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1. 6. 8. 13:49

 

최근 미군기지 오염이 새삼스레 부각되고 있다.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안에서 경북 칠곡군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묻었던 고엽제 성분이 옮겨져 처리되었다는 의혹이 일었고, 칠곡에 이어 부평까지, 한 치의 의혹이 없는 조사를 시민단체들이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평 미군기지는 군수품 재활용 유통 처리소를 운영 중인데, 1987년 미군 공병단은 독성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 수백 드럼을 그곳에서 처리한 적 있다는 보고서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잠자코 있던 환경부가 2008년과 2009년에 조사하니 토양은 기준치의 32, 지하수는 2배 가까운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했다. 발암물질 검출에 이어 고엽제 의혹까지 이는 그 부평 미군기지는 2016년 반환 예정이다.

 

베트남에 퍼붓다 남은 고엽제를 매립했던 미 퇴역군인이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캠프 캐럴의 인근 마을은 여전히 별 문제의식 없이 지나갔을지 모르고, 인천도 별 이의제기 없이 미군기지를 인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심선언한 미국의 그 퇴역군인은 어쩌면 젊은 시절을 보낸 낙동강 변 칠곡군의 경치를 기억했을지 모른다. 얼렁뚱땅 파묻는 과정에서 고엽제가 몸에 묻어 평생 고생했을 테지만, 그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고장에서 이제껏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암으로 하나 둘 희생되는 주민의 아픔도 생각했겠지. 그이가 젊음을 한 때 바친 낙동강에 애정이 없었다면 뒤늦은 양심선언으로 국제 분란을 자초할 리 없었을 테지.

 

칠곡군과 부평의 미군기지만의 사정이 아니다. 부천도 그렇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을 미루어볼 때, 전국 수백 군데의 미군기지가 다 비슷한 사정을 가졌을 게 틀림없다. 이제 겨우 부각되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전국의 미군기지 주변은 늘 오염으로 몸살을 앓아오지 않았나. 미군은 우리 땅의 뜨내기다. 본국으로 떠나면 그만인 미군에게 한국의 기지는 정붙일 터전일 리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귀찮은 물질은 은근슬쩍 파묻어 유야무야 처리하면 그뿐이다. 기름으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든 말든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이 무책임한 사용을 보장하는데 걱정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미군의 허락이 없다면 어떤 한국인도 영내에 들어와 조사활동을 할 수 없다. 부평의 캠프 마켓 앞에서 현장조사를 요구하던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천만다행인 건, 2016년 캠프 마켓이 반환된다는 점보다 인천시민들이 그 땅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어쩌면 반환여부와 관계없이 분노했을지 모른다. 미군이 주둔하던 하지 않던, 거기는 분명히 인천의 땅이고, 인천에 가족과 함께 살아갈 후손의 터전이 아닌가. 미군이 영원히 그 자리를 점유하지 않으리란 건, 미국도 우리도 동의할 테고, 결국 되찾아야 할 내 땅이다. 잠시 빌려주었건만, 뜨내기의 분별없는 사용으로 발암물질에 오염되었다니! 땅 주인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자. 빌린 땅을 오염시킨 자에게 주인이 잘못을 물을 수 없도록 협의된 SOFA는 부당하다. 따라서 공정하게 개정하라는 요구는 두말 필요 없이 합리적인데, 그런 SOFA 개정을 시민사회가 이제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예년에 없었던 정주의식이 표출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캠프 마켓이 어느 화학물질로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아직 모르지만 시민의 관심이 식지 않는 한, 반드시 정화될 것이다. 이제까지 겪은 경험상, 미국이 선뜻 우리의 뜻을 전폭 수용해 SOFA 규정을 변경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미군이 예산과 성의를 다해 정화하지 않는다 해도, 그 땅을 수용해 터전 삼을 우리가 어떻게든 정화시킬 것이다. 설사 미군이 정화한다 해도 자식을 그 자리에서 키울 우리가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과 미군에 SOFA 규정 개정과 기지의 정화 요구에서 그치면 안 된다. 이 참에 시민의 정주의식을 높일 터전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5년 뒤 반환된 인천시민은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마음을 다시 모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반환 후 어떤 모습으로 활용할지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혀 있을 테지만,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의견을 사전에 충분하게 제시했고, 납득할 정도로 논의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부평 미군가지로 이어진 이번 고엽제 파동은 시민들의 정주의식 고취의 기회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부평은 물론이고 부천과 칠곡, 그리고 전국에 흩어진 미군기지, 그리고 방치된 공장지대, 파괴된 갯벌과 4대강이 정주의식을 가진 시민에 의해 정화되고 복구되며 복원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터전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게 틀림없다. 자식들에게 모처럼 면이 서는 일이다. (인천in, 2011.6.7)

이런글....... 사람들이 잘보지는 않지만 정보찾을때 유용하겠네요.
조금더 쉽게 정리해두면 좋았을텐데...

