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9. 5. 22:24

 

인천공항, 새만금 간척, 그리고 ‘4대강 사업’의 공통점은 ‘국책’이라는 작위를 가진 사업이라는 점이고 반대가 많았다는 것이다. 밀어붙이는 자들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던 과거 사례와 견주며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어떤 주장에 대한 비판은 근거와 책임감을 생명으로 한다. 반대 주장이 나온 시대의 배경을 최대한 이해해야하며 반대의 내용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수업에 불성실했던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모함으로 오해될 수 있다. 1968년 2월 착공해 1970년 7월에 완공한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했던 사람들을 어떤 사회 분위기에서 무슨 내용으로 주장했을까. 그것도 파악하지 않은 채 인천공항과 새만금 간척, 그리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경부고속도로의 경우와 비견해 비판하는 태도는 결코 정당할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했어도 완공 덕분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되었는가 묻는 식의 비판이라면 귀담아 들을 내용이 거의 없을 것이다. 발전은 무엇이고, 발전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것이라는 전제는 자가당착이다. 발전은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소득 증가를 발전이라 여긴다면 땅값 상승으로 벼락부자가 된 자의 오만방자한 태도가 정당화될 수 있다. 초가삼간에서 방문객을 반갑게 맞으며 이야기 나누던 남산골 선비는 여전히 열등한 인물일 것이다.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늘어나는 만큼 산업 수준과 소득도 높아졌고 교육과 문화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주장도 반론을 피할 수 없다. 산업과 소득 수준은 행복의 수준이 비례한다는 증명이 없으면 설득력이 없고,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늘지 않는다면 교육과 문화수준이 낙후된다는 증명도 없다. 요즘처럼 명문학교를 찾아 먼 길을 찾지 않던 시절, 지방의 작은 고을도 빼어난 인재를 얼마든지 배출했다. 문화 수준은 지역의 환경과 역사에 따라 다를 뿐, 우열은 없었다.

 

1964년 독일을 방문해 아우토반을 보고 감탄한 박정희는 1967년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내세웠다. 산업국가의 대동맥을 보았다는 것인데, 당시 주도적 반대 의견은 그런 사업을 감당할 자본의 마련 여부에 있었다. 일부는 고속도로를 타고 침략군이 내려올 것을 염려했다지만 무시할 수준이었다. 생계가 중요했던 시절, 국가 총 예산을 능가할 사업비가 걱정이었고, 당시 세계은행은 경부고속도로가 필요할 정도로 한국의 교통량이 크지 않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런 규모의 사업이 제안된다면 무수한 논쟁이 일 것이고, 당연히 그래야 옳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상당액은 미국 요청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의 월급에 의존했다. 당시 미군에 버금갈 정도의 월급이 떼인 군인들은 남의 나라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정의로운 파병인 듯 환송식을 받은 군인들에게 우리 정부는 동의를 구했을까. 요즘 명분이 분명치 않은 다른 나라의 전쟁에 거액을 받고 자국의 젊은이를 강제로 파병하는 국가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 베트남 파병과 같은 일이 재현된다면 흔쾌히 동의할 우리의 청년과 부모 있겠는가. 박정희 정권은 반대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던가. 합리적 토론은 가능했던가. 분명한 것은 당시의 반대의견을 싸잡아 비판하는 자들의 주장처럼 국가 발전을 저해하려는 목적으로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반대한 의견은 그리 없었다는 사실이다. 건설 목적과 방법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요구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인천의 드넓은 갯벌을 매립한 ‘인천공항’은 경부고속도로처럼 반대했던 사람도 흔쾌히 이용한다. 대안이 없기도 하다. 갯벌을 매립한 만큼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곤파스와 말로 이상의 태풍이 다가올 때 걱정이 클 수밖에 없을 텐데, 반대했던 목소리는 당시 유효했다. 김포공항과 청주공항을 확대하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안이 있는데 왜 굳이 생태성이 빼어난 갯벌을 매립하는가 물었던 거다. 생명활동이 활발한 천혜의 갯벌이 사라진 만큼 지구온난화에 대한 완충 효과는 사라지지 않았나.

 

새만금도 갯벌을 파괴한 개발 행위였다. 홍보했던 간척 효과는 아직도 증명되고 않는데, 애초 농토를 개발하겠다고 내세웠지만 지금은 최첨단 도시로 바꿨다. 밑도 끝도 없는 최첨단 타령은 뒤이은 타령에 빛을 잃는데,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26퍼센트를 밑돈다. 개발로 사라지는 만큼 농토를 확보하겠다던 새만금마저 개발된다면 우리 식량의 해외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내일이 걱정이다. 올해 러시아 일원의 기상이변은 세계 식량 수급에 비상등을 컸다. 수입량이 줄면서 아프리카 많은 국가에서 폭동이 일어날 정도다. 이러다 우리 후손은 돈이 많아도 사먹을 식량이 없어 굶주릴지 모른다.

 

4대강 사업은 어떤 이유로 정당성을 과신하는가.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비록 묵살되었을지언정 반대의견이 여러 차례 언론에 표출되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의견은 일부 신문을 제외하고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고된 방송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물리적 탄압보다 무서운,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일까. 목표의 정당성을 묻는 반대의견에 대해 계속 침묵하는 언론사들을 보자. 방송사의 수장들은 현 정권의 태동과 무관하지 않다. 신문은 새로 생길 방송사의 선정에 목을 맨다. 방송이나 신문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살리기를 참칭하는 현 4대강 사업은 경부고속도로와 다른 이유로 하천과 수자원을 전공하는 대다수의 토목학자들이 반대한다. 거기에 생태학자와 환경학자, 그리고 환경운동가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낸다. 정권의 꼭두각시가 된 경찰이 집회를 막고 언론이 알아서 침묵해 시민들이 세세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뿐, 합리적 이유가 있다. 강바닥을 6미터로 파내고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로 흐름을 16군데에서 가로막는 토목공사로 4대강은 치명적으로 파괴될 것이고 풍수해는 더욱 가혹해질 것이다. 따라서 진정 강을 살리려면 그 방면의 양심적 전문가들과 투명한 논의를 민주적으로 수행한 뒤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사업을 단계적으로 실시하자고 제안한다. 경부고속도로처럼 완공 후 동의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국가를 퇴행시킬 우려가 크기에 절박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현 정부 수장 이외의 인사가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4대강 사업을 주장했다면, 생각해보자. 지금 덮어놓고 “할렐루야!”를 외치는 찬성론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수많은 외국의 경험과 사례를 들춰낼 필요도 없다. 건설자본의 한시적 이익을 위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명을 품고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파괴한다면, 계단식 호수처럼 멈칫거리며 썩어들어가고 잦은 홍수로 넘치는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시대를 후손에게 넘긴다면, 우리는 후손에게 씻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인천공항, 새만금 간척도 그랬지만 특히 4대강 사업의 반대 여론은 서툰 발전론과 차원이 다르다. 경부고속도로의 반대와 비교할 성격일 수 없다. (작은책, 201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