갯벌까지 대부분 매립되면서 유구했던 인천의 맨손어업은 일거에 자취를 감췄다. 사람보다 먼저 깃들었던 생명들은 운 좋으면 화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남동공단보다 훨씬 광활한 송도신도시 부지에 공원은 넓어도 유수지가 없지만, 해안도로와 송도신도시 부지 사이에 물길을 조금 남겼다. 거기가 바로 겨울철새의 가녀린 안식처 외암도유수지다. 인근에 조그맣게 남은 송도11공구, 소래포구와 연한 ‘고잔갯벌’에 밀물이 높아질 때 바닷물의 일부가 교환되기는 하지만 허구헛날 정체되는 외암도유수지가 빗물을 완충할 능력은 없을 것이다. 드넓은 송도신도시 부지의 가운데를 관통해 바다로 이어지는 공원이 그 역할을 대신할 텐데, 확장되는 해안도로에 침식되는 외암도유수지는 송도신도시 7공구와 연접한 곳에 갈대가 무성하다. 지친 겨울철새들에게 쉼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천의 오랜 체취가 사라진 송도신도시 부지에 갯벌센터와 컨벤션센터가 들어섰고 초고층 아파트단지가 완공된 후에 151층 쌍둥이 빌딩이 자리할 예정인데 아마도 유전자 어디에 자리잡았을 기억을 가다듬는 생명들이 인근의 습지에 깃든다. 호수가 얼어붙기 시작하는 시베리아를 떠나 지금의 남동공단과 송도신도시 일원의 갯벌로 해마다 찾아오는 겨울철새가 그들이다. 남은 곳이 고작 고잔갯벌이고 물이 고이는 쉼터가 겨우 남동공단유수지와 인근의 좁디좁은 외암도유수지에 불과하더라도 그들에게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보톡스. 전직 대통령도 처방했다니, 주름살을 없애는 무슨 신비의 약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독약이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보툴리눔 독소. 그 독소를 충분히 희석한 보톡스는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임상에 적용시킨 무수한 의약품 중에서 하나로, 성형에 이용하자 각광받은 예가 될 것이다. 성형에 적용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 보톡스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위험한 독성을 이용한다. 보톡스를 주입하면 마비된 근육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 위축될 터. 그런 약효로 사각턱이 잠시 갸름해지고 주름이 한시적으로 제거된다는 거다. 성형외과 의사들은 안전을 장담하지만, 참으로 과감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농도가 문제일 뿐 모든 물질은 독약이라고 어떤 화학자는 말한다지만 아무리 희석한다 해도 분명한 독극물이라면 환자 이외의 다수에게 예뻐지라며 처방할 의사는 없을 것 같은데, 보톡스를 주사맞는 이는 과연 환자일까. 차라리 고객이라 해야 옳지 않을까. 여기에서 그런 거 따지지 말자. 하기야 강력한 독성물질인 불소도 적당한 농도로 수돗물에 섞으면 이가 튼튼해진다고 주장하는 의사도 있다. 문제는 수돗물에 들어가면 싫어도 무차별적으로 마실 수밖에 없으므로, 선택의 문제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따라서 불소가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분명하더라도 원하는 사람에게 제한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아무도 늙어가는 걸 좋아할 리 없다. 가능하다면 얼굴에 주름이 없기를 바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불소와 같은 맥락으로 수돗물에 보톡스를 안전한 농도로 섞자는 발상은 나오지 않는다. 가격이 높거나 먹어 효과를 보는 약품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몸에 축적되는 불소는 나이든 이의 뼈를 부러뜨릴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처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보톡스의 부작용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보툴리눔 독소는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보통 상한 음식이나 통조림에 숨어있던 포자로 번성하는 미생물, ‘클로스트리움 보툴리눔’이 분비하는 보툴리눔 독성은 사린가스보다 10만 배나 강해 몸무게 1킬로그램 당 천분의1 마이크로그램으로 실험동물의 절반을 죽게 만들 정도라고 한다. 1995년 3월 동경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하여 12명을 사망케 하고 5천여 명을 호흡곤란에 빠지게 한 오옴진리교는 그 전에 보툴리눔 독소를 살포하려 몇 차례 시도했다는데, 보툴리눔 독소는 위장 뿐 아니라 호흡기를 통해 몸에 들어와도 문제를 일으킨다. 먼저 발음과 발성이 마비되고 동공이 확장돼 시야가 흐려지며 골격근이 마비되다 호흡이 급격히 불가능해지면서 급기야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처럼, 정신은 명료한 가운데 몸이 마비되면서 죽어가는 보툴리눔 독소증을 보툴리즘이라고 말한다. 젊음을 아름답게 유지하려는 욕망은 보톡스를 마다하지 않는데, 처방하는 의사나 처방을 받는 환자(어쩌면 고객)는 그 치명성을 모르는 것인가, 알면서도 감당하는 것인가. 아름다움이 반드시 젊음만은 아니지만 내면보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향한 사람의 집착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가. 보톡스는 백혈병이 깊어진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죽음으로 이끈 장미 가시보다 더욱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유혹인지 모른다.