 
 
 

서평·추억

디딤돌 2009. 12. 13. 22:39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마리-모니크 로뱅 지음, 이선혜 옮김, 이레, 2009.

 

 

 

언젠가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해외소식을 보았다. 잉카 후예가 스페인으로 가 지난날 자신의 조상에게 빌려간 돈에 대한 이자를 이제부터 지불하라고 시위했다는 거였다. 수백 년 동안 유예해온 원금과 이자는 이제 와서 따지지 않겠노라고 했다. 조상이 빌려준 막대한 금과 은으로 이만큼 부유해졌다면 이자라도 지불해야 자본주의 국가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물었던 모양인데, 이후 스페인에서 성의 있는 자세를 보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이자를 제대로 지불한다면 스페인의 재정은 즉시 바닥을 드러낼지 모른다. 잉카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여러 원주민에게 강탈한 자산에 대한 이자를 상환하기 시작한다면 스페인은 물론이고 유럽의 경제는 곧장 나락으로 나뒹굴지 모른다.

 

북미대륙 못지않게 남미에서 벌인 유럽인의 잔혹행위는 그네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지났더라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 공식 사과야 가능할 것 같은데, 잉카 후예의 시위 이후 사과했다는 소식은 여태까지 듣지 못했다. 한데 지구촌에는 자칫 사과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배상의 소용돌이로 빠질 소지가 다분한 대형 사고가 당대의 기억 범위 내에 여러 차례 있었다. 1984년 12월 인도 보팔 시에서 미국계 다국적기업 유니언카바이드 사의 농약 공장이 폭발한 사건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공기보다 무거운 메틸이소시안염이 밤새 퍼져나가 그날 사망한 수천 명을 포함해 2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이 불구의 몸이 되었으며 장애는 대를 이었다. 지금은 다우케미컬로 인수된 당시 유니언카바이드 회사의 회장은 사과와 합당한 보상을 공식 약속할 뻔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다국적기업의 강력한 충고로 이성을 찾은 회장은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고 25년이 지난 현재에도 주민들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다고 25년 이전을 회고하는 소식통은 전한다.

 

2년 전, 태안 앞바다에 1만 2천 톤 이상의 원유를 유출시킨 사고는 어떤가. 정박 중인 유조선을 들이받은 해상 크레인은 삼성중공업 소속이었다. 높은 파도와 강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해양경찰청의 무선 경고까지 무시하며 무리하게 운항하다 빚은 사고였지만 항해일지 조작을 서슴지 않은 삼성중공업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 없다. 그렇더라도 원래 피도 눈물도 없이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삼성중공업을 비난하는데 그치지 말고 말 못할 다른 사정을 끄집어내어 반추하는 일도 환경운동의 색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떠맡게 될 피해보상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사고를 낸 기업이 따라야 할 국제 선례를 자신이 만드는 걸 한사코 피하려 하는 건 아닐까.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와 대량폐기로 떠받들어지는 지구촌의 산업체계에서 비슷한 사고가 앞으로도 빈발할 테니, 그저 눈 딱 감고 버티며 재판에 대비하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길지 모른다. 대부분의 거대 사고들이 다 그러지 않았던가.

 

 

 

마리-모니크 로뱅(이후 로뱅). 그는 최고 권위를 가진 상을 여러 차례 받은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소개로 충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취재하는 일에 대한 긍지는 물론이지만 분명한 소명의식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운동가라고 덧붙여도 손색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쓴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에 드러나 있듯, 충분한 사전 조사와 증언을 토대로 증인에게 차례로 접근,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상대를 당황하게 하거나 머쓱하게 만들기 일쑤였지만, 그는 누구를 언제 만나 무슨 질문부터 어떻게 던져야 할지 정확히 아는 듯했다. 로뱅과 같은 저널리스트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몬산토와 그 주변 인물들은 오만한 걸까. 아니면 쉽게 생각한 걸까.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많은 이는 여전히 교활했다. 그래도 집요하게 진실에 접근한 로뱅은 전후 맥락을 충분히 수긍하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그를 위해 로뱅은 3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했다.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읽고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고 이강택은 권말에서 술회한다. 그는 누구인가. 지금도 한국방송공사의 공영성 회복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시청자를 숱하게 낳게 한 대표적인 프로듀서가 아닌가. 지난 정권에서 이른바 ‘한미FTA 4대 선결조건’이란 게 논란될 때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과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을 연거푸 제작한 이후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이유로 6개월 동안 취재 활동을 멈춰야했고, 미국의 압력으로 주권 포기에 가까운 조항을 삽입하게 된 사실까지 적시한 <위험한 연금술, 유자조작식품>을 제작하여 한미FTA 합의에 앞선 전과 현 정권 수뇌부의 표정 관리를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다. 텔레비전 교양제작 프로듀서임이 분명한 그는 지금 회사 연수원에서 펜대를 돌리고 있다. 자기 영화사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을 연수원 사무직으로 발령을 낸 꼴인데, 이는 폭력에 해당한다.

