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9. 4. 4. 22:59


진산(鎭山)의 면모는 무엇일까? 북풍한설을 막아주며 마을에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는 진산은 산자에게 편안한 보금자리를 죽은 자에게 영택(靈宅)을 제공해주었다. 진산은 우리 삶의 비빌언덕이었다. 비빌언덕이 허락하기에 조상은 농사와 초가삼간을 지을 수 있었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터덜터덜 몇 날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오던 가장은 멀리 진산을 보고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는데, 초고층빌딩들로 하늘이 비좁아진 요즘, 진산은 옛 위상을 잃었다. 맑은 물은 정수기가 시원한 바람은 에어컨이 대신한다.


인구 300만의 인천에서 계양산은 시방 진산의 위상을 잃었다. 한남정맥의 일원이지만 일상이 바쁜 시민들은 미세먼지로 흐릿해진 계양산에 예를 갖추지 않는다. 진산의 의미를 되새길 기회가 없던 시민들은 국립공원이 아니라면 보전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파고드는 크고 작은 건축물에 기슭을 내준 계양산은 모진 수모를 감내해야 했다. 1990년 대양개발의 천박한 놀이시설을 계획하더니 롯데라는 대기업에서 골프장으로 위협하지 않았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인천시민의 계양산 골프장 반대 의지에 최종 승리를 안겨주었다. 계양산은 드디어 진산의 면모를 회복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에 발맞춰 지난 328일 오후 계양산을 지켜온 시민들은 인천시의회 산업경제위원회 상임위원회의실에 모여 계양산의 내일을 이야기하는 토론회를 공개적으로 열었다. 계양산의 가치를 보전하는 공원을 만들기 위한 논의였다.


현재 하루 15000명이 운집하는 곳이 계양산이다. 토론회 참여자들은 진산의 보전을 위해 이용을 통제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공원 조성에 동의하지만 자본의 돈벌이를 위한 천박한 놀이 시설은 단연코 찬성할 수 없었다. 생태와 경관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에서 그치지 않았다. 참여자들은 계양산이 품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자산도 이 기회에 분명히 조명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아직까지 선언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들어온 시민사회의 촛불이다. 인천시와 시의회는 촛불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응답은 무엇일까? 등산로가 분별없이 확장되고 쓰레기가 쌓이는 계양산을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토론회 참여한 시민단체는 거액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요구하지 않았다. 시민의 애정을 담아낼 수 있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 방법을 전문가에 의뢰하면 공허하다.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방향을 만들어야 바람직하다.


사심 없는 전문가의 훌륭한 계획이라도 시민참여가 배제된다면 공공의 가치는 퇴색되기 쉽다. 독일의 사례를 귀띔한 한봉호 서울시립대학 교수는 시민이 주도하는 계획이 시민사회에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 미군의 공항을 주택과 도서관 그리고 시민을 위한 문화시설로 개발하려던 베를린 시는 애초의 계획을 바꿨다고 한다. 시혜를 앞세우는 일방적 방침에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베를린 시는 준비한 개발안의 시행을 보류했고, 공항 부지를 한동안 개방했다고 한다. 시민들의 능동적인 이용을 한동안 살펴본 베를린 시는 시민의 의견을 전폭 방영한 템펠호퍼공원으로 조성했다는 게 아닌가.


베를린의 템펠호퍼공원과 계양산은 여러모로 다르다. 계양산은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생태와 경관을 가진 자연공간일 뿐 아니라 진산이다. 시민의 능동적 참여로 자부심 넘치는 공원으로 가꿔야한다는 점에서 참고가 가능하지만 공군비행장과 차원이 다르다. 문제는 능동적인 시민을 어떻게 참여의 광장으로 이끌어오는가에 있다. 시민들과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공원을 조성한다면 계양산은 향후에도 보전될 수 있을 것이다.


진산의 품에 안겼던 마을은 진산에 경외심을 가졌지만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진산은 진산이다. 공원으로 조성되더라도 계양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를 위한 논의가 시민사회에서 충분히 선행되어야 하고 인천시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열린 논의 마당부터 서두르자. (인천in, 2019.4.4.)

 
 
 

도시·인천

디딤돌 2013. 4. 4. 23:35

  한남정맥 끝자락에서 황해를 굽어보던 계양산.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그 산은 지금 개발 소용돌이의 가운데 서있다. 드넓었던 김포평야를 메우며 확장되는 아파트단지가 턱밑까지 다가오고, 기슭으로 파고드는 단독 주택과 크고 작은 콘크리트 시설물로 자락이 잠식된 지 오래다. 정상에는 송신탑이 박혀 있고 송전탑이 허리를 가르고 아스팔트 도로는 맥을 자르고 말았다.