 

보톡스는 안전하게 희석한 사람의 성형용 의약품일 따름이라고 의사들이 주장하니 이제 언급을 자제하기로 하고, 보툴리즘은 어느 동물에게나 치명적인데, 인천의 갯벌에 날아온 겨울철새에게 보툴리즘처럼 치명적인 사건은 이제껏 없었다. 신선한 풀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누와 순록 떼처럼, 섭생과 양육을 위해 크릴새우가 넘치는 남극을 찾아갔다 다시 적도로 돌아오는 혹등고래처럼, 시베리아의 호수가 단단히 얼어붙기 전에 청둥오리, 황오리, 흰죽지, 기러기 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쉼 없이 날아 우리나라 서해안을 찾는다. 거기에 갯벌이 있기 때문이다. 무리를 이끌고 전에 내렸던 곳을 당도해 하늘에서 바라보니 온갖 중장비들이 몰려들어 갯벌을 떠들썩하게 매립한다면 그들은 당혹스러울 것이다. 허기지고 지친 몸은 쉴 장소로 찾아 더 날아가야 한다. 사람이나 철새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쉴 자리를 찾지 못하면 더욱 피곤해진다.

 

겨울철새의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숨이 턱밑까치 차오르는데 남동공단유수지와 외암도유수지가 눈에 띈다. 드넓었던 갯벌이 사라진 뒤에 비좁게 물이 고였어도 거기엔 사람과 중장비가 들락거리지 않고 작년에 내려가 먹이도 구한 기억도 있다. 대부분의 철새들은 시화호나 화옹호, 천수만이나 멀리 금강하수의 더 넓은 곳을 찾아 남쪽으로 힘겹게 내려갔지만 거긴 먼저 도착한 겨울철새들로 북적인다. 갯벌이 자꾸 줄어드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더 날아갈 수 없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오호라! 먼저 내려간 새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지친 몸을 어서 쉬려면 예도 감지덕지라 여긴 철새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서둘러 내려간다.

 

아뿔싸. 그런데 거기에 보툴리눔 독소가 있을 줄이야. 썩은 통조림이 따뜻해질 때 번성해야 할 보툴리즘 균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늦은 가을에 창궐한 것이다. 그것도 플랑크톤이 가득한 갯벌에서. 더위로 썩어버린 갯벌에 만연한 보툴리눔 독소가 겨울을 앞둔 계절까지 남아 있으리라고 창공에서 헤아릴 방법이 없었던 겨울철새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 앞서 내려앉은 철새들이 평화롭게 보여 내려갔을 뿐인데. 내려와 보니 웬 구더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허기진 철새에게 구더기는 반가운 영양식임에 틀림없으니 허겁지겁 먹었을 테고, 이윽고 구더기는 보툴리눔 균을 겨울철새에 전파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신은 멀쩡한데 온몸은 마비되니 날아오르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물에 떠있을 뿐인데 창공에서 그 모습을 본 철새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그리고 구더기를 먹는다. 그 구더기는 유수지에 맥없이 떠있는 철새의 옆구리를 뚫고 빠져나온 것이다.