 

이강택 프로듀서가 “용감하고 진실된 저널리즘의 승리”라고 가슴 절이며 평가한 이유는 로뱅의 노력 덕분에 몬산토의 저의가 이제 분명해졌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이강택과 나란히 우리 먹을거리의 위기를 진단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문화방송의 이동희 프로듀서, 그리고 광우병 토론 방송마다 출연해 진실을 알면서 외면하는 우리 관료의 태도에 절망하던 박상표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사무국장이 반가운 마음을 추스르며 추천사를 썼지만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치밀한 끈기에 찬사를 보내며 몬산토 악덕에 경악하지 않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몬산토, 또는 몬산토가 지원하는 연구와 관련된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실제로 자본과 권력에서 어느 정도 독립되었다 싶은 세계 언론들은 앞 다투며 찬사를 보냈다. 그만큼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은 많이 팔렸고, 세계의 많은 소비자는 몬산토에 속았다는 데 분노해야 했다.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은 다큐멘터리가 계기를 마련했다. 정권과 유착하는 막대한 자본의 전 방위 로비와 압력에 굴하지 않는 방송사를 여기나 거기나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일 텐데 프랑스와 독일의 합작 문화체널 ‘아르테’는 달랐다. 미국의 폭스처럼 영향력이 높지 않은 방송이라 여겨 몬산토가 외면했다기보다 제작과 방영을 허락한 방송사의 확신과 뚝심이 로뱅을 지켜주지 않았나 싶다. 이후 긴 시간을 기다려준 ‘아르테’에 로뱅의 다큐멘터리 <몬산토가 만드는 세상>을 본 시청자와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읽은 독자들은 감사해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덕분에 몬산토의 두꺼운 가면이 벗겨지지 않았던가. 권두에 추천사를 쓴 프랑스 녹색당 총수만이 아닐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책을 읽은 세계 곳곳 수십만의 책임 있는 시민들은 몬산토를 거부했으며 GMO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운명을 맞이하기 시작했을 거라 믿을 수 있다.

 

아르테에서 ‘자연을 약탈하는 인간’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받은 로뱅은 취재를 위해 들른 인도에서 몬산토를 조사해달라는 북부 농업조합 대변인의 절박한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수천 명의 농민을 자살로 몰고간 몬산토의 횡포를 어림짐작한 로뱅은 사무실로 돌아오는 즉시 인터넷에 접속, ‘몬산토’를 입력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무려 700만 건의 검색 결과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환경오염’을 추가하자 34만3천 건, 거기에 ‘범죄’를 더하자 16만5천 건, ‘부패’를 이으니 12만9천 건, 마지막으로 ‘과학 자료 조작’을 얹으니 11만5천 건이 검색창에 떴다는 것이다. 로뱅은 수많은 자료를 퍼즐처럼 이었고, 그러자 거대한 음모가 어렴풋이 드러났다고 했다. 이후 3년을 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심층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을 파헤칠 기회를 결코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 터.

 

몬산토는 자사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을 교묘히 은폐하며 판매를 계속했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억눌렀다. 과학자의 견해도 마찬가지였다. 연구를 방해하거나 발표를 막았고 투고가 확정된 논문조차 실리지 않도록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과학계와 언론은 물론 정부의 규제기관, 심지어 사법기관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까닭에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면 혹독하게 보복하는 비열함을 발휘했다. 물론 몬산토에 우호적인 연구는 당연히 적극 지원했고. 그런 상황에서 로뱅의 책은 아주 드물 수밖에 없다. 한데, 현재까지 몬산토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 진실을 담보하기 때문일 텐데, 저자인 로뱅도 용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고백한다. 조그만 꼬투리라도 보이면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며 문제를 제기하려는 자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 몬산토와 맞서야 하므로.

