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6. 12. 30. 16:21


 

촛불의 힘에 의해 탄핵된 이가 탄핵 전 3차담화를 발표했을 때 정국이 잠시 어수선했다. 4월에 스스로 물러서면 탄핵 절차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일각에서 제기했기 때문인데, 이후 한층 분명해진 민의가 광화문을 뜨겁게 달궜고 법원은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집회를 허용했다. 하지만 170만의 인파는 법이 허용한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다다갈 수 없었다. 명함 한 장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차벽이 정문과 담을 막았기 때문이다.


집회가 없을 때 모이는 시민이나 관광객도 청와대를 허가 없이 들락거릴 수 없다. 담이 높고 정문이 굳게 닫혔기 때문인데, 제왕적으로 군림하는 대통령이 지배하는 국가라면 비슷하겠지. 유권자가 잠시 빌려준 권력을 사회적 합의 없이 휘두르는 자는 허심탄회한 소통을 두려워할 테고, 거주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범위에 높은 담을 쌓아 드나드는 이를 선별 통제할 게 틀림없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권위를 내세우는 의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통을 차단하는 담은 담 밖의 사정을 무관심하게 만든다. 담 높은 주택에서 우월의식에 젖은 사람은 찬바람 부는 달동네에서 음식 나누는 이웃의 따뜻함을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차창 닫는 고급 승용차 뒷좌석의 우리 국회의원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국회의원만큼 유권자와 자유롭게 소통하지 않을 것이다. 크고 빠를수록 자동차 안의 사람은 차 밖의 사정에 관심 기울이기 어렵다. 걸을 때 보이는 아기자기한 풍경과 이웃의 희로애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동차가 담이 되는 까닭이겠지.


도심 구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높은 방음벽이 소음을 차단한다. 소음만 아니라 주위 도로와 연결을 단호히 뿌리친다. 1969년 개통된 경인고속도로가 그렇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인천시 서구까지 도시를 남북으로 가르며 달리다 서구에서 인천 남구 용현동까지 좌우로 가르며 높은 방음벽으로 시야마저 차단한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정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방음벽 밖의 사정에 도무지 관심을 갖지 못한다. 방음벽이 가린 마을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살필 겨를이 없다.


7월이면 한국도로공사에서 인천시로 관할권이 이전될 인천 남구 용현동 기점에서 서구까지 10.4킬로미터의 경인고속도로 구간을 걸었다. 방음벽 너머 좁은 도로는 평탄한 고속도로와 달리 급한 경사를 오르내리며 울퉁불퉁했다. 과속방지턱이 거푸 이어지며, 벌어진 아스팔트 바닥은 꼼꼼히 메워지지 않았는데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들 사이를 요령껏 건너는 주민들은 방음벽 옆에 낡은 자동차를 세우거나 쓰레기를 버렸다.


고가도로가 고속도로 위를 가끔 이어주고 지하의 보행자 통로가 이따금 좁게 이어주지만 주민에게 고속도로는 담이다. 소통을 차단한다. 방음벽 옆에 주차된 차는 먼지를 뒤집어썼고 바퀴가 주저앉기도 했다. 배터리를 잃고 방치된 차 옆의 냉장고와 소파는 한 때 요긴했겠지만 지금은 불법 배출을 고발하겠다는 경고판 옆의 온갖 쓰레기와 더불어 아무렇게나 나동그래져 있다. 높은 방음벽이 관심을 차단하지 않는다면 벌써 치워졌을 것이다.


방음벽에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의 일부는 햇빛이 새어들기 어려운 다세대주택에 촘촘하게 산다. “즉시대출을 알리는 현수막과 이삿짐센터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고속도로 옆 주택들은 버스종점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다. 초등학생들의 천진함은 여느 거리와 다르지 않지만 어른들의 고단함은 남달라 보이는데, 고속도로 관할이 인천에 이관되면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뀔까? 방음벽이 치워질 테니 고속도로로 차단된 좌우의 마을은 연결될 것인데, 소외되었던 삶은 밝아질까?



<사진: 경인고속도로에 의해 단절된 인천시. 고속도로의 높은 방음벽 주변의 쇠락한 모습.


통영시 동피랑과 서피랑은 벽화로 철거될 위기에 있던 마을을 활기차게 만든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철거되었다면 큰돈을 요구하는 번듯한 아파트에 밀려 내쫓기고 말았겠지만, 주민들은 마음을 모아 벽화 그리기에 나섰고, 마을은 하루 수천 명이 찾는 명소로 변모했다. 담이 관광객을 끌어들인 것인데 인천시의 동화마을은 다르다. 가난한 산동네 좁은 골목의 담에 동화가 그려졌지만 일련의 과정에 주민의 참여는 생략되었다. 소외된 주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불쑥 들어서는 관광객 때문에 이만저만 불쾌한 게 아니다. 알록달록 채색된 담이 마음의 담을 오히려 높였다.


담은 집안의 부끄러운 점을 가려주기도 한다. 담이 있기에 사사로운 일을 벌일 수 있는데 그때 낯모르는 이가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면 얼마나 놀랄까? 여름철 마당에서 몸을 씻는 동화마을의 아낙은 소스라칠 텐데, 주민과 합의해 벽화를 그렸다면 다를 것이다. 대문은 열어놓은 주민들은 차 한 잔 권할 여유와 웃음으로 방문객을 맞을 게 틀림없다. 사적인 공간을 개방하지 않더라도 호의적 대접을 받은 관광객이 공연히 관심 기울일 까닭이 없다. 경인고속도로 인천 구간이 개방되면 방음벽 주변 마을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인천시민은 경인고속도로의 일반화를 환영한다. 고속도로가 사라지면서 좌우가 오랜만에 소통되고 방음벽 옆의 차와 쓰레기가 사라지는 모습에 긍정적인데, 이제까지 고단한 삶을 강요당한 고속도로 주변 주민의 삶도 산뜻해질까? 인천시에 이관될 고속도로 구간이 일반도로로 바꿔 승용차와 버스가 교차할 가능성이 있지만 많은 시민들은 녹지로 가꿀 것을 요구한다. 자동차가 편리해지는 일반도로보다 소통이 활발해지는 공원으로 개과천선하길 강하게 원한다.


고속도로 방음벽에 가려진 주민의 고달픈 삶을 그들의 처지에서 살펴야 한다. 이관될 경인고속도로가 어떻게 변모할지 아직 분명하지 않고, 논의 끝에 결정되어도 갈 길이 멀겠지만, 일반도로든 나무와 풀과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어우러진 공원이든, 변화에 앞서 변두리 아닌 변두리에 숨어 지내던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 보장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된 공간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소통을 위해 치워야 할 담은 청와대와 국회에서 그치지 않는다. 분별없는 비선실세에 검은 자양분을 제공하던 청와대의 담과 마찬가지로 경인고속도로 주변의 담도 말끔하게 제거되어야 한다. 변모할 고속도로에서 주민들이 소외되지 않을 방안은 무엇일까? 주민들의 생각부터 허심탄회한 들어보자. (작은책, 2017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