 

자원봉사 점수가 없다면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환경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현장에 모여들 리 없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할당된 시간을 채워야하는 까닭에 하릴없이 관공서 유리창을 닦던 학생들을 불러모으려면 환경단체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 이른바 ‘놀토’를 택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럴 여유가 없이 다급했다. 내려오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막대기를 하늘에 대고 정신없이 휘둘러도 아랑곳하지 않는 철새들은 당연한 듯 구더기를 먹지 않던가. 온몸이 마비돼 죽은 철새의 몸은 구더기로 뒤범벅이고 악취는 진동하건만 철새들은 또 내려온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황급히 자원봉사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토가 아니어도 와주는 학생이 있겠지. 한 사람이라도 더 와서 한 마리라도 더 날려 보내야하고, 죽은 철새는 한시바삐 수거해야 한다. 그래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 오후 남동공단과 외암도유수지에 약간의 학생들이 모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에 내리는 비는 뼈마디를 파고들고 시커멓게 썩은 갯벌에 발이 푹푹 빠지니 여간 힘겨운 게 아니지만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오르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며 죽어가는 철새들에 동정심을 느낀 학생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갈대숲 사이 여기에도 저기에도 썩어가는 사체들, 분명히 살아 있지만 옆구리에서 구더기가 스멀거리는 철새는 구조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를 잡아 올리면 다리와 몸이 떨어져나가며 죽고 마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다. 어쩌다 온전해 보여 번쩍 안아올린 철새도 맥을 못 추기는 마찬가지다. 짧아지는 해는 어느새 서편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마음이 급해 안절부절못하던 자원봉사 학생들의 눈매는 어느새 촉촉해졌다. 빗물 때문이 아니다. 속절없이 죽어가는 철새들에 속죄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구한 철새는 죽어가는 철새의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와 구더기가 사라지기까지 내려온 철새는 그 이후에도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날씨가 쨍하고 추우면 몸이 성한 철새들은 남쪽으로 날아갈 테지만 이번 겨울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 겨울철새에 닥친 보툴리즘은 남동공단유수지와 외암도유수지에서 한정하지 않았다. 안양천에도, 한강에도 철새들이 떼로 죽었다. 이상 고온으로 오염된 물의 용존산소가 고갈되자 보툴리즘을 일으키는 균이 이상 번성했기 때문이라고 보건환경연구소는 덤덤하게 밝혔지만 전문가의 원인 분석은 대개 거기까지다. 이상 기온이 계속되거나 심화되는 근본 이유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니 철새가 죽어나간다고 가슴앓이 하지 않고, 대책을 세우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지 않는다.

 

 

 

인천에서 영흥도로 가려면 시화방조제를 건넌다. 그때 왼편 차창은 화성의 파란 하늘을, 오른편 차창은 인천 연수구의 시커먼 하늘을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그 시커먼 하늘 아래 유수지에서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었다. 왜 그런 하늘을 택했을까. 인천에서 조금 더 먼 깨끗한 하늘로 날아와 주민들이 팔 걷고 보호하는 시화호나 지자체 차원에서 도래지를 관리하는 천수만과 금강하구로 날아갈 것이지. 철새로 붐비는 천수만과 금강하구에 내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서열이 낮았던 걸까. 아무튼, 저토록 오염된 하늘을 뚫고 날아왔으니 지칠만하기도 하겠다. 날아온 것만으로 용하고 고맙다.

 

영흥도에는 현재 80만 킬로와트급 석탄화력발전소 4기가 가동 중이다. 화력발전소 부지 확보를 위해 영흥도 해변의 갯벌을 매립하려 할 때, 주식회사 남동화력은 지키지 않을 협약을 매립허가권을 가진 인천시와 맺었다. 우선 2기는 석탄을 연료로 하는 발전소로 짓고 나머지는 청정에너지를 원칙으로 논의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건만 부지를 넓게 매립한 후 약속이행을 외면한 것이다. 법적 구속력 없는 협약을 남동화력이 지키지 않은 것인데, 인천시는 협약의 한계를 진작 알고 있었다. 오염된 대기 아래에서 숨쉬고 살아야 하는 인천시민은 누구를 원망하야 하나. 한데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정부에 석탄화력 4기를 추가해달라고 신청했다 2기의 건설을 허가받은 남동화력은 모두 6기에서 만족할 자세가 아니가 때문이다. 8기를 늘 가동할 수 있도록 12기를 확보하려는 의지를 은근히 드러내곤 하지만 인천시는 거기에 대해 어떠한 발언권도 행사할 수 없다.

