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2. 7. 17. 16:19

   과학포경이라는 잔혹한 망신살

 

세계적 아이스크림 회사인 배스킨 라빈스 31’의 상속 대상자였던 존 로빈스는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라는 제목으로 2000년에 번역 출간된 Diet for New America에서 페롤루스 잭으로 이름이 붙은 돌고래를 소개했다. 뉴질랜드와 뒤르빌 제도 사이의 프렌치 수로에서 범선을 안내하던 돌고래였다. 누가 훈련시킨 것도 아닌데, 물살이 거센 해협에서 배를 안전하게 인도해 난파를 막아주었건만, 수난을 받기도 했다. 펭귄 호의 만취한 승객이 총을 쏜 것이다. 피를 흘리며 달아났지만 스스로 회복한 뒤 그 돌고래는 흔쾌히 수호신을 재개했다. 하지만 펭귄 호는 언제나 예외였고, 결국 그 배는 난파돼 승객과 선원들이 익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한 존 로빈스는 엄청난 상속을 마다한 채식주의자다.


돌고래뿐이 아니다. 난파된 배에서 떨어져나가 망망대해를 허우적거릴 때 바다 깊은 곳에서 홀연히 올라와 구조선이 다가올 때까지 몸을 의지하게 해주던 커다란 거북 이야기는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 낳으려 해안으로 다가오는 거북을 당연한 권리인 양 잡아먹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갈라파고스 군도의 새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맹금류를 피해 사람의 품으로 숨기까지 한다는데, 그런 새에 총질한 사람도 있다. 산길에서 어깨에 날아오는 곤줄박이에게 손바닥의 땅콩을 먹이며 즐거워하는 사람이지만 연구를 위해 총을 쏘거나 그물로 새들을 잡아들이기도 한다. 지금은 먹을 게 도처에 많은데 자연에 그렇게 총질을 한다. 돌고래는 물론 커다란 고래도 예외가 아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금지곡에서 풀렸다. 박정희에서 시작한 군사정권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민중의 사랑을 받는 가요를 공연 금지곡으로 묶었는데, 고래잡이는 우리나라도 아직 금지를 공식으로 철회하지 않았다. 과학실험을 빙자한 일본이 호주 뒷바다에서 해마다 1000여 마리의 밍크고래를 잡아들이고 칠레 앞바다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2만 톤급 니신마루 호는 돌고래든 혹등고래든 보이는 족족 잡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세계 각국은 바다의 대형 포유류인 고래를 더는 잡지 않는다. 대표적 포경국가였던 호주도 마찬가지다. 멸종이 염려될 정도로 개체수가 급감한 고래가 우리와 같은 온혈동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래가 관광 수입원이 되는 이유도 크지만, 고래가 건강해야 바다 생태계가 건강하고 바다가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711, 정부는 어업인과 환경단체 그리고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내년 5월 우리나라가 개최하는 국제포경위원회에서 승인 요청하려던 과학포경을 포기할 뜻을 비쳤다. 우리 해역에 고래가 급증해 어업 피해가 늘고 불법 포획을 방지하기 위한 과학적 조사라는 걸 부각하려 노력했던 정부가 왜 갑자기 철회를 시사했을까. 대통령의 언급이 주효했을 테지만, 국내외의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연구 운운했어도 포경 이외의 방법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국제적 지적을 외면할 수 없었을 거다. 호주는 칩을 이식해 조사한다. 오래 전부터 고래잡이로 명성을 떨쳤던 울산 장생포에서 환호했다 실망한 이유는 연구와 대체로 무관하다. 불법 포획을 방지하기 위해 포경을 허락한다는 주장도 어색하다. 고래로 인한 어업의 피해보다 불법 또는 합법을 빙자한 고래 포획의 수입이 큰 건 아닐까.


문어 통발과 꽁치그물은 밍크고래가 출몰하는 해역에 펼치지 말아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의 수가 우리나라에 도드라지게 많은 이유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 마리 잡으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밍크고래를 바다의 로또라고 말한다는데, 의도하지 않게 걸린 고래를 서둘러 풀어주는 국가와 달리 우리나라는 외면할 게 분명하다. 정부의 관리와 통제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포경을 허가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포경을 자제하던 시절보다 빠르고 강력한 배를 대동할 과학포경은 삽시간에 바다의 로또의 씨부터 말리고 인공위성을 동원하며 덩치가 큰 온혈동물을 추적할 게 뻔하다. 장생포는 물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식당은 버젓이 고래고기를 내놓을 테고, 기업은 고래고기 가공식품을 서둘러 개발할지 모른다.


고래 관광으로 선회해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는 국가는 호주뿐이 아니다. 포경을 공식 포기한 많은 국가들이 고래관광으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다. 장생포 역시 고래관광의 가능성이 큰 곳이다. 사람이 작살과 총을 난사했던 기억을 결코 잊지 않는 고래들이지만 악의 없는 사람을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 고래들은 호기심이 많다. 돌고래는 사람이 탄 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다니고 배 주위를 선회하던 고래들이 닿을 듯 다가오기도 한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관광객들은 자연의 생명과 호흡을 같이하며 즐거워하고, 바다에서 만나는 온혈동물의 모습에서 감동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잔혹하기 짝이 없는 과학포경을 철회해 다행인데, 일본 흉내내는 망측한 짓은 제발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무지막지했던 피노체트 군사정권을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세계적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지구 끝의 사람들에서 니신마루 호에 대항한 커다란 고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고래를 보호하려 다가간 노인의 작은 배는 나신마루 호가 퍼부은 물세례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을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배는 별안간 하늘로 올랐고, 등에 실은 작은 배를 안전한 해안으로 안전하게 내려놓은 고래는 전속력으로 니신마루에 돌진해 부딪히는 게 아닌가. ! 휘청거리는 배와 충돌한 고래는 피를 흘리며 물러서더니 남은 힘을 다해 다시 돌진했다. 이어 합세한 여러 마리의 고래들이 죽음을 각오하며 니신마루 호를 암초 지대로 밀어내자 거듭된 커다란 고래의 충돌을 이키지 못한 니신마루 호는 한동안 그 해역에서 자취를 감춰야 했다고 세풀베다는 썼다.


     자신들을 보호하려 애쓰는 이들을 향한 고래의 동정은 자신의 생명까지 내놓는데, 우리는 과학을 핑계로 포경을 계획한다. 고기가 지천인 세상에 고래고기까지 보태야 하나. 고래고기가 그리 맛있나. 없으면 견딜 수 없나. 우리는 고래 이외에 먹을 게 없는 동토의 원주민이 아니다. 과학 연구는 작살 이외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 과학을 빙자했던 아니든, 망신살 넘치는 포경을 철회했으니 이젠 시민들과 함께 다음 단계를 구상해야 한다. 비의도적이라는 핑계로 마구 잡아들이는 고래 혼획을 최소화하면서 고래와 공존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고래 보전에 애를 쓰는 국가라는 위상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며 고래관광도 긍정적으로 진전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여기, 2012.7.17)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째 인간이란 종족은 이리도 얽힌 그물을 끊고저 해쓰는지요... 저도 그 역할 의식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머리칼이 쭈뼛, 섭니다.. 페북에 공유했습니다. 늘 좋은 글, 고맙습니다.^^
혹시 과학포경이 뭔지 정확하게 정의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과학 연구를 빙자해서 고래를 잡은 뒤 식용으로 대량 취급하는 걸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