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2. 26. 00:58
 

입춘이 막 지난 한낮이라 바람이 제법 차다. 응달에 잔설이 남았음직한 2월의 냉기는 뺨을 스치고, 외투에 손 찌른 채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천천히 걷는 기분은 모처럼 상쾌하다. 지하철이면 벌써 도착하고 남았을 테지만 지금은 더 없이 느긋하다. 버스나 지하철 길을 따라 걸으면 조금 더 가까울 테지만, 거기는 감시 카메라 눈치 보는 자동차들의 배기가스로 속을 거북할 뿐 아니라 참기 어렵게 시끄럽다. 아파트가 빼곡한 연수구에서 인천광역시의 청사로 가늘 길, 도시계획위원회의 회의 시각은 아직 멀었다.

 

버스와 트럭들이 승용차 사이를 질세라 질주하는 아스팔트를 피해 그린벨트로 접어드니 타이어의 마찰음과 신호 대기를 못 참고 시근덕거리는 디젤엔진 소리가 이내 삭으러든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시멘트 도로엔 자잘한 자갈이 흩어졌고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귀에 전해지는 발자국 소리가 정겹다. 개찰구에 다다르기 전에 울리는 경적은 망신당하기 싫으면 서두르라는 성화다. 작년부터 시큰거리는 무릎을 다그쳐 두 계단 세 계단을 뛰어내려야 닫히는 자동문 사이로 전동차에 올라탈 수 있는데, 오늘은 차라리 한가하다. 오랜만에 호사를 누린다.

 

개업식장을 수놓을 양란과 장례식장 벽을 가릴 화환이 들여다보이는 비닐하우스들을 지나면 추레한 기억을 감추지 못하는 지붕 낮은 집들이 오후 햇살에 나른하고, 나무무늬 마감재를 보란 듯 내미는 여기저기 조립식 건물들은 색다른 메뉴를 자랑하는 주변부 식당이다. 파란 하늘 사이로 참나무 가지는 가볍게 흔들리고, 양지바른 사면을 덮은 국수나무 덤불은 겨울 햇살 아래 따뜻하다. 한데, 덤불 아래 잔설 대신 쓰레기가 지천이다. 담뱃갑과 음료수 캔 사이에서 나풀거리는 비닐 끈들. 한때 돈 주고 샀던 물건일 텐데, 엔트로피가 높다. 가만, 어디서 ‘쓰쓰- 삐이 삐이’ 깨끗한 소리가 귀전을 맴돈다. 가냘프지만 단호하다.

 

곤줄박이다. 같은 과인 박새 무리와 잘 어울리는 흔한 텃새. 산지나 평지의 활엽수림에 주로 서식하며 곤충의 유충을 먹지만 낙엽 떨어진 이후 작은 나무열매를 딴다고 조류도감이 건조하게 전하는 곤줄박이는 고운 줄이 박혀 그런지 참 고운데, 그 새를 만났다. 광릉수목원 보호림 내에 자리한 평화원은 문 닫은 고아원인데, 평화원 주변의 양지바른 관목을 겨우내 떠나지 않던 곤줄박이를 눈에 밟히게 보았던 게 1980년대 초반이니,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다. 그 곤줄박이를 내가 사는 인천에서 만난 것이다. 그것도 골프장으로 바뀔 위기에 몰린 그린벨트에서.

 