 

인천시는 수도권의 대기를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크고 작은 건물의 주인에게 보일러를 교체토록 종용했지만 그 효과는 영흥도에서 2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2기가 추가된 현재 모두 4기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황이나 질소산화물의 배출 총량이 늘어나지 않았으니 악화된 건 아니라고 남동화력은 강변하고 싶겠지만 그건 대기에 한한다. 온배수를 따져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발전소는 터빈을 빠져나온 수증기를 식혀야 하는데, 그를 위해 깊은 바다에서 차가운 물을 퍼올리고, 수증기를 식히고 데워진 물을 인근 바다로 내보낸다. 그 물이 온배수다. 발전용 터빈이 늘어날수록 온배수의 양이 늘고, 그만큼 주변 해역의 수온은 오를 수밖에 없다.

 

영흥도에 화력발전소가 가동한 이후 축적된 모니터링 결과가 아직 충분하지 않아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겠지만, 현재의 4기에서 6기로, 앞으로 8기에서 어쩌면 12기로 발전용량을 늘일 경우, 인천 앞바다의 수온은 예전에 없이 상승할 테고, 생태계는 괴멸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수온 변화는 해양 생태계의 기반인 플랑크톤의 분포에 변화를 초래하게 만드는데 영흥도 석탄화력발전소의 온배수는 지구온난화로 생태계 안정성이 흔들리는 바다를 더욱 교란할 게 틀림없다. 게다가 시화호와 송도신도시 개발로 대부분의 인근 갯벌마저 사라진 마당이 아닌가.

 

최근 겨울철새들의 집단 폐사가 끊이지 않는다. 2000년 천수만의 가창오리 만 여 마리가 죽은 사건을 필두로 제주도와 한강, 안양천과 탄천에서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철새들이 한꺼번에 죽어간다. 농약이나 밀렵꾼의 독극물도 빼놓을 수 없고 지구온난화로 이동 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이유도 배제할 수 없지만, 광범위한 갯벌 매립으로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한 게 근본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얼마 남지 않은 갯벌마다, 광활하게 매립한 지역에 넓게 조성한 저수지마다 철새들이 운집되었으니 바이러스의 창궐은 그만큼 쉽다.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서 도착한 철새들의 면역이 약화된 상태가 아닌가. 보툴리즘과 더불어 가금콜레라도 겨울철새들을 위협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방역당국을 긴장시키는 조류독감이 반복되는 이유의 설명이기도 하다.

 

이번 봄에 우리 땅에서 조류독감이 창궐하지 않았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철새가 없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동하면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양계장에 옮기지 않은 모양인데, 올해는 이대로 넘길 것인가. 내년 이후에도 마냥 안심할 수 있을까. 서해안에 갯벌이 광활했을 때 철새는 조류독감을 양계장에 퍼뜨리지 않았다. 조류독감에 걸린 철새 또한 면역이 지나치게 약화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앓다 이내 회복되어 돌아갔을 것이다. 농가를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먹는 닭들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지금 마당에 놓아기르는 닭은 거의 없다. 용도에 따라 극단적으로 육종한 까닭에 유전자 다양성의 폭이 현저히 좁아진 닭들만이 사육조건을 엄격히 관리하는 축사에 갇혀 사육될 따름이다. 그런 닭은 질병에 매우 취약하다. 철새의 배설물에 섞인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넘어진다. 올 봄에 시베리아로 떠난 철새들이 조류독감을 전하지 않았다 해도 올 겨울에 다시 찾을 철새들도 그럴지, 알 수 없다. 시베리아가 아니라 우리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남동공단과 외암도유수지에서 겨울철새들이 맥없이 죽어나갈 때 가까운 시화호에도 철새 천여 마리가 무더기로 죽었다. 바싹 긴장한 당국은 조류독감 바이러스나 보툴리눔 균을 먼저 의심했으나 간세포의 괴사를 유발하는 살모넬라 균에 의한 패혈증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살모넬라 균이 창궐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는데, 한 환경운동가는 이의를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멀티테크노 단지’를 만들기 위해 호수 주변에 ‘순환골재’라는 이름하에 15톤 덤프트럭 8000대 분량을 매립한 폐콘크리트에 그 혐의를 둔다. 노출된 사람도 위험에 빠지게 하는 폐시멘트 독성이 때문이라는 건데, 어느 주장이 맞든, 결국 분별없는 개발이 근본 원인인 셈이다.