전쟁으로 집 잃은 백성에게 비빌 언덕을 제공하고 헐벗고 목마른 자에게 땔감과 마실 물을 아낌없이 내주었건만, 계양산은 지금도 인간 탐욕을 위해 희생이 강요당한다. 계양산은 험하지 않다. 멀지 않은 과거, 짚신으로 누구나 오를 수 있었는데, 산을 아프게 하는 나막신으로 산에 들지 않던 선조를 모시는 후손들이 계양산을 함부로 짓밟고 있다. 새들을 쫓아내는 울긋불긋한 등산복과 딱딱한 등산화를 갖추고 오르면서 지팡이로 콕콕 찔러대는 건 애교다. 벌써 몇 차례 대규모 골프장으로 껍질을 벗기려 들었다.


계양산은 폭이 넓다. 점점 회색도시 속의 작은 녹색섬으로 전락해가고 몰려드는 인파에 밟혀 시들어가지만 여전히 많은 생명들을 품어준다. 도시 인근에서 자취를 감춘 반딧불이와 물장군을 지켜줄 뿐 아니라 맹꽁이와 도롱뇽을 품어왔다. 골프장 예정 지역에 몸을 사리던 북방산개구리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무슨 영문인지 삽날에 난자당해 처참하게 죽어나갔지만 아직 명맥을 잃지 않았다. 품이 넓은 계양산 덕분이다. 그 와중에 두꺼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오르내리지만 계양산은 꼭꼭 숨겨준 것이다.


두꺼비가 계양산에 있다는 거, 그것도 300마리 이상 찾아와 알을 낳는다는 사실은 계양산이 골프장으로 뜯어지는 걸 막으려 애써왔던 환경단체가 밝혔다. 생태조사를 위해 찾았을 때 품에 숨은 두꺼비를 계양산이 보여주었던 모양이다. 환경단체에 보여주면 힘겹게 살아가는 두꺼비의 생태환경을 보살피리라 여겼을 게 틀림없다. 사방에서 개발의 삽날이 숨통을 조여오는 이때, 두꺼비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나보다. 두꺼비는 물론 도롱뇽과 반딧불이를 포함한 모든 생명가치를 보호하고, 산도 자신의 숨결을 유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김포공항을 만들고 온갖 건물을 세우기 전에 계양산에서 숱한 생물들과 어우러지며 생명을 만끽했을 두꺼비는 시방 가녀린 생존을 이어간다. 떡두꺼비라 하며 반기던 농경사회 시절, 두꺼비는 계양산은 물론 전국의 동네와 집집마다 흔했을 테지만 지금은 꽁꽁 숨었다. 계양산의 다남천 인근 습지와 목상동과 박촌동에 겨우 남았다. 개발의 삽날과 콘크리트가 두꺼비마저 살아남지 못하게 몰아냈기 때문이다.


이른 봄마다 자신이 태어난 연못을 찾아와 알을 낳고 5월 중순 비오는 날 밤이면 막 변태한 작은 성체들이 떼를 이뤄 산으로 흩어지는 습성을 가진 두꺼비는 이동통로를 가로막는 아스팔트가 지옥이다. 아침이면 자동차 바퀴에 밟혀 아스팔트를 덮은 손톱만큼 자란 두꺼비들이 보아야 한다. 염주 같이 길게 이어진 작은 알들을 수초에 실타래처럼 둘러 낳으면 봄이 무르익을 때 커다랗게 무리를 짓는 두꺼비 올챙이들은 호수 가장자리를 천천히 맴도는데, 그때 큰비가 내려 물이 넘치면 휩쓸려 떠내려갈 수 있다.


2012년 계양산의 생태 현황을 모니터할 때 계양산의 두꺼비 산란장은 1미터가 넘는 제방으로 가로막혀 접근이 어렵다는 걸 환경단체는 확인했다. 어린 성체들이 다시 산으로 흩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짝짓기 계절을 맞아 물이 고인 습지를 찾지 못하는 성체들은 절박한 마음에 다남천에 산란할 수 있다. 모니터링을 자문한 전문가도 지적했듯, 물이 흐르는 하천에 알을 낳으면 알이나 올챙이가 물살에 떠내려갈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알 낳을 성체와 어린 성체의 이동을 차단한다면 두꺼비의 안정적인 분포는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산기슭에 계단식 논이 넓게 이어졌던 청주 산남동의 두꺼비는 주택단지로 사라질 뻔했지만 청주 시민단체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보전되었다. ‘원흥이 방죽으로 알려진 산란장은 지금 두꺼비 보전의 메카로 알려져 국내외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청주의 명소가 되었다. 서울의 우면산도 두꺼비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보전하기로 시민들이 마음을 모았고 보전을 위한 행정으로 서울시는 화답하고 있다. 수원에도 대구에도, 전국의 여러 도시에도, 추억 속에 간직해온 두꺼비가 나타나자 서식지의 보존에 애를 쓴다. 그런 일련의 움직임은 생태계의 가치를 시민사회에 각인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두꺼비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면 자손이 번성하고 재물이 들어오며 집안이 흥한다고 한다. 논밭에서 해충을 넙죽넙죽 잡아먹는 두꺼비는 우리 민화에서 은혜를 갚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소녀를 지네가 위협하자 지네를 죽이며 은혜를 갚는다는 설화는 콩쥐팥쥐에도 이어진다. 깨진 항아리를 몸으로 막아 콩쥐는 계모가 시킨 일을 마무리하게 도왔다는 게 아닌가. 그런 두꺼비가 골프장 위기에서 벗어난 계양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계양산의 생태계를 보전하려 행동하던 시민 앞에 나타났다.


