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9. 21. 12:28

    이웃의 마음이 머무는 골목 풍경

골목안 풍경 전집, 김기찬 사진, 눈빛, 2011.

 

 

인천시 연수구는 계획도시다. 고즈넉한 농촌과 갯마을이던 곳을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하면서 길을 바둑판의 줄과 같이 만들었는데, 그래서 외지인이 찾아오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늦은 밤 얼큰한 상태에서 잡아 탄 택시가 엉뚱한 현관에 섰고, 흐느적거리며 올라갔다 낭패를 당해야 했던 기억, 길이든 건물이든 한결같이 반듯 반듯한 아파트 단지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다. 망막에 잡히는 잔상에서 특별할 게 없는 까닭이리라.


벌써 15년 가까이 사는 아파트에서 주민들은 여전히 익명이다.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이는 숱하게 많아도 얼굴을 기억하는 이는 경비원 정도다. 막 이사해 왔을 때 우리 집 수돗물이 새는 바람에 알게 된 아래층이 이사를 간 이후, 천 여 가구들이 앞뒤 건물에서 위아래로 빼곡한 주거단지에서 일부러 만나 인사 나눌 이웃은 완벽하게 없다. 땅에 발이 닿지 않은 허공인 아파트. 편의가 아니라면 머물 공간이 아닌데, 아파트로 들어오기 전은 어땠던가.


6차선 중 가운데 2차선만 포장되었던 1960년대 인천시의 주안, 신작로에 낮게 이어진 상가 뒤로 주택들이 골목을 사이로 처마를 마주했다. 논밭 사이에서 놀다 골목으로 들어서며 만난 이는 전부 이웃이었는데, 골목이 사라진 아파트 단지에서 늘 낯설다. 그래서 그랬을까. 1968년부터 서울 중림동의 골목을 30년 동안 촬영한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은 이 시대에 더욱 살갑다. 사진 책이지만 한 장 한 장 쉽게 넘기지 못하게, 흐뭇한 여운을 페이지마다 남긴다.


표정이 그리 살아 있는 사진을 어떻게 촬영할 수 있었을까. 아무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골목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한다. 1960년대였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까 말까하는 시진 속의 아이들은 앞니를 활짝 드러내고 웃는데, 예가 우리들의 동네라는 걸 마음껏 자랑하고 싶어 싱글벙글인데,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검은 고무신이 아닌 걸로 보아 그래도 서울 골목은 인천보다 사정이 나았는가 보다. 이어 드러나는 골목의 낙서들. 짝사랑하던 여인에 대한 자작 시였을까. 하트 무늬가 뒤범벅이다. 그 옆 페이지는 대통령 후보의 벽보가 흑백으로 붙은 골목의 기억을 더듬게 한다.


도시의 골목이 대개 그렇듯, 시멘트 포장의 비탈이거나 계단으로 이어졌는데, 거기에서 신문지 깔고 누워 재잘거리는 아이와 아낙들은 즐겁기만 하다. 무엇에 부아가 났는지 멱살을 잡고 눈을 치뜬 노인들은 조금 전 엿가락 장수가 죄판 벌인 곳일지 모른다. 좁고 가파른 골목을 물동이 메고 오르내리는 처자는 곰방대 물고 며느리 비교하는 노파들과 대비된다. 내다버린 19인치 텔레비전 케이스에 비죽 얼굴을 내민 개구쟁이가 있는가 하면 그 텔레비전 상자를 집 삼은 견공도 골목의 주인공이 되어 오후를 나른하게 누린다,


세월이 지나면서 하얀 고무신은 운동화로 바뀌고 플라스틱 자동차 장난감에서 기타와 오토바이가 점령하는 골목으로 바뀌는데, 낡은 지붕과 처마를 맞댄 골목은 허물어진다. 선풍적 아파트 단지 열풍에 예외 없이 휩쓸렸을 텐데, 지붕에 호박이 얹히고 마당에 오색 빨래들이 바람에 펄럭이던 골목은 수많은 추억과 역사를 뿌리치고 맥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골목에서 수다 떨고, 자치기 하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기 업고 손주 머리 감겨주던 할머니는 골목을 차지한 아파트 단지에서 얼마나 심심해했을까. 아니 더 외진 골목으로 쫓겨난 건 아닐까. 골목안 풍경 전집은 독자에게 아련함까지 전한다.