 

 

 

7년 전, 보툴리즘으로 71마리의 저어새가 대만에서 집단 폐사했을 때, 정부의 체계적인 조사에 응한 전문가들은 “서식지의 단순화와 먹이자원의 고갈에 의한 밀집화 현상”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분별없는 해안개발에 경고했다. 환경단체 외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남동공단과 외암도유수지에서 겨울철새들이 죽어나가기 한달 전부터 우리나라를 중간 경유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들이 먼저 죽은 적 있었다. 정확한 조사가 없었기에 보툴리즘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어도, 사람에 의한 서식지 파괴와 오염에 의한 먹이 부족이 원인일 게 틀림없다. 거기에 지구온난화가 가중되었을 것인데 인천시는 마지막 남은 고잔갯벌마저 송도신도시 부지로 편입시키려고 혈안이다. 철새들이 죽어갈 때 누군가 보툴리눔 균은 새를 마비시켜 죽일 뿐 사람에 해를 마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죽은 새의 몸에 있는 균이 건강한 사람에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이었겠지만 사실 무모했다. 별 탈 없이 자나가 다행이었지만, 철새가 사라지는 환경에서 사람인들 편안할 수 있을까. 초고층빌딩을 편리하게 유지하게 하는 전기가 충분하다면 비록 자연이 황폐한 곳일지라도 사람의 행복은 내내 보장될까.

 

올 2월 ‘송도갯벌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동춘동의 평생학습관에서 특별한 사진전을 개최했다. ‘인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과 ‘인천녹색연합’의 손을 잡고 고잔갯벌을 포함하여 남동공단유수지와 외암도유수지를 찾아오는 야생조류를 촬영해온 성과를 골라 “인천의 마지막 갯벌, 송도에 오는 아름다운 새 사진전”을 연 것이다. 그들은 소박한 사진집에서 “그동안 우리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새들의 세상이 있었음을 깨닫고 나누지 못했던 자연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바램”을 전하면서 “사라져가는 갯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깃들여서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생명들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고잔갯벌마저 매립되면 인천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장다리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와 고방오리, 혹부리오리, 넓적부리들로, 보툴리즘으로 희생된 무리의 목록과 같았다.

 

인천에서 오래 살아온 시민들은 아암도를 기억한다. 지금은 해안도로에 보잘 것 없는 혹처럼 붙었지만 매립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을 따라 가족이나 친구, 어쩌다 애인의 손을 잡고 한두 번 정도는 다녀왔을 곳인 까닭이다. 아암도를 다녀온 후 낙섬에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던 인천은 지금 없다. 매립돼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추억도 차차 삭으러들 것이다. 외암도는 아암도에서 밖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라는 뜻인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딴 유수지에서 땀을 흘린 자원봉사자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구조한 겨울철새들은 올 겨울에도 인천의 갯벌을 찾으려 할지, 걱정이다. 외암도유수지와 남동공단유수지는 시방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더 넓고 빠른 도로, 더 높고 화려한 건물에 둘러싸일 철새도래지는 목하 성형수술 중이다. 보톡스를 맞는다. (황해문화, 2009년 여름호)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8. 12. 3. 12:35

 

가을답지 않게 무덥던 날씨가 기상관측 이래 계속되더니 추위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학원에 가는 아이에게 외투를 뒤집어씌워야 하는 계절이 다가온 것인가. 텔레비전은 시의적절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냉기를 냉큼 차단하려 아이가 내리기 무섭게 출입문을 닫는 운전기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차 밖을 유심히 살피지 못하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 생각하기도 싫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경각심을 유도하는 내용이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내리던 학원생의 외투가 학원버스의 문에 낄 경우, 내리던 아이가 출발한 차 아래로 딸려들어가는 사고는 겨울철에 드물지 않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는 대처할 수 없이 쇠잔해진 노약자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그건 자연계의 생물도 마찬가지다. 따뜻했던 가을에 봄꽃을 준비하던 나뭇가지가 얼고 미처 땅 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던 곤충 애벌레들이 내년을 기약하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관계없이 따뜻한 실내에 머물던 아이를 현관에서 학원버스 탈 때까지 잠시 밖으로 내보내는 부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닌데, 급작스런 기후변화는 철새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맘때 인천 남동공단 유수지와 주변 습지에 도래하는 겨울철새는 이번 추위를 어찌 맞을까.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를 찾은 겨울철새들은 더 추워지면 물이 얼지 않는 갯벌과 습지들을 징검다리 삼아 남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철새들의 상태가 궁금하다. 얼마나 남고 건강하게 떠났을까. 북쪽에서 온 새로운 무리가 내려앉았을까.