 

로뱅은 몬산토를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규정했다. 제초제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까지 생산하는 기업인데 죽음을 생산한다고 표현했다. 예의 몬산토는 발끈해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고 싶겠지만 여태 꾹 참고 있다. 몬산토에서 판매하는 제품 때문에 많은 이가 환경오염으로, 질병으로, 만회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는데 그치지 않고 생명까지 잃어야 했다는 걸 상기한다면 제목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 견디다 못해 수많은 농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실에 입각해 저자가 제목을 그리 달았을 게 아닌가. 표현의 자유가 엄연히 살아있는 국가에서 허투루 소송을 제기하기 어려웠겠지만, 자칫 이미 명성이 자자해진 저자를 고발할 경우 몰아칠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 몬산토는 짐작했을지 모른다. 로뱅도 가만히 당할 리 만무하겠지만 그럼에도 몬산토가 자신에 호의적인 세인트루이스 법원에 고소한다면 무엇보다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판매량이 세계적으로 폭증할 게 뻔하지 않은가. 몬산토는 시방 전전긍긍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것 참! 로뱅은 끈덕진 심층취재로 소문으로 무성하게 듣던 몬산토의 악행들을 명명백백 양파 껍질처럼 드러나니 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르겠다. 심증은 가지만 확신이 없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는데, 이젠 마음 놓고 발설할 수 있게 환경운동가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았던가.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이전까지, 많은 이들은 몬산토는 GMO, 다시 말해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세계의 농민들에게 독점 판매해 거액을 벌어들이는 다국적기업 정도로 짐작했을 텐데,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 출간된 이후 그 동안 추정만 했던 몬산토의 악행은 빙상의 일각이라는 걸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자, 이제 기대하며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을 펼쳐도 좋겠다.

 

20세기 초 설립돼 사카린을 만들어 팔던 몬산토의 추문은 1935년 폴리염화비페닐(PCB)을 생산하던 작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에 대한 안전성과 내화성이 뛰어나 변압기와 각종 기계의 냉각수와 윤활액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PCB는 퇴출 직전까지 몬산토의 최초 독과점 화학제품이었다. 이미 1930년대부터 PCB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 1977년 사용이 금지될 때까지 생산과 판매를 지속한 몬산토는 1990년 중반 공장 주변 마을부터 재물로 삼았다. 마을의 강에 폐수를 버리고 노천 하치장에 폐기물을 버리자 20에서 40세 청장년 수백명이 암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고객에게 지나치게 정확한 정보를 주면 영업에 방해만 되므로 굳이 대답이 필요하다면 구두로 답해야지 절대 서류로 회신하면 안된다!”는 지침을 내리며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마을과 직원의 보호를 위해 어떠한 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몬산토는 흑인이 주로 거주하는 폐기물 매립장 근처에 소나 돼지를 방목하는 걸 방관해오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관을 움직이는 버릇이 발동했다. 수질개선위원회를 회유 ‘은밀한 협조’를 받았으며, 하천의 오염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어획금지를 선포하지 않은 식품의약국(FDA)의 협조로 1993년까지 물고기를 잡아먹은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게 된 거다. 몬산토의 그런 행위는 인종차별이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오로지 이윤만을 챙기는 몬산토는 “수익성이 매우 높은 제품의 생산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급 상황 앞에서 우리는 재정 수단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무장해야 한다.”고 내부 결속을 다짐할 따름이었다.

 

PCB의 종양 발생 가능성을 자체적으로 밝힌 실험결과를 날조한 게 드러나 결국 담당자는 의법조치되었으나 정작 날조를 지시했을 몬산토의 임원은 아무도 징역형을 받지 않았다. 미국의 사법체계는 여간해서 기업의 간부나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라고 로뱅의 인터뷰에 응한 증인은 한숨을 내쉬었다는데, 온갖 수단을 다해서라도 비리 사실을 감추려는 기업들은 우선 위험성을 호도하거나 부인하고, 고발이 들어오더라도 항소를 거듭하면서 지연작전을 벌여 재정이 바닥난 고소인이 제풀에 지쳐 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몬산토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새로 생긴 마을의 비포장도로에서 먼지가 일자 폐기름을 뿌렸는데 그만 마을이 PCB와 다이옥신에 오염될 줄이야. 몬산토의 PCB 제조공장이 가장 의심스러웠건만 방독마스크를 착용하고 번질나게 찾아오던 환경보호국(EPA)은 어느 순간부터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었다며 버텼다. 무수한 가축과 야생동물이 죽고 고질적인 피부병과 암, 감상선기능항진증과 알레르기, 현기증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은 몬산토 관계자가 관련 서류를 모두 파기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소용없었다. 관련 정보공개를 막은 레이건 행정부는 몬산토 이사 출신을 환경보호국 신임국장으로 선뜻 임명한 현실이 아니던가. 로뱅은 규제 풀린 미국의 신자유주의 실체를 거듭 폭로한다.

