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6. 2. 17. 10:03
 

미국 뉴욕시 교육당국은 최근, 우유를 급식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는데, “지역 내 110만 학생 대부분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비만의 징후를 보이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그 이유를 밝힌 담당자는 “이미 흰색 밀가루 빵과 프랑크푸프터 소시지 빵 등을 급식 메뉴에서 제외한 것처럼 우유도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견한다.


“아이에게 가장 확실한 투자는 우유를 먹이는 것”이라고 윈스턴 처칠이 주장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랫동안 완벽식품으로 가장된 우유가 학교 식단에서 사라진 것은 뉴욕시가 처음이 아니다. 로스엔젤레스시는 이미 2000년에 퇴치했고 일리노이와 뉴저지를 비롯한 여러 주들도 우유를 학교의 식단에서 서둘러 제거하면서 우유 급식 중단은 전국으로 파급될 것이라고 미 여론은 전망한다. 1946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급식 메뉴에 포함된 우유를 교육당국의 의지대로 탈지분유로 대체한다면 우유 소비량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미국 낙농협회가 우려한다는데, 탈지분유는 믿을만할까.


과거보다 많이 먹는 고기의 질이 형편없어졌다고 언론은 전한다. 영국 소비자보호단체인 식품위원회에서 음식의 화학적 구성을 분석한 결과, 우유와 고기에 함유된 각종 미네랄이 60년 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해 예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술에 의존하는 농업의 양적 팽창으로 식단에서 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어도 영양분이 급감한 원인은 무엇일까. “영양소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탓”으로 수년 동안 연구를 담당한 영양사는 지적했다는데, 결국 음식이 땅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우유도 고기와 마찬가지다.


“오늘날 농업은 땅이 스스로 지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놔두지 않고 있다”면서 “사람과 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현실을 개탄한 전문가는 영국 식품위원회 위원장만이 아니다. 한 대학교수는 건초로 사육하던 과거와 달리, 화학비료로 빨리 성장한 목초, 같은 방식으로 재배한 유전자조작 곡물사료에 의존하는 목장의 우유는 성분이 분명히 다르다고 증언한다. 한데, 업계와 정부 관계당국은 분석 방법의 차이라고 반박한다. 시민의 건강에 앞장서야 곳이 정부인데 이상하다. 왜 육가공협회와 낙농협회를 두둔하는 것일까. 업체 주장대로 분석방법을 달리하면 미네랄 함양이 늘어나기라도 하나.


미국에서 발간하는 어떤 포스터는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와 정치인의 독특한 얼굴을 담고 있다. 이른바 ‘우유 수염’을 코 밑에 묻히고 활짝 웃는 모습인데, 그런 사진이 인쇄된 포스터는 낙농협회의 지원을 받는 홍보단체가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주로 배포하고, 어려서부터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신화에 세뇌된 소비자는 냉장고에 우유를 가득 채워야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와 같은 홍보단체는 대개 시민단체처럼 위장돼 있다. 소비자들은 이익단체보다 시민단체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업체의 전문가와 관계당국의 담당관이 자리를 교환하는데 익숙한 미국 풍토에서 소비자의 목소리가 행정에 전단되는 거리는 멀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고위층은 얼마 전까지 농약과 식품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다국적기업인 몬산토의 간부였다. 미국의 집요한 로비와 거센 압력에 굴복해 제정된 세계무역기구의 식품거래에 관한 규약은 미국계 다국적 곡물상인 카길의 경영진이 초안을 마련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하는 소비자보다 로비에 혈안인 업체와 가깝다. 분석방법에 따라 없던 미네랄이 생겨날 리 없건만, 업체와 간혹 의기투합하는 정부는 업체가 제시하는 분석방법을 동원, 고기의 영양분이 과거와 다르지 않다고, 고용된 전문가의 목소리로 주장한다.


탈지분유를 먹으면 비만이나 당뇨에 걸리지 않을까. 맛이 떨어지는 탈지분유를 청소년들이 잘 먹어줄지 알 수 없지만, 맛과 칼로리를 줄인 분유를 대신한 식단은 영양사들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왜 교육당국은 우유 대신 탈지분유를 채택할까. 미국의 사정을 우리가 알아낼 도리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방을 뺏던 빼지 않았던, 급식에 동원되는 우유와 탈지분유의 미네랄은 보잘것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균형 잡힌 성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탈지우유에 미네랄을 넣을 필요는 없다. 미네랄은 채소에 훨씬 많다.


