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2. 12. 00:49

 

유네스코는 유엔환경계획(UNEP)과 올해를 ‘고릴라의 해’로 선언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고릴라 4종 중 3종을 멸종위기 적색목록으로 분류하는 이때에도 아프리카는 내전과 가난으로 인한 삼림 훼손으로 고릴라가 급격히 줄어든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일대에 서식하는 마운틴고릴라는 고작 700마리, 카메룬과 나이지리아 일원의 크로스리버고릴라는 겨우 300마리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전역에 12만 마리 정도만 남았을 거로 추산하는 고릴라의 보전을 위해 유네스코는 기금을 마련하려고 계획했다. 기금으로 고릴라가 분포하는 지역 주민들의 생계수단과 수입원을 보장하여 밀렵을 사전에 차단하고, 생태관광을 통한 지속가능한 산림업을 지원하며, 그를 위한 국제 협력을 도모할 예정임을 밝힌 것이다. 우선 저명한 침팬지 학자인 제인 구달은 자신을 후원자로 등록했다고 유네스코는 전한다.

 

고릴라를 구하자는데 왜 침팬지 학자가 나섰을까. 제인 구달의 유명세는 고릴라 보전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일 테지만, 이미 ‘다이엔 포시 국제 고릴라 기금(DFGFI)’이 있는데 굳이 제인 구달이 앞장설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제인 구달과 비견되는 고릴라 학자 다이엔 포시는 1985년 사망했다. 그것도 고릴라 밀렵을 막으려다 밀렵꾼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되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고릴라가 밀렵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고기다. 내전으로 황폐화된 초원에서 아프리카 인들은 소나 양을 키울 수 없다. 먹일 풀도 드물지만 애써 키운 가축을 반군이 끌고갈 때가 많다. 기름진 농토는 상당히 넓지만 거기는 유럽으로 직송되는 농작물이 차지해 접근이 차단돼 있다. 배를 곯아야 하는 아프리카 인에게 남은 대안은 야생동물 외에 거의 없다. 밀림 속의 고릴라는 쉬운 밀렵 대상일 수밖에 없다. 콩고 일원의 숲에서 100만 톤 정도의 고릴라 고기가 식용으로 거래되었을 정도라고 소식통은 전한다.

 

아프리카 인이 원래 고릴라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곡식과 가축을 먹어왔지만 어쩌면 고릴라를 산 채로 가지고 가려는 백인 상인들이 고릴라 고기를 먹도록 유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릴라는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 그런 고릴라를 미국이나 유럽의 동물원이나 연구소에 살아 있는 상태로 옮기려면 어린 개체를 생포해야 한다. 따라서 백인에게 총을 받은 밀렵꾼은 고릴라 한 가족을 몰살시키고 공포에 질린 어린 개채를 잡아들인다.

 

몰살된 고릴라 사체는 고기로 밀렵꾼에게 나눠줬을 텐데, 그 전에 백인 상인은 혐오스런 부탁을 했다. 파이프 재떨이로 사용하려고 고릴라의 발을 잘라오라고 시킨 것이다. 희생된 고릴라 중에 다이엔 포시가 집중 연구하는 ‘디지트’도 있었다. 성격이 괄괄한 다이엔 포시는 거만하게 앉아 고릴라 발에 파이프 담뱃재를 터는 상인을 목격하자 피가 거꾸로 솟았고, 호텔을 뒤집어엎었지만 사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이엔 포시의 철두철미한 감시로 밀렵이 어려워지자 이번엔 생계가 어려워진 밀렵꾼이 다이엔 포시를 도끼로 살해한 뒤 손목과 발목을 자른 것이다. 물론 아프리카 인의 소행이었지만 배후에 백인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내전이 겉으로 종식된 르완다에서 고릴라 증식에 나섰다고 해외언론은 전한다. 다이엔 포시 국제 고릴라 기금과 손잡고 생태관광을 기획한 건데, 효과가 좋았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관람료가 시간 당 500달러에 이르지만 인기를 끌었고, 10년 동안 마운틴고릴라가 17퍼센트 늘었다는 게 아닌가. 2004년 르완다는 최고액 화폐의 모델로 고릴라를 간택했다던데, 올해 고릴라의 해가 되었으니 보전에 탄력이 붙을 것인가. 하지만 아직 불안하다. 300마리와 700마리로 집단을 유지한다는 건 아무래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환경운동가 박경화는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우리나라에만 3천만대 이상 보급된 핸드폰에 들어가는 원료 중에 ‘콜탄’이라는 광물질이 고릴라 분포지역에 많이 매장돼 있는데, 핸드폰 보급 확대로 킬로그램 당 400달러가 넘어서자 고릴라가 분포하는 지역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질 뿐 아니라 채취와 밀수에 얽힌 이권으로 발생한 국가 사이의 갈등, 그리고 정부와 반군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고릴라의 서식지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포함한 세계 소비자들은 고릴라 터전의 보전을 위해 핸드폰 사용을 자제할 것 같지 않다. 고릴라의 해를 선포한 유네스코도 그런 제안은 내놓지 않았다.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 중에 일부는 포기할 수 있겠지만 핸드폰 생산회사는 고릴라 분포 지역의 콜탄이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다면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우리는 핸드폰을 바꾸지 않으면 어떨까.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 문의해서 고릴라 보전을 위한 기금에 다만 얼마라도 기여하면 어떨까.

 

200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고릴라의 해에 비록 경제 위기를 맞았지만, 르완다로 생태기행 떠날 여력이 없는 우리가 나서서 핸드폰 최대 수출국가의 업보를 조금 떠맡는 것도 꽤 뿌듯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야곱의우물,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