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7. 11. 30. 13:51


아침저녁으로 차갑다.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11월에 들어서면서 가창오리가 군무를 시작했다. 금강 하구와 천수만은 동틀 무렵과 해질 녘의 장관을 구경하려는 탐조객을 끌어들이지만 가창오리는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추워지면 천수만에서 해남의 넓은 호수로 이동하는 기창오리는 수십 마리가 전혀 부딪히지 않고 하늘을 수놓는다. 가청오리가 연출하는 장관은 보는 이의 넋을 빼앗는다.


겨울철새는 호수로 내려않는 가창오리만이 아니다. 서해안의 너른 갯벌에 수십 종류의 오리가 내려앉지만 최근 그 수가 크게 줄었다. 갯벌이 뭉텅뭉텅 사라진 뒤의 일이다. 식구 걷어 먹일 논배미를 위해 삽으로 갯벌을 매립할 적에 별 문제 없었지만 중장비를 동원해 광활하게 매립하면서 갯벌에서 먹이를 찾던 오리의 수가 줄었다. 매립한 갯벌이 들판이 되고 갈무리 뒤에 나락이 떨어지면서 늘어난 철새도 있다. 기러기들이 그렇다.


김포평야가 드넓던 시절, 부천 일원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들판은 뒤덮듯 내려앉은 기러기로 이맘때 떠들썩했다. 저녁 무렵 노을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파도치듯 알파벳 V자로 가르며 연실 날아오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곤 했지만 다 지난 일이다. 지금 김포평야는 없다. 부천에서 강화도 인근까지 모조리 매립돼 수도권을 한껏 부풀린 거대한 아파트 숲으로 뒤바꿨다. 기억을 더듬고 날아온 기러기들은 앉을 곳을 찾지 못한다.


강도와 화도로 나뉘었던 섬이 고려조에 매립돼 강화도가 되었고, 그때 조성한 들판은 지금도 많은 쌀을 생산한다. 인근 교동도와 석모도 역시 매립으로 넓은 들판이 조성했기에 갯벌에 내려앉는 오리보다 나락을 찾는 철새가 많았는데, 요즘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는 없지만 들판에 나락이 없다. 농기계로 이삭을 털어낸 들판에 나락을 남긴 볏짚이 배고픈 기러기들을 유인했지만 지금 들판은 볏짚을 남기지 않는다.


겨울철 우리 들판과 갯벌을 찾는 철새들은 대개 시베리아에서 날아왔다. 모여들기에 우리는 겨울이면 쉽게 관찰 가능하지만 흩어져 여름을 지내는 시베리아에서 찾기 어려운 종류가 대부분이다. 긴 거리를 쉬지 않고 날아와 체력이 고갈되었기에 철새들은 빠른 시간 안에 원기를 회복해야 하는데 갯벌은 해마다 뭉텅뭉텅 사라지고 널렸던 나락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서해안으로 날아오는 철새는 대폭 줄었다. 시베리아에서 더욱 희귀해졌다. 봄가을로 우리 갯벌을 잠시 경유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종류도 마찬가지다.


익은 벼로 황금빛이던 들판은 시방 한가롭다. 물론 철새가 없기 때문인데, 대신 볏짚을 둥글게 말아 거대한 연탄재처럼 하얀 비닐로 포장한 곤포사일리지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볏짚 사이에 유산균을 넣고 2개월 이상 숙성하면 영양 만점의 소 사료가 된다는데, 겨우내 소 한 마리가 두 개 정도 먹어치우는 500kg 곤포사일리지를 축산업계는 김장에 비유한다. 예전에 없던 곤포사일리지는 목장의 소를 배불리지만 겨울철새의 먹이를 가로챘다.



사진: 철새가 찾아와도 먹을 나락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곤포사일리지.


봄이 멀었는데 황사가 몰아쳤다. 중국에서 발원한다는 황사는 이제 시도 때도 없는 걸까? 올겨울은 조류독감이 퍼지지 않을까? 해를 거르며 반복되던 조류독감이 겨울철마다 발생하더니 올 여름에 나타나 전문가들은 아연했다. 토착화를 걱정한 건데, 조류독감마저 계절을 잃은 걸까? 11월 초부터 징후가 나타난 조류독감은 철새가 옮긴 걸까? 살처분 회오리가 전국으로 휘몰아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도대체 조류독감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전파된 걸까? 분명한 것은 2003년 년 이전 우리는 조류독감과 살처분이라는 용어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알 필요가 없었을지 모른다.