 

광활한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남동공단에는 빗물을 완충하는 넓은 유수지가 있다. 공단과 인근 아파트단지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정화처리한 하수종말처리장의 물이 빗물과 더불어 잠시 고였다 바다로 나가는 인공호수다. 하수종말처리장 완공 전에 모여든 오폐수의 두터운 오니가 여전한 까닭에 악취가 진동하지만 겨울철새는 남동공단유수지에 해마다 내려온다. 주변에 먹을 게 있는 갯벌과 몸을 쉬게 할 호수가 게 있기 때문인데, 달리 대안도 없다. 송도신도시 개발로 인간의 방해 없는 갯벌은 오로지 거기뿐이지 않던가. 조금만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오염된 시화호와 화옹호가 있지만 거기도 개발 바람이 거세다. 굉음을 울리는 온갖 중장비들이 지축을 흔든다. 멀리 천수만은 조용하지만 수십만 가창오리를 비롯해 백만에 가까운 겨울철새들로 이미 초만원이다.

 

하수종말처리장 생긴 후 다소 깨끗해진 물이 들어오면서 남동공단유수지에도 물고기들이 전보다 늘어났다. 먹이가 늘어난 호수에 철새는 이게 어디냐며 깃들고, 좁아터진 갯벌과 더러운 유수지라도 찾는 겨울철새는 겨울이 올 때마다 늘어나는데 서식환경은 나날이 열악해진다. 오염 때문만이 아니다. 주변의 개발 바람이 거세게 옥조여오는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철새보전 대책을 호소하던 인천의 환경단체는 새삼스레 발을 동동 구른다. 남동공단유수지와 송도신도시를 바라보는 갯벌에서 2천 마리 이상의 겨울철새가 집단으로 폐사하기 때문이었다. 수도권 최대의 철새도래지는 죽음의 현장으로 참혹해진 것이다.

 

 

 

갑작스런 추위에도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는 굳이 여름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토요일 남동공단유수지 주변 습지에서 4시간 넘게 계속한 자원봉사 때 신은 신발에서 고약한 냄새가 그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보통 환경단체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 자원봉사를 주관해왔는데 이번엔 사정이 급박했다. 새를 마비시켜 죽게 만드는 보틀리즘균에 겨울철새들이 속절없이 감염되지 않던가. 죽은 새의 몸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내려온 철새들은 허기진 상태에서 구더기를 허겁지겁 먹을 텐데, 그러면 새들의 죽음을 걷잡기 어려울 것이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새들을 얼른 수거해야 했던 환경단체는 수업 마치자마자 와달라고 학생들에게 호소했고, 죽은 새를 수거할 때 신었던 막내의 겨울신발은 한 차례 세탁으로 냄새를 모두 지우지 못한 것이다.

 