해마다 서울대공원은 어린 학생에게 우리나라 개구리들을 보여주는 행사를 한다. 한 세대 전만해도 산과 들에 흔했던 개구리를 이제 관광버스를 타고 가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개구리들과 두꺼비가 계양산에 삶을 기대고 있다. 산란장을 찾다 자동차 바퀴에 밟혀 죽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는데, 인천의 진산 계양산을 골프장에서 구한 시민들은 두꺼비를 구하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계양산 보전 목소리에 발을 맞춘 인천시는 어떤 행정을 준비해야 할까. (인천in, 2013.4.3)

 
 
 

도시·인천

디딤돌 2009. 12. 19. 01:07

 

저어새들 날아간 송도 11공구 갯벌은 썰렁하다. 작년 가을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은 뒤라 그런지 오리도 그리 많지 않다. 악취가 진동하고 공사 중장비들이 밤낮 없이 질주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작은 인공섬에 둥지를 친 저어새는 한줄기 희망 같았는데, 덕분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의 철새와 습지단체들이 굳이 찾아와 보존을 요구하는 성지가 되었는데, 둥지에서 다음세대를 잘 키워낸 저어새가 따뜻한 나라의 습지로 날아간 뒤 송도 11공구 갯벌은 다시 불안해진 거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찾겠지. 거기가 고향이므로. 한데, 송도 11공구 갯벌은 저어새가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보전될 수 있을까.

 

인천의 오랜 역사이자 문화였던 갯벌은 다 매립돼 시방 송도 11공구에 유일하게 남았다. 갯벌을 보려면 강화나 장봉도 일대로 가야 하는데, 거기도 안전하지 않다. 조력발전으로 휩쓸려 사라지거나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될 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은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평균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는 데 그치게 해보자고 마음을 졸였는데, 온실가스를 자연스레 제거해주는 갯벌을 파괴하며 친환경에너지라 칭하니 어처구니없다. 2도 오르면 해수면이 어느 정도 상승하겠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파고가 높아져 송도신도시나 인천공항이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최고 정책 담당자는 갯벌은 개발이 아니라 보존대상이란 걸 이해하려나. 내년을 기대해본다.

 

초고층빌딩이 늘어나는 만큼 녹지가 잠식되는 인천의 대기가 다른 지역보다 더 뜨거운 건 상식일 텐데, 대기질도 그리 좋을 리 없다. 인천에 특히 많은 화물자동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인천의 앞바다를 거의 두르며 굴뚝을 솟아올린 화력발전소마다 온배수를 토해내지 않은가. 게다가 남동발전(주)은 영흥도에 발전설비를 당장 2기 추가하겠다고 나섰고 중부발전도 뒤질세라 보령시의 발전설비를 서구 경서동으로 옮기겠단다. 일단 발끈했다지만, 숱한 개발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에 목말라하는 인천시의 처지에서 실제로 막아낼 수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이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텐데, 인천의 하늘과 바다의 운명이 걱정이다.

 

결국 경인운하는 ‘아라뱃길’이라는 야릇한 이름을 달고 올해 착공되었다. 내년에도 공사는 계속될 테지만 일자리는 정부의 장담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살리기’로 위장된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일 텐데, 경인운하를 이동할 선박에 장차 무엇을 실을 수 있을까. 해양생태계를 바닥에서 훑을 바닷모래? 수도권 생활쓰레기? 물론 호화유람선은 아닐 것이다. 도무지 볼 게 없지 않은가. 그럼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인천시에서 추진하는 ‘검단 장수 간 민자도로’는 어떤가. 착공된다면 장차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사태가 발생할 게 뻔하다. 녹지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단의 시의원이 해당 예산을 막아 올해는 위기를 면했지만 내년은 어떨지. 마지막 남은 S자 녹지마저 허무는 범죄행위로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설마 자행하지 않겠지. 지방선거가 내년인데.

 

인천의 진산, 계양산은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백두대간에서 한남정맥으로 이어져 황해를 굽어보던 계양산이 인구 28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의 마지막 위안으로 남았건만 껌과 초콜릿을 팔아 큰돈을 번 대기업 롯데가 시민 대다수의 요구에 눈을 감은 태도를 아직 버리지 못한다. 합법적 절차를 내세우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의 소비자들도 곧 ‘사회적 기업’, 다시 말해 이윤을 능동적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기업을 주목할 거라고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핵폐기장으로 버림받기 직전에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킨 굴업도에 CJ 산하 C&I는 ‘오션파크’라는 리조트를 조성하려고 한다. 한데 C&I는 롯데와 달리 현재 주민과 환경단체와 미리 논의하는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진지하게 지켜볼 일이다.

 

내년은 2010년 호랑이띠의 해, 경인년이다. 고단하게 물러난 기축년 소꼴이 되지 않길 호랑이에게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호일보, 200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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