 

1차대전 때 폭약과 전투용 가스 원료를 제조 판매해 이윤을 100배로 늘린 몬산토는 전쟁을 기업 확대의 호기로 삼았다. 획기적인 제초제, 다시 말해 다이옥신을 함유한 ‘에이전트 오렌지’를 베트남에 뿌리자고 군에 접근한 것이다. 우리의 월남 파견 군인에게 치명적인 장애를 입힌 그 고엽제였다. 식물만 말려죽일 뿐, 야생돌물과 사람은 물론 토양에도 전혀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지만 역시 몬산토는 그 치명적 위험성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알려주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장병들은 에이전트 오렌지가 담겨 있던 통으로 세수를 하거나 고기를 구워먹었고, 제대 후 폐암, 간암, 백혈병, 신경질환을 앓아야 했다. 그런데 그 불행은 자녀와 손자손녀에게 이어졌다.

 

아, 무척 많은 사례를 다 적을 수 없었을 로뱅이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에 적시한 사항을 이 좁은 지면에 모두 요약 정리할 수 없으니, 안타깝다. 그러니 넘어가자. 에이전트 오렌지의 위험성을 밝힌 환경보호국의 연구자를 징계하라고 압력을 가할 뿐 아니라 환경보호국의 성명서까지 대신 작성하기도 한 몬산토는 드디어 비선택적 제초제 ‘라운드업’을 개발했다. 단백질 합성에 관계하는 효소에 영향을 미쳐 모든 식물을 말라죽게 하는 글라이포세이트가 주성분인 라운드업은 식용소금보다 안전하며 살포 후 1주일이면 다시 씨를 뿌릴 수 있을 정도로 토양에 잔류물이 남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100퍼센트 생분해성 친환경 제초제인 까닭에 사용법만 지킨다면 사람과 동물과 환경에 무해하다는 광고를 퍼부은 몬산토는 잡초를 없애 농촌을 치유하고 도시를 미화하는 물질로 치장하고 나섰다.

 

라운드업 역시 몬산토에 의해 위험성이 은폐되거나 억압되었고, 허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건 물론이었다. 환경보호국에서 몬산토로 자리를 옮겨 대 정부 로비활동을 하던 이가 다시 환경보호국으로 가 허가에 개입한 흔적이 역력했던 거다. 이른바 ‘회전문’이다. 고위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되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은 우리나라에 벤치마킹이 되었다 싶은 미국의 회전문 현상은 특히 몬산토에 유별난 모양이다. 덕분에 석연치 않은 승인 절차와 허위광고가 버젓이 반복될 수 있었다고 로뱅은 분석한다.

 

글라이포세이트를 세포 내에 침투하게 이끄는 보조물질이 있어야 라운드업은 치명적인 제초효과를 발휘하는 것인데 몬산토는 비열하게도 완성품인 라운드업이 아니라 보조물질을 뺀 글라이포세이트만으로 위험성을 평가했다는 걸 로뱅은 폭로한다. 태아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태아 살인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라운드업은 코카를 뿌리 뽑는다는 구실로 콜롬비아 우림 30만헥타르에 공중 살포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원주민 30만에서 장출혈, 구역질, 위장장애, 고환염, 현기증, 호흡곤란, 피부염, 안구염, 유산, 기형아가 속출했고, 가축의 폐사와 경작지 파괴, 그리고 공기와 물과 토양과 생물다양성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켰지만 몬산토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파실락’이라는 상품명을 가진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소 성장호르몬을 빼놓을 수 없다. 안전성을 의심한 과학자를 식품의약국에서 해고하도록 위력을 발휘한 몬산토는 예의 허술한 안전실험과 논문조작, 언론 통제, 그리고 회전문을 통한 전방위 압력을 물론 서슴지 않았다. 거듭 드러나는 부작용은 의식 있는 우유 소비자를 외면하게 만들었지만 그런 소비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허가와 규제기관과 관계가 긴밀한 몬산토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의 자연주기를 교란하며 우유를 생산하게 만드는 파실락은 고질적인 유선염을 늘리니 사육업자는 항생제를 수시로 처방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항생제는 우유에도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었다는 건 상식인데,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젖소의 면역계와 수정에 이상 현상을 초래한 파실락은 50세 이상 여성의 암 발생과 상관관계가 있으며 쌍둥이 낳는 확률을 5배나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아닌가. 유럽에서 소 성장호르몬을 처리한 우유의 수입을 거부하자 미국은 행정력을 총동원해 무역제재에 나섰다. 국가가 일개 기업의 시적 이익을 위해. 한데, 학교급식으로 납품하기도 하는 우리나라 우유는 괜찮을까.