검은 턱에서 이어진 검은 띠가 흰 배 사이를 지나고, 검은 머리와 흰 뺨과 잿빛 날개가 무채색인 박새 무리와 달리 곤줄박이는 알록달록하다. 흰 뺨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크림색 이마 뒤로 검은 머리가 붉은 갈색 등까지 연결되고, 검은 머리는 디시 크림색 세로줄로 도드라진다. 검은 턱 아래 붉은 갈색 배가 따사로워 보이는 곤줄박이는 밝은 회색 날개를 펄럭이며 나뭇가지 사이만 바삐 오가는 것은 아니다. 검은 부리로 가는 가지를 톡톡 치며 먹이를 찾는데 그치지 않고 등산객의 손바닥에 앉아 땅콩을 물어가기도 하는데, 뾰로통한 박새 무리와 달리 사람에게 곁을 잘 주는 곤줄박이는 한때 점쟁이 새장에서 운세 적힌 종이를 뽑아내는 앵벌이로 신세 망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온갖 새의 자태는 물론 소리까지 다운받는 세상이 되더니, 앵벌이를 마다않던 곤줄박이마저 필요 없어진 걸까. 도시 자연공원에서 땅콩 펼쳐주는 손바닥으로 반갑게 내려앉던 곤줄박이는 삭막한 회색도시에서 더 없는 위안이었는데, ‘친환경적이며 건전한 실외 체육활동’을 위한 골프장으로 그린벨트로 덮어씌우려 안달하는 인천시에 의해 오랜 터전을 빼앗길 것인가. 장차 300만을 훌쩍 넘을 시민의 적어도 4.4퍼센트는 골프를 즐길 것이라 예측하는 인천시는 세금 많이 내는 시민을 위한 놀이시설도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수천억의 예산을 계산한다. 세금을 적게 내는 나머지 95.6퍼센트는 부자들의 체육활동을 위해 소외되어야 하나.

 

대개 내기와 희롱으로 얼룩지는 골프장이 건전하다는 인천시의 얼토당토아니한 주장을 예서 토 달지 않겠다. 다만, 골프장도 녹지라며, 골프장으로 그린벨트의 환경 가치를 높인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어처구니가 없다. 군사독재의 유일한 생태정책이 그린벨트였는데, 그린벨트 해제는 누구의 민원이던가. 외지인이 주로 소유한 그린벨트가 없다면 토건국가의 불도저는 도시를 어떻게 파헤쳤을까. 생각만으로 아찔하지 않은가. 강제로 지정한 그린벨트의 여러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지 않다가 부자들의 질펀한 놀이를 위해 파괴하려 들다니, 온실과 음식점을 피하며 제 모습 드러내는 곤줄박이는 가녀린 터전마저 잃어야 하나. 나무와 숲으로 보전해야 할 그린벨트에 우리의 오랜 기후와 문화와 정서와 부딪히는 외래 잔디를 깔고, 그 잔디의 관리를 위한 고독성 농약과 화학비료를 흥건히 뿌릴 텐데.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개구리가 울지만, 개구리만이 아니다. 박새 무리와 헤어지는 곤줄박이는 잎눈이 싹을 틔우는 계절을 맞아 인적 드문 산록에서 짝을 구하는데, 입춘이 겨우 지난 2월, 회색도시의 헐벗은 녹지에서 한 녀석이 울었다. 지구가 아무리 더워졌다지만 벌써 짝을 찾으려는 건가. 종족보전에 의협을 느끼면 번식이 빨라지는 경향이 생물에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비닐 쓰레기라도 주워 둥지를 틀 그 곤줄박이는 흰색 바탕에 갈색 무늬가 있는 6개 내외의 알에서 몇 마리의 건강한 자손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의 성과 생존을 교란하는 농약은 자연의 생물이라고 예외로 두지 않는데.

 

시장원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는 노동유연화를 무기로 세금 많이 내지 못하던 앵벌이를 착취대상에서 유연하게 말살한다. 칼 폴라니는 최근의 시장원리보다 우정 어린 협력이 인간사의 본질이었다고 증언하는데, 신자유주의를 숭상하는 인천의 CEO 시장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강력히 추구한다. 앵벌이들의 알량한 무대까지 독차지한 자들은 곧 흥청망청한 행태를 배타적으로 과시할 텐데, 그린벨트를 보전하고 싶을 우리 앵벌이는 장차 어떻게 될까. 장차? 이미 신세가 결정되었다. 골프 치는 대학교수 위주로 구성된 인천광역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마침내 골프장 안건을 다수결에 부의, “파괴된 녹지를 연결하기 위해” 원안 가결한 것이다. 이제, 세금 적게 내는 나는 무슨 낯으로 곤줄박이를 만날 수 있을까. (물푸레골에서,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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