둘러앉아 밥 해먹고, 이웃의 새 색시가 탈 꽃가마 준비하던 골목. 바둑 두고 머리 빗던 이웃들은 먼저 떠난 이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김시찬은 같은 골목을 30년 동안 6차례 촬영했다. 그 기간을 온전히 지킨 골목이 서울에 있었다는 건데, 골목안 풍경 전집의 백미는 한 세대를 건너뛰는 골목의 역사를 렌즈에 담아냈다는 데 있다. 그는 마을에 뿌리를 내린 이웃을 다시 같은 골목의 그 자리에서 다시 반갑게 만나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란히 펼쳐냈다. 젖병 물던 아기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철부지 같던 소녀는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아기를 안고 있는 게 아닌가. 얼굴에 세월의 흔적은 늘었지만 골목 특유의 반가움이 김기찬의 사진마다 물씬하다.


500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동안, 어릴 적 골목과 그 골목을 공유하던 이웃이 생각났는데, 지금 그 골목은 없다. 골목안 풍경 전집속의 골목은 남아 있을까. 김기찬이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 갔을 때가 10년 전인데, 그 언저리, 주택은 저층이나 다세대 주택으로, 저층 아파트로는 고층 아파트로 탈바꿈을 꾀하면서 사람들은 주택 가치의 프리미엄을 꿈꾸었다. 골목도 주차된 승용차로 번잡한 이면도로에 이름을 내주어야 했다. 거품이 사회를 소용돌이치면서 골목은 사라졌지만, 더러 남아 있더라도 골목을 공유하는 이웃의 표정은 전 같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스민다.


거품이 꺼지면서 재개발 선풍이 느닷없이 가라앉았고, 미처 재개발되지 않은 인천의 오랜 주택가에 불만이 넘친다.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누고 캔 음료수를 하나 더 사서 쥐어주는 골목이 남은 동네도 있다. 아파트 단지로 사라질 운명이었던 인천의 동구가 그렇다. 자동차가 이웃을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골목에 돗자리 깔고 누워 그림 그리거나 배추 다듬을 수 없지만, 여러 해 같은 골목을 공유하며 삶을 동네에 뿌리내린 이웃을 아직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수 십 년을 살아도 느낄 수 없는 살가움이 그 골목에 여태 남아있다.


199912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과 인간에게 유용한가 아닌가와 관계없이 모든 존재들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가치를 옹호하는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인사동 골목길에 풀꽃상을 드렸다. 자연물에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드리면서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고 회원과 다짐하는 그 환경단체는 인사동 골목길은 無河地域에 흐르는 개울과 같습니다. 이 길을 지날 때 우리는 한 마리 왜가리처럼 느긋해집니다. 우리의 발걸음에 여유를 주고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 인사동 골목길에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4회 풀꽃상을 드린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제어되지 않는 속도와 큰길의 가치만 숭앙되는 메마른 땅에서 한줄기 개울처럼 우리를 느긋하고 고즈넉하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사람의 얼굴을 회복시켜 주는 골목길의 정서적 가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동 골목길에 풀꽃상을 드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얼마 전 자동차에 주권이 빼앗긴 서울의 골목을 떠났다. 아파트와 오피스텔에 채워진 사람 하나하나가 타자로 고립되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데 질식해, 골목이 살아 있는 시골로 간 것이다. 땅과 골목에서 다정한 이웃과 정을 나누고자 했는데, 요즘 시골에도 아파트가 번듯하다.


어느 겨울밤이었나. 한 무리의 청년이 일제히 함 사세요!”를 외쳤다. 고층 아파트 4개 동이 네모로 어깨를 붙인 단지의 넓은 가운데 아스팔트는 주차장인데, 아파트 현관 앞의 좁은 보행자도로에서 외치는 청년의 소리는 공명이 되어 일찍 잠든 이를 깨웠나보다. 다시 목소리를 모아 함 사세요!”를 외치자, 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더 큰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시끄러우니 꺼지라고. 허공에서 잠시 옛 기억에 잠기다 벼락 맞은 기분이었는데,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처럼 삭막해진 도시의 이웃에게 골목안 풍경 전집을 권하면 어떨까. 그도 골목을 걸을 때 이웃과 살가웠던 시절이 있을 텐데.


     2005년 유명을 달리한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전집은 독자에게 도시 속의 공동체 가능성을 조심스레 묻는다.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소비가 두려워질 때, 전기와 석유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지구는 뜨거워진다는데, 개별적으로 에너지 펑펑 쓰며 쓰레기 넘치도록 버리는 삶은 내일의 정답이 될 수 없다. 이제 싫든 좋든, 내실을 타진해야 한다. 개인보다 공동의 생활공간을 넓혀 서로 마음과 몸의 힘, 그리고 음식과 옷도 나누는 공동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소통이 있는 도시, 바로 이웃의 살가운 마음이 머무는 골목에서 기대할 수 있다. 김기찬이 30년 누비던 골목의 재현이다. (반니, 2012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