 

 

 

여기까지가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의 3분의1애 해당한다. 이제 몬산토의 추악함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아쉽게도 더 쓸 지면이 없다. 그래도 GMO와 관련된 음모 부분은 넘어갈 수 없다.

 

몬산토가 GMO에 본격 뛰어든 건 라운드업의 특효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모든 식물을 다 죽이는 라운드업에 끄떡없는 종자를 만들어낸다면 몬산토는 씨앗과 제초제 판매로 매상을 갑절로 올릴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과학으로 포장돼 있지만 GMO는 사실상 과학과 거리가 멀었다. 유전자조작 감자를 먹은 실험용 쥐에 치명적 이상이 발견된 연구결과를 발표했던 스코틀랜드 로위트 연구소 아파드 푸스타이 박사가 일찍이 강변했듯, 눈을 감고 과녁에 활을 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아니 그것보다 형편없는 확률 게임에 불과할 것이다. 표적에 맞던 맞지 않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하는 유전자를 어디에 어떻게 넣어야 할 것인가. 라운드업으로 찌든 땅에도 거뜬하게 살아가는 미생물을 찾고, 그 미생물의 관련 유전자를 콩에 넣어볼까. 많고 많은 그 미생물 유전자 중에서 라운드업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만을 찾아 잘라내는 기술은 어려워도 구사할 수 있다지만, 문제는 그 미생물 유전자를 어떻게 콩 유전자의 특정 부위에 정확히 끼울 수 있는가 일 게다. 그래서 생명공학은 유전자총을 구상했다. 미세한 금이나 텅스텐 탄환에 콩에 집어넣을 미생물 유전자를 싣고 무조건 여기저기에 쏘는 거다. 수만 번 쏘다보면 운이 좋게 숙주인 콩 유전자 사이에 끼일 수 있을 테고, 콩이 라운드업에 내성을 가질지 모른다. 이른바 ‘라운드업 레디 소이빈(Roundup Ready Soybean)’은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그런 실험은 반복 재현될 수 없다. 그래서 유전자조작은 과학이라기보다 확률이 아주 낮은 운으로 보아야 옳겠다.

 

한데 그 운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숙주 유전자의 어느 지점에 삽입되는가에 따라 생각하지 않았던 유전현상이 언제 어떻게 얼마나 나타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유전자가 콩에서 잡초로, 또는 먹이사슬을 타고 다른 생물로 옮겨가 뜻하지 않은 유전현상을 만연시킬 수 있다. 조작해 넣으려는 유전자를 숙주 유전자 사이로 삽입하기 위해 생명공학은 벡터를 사용하는데, 벡터도 유전자다. 벡터 사이에 조작하려는 유전자를 먼저 끼워넣고, 그 벡터를 유전자총에 장탄해 숙주의 유전자 사이로 쏘아대는 건데, 벡터가 숙주 유전자 사이에서 빠져나가 엉뚱한 생물의 몸에서 유전현상을 발현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그 엉뚱한 생물의 유전자 사이로 끼어들어가 대대로 유전하게 될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어느 생물의 유전자 사이에 끼어 있든, 조작된 유전자는 살아있고, 리콜이 되지 않는다. 당장 발현되지 않다 숙주나 엉뚱한 숙주의 면역이 약화되었을 때 느닷없이 발현될 수 있다. 그땐 돌이킬 수 없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묵인 하에 만들어진 GMO는 자연의 보통 농작물과 거의 일치하므로 표시나 특별한 독성이나 안전 실험은 불필요하다면서도 특허를 내준 행위는 모순이다. 특허는 기존 농산물과 다르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런데 똑같단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도 앵무새처럼 되뇌는 이른바 ‘실질적 동등성 원칙’이 그것인데 불행하게도 실질적으로 달랐다. 식품의약청의 허가로 1994년 세계 최초로 시장에 출하된 유전자조작 토마토는 독성실험 결과 40마리의 쥐 가운데 7마리를 죽였고, 나머지를 위종양에 걸리게 했다. 몬산토의 히트 상품, ‘라운드업 래디 소이빈’, 다시 말해 유전자조작 콩의 실상은 어떤가. 역시 로뱅이다. 알레르기 유발물질이 일반 콩보다 많이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는 증언을 발품을 판 로뱅은 결국 얻어냈다. 하지만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낮았고 다른 영양분도 모자라다는 중요한 사실을 미국의 식품의약청은 무시했고, 어찌된 영문인지 논문의 출판이 좌절되었다. 대신 식품의약청은 유전자조작 콩의 농약 잔류허용량을 20배 완화하는 선물을 몬산토에 하사했을 따름이었다. 라운드업 레디 소이빈을 먹은 쥐는 간에 이상이 발생했다. 해독작용에 지쳤다는 건데, 췌장과 고환에도 문제가 보였지만 몬산토 압력의 의혹으로 연구비가 끊어졌다고 한 대학교수는 증언한다.