비가 내리는 오후 반나절을 자원봉사에 오롯이 사용한 막내는 제 핸드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준다. 집게로 머리를 툭툭 건드려도 겨울철새로 보이는 오리는 눈만 껌벅일 뿐, 달아나지 않았다. 몸이 마비된 거였다. 습지 가장자리의 갈대숲에는 썩어가는 오리들이 널려 있었는데, 수거하면서 푹푹 빠져야 했던 갈대숲의 개흙은 시커멓게 썩었으며 구토가 나올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고 진저리친다. 몸은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지만 죽어가는 철새를 수거하며 가슴이 울컥했다고 숙연하게 말한다. 절박한 환경단체의 호소에 흔쾌히 참여해 팔 걷어붙인 자원봉사자가 수거한 사체는 사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는 우리의 환경 현실을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지만 4시간이 넘는 고역에 몹시 지쳤고, 사체 썩는 냄새로 구역질을 감내해야 했지만 철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세균이라 하더라도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결국 해롭다고 보아야 할 텐데, 보틀리즘균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학관계가 관계당국에 의해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았으나, 늦가을답지 않은 무더운 날씨가 한동안 계속되면서 유기물이 부패를 일으키자 구더기가 발생했고, 구더기를 매개로 퍼져나간 보틀리즘균이 이맘때 날아오는 겨울철새를 치명적으로 감염시켰을 것으로 환경단체는 추정한다. 하지만 보틀리즘균이 창궐한 이유를 늦가을 더위로 한정할 수 없다. 하수종말처리장이 가까운 습지에 구더기가 발생할 정도로 유기물이 축적된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까지 내려앉았던 철새의 분비물인가. 하루 두 번 갯벌을 정확하게 적시던 바닷물의 순환이 송도신도시 매립 이후 원활하지 않게 된 결과와 무관할 리 없다. 정확한 조사가 뒤따라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현상에 집착할 수 없다. 습지를 정화했던 바닷물이 예전처럼 공급되지 않게 된 원인을 근원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바닥의 지독한 오니가 거의 그대로인 남동공단 유수지는 말할 것 없고, 좁은 수로를 경계로 떨어진 광활한 면적의 송도신도시가 해수의 유통을 방해한 것은 분별없는 개발이었다. 결국 사람이 근본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갯벌이 줄어들수록 밀도가 높아지니 겨울철새들은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겨울철새는 면역이 떨어진 상태인데, 몇 마리가 옮기는 질병은 바글거리는 철새 무리에 쉽게 전이될 테고, 이동하며 흘리는 철새들의 배설물이 양계장 가까이로 떨어질 가능성은 높다. 조류독감이 해마다 발생하는 이유가 맹렬하게 진행되는 곳곳의 갯벌매립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남동공단 유수지와 주변 습지의 겨울철새가 무탈할 리 없다. 거기에 전에 없이 뜨거웠던 가을 날씨는 떼죽음의 기폭제가 되었을 게 틀림없다. 갯벌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도 남동공단유수지 주변에 양계장이 없으니 조류독감이야 퍼뜨리지 않겠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온난화 이후 겨울철새를 괴롭히는 질병이 보틀리즘균으로 그치는 게 아닌데, 날씨가 도무지 예사롭지 않다.

 

 

 

보틀리즘균에 오염된 습지에 무심한 철새는 줄기차게 내려앉았던 모양이다. 철새를 다른 곳으로 날려보낼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환경단체는 사체라도 어서 수거하길 바랐지만 감당해야 할 습지가 워낙 넓으니 몸을 아끼지 않은 자원봉사자의 노력에도 불가항력이었을 게다. 고개를 돌려 관계당국을 바라보건만 도무지 반응이 없다. 대만은 보틀리즘균으로 저어새 수십 마리가 죽자 국가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던데, 날개를 퍼덕거리며 죽어가는 쇠오리, 고방오리, 넓적부리, 흰죽지, 흰뺨검둥오리, 민물도요 옆에 국제적인 멸종위기 조류인 저어새와 천연기념물인 검은머리물떼새가 관찰되는 이때, 인천시는 수수방관을 넘어선다. 수많은 철새가 찾고자 하는 송도11공구의 갯벌마저 매립하려는 자세가 집요하지 않던가. 분별없는 매립으로 전국의 습지가 쪼그라드는 이때, 대체 서식지를 황급히 조성해야 하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천시는 몰려드는 철새 규모보다 턱없이 비좁은 습지마저 기필코 없애려 든다.

 

2008년 11월 26일, 송도 컨벤시아 회의실에서 송도복합화력발전소 건설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초안공청회가 슬그머니 열릴 뻔했다. 일방적으로 개최하려던 공청회가 주민들의 반발로 일단 무산되었으나, 반발이 없었다면 송도신도시 주변 매립지에 9천억 원을 들어가는 50만 킬로와트 급 2기의 액화천연가스발전소 건설사업은 착착 진행되었을 테고, 발전터빈을 식힌 온배수가 하루 수십만 톤 추가로 쏟아질 인천앞바다는 더욱 뜨거워질 뻔했다. 뜨거워진 만큼 해양생태계의 변질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바다의 온도 변화는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해양생태계에 치명적이다. 인천 바닷가에 자리한 발전소들은 현재에도 인천시 소비 전력의 2배 이상을 생산하건만 발전소 증설은 멈추지 않는다. 송도복합화력발전소만이 아니다. 겨울철새가 죽은 갯벌에 온배수를 들이붓는 영흥도 유연탄화력발전소도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80만 킬로와트 급 2기가 진작 가동되는 가운데 약속을 어기고 추가된 2기의 가동이 얼마 전에 본격화되었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시 2기에서 4기의 증설을 기정사실로 여기는 남동화력주식화사는 향후 12기의 화력발전소를 영흥도에 밀집시킬 예정이라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돈다. 막대한 온배수가 인천앞바다 해양생태계의 궤멸을 선고한 것이다.

