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4. 19. 12:06

《제1권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

 

히로세 다카시. 글을 잘 쓰는 반핵운동가로 생각했던 그는 《체르노빌의 아이들》에서 한순간의 방심이 일으킨 사고로 단란했던 가정이 비참하게 무너진 엄혹한 시대의 핵발전 실상을 여느 소설 이상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정부의 묵인으로 핵실험 현장에서 영화를 촬영한 배우와 스텝들이 모두 암으로 사망한, 다분히 의도적인 사건을 돋보기로 들여다본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도 기밀주의로 일관하는 핵산업의 필연적인 위험성을 독자 앞에 펼쳐보였다.

 

쏟아지는 책을 편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저자가 히로세 다카시 아니라면 붙잡지 않았을 《제1권력》. 얼핏 세계의 역사와 권력을 실질적으로 소유하며 흔들어대던 독점자본을 비판하는 책으로 보인다. 한 줌의 자본가가 독점 공급하는 석유와 자동차와 무기로 인한 환경위기가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악화된 현실에서 독점자본의 폐해를 경제에 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단 펼치면 눈을 뗄 수 없이 만드는 그는 《제1권력》에서 겉으로 드러난 직위보다 인맥과 금맥으로 정치, 경제와 언론계는 물론 스포츠와 영화계에 이르기까지 얽히고설킨 관계를 파악해 그들이 쓴 추악한 역사를 적나라하게 벗긴다.

 

한 손으로 들 수 없는 인명과 기업연감 들을 펼치며 사실관계를 일일이 대조한 히로세 다카시는 과감히 실명을 언급한다. 그가 가진 철두철미함이 있기에 고소고발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게다. 우리도 덩달아 번역한 미국 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에디슨. 그는 1퍼센트 영감 어쩌고 하는 발명가라기보다 차라리 저열한 사기꾼에 가까웠다. 올림픽을 창시했다는 쿠베르탱은 또 어떻고.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최근 사기혐의로 피소된 실상을 반영하듯, 과연 독점자본의 쌍두마차인 모건과 록펠러의 탐욕은 거칠 게 없었다. 방해가 되면 대통령도 제거 대상으로 여긴 그들은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는 전쟁을 탐욕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의회와 행정부에 포진한 수족을 부렸다.

 

자본의 독점을 통제하려던 미국의 대통령들이 하나 같이 임기 중에 사망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모건과 록펠러로 대변되는 독점자본의 꼭두각시일 때 정치 생명이 보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으로 풀이하는 히로세 다카시는 남북전쟁이 질질 늘어지고 1차 2차 세계대전에 미군이 얼씨구나 참전한 이유를 짚으며 한국전쟁의 발발과 종전을 그들이 예견한 사실에 전율한다. 보복은 그들의 미덕이다.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매카시 선풍을 잠재우더니 날조된 증거로 사코와 반제티, 그리고 로젠버그 부부를 전기의자에 앉힌 이야기는 읽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핵산업에 얽힌 흉계는 어떤가. 그들의 탐욕 앞에 지구의 생태계니 내일의 환경이나 하는 말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한 1986년에 《억만장자가 할리우드를 죽인다》는 제목으로 펴낸 《제1권력》은 미국의 자본 이야기에서 그칠 리 없다. 석유정점과 지구온난화가 기상이변을 넘어 식량과 에너지 위기를 점치는 이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미국에서 파생한 세계 각국의 독점자본과 그의 충견들이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의 생존을 억압하는데 우리의 대안이 무엇이어야 할지 《제1권력》은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시사인, 2010.4.26?)

서평 잘 읽었습니다. 히로세 다카시 선생의 글은 한번 잡으면 눈을 뗄 수 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나중에 기회되시면 <체르노빌의 아이들>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미 읽었지요. 마치 당시 소련의 작가처럼 쓴 그 책, 바로 내 동네 이야기처럼 들리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