남아도는 분량을 처분할 수 없는 우리 낙농당국은 우유 더 마시기 캠페인을 벌이고, 우유회사는 노인들도 마시라는 광고로 유혹하지만, 우리나라의 사람들은 대개 우유 소화에 부담을 느낀다. 우유를 분해효소의 분비가 사춘기 이후 위축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쉽게 소화시킨다고 청량음료처럼 우유를 냉장해둘 이유는 없다. 우유는 음료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송아지의 덩치를 빠르게 키우는 식품이지 싸우고 들어온 사내아이와 야단맞으며 훌쩍이는 계집아이의 갈증을 광고처럼 풀어주지 못한다. 차가운 액체 상태로 목을 넘어갈 때 잠시 시원할지 모르지만, 우유를 마신 아이는 더욱 심한 갈증을 느낄 것이다. 지방과 단백질을 고도로 함유한 우유를 소화하는데 많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급 상표를 대표하는 네슬레 분유는 부유층의 엄마들이 즐겨 찾는데, 끔찍하게도, 오랜 별명이 ‘유아 살상제’다. 총과 균과 쇠로 아프리카 원주민의 자급자족 터전을 빼앗은 제국주의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플랜트 농장을 세웠고 헐값의 여성 인력을 원했다. 그런데 아프리카 여성은 아이들 키우느라 집을 떠나지 못한다. 그때 제국주의자는 네슬레 분유를 나누어준다. 깡통에 방긋 웃는 백인 사내 아기 그림이 인쇄된 그 분유를 먹이면 백인처럼 튼튼하고 똑똑하게(?) 성장하리라 믿은 원주민 여성은 제 아이들에게 네슬레 분유를 먹인 것이다. 끓이지 않은 물에 분유를 퍼 넣고, 소독하지 않은 분유통을 물리자, 수인성 질병으로 젖먹이와 업둥이가 죽고, 엄마의 오른손과 왼손으로 잡고 걷던 아이가 차례로 죽었다. 제국주의자는 분유를 타는 방법을 물론 알려주지 않았다.


흐느끼는 여성에게 다정스레 다가간 제국주의자가 안쓰러운 듯, “돈이 없어 약을 먹이지 못했구먼, 쯔쯔. 내 농장에서 일하면 달러를 줌세!” 당시 서양의 시민단체에서 유아 살상제로 규정한 분유가 우리나라에 오자 우량아를 키우는 영양분으로 등극했다. 분유회사가 지원한 우량아선발대회는 “잘 살아보세!”를 강요하며 농촌 인구를 공장으로 몰고 갔던 시절의 정부가 지원했다. 남편이 떠난 농촌을 지키는 여성을 착취하려는 속셈이었는데, 성과가 좋아, 요즘 농촌에 아기는 없다. 분유는 도시의 산후조리원에서 적극 소비한다. 미네랄이 없는 분유가 엄마젖 먹지 못한 신생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신의 아이는 다르다며 뉴질랜드 원산의 프리미엄 유기농 분유를 먹이는 미시족을 뻔뻔하게 내세우는 광고는 위화감만 선사하지 않는다. 뉴질랜드 생태계는 덕분에 더 파괴되고 축산분뇨는 계곡으로 흘러들 것이다. 그 뿐이랴. 우유 수송에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고, 팔리지 않는 우유를 국회 앞에 쏟아버리던 우리 농부들을 울렸다. 요즘의 우유는 송아지에게도 좋을 리 없을 텐데 사람에겐 좋을까. 입식 3년이면 우유 생산효율이 낮다며 고기나 사료용으로 내다 파는 첨단 소는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과 항생제가 듬뿍 들어간 유전자조작 곡물사료를 축내는데, 그런 우유를 신생아와 청소년과 노인들이 들이켜야 할까.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라는 책의 저자는 “사람이 우유를 마시는 것은 소에게 고기를 먹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육질 사료 먹은 소는 광우병에 걸리는데, 우유를 즐겨 먹는 사람은 어찌 될까. 미국마저 거부하는 우유, 우리도 거부해야 옳지 않을까. 우유보다 모유, 고기보다 내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식 식단이 우리의 건강을 안내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힘겨운 소규모 목장주인에게 전업을 권하고 싶다. (채식물결,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