 

겨울철새는 이런 와중에 떼로 죽었다. 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온실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인천 일원의 기온 상승은 세계 평균의 2배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 여파로 발생한 가을철 더위는 보틀리즘균을 갯벌에 만연시켰는데 갯벌보전시민헌장을 일찌감치 마련한 인천시는 갯벌을 찾는 겨울철새에 좀처럼 관심이 없다. 오랜 이동으로 지친 상태에서 오염된 갯벌이라도 오늘 감지덕지 내려앉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에게 내일이 없다. 해마다 오염되거나 위축되는 정도가 더욱 심해지지 않던가. 온갖 세균에 속절없이 감염되는 철새와 그 철새에 끊는 구더기를 먹은 멀쩡한 철새들이 잇따라 죽어가는 참상은 꼬리를 물 수밖에 없게 생겼는데, 강화 일원의 갯벌에서 조종이 울린다. 거긴 남동공단유수지의 겨울철새에게 중요한 징검다리인데 세계최대라는 벼슬을 앞세우는 인간이 조력발전을 위한 막대한 방조제로 바닷물의 흐름을 차단하겠다고 벼른다.

 

 

 

2008년 11월 말, 인천녹색연합은 겨울철새를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강화도 길상면의 농경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른 겨울철새들은 남동공단유수지와 그 주변 갯벌에서 사경을 헤매다 보름 전 자원봉사하던 시민에 의해 구조된 10마리 중 5마리로, 주택에서 이온음료와 닭사료를 먹으며 건강을 회복한 청둥오리 3마리, 넓적부리 1마리와 고방오리 1마리다.

 

사체 수거를 위한 자원봉사에 여러 차례 나선 시민과 학생들은 더 많은 겨울철새를 살리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살릴 수 있는 상태로 상당수의 겨울철새를 수거했건만 책임 있는 관계자의 황당한 태도를 보아야 했던 거다. 야생동물을 치료할 마땅한 시설이 없다는 핑계로 전부 살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관계자가 몰라라하는 게 아닌가. 명품을 지향하는 대도시 인천시에 야생물물구조센터가 없다니, 먼 시베리아에서 찾아왔다 병이 든 겨울철새를 무작정 집에 안고 간 시민들은 마음이 미어졌다.

 

참상은 남동공단유수지 주변에서 그친 게 아니었다. 비슷한 기간, 시화호 주변 갯벌에서 수천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죽어갔다. 당국은 심각한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을 그 원인으로 서둘러 지목했으나 환경단체는 의문을 표시한다. 신뢰할만한 조사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감염경로조차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모르니 비슷한 사고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인데, 보틀리즘균도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환경단체의 추정에 숨어들려는 건지, 살처분 이외에 이렇다 할 당국의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거센 추위로 보틀리즘균과 구더기의 위세는 주춤하겠지만 감염된 채 죽어가는 철새의 몸속에 균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 새가 죽은 뒤에도 계속 추우면 균도 구더기도 눈에 띄게 줄어들겠지만 다시 따뜻해진다면 이내 창궐할 수 있다. 막 감염된 철새가 추위를 피해 남쪽의 습지로 이동했다면? 밀집된 습지에서 금세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살모넬라균은 사람도 감염시킨다.

 

갑가지 추워지자 은행잎이 한꺼번에 떨어져 길가에 소복이 쌓였는데 파란 잎도 꽤 많았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인지 알 수 없지만 기분이 몹시 얹잖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세탁한 신발을 신을 막내는 고된 자원봉사에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제 눈으로 파악했고 죽어가는 철새에 대한 동정과 연민, 죄스러움을 동시에 체험했을 텐데, 갯벌 매립을 막지 못한 현 세대의 처지에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철새의 떼죽음은 인간의 생명도 위태로워졌다는 징후인데, 우리는 아이 춥다고 외투를 입힐 뿐이다.

 

추우면 보일러 가동하고 더우면 에어컨 켜는 사람과 달리 겨울철새는 공청회를 막지 못한다. 겨울철새가 잠시라도 쉬지 못하는 땅에 사람은 언제까지 건강하게 머물 수 있을까. 오염된 갯벌의 겨울철새는 막장의 카나리아다. (인천문화비평, 2008년 하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