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8. 13. 09:27

 

강화도 주변의 작은 섬들, 10여 년 전만 해도 서도면과 삼산면에 흩어진 섬에 가려면 물때를 잘 살펴야 했다. 강화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도 바다물이 썰어 낮아지면 배가 뜨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는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었기에 예전의 교사나 공무원에게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더 밀려날 곳이 없는 무능 또는 비리 공무원에게 마지막으로 발령을 내는 고립무원. 눈물만 뚝뚝 흘리던 공무원이 사표 쓰고 다음 배편으로 나가거나 초임인 총각 선생님이 한 학기 마치고 내빼는 섬마을에는 애환도 많았을 테고, 이미자는 애간장 끊어지는 곡조로 <섬마을 선생님>을 불렀다.

 

지금 강화도 인근의 작은 섬에는 학교가 없다. 부임할 총각 선생님도 없지만 공부할 학생도 없다. 아예 젊은 인구가 없다. 젊어야 60대인 주민들은 섬 주변의 갯벌에서 삼삼오오 조개를 캐거나 갯바위에서 석화를 따고, 집 주변 비탈 밭에서 채소를 일군다. 나이 들어갈수록 그물 친 바닷가를 자주 들여다보기 힘겨우니 돈벌이는 제쳐두고 그저 먹을 만큼 밭을 일군다. 한데 조그마한 밭마다 그물 울타리가 높게 둘러쳐져 있다. 고라니 때문이라고 했다. 고라니가 번식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섬이 아닌데 걸핏하면 갯벌과 바다를 건너오지 않던가.

 

강화도 일원의 작은 섬에 출몰하는 고라니는 애교에 불과하다. 육지의 완만한 산록에 연결된 밭은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싹이 올라오기 무섭게 뜯어 먹으면 약이 바싹 오르지만 마음을 추슬러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다. 어떤 때는 출하를 앞둔 배추나 무를 몽땅 건드려 상품 가치를 없애 놓으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어렵다. 어디 그뿐인가. 논에도 뛰어 들어 익어가는 이삭을 마구 뜯으니 그냥 놔두면 1년 농사를 망칠 판이 아닌가. 전기 울타리를 논마다 둘러치자니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고, 포수를 고용해보지만 한두 마리 처치한다고 끝날 일도 아니다. 어디선가 찾아오는 녀석이 또 있고 새끼도 금방 자랄 것이다.

 

고라니는 이 땅의 불명예스러운 ‘유해조수’다. 유해조수로 낙인찍히면 포획이 가능하다. 총으로 쏴 죽여도 되고 올무를 쳐서 잡은 뒤 팔아도 된다. 비록 이 나라의 곡간에 쌀이 남아돌아도, 수입하는 채소로 농부들이 입는 손해가 훨씬 많아도 울타리를 뛰어넘어 농작물을 축내기 때문이란다. 농부들은 울타리 놓느라 비용이 들고 가끔 엽사를 고용하느라 비용이 추가되는데, 고라니라는 놈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라지만, 사실 출몰하는 고라니는 몇 마리 안 될지 모른다. 고라니가 먹어치운 농작물과 울타리 설치비용은 농림수산식품부나 행정안전부, 또는 환경부 예산의 지극히 일부라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1미터가 넘고 등이 60센티미터 이상 올라오는 노루보다 체구가 10센티미터 정도 작지만 생김새와 털색이 비슷해 많은 이들이 혼동을 일으키는 고라니는 우리의 특산종이다. 중국에 있는 사촌은 아종 관계로, 과거 수렵용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들어간 후손 이외에 고라니는 오로지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유해조수가 되었다. 수컷만 뿔이 있는 노루와 달리 암수 모두 뿔이 없는 대신 수컷은 송곳니를 가졌고, 꼬리가 없는 노루와 달리 짧은 꼬리를 가진 고라니는 하구의 늪이나 산록에 분포하며 독소가 없는 풀이나 나뭇잎, 겨울철에는 나무뿌리까지 뜯어먹는 습성을 가지는데 노루와 달리 가까이에서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눈을 마주칠지언정 즉각 엉덩이를 들썩이며 겅중겅중 달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의 포수들이 수입을 한 모양이다.

 

찾은 곳은 다시 가는 습성이 있다던데, 서울시 쓰레기매립장이었던 상암동의 월드컵공원, 인근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고라니는 어디에서 왔을까. 월드컵공원에서 한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마곡유수지의 풀숲에 빠끔히 모습을 내보이거나 그 인근에 넓게 조성해놓은 강서생태공원에서 겅중거리다 자전거 타는 이의 눈에 띄곤 하는 고라니는 사람들로 성가신 그 곳에 터 잡았을 리 없을 테고,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오는 걸까. 강화도 주변의 작은 섬을 건너다니는 녀석들도 제 삶터는 따로 있을 터. 거기가 과연 어디일까.

 

대개 두세 마리가 어울려 다니는 고라니는 5월 부드러운 새싹이 지천에 가득할 무렵 한 마리에서 세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머리 위의 둥글고 커다란 귀를 쫑긋 세운 채 혹시 있을 천적을 따돌리려고 과장되게 어정거리는 지점의 주위를 살펴보면 눈이 묻은 듯 흰 점과 줄무늬가 눈부시게 귀여운 새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 전에 내몰아 삵 이외에 이렇다 할 천적이 없는 세상에서 새끼들은 제가 태어난 곳을 터전 삼겠지만 거긴 다른 고라니도 많다. 부대끼기 싫어하는 고라니들은 어미를 따라다닐 시기가 지나면 흩어질 터. 한강을 타고 월드컵공원에서 노을공원으로, 다시 마곡유수지에서 강서생태공원으로 갔을 게고, 어떤 녀석들은 강화도의 작은 섬까지 기웃거리게 되었겠지.

 

장항습지. 대략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한강 하구의 너른 습지가 고라니의 터전이다. 온갖 철새가 날아들고 우거진 버드나무 아래 무수한 말똥게가 어우러지는 장항습지를 환경부는 2006년 4월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덕분에 고라니들은 안심하고 식솔을 건사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200마리가 넘는 고라니가 살기에 비좁았고, 능력껏 여기저기 흩어져 그물 울타리를 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장항습지에 남았더라면 포수의 총에 맞거나 놀라 달아나다 자동차에 치일 염려가 없었겠지만, 아등바등 경쟁하는 걸 싫어하는 품성 때문에 위험을 자초하게 된 것이리라.

 

특산종에 총질하는 우리는 한강 유역에 얼마나 많은 고라니가 살고 해마다 몇 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나는지 조사한 적 없다. 한데 시방, 장항습지의 절반 이상이 수몰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경인운하와 연결하기 위해 신곡수중보를 김포대교 아래로 옮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장항습지를 찾아간 사람과 멀찌감치 눈을 마주치는 고라니는 머지않아 강화도 주변의 섬과 김포평야 근처에서 몰려들 총구를 조심해야 하고 자동차 전조등을 요령껏 피해야 할 모양이다. 제 뜻과 달리 유해조수로 지명수배 된 특산종의 운명이 그렇다 하므로. (전원생활, 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