독감은 사람도 걸린다. 걸린다고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은 왜 떼로 죽는 걸까? 조류독감에 유난히 약한 종류이기 때문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가금에 조류독감을 옮긴다는 겨울철새를 보라. 떼로 죽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기진맥진 날아와 허겁지겁 먹이를 찾는 철새와 나그네새들 중 일부는 조류독감에 감염된 채 내려앉았지만 이내 회복할 것이다. 갯벌이 원형을 보전하고 들판에 나락이 충분한 시절이라면 훨씬 빠르게 회복되었을 것이다. 사람처럼. 한데 닭과 오리는 왜 떼로 죽을까?


조류독감으로 닭이나 오리가 떼로 죽는 게 아니라 그만큼 무자비하게 살처분, 다시 말해 죽이는 게 정확한 성명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조류독감 창궐 때문에 살처분한 가금은 6천만 마리가 넘지만 조류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진 닭과 오리는 200마리가 넘지 않는다. 밀폐된 양계장에 그대로 두면 급속히 전파되겠지만 회복되는 개체가 대부분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개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닭과 오리는 아무도 사가지 않는다. 익혀 먹으면 안전하지만 소비자는 외면할 것이다.


요즘 살아 있는 닭과 오리를 구입해 요리하는 소비자는 아주 드물다. 대형 축산업체는 초대형 자동 기계로 한꺼번에 도축해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고 소비자는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튀김으로 구입한다. 크기와 무게가 들쭉날쭉한 가금은 초고가의 기계를 망가지게 하므로 프랜차이즈 회사는 외면한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양계장 업주는 대안이 없다. 철새의 사체나 분변, 감염된 닭과 오리가 발견된 지역에서 안전반경 이내의 가축은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팔 수 없으니 정부의 살처분 요구에 동의하고 보상금을 챙긴다.


갯벌을 매립해 조성한 서해안의 들판에 사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양계장과 젖소와 한우 목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시절은 조류독감으로 살처분이 시작된 시절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 시절부터 가을철 들판에 곤포사일리지가 들어섰다. 우리는 치맥에 열광했고 명절 이외에도 쇠고기 고기가 식탁에 풍성해졌다. 품종개량으로 바닥에 닿을 정도로 유방이 거대해진 젖소는 송아지가 아니라 사람에게 우유를 공급한다.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송아지는 도저히 엄마젖을 빨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3끼 일주일 21끼를 밥으로 챙기는 이는 드물어졌다. 하루 한 끼 이상 밀가루 음식으로 대체하거나 식사를 건너뛰기 일쑤다. 먹더라도 밥 양은 많지 않다. 한 사람의 1년 치 쌀 소비량은 평균 60kg이 채 되지 않지만 고기는 50kg에 육박한다고 한다. 머지않아 밥보다 고기를 더 먹을지 모르는데, 50kg 중에 닭이나 쇠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는 해마다 8억 마리의 닭이 튀겨진다고 통계수치를 제시한다.


이맘때 건포사일리지는 가을철 고즈넉한 들판의 색다른 정취를 보여주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쇠고기 과잉 소비를 반영한다. 유산균을 함유하는 건초가 유전자 조작 옥수수 사료에 찌든 쇠고기의 육질을 얼마나 개선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철새를 잃었다. 부드러운 살코기를 자주 먹는 만큼 조류독감이 늘었다. 조류독감 뿐인가? 구제역도 늘었다. 가금과 돼지, 그리고 소를 살처분해서 파묻은 땅이 늘었고 그 침출수로 인근 하천과 지하수가 오염되기 시작했다. 들판의 건포사일리지는 인간의 탐욕을 반영한다.


무거운 농기계와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농업은 석유 없이 유지 불가능하다. 그렇게 재배한 유전자 조작 사료도 마찬가지이므로 요즘 축산은 고기가 아니라 차라리 석유다. 석유는 2005년 이후 퍼 올리는 양보다 소비가 늘었다는데, 우리는 후손의 생존을 위해 고기 소비를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래저래 철새가 사라진 들판은 쓸쓸하다. (작은책, 2017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