 

미국의 생명공학 산업의 발전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는 미 식품의약청 덕분인데, 역시 예의 회전문이 주효했다. GMO 규정을 만들기 위해 몬산토의 간부를 특채한 뒤 다시 몬산토로 되돌아가게 한 식품의약청의 눈물겨운 배려는 행정부와 사법부, 그리고 의회와 언론에도 이어져 분립된 삼권, 아니 무관의 제왕이라는 제4부의 비호까지 받을 수 있었다. 보도될 기사의 내용을 몬산토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알 수 없지만 모종의 조치 이후 폭스뉴스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는 게 아닌가. 아버지 부시 시절의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장관, 토미 톰슨 보건부장관, 앤 벤맨 농무부장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정무담당 마샤 해일 비서, 의전 담당 조쉬 킹, 미키 켄터 상무부장관, 클라렌스 토머스 대법원판사, 환경보호국 린다 피셔 부국장, 윌리엄 러클샤우스 국장, 그리고 수많은 의원들…. 리스트는 계속 이어진다.

 

로뱅은 영국에서 비롯돼 세계를 들끓게 만든 아파드 푸스타이 박사의 유전자조작 감자 실험의 실상도 세세하게 알려준다. 빌 클린턴의 전화를 받은 토니 블레어 수상은 로위트 연구소장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애초 연구결과의 발표를 적극 지원했던 연구소장은 즉각 돌변했고 이튿날 후속 조처가 행해졌다는 거다. 알려진 대로 푸스타이 박사는 느닷없이 직장을 잃고 연구비는 몰수되었으며 실험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발설하지 못하게 심신을 억압했다. 살 떨리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폭력이요 독재다. 몬산토는 연구자만 위협한 게 아니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허락 없이 심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바람에 파산하는 농부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속출했다. 유기농 유채를 심은 밭에 싹이 튼 유전자조작 유채는 이웃의 농장에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거나 유채 운반 트럭이 흘렸을 수 있고, 5년 이내에 심었던 유채의 씨나 열매가 땅에 남았다 늦게 발아했을 수 있다. 하지만 몬산토가 고용한 사설탐정은 범죄인 다루듯 윽박지르며 수백배의 배상을 요구했다. 배상을 거부하는 농부에 대해 몬산토는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주저하지 않았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는데, 법원은 오히려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충을 죽이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면화는 인도 농민들의 자살을 몰고왔다. 가격은 4배 가까이 비싼데 수확은 줄었고 살충제 사용량은 오히려 늘었으며 땅은 오염되지 않았던가. 감언이설에 속아 유전자조작 면화를 심은 농민들은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어 가족을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거다. 유전자조작 콩은 라운드업 사용량을 줄인다고? 천만의 말씀이라고 정부 연구비 받기를 포기한 과학자는 증언한다. 토양 박테리아를 죽여 수확량이 줄었을 뿐 아니라 조작한 유전자가 잡초로 옮겨가는 바람에 라운드업 사용량은 늘었다는 것이다. 몬산토는 이익이 폭등했을 테고.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는 수많은 토종을 아직도 재배한다.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옥수수는 그런 멕시코의 토종을 오염시켰다. “자연의 질서에 의해 생겨나는 예기치 않은 일”로 간단히 치부한 몬산토는 오염 사실을 밝힌 연구자를 해고하도록 대학에 압력을 가하고 논문 출판을 막았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런 일은 연구비를 받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교수가 대학에 있기에 가능했다. 인터넷을 무기로 유전자조작을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들을 ‘파시스트, 공산주의자, 테러리스트, 종족 말살자’라고 맹비난하는 몬산토의 추악한 행동은 “걷잡을 수 없는 방법으로 토종 옥수수의 유전적 특성을 바꾸어” 세계 농업을 자사의 유전자조작 종자로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드넓은 초원에 소를 방목했던 아르헨티나는 유전자조작 콩으로 불모화되었다. 기름졌던 땅은 라운드업으로 황폐화되고, 비행기에서 라운드업 세례를 받은 사람에 감상선과 호흡기 이상, 신장과 내분비 장애, 간과 눈과 피부질환이 발생했으며, 유산과 태아 조기 사망이 이어졌다. 질병의 목록은 뒤로 더 이어진다. 땅은 물론이고 지하수와 공기까지 오염되니 몬산토는 유기농업으로 가족과 오순도순 살아가던 농부까지 집어삼키고 말았다. 가축까지 몰살되고 만 농부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조차 없었다. 이웃 파라과이와 브라질도 현재 사정이 비슷하다. 몬산토의 콩을 위해 벌채된 아마존에는 라운드업 비가 내리고 강과 샘은 오염되었다. 가난한 농부들은 땅을 잃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데, 예전처럼 다양한 토종 농작물을 심고 가축을 키우는 가족농으로 남아 GMO를 강요하는 다국적기업과 싸우자는 환경운동가의 목소리는 지쳐가기만 한다.

