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3. 6. 29. 09:03

한바탕 비라도 내려야 할 풀릴 무더위가 계속되는 요즘, 일도 풀리지 않은데 어느 집에서 개가 신경질적으로 짖는다. 아파트 단지라는 공동주택에서 끊임없이 짖어대는 소리는 4각으로 높이 올라간 공간 안에서 공명이 되어 짜증을 일으키는데, 듣다 못했는지 다른 개들도 합세해 짖어댄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면 진정시킬 수 있으려나. 집에 아무도 없는 건 아닐까. 개를 입양한 이는 이웃을 생각해 짖지 않을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기에 저토록 아우성일까.


개 두 마리를 키우는 어느 집은 여유가 있거니 애틋함이 큰지, 들어가는 약값이 다달이 15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우울증 치료제라는데, 그럴 것도 같다. 발톱 가진 발이 무색하게 하루 종일 미끄러운 아파트 바닥에 지낸다. 민감한 코와 날카로운 이를 가졌지만 늘 같은 사료만 축내야 한다.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온갖 방향제와 텔레비전 소음으로 가득한 실내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사람들은 끌어안고 부빌 뿐, 여간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 문 잠긴 실내에 혼자일 때가 많으니 소파라도 물어뜯어야 한다.


크던 작던 개들은 네발짐승답게 흙바닥을 뛰어야 직성이 풀린다. 귀엽고 앙증맞게 육종했어도 본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덩치가 커다란 개는 겅중겅중 뛰고 싶은데 아파트 공간은 그런 운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순해터지는 품종으로 개량했어도 스트레스 받으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밖으로 나가면 흥분한 나머지 실내에서 훈련된 습관이 소용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 품에 안겼다 자기보다 작은 다른 개를 보고 갑자기 튀어나갈 수 있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고 심하게 짖을 수 있다.


개는 사람이 아니다. 저보다 우월한 자에 순응하는 본성을 가졌더라도 밖에 나가 뜻하지 않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에 외출할 때 반드시 끈을 묶어야 옳지만 많은 사람들은 끈을 풀거나 아예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자기 주변에서 떨어지더라도 부르면 바로 오리라 확신하지만 네발짐승의 돌발 행동은 쉽게 제압하기 어렵다. 차문을 박차고 나갔다 뒤따르는 자동차에 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공원에 나온 이웃 자녀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인식표를 목에 걸거나 인식 반도체를 삽입하도록 권고 또는 규제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시행되지 못한다.


최근 할머니와 유치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5살배기 여아가 갑자기 달려든 개에 물려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은 모습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사진을 공개한 네티즌은 억울하다고 했다. 보상을 요구하며 개를 키우는 이웃을 고발했는데 판사는 의외로 물린 소녀의 잘못도 있다고 판결해 보상이 제대로 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시비비를 네티즌이 올린 사연으로 모두 파악할 수 없어 판단은 보류하지만, 자신보다 낮은 서열에 도전하는 습성을 가진 개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사람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끈을 묶는 것은 물론이고 짖는 행동도 즉각 제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애완견보다 반려견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가족으로 입양한 개와 인생을 같이 살겠다는 의지다. 사람 사회에 개와 같이 지내려면 반려하겠다는 사람은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게 있다. 사람과 비슷한 예절을 몸에 익히도록 개를 훈련시키는 일이 그것이다. 유럽은 그런 훈련 프로그램을 일상화하고 입양 전에 반드시 권고한다. 자신의 눈에 아무리 예뻐도 이웃까지 그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가족에 다하는 충성이 이웃에게 이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개든 사람이든 마찬가지 아닌가.


개는 개답게 키워야한다. 개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과 어울리는 동물이 아니지만 반려하고자 입양했다면, 개의 본성을 배려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새로운 윤리를 실천해야 한다. 제 자식에게 예의를 가르치듯 자신의 개를 훈련시키는 일이다. 밖에 나가 운동을 시켜야 개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데, 이웃을 생각해 반드시 끈으로 묶어야 하고 개가 치우지 않는 배설물은 입양한 이가 치워야 한다. 이웃과 반려견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예의다. (기호일보, 2013.6.28.)

개가 현관문 안에서 사람이 지나갈 때 짖는 소리도 매번 겪는 사람들은 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도시·인천

디딤돌 2007. 9. 5. 11:56
 


연수구청에는 담이 없다. 연수구청 앞 광장에서 주민들은 가끔 집회를 한다. 징과 괭가리를 두드리며. 시끄럽게 해서라도 행정당국과 시민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의도를 볼 때, 소통이 잘 이루어진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연수구청은 소통을 요구하는 공간이나마 열어 놓았다. 반면, 청사를 잠그는 것도 모자라 차가 빼곡한 광장을 담으로 둘러막고 정문에 까다로운 경비원을 배치한 인천시청은 소통 자체를 거부한다.


아파트는 일반주택에 비해 소통이 불편하다. 복도식인 경우 오가며 눈인사 나누는 이웃을 기억할 수 있지만 계단식은 기억은커녕 이웃과 만날 기회도 드물다. 어느 달동네보다 위아래 전후좌우로 다닥다닥 붙었어도 주차문제로 멱살을 잡을지언정 도무지 이웃과 소통이 없다. 닫아걸면 차단되는 익명의 공동주택에서 이웃이라곤 ‘경비 아저씨’가 전부다. 광장도 골목도 없다.


독일 베를린에서 본 어떤 아파트에 작은 시내가 흐른다. 2년 넘는 회의 끝에 비용을 공동 부담한 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교회의 지붕에 태양발전 패널을 붙이고 십자가 