 

 

 

생명체에 대한 특허는 세계 경제를 몬산토의 식민지로 만들게 했다고 로뱅은 주장한다. “전 세계 인구를 통제하기에 식량 장악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주장하는 몬산토는 ‘식량통제는 폭탄이나 무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신조로 여기는 듯하다. 인도 보팔시 농약 공장의 폭발 사고는 인도의 핵물리학자 반다나 시바를 GMO를 맹렬하게 반대하는 여성생태주의자로 바꾸게 만들었다는데, 그는 전통 유기농업을 회복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GMO가 내일의 에이전트 오렌지가 된다면? 하고 로뱅은 묻는다. 숙주의 유전자에 알 수 없는 돌연변이를 나타나게 하는 GMO로 세계 식량이 획일화된다면? 세 딸과 미래의 손자손녀를 위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몬산토라고 생각하는 로뱅은 반다나 시바와 마찬가지로 유기농업만이 내일을 위한 희망이자 대안이라고 믿는다. 1960년대 이전, 녹색혁명 이전의 농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다. 바로 가족농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 무려 8가지 형질 변경이 동시에 나타나는 유전자변형 옥수수의 수입을 승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역시 몬산토 제품이다. 기존의 GMO끼리 교배해 해충 저항성과 제초제 저항성이 모두 발현된다는데, 승인된 GMO로 교배했으므로 별도의 안전성 심사가 필요 없다고 몬산토가 설명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들이 승인한 GMO가 안전하다는 증거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데, 그들끼리 교배하면 당연이 안전할까.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대만도 승인했다고 덧붙인다. 하나 같이 미국에 종속된 국가들이다. 몬산토에 종속된 국가의 명단이기도 하다.

 

로뱅은 몬산토의 앞날은 그리 희망적이 아닐 것으로 추측한다. 아무리 교활한 협잡과 압력과 로비와 매수로 진실을 감추려해도 결국 검은 의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런 기업은 투자자를 잃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길 희망하는데, 어디 문제의 기업이 몬산토 뿐인가. 우리는 다국적 곡물유통회사의 횡포를 비난하지만 먹을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걱정이 많아도 자동차 산업은 규모를 줄이지 않는다. 석유산업은 어떤가. 무기회사는 예서 따지지 말자. 가전제품과 전자통신 회사들은 선량하기 그지없을까. 우리는 그런 기업에 제 자식이 취업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방과후 학습을 시킨다. 내 자녀들이 취업하는 회사들은 몬산토와 달리 선한 얼굴만 가지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만일 그랬다가는 적어도 이자 이상 돈을 벌어야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경쟁체제에서 그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내 아이는 해고되고 말 것이다. 참담한가. 하지만 우리는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에서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세계를 석권하려는 기업일수록 더욱 음험하다는 것.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푸념? 자포자기? 과학자와 규제기관은 물론이고 행정부와 사법부와 의회에 언론까지 장악한 기업의 횡포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다는 겐가. 하지만 로뱅은 책 곳곳에서 유기농업을 고집하는 농부에게 몬산토의 마수는 통하지 않았다는 걸 밝힌다. 그렇다. 우리가 엘리트에게 먹을거리의 주권을 내주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내가 먹을 걸 스스로 생산하거나 믿을 수 있는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을 사먹는 것이다. 그 농부는 가족농이거나 소농일 것이다. 좋으려면 공생공락의 공동체에서 제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자족하는 일인데, 그를 위해 우선, 덩치가 큰 기업에 대한 환상부터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여기저기에서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라는 증언이 쏟아진다.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으로 여기는 우리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로뱅의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은 일단 대 성공을 이뤘다. 많은 언어로 번역돼 절찬리에 팔려나간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판권을 얻으려는 출판사가 치열하게 경쟁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 덕분에 GMO 퇴치하려는 행동이 강해지고 일부 성과도 얻어간다니 기쁘다. 우리 언론은 현 상황에서 로뱅과 같은 심층 취재를 보장할 수 있을까. 물론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로뱅이 만든 다큐멘터리 <몬산토가 만드는 세상> 정도는 방영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방송사는 큰 광고수입을 올릴 수 있을 텐데. 역시 기대 난망이겠지. (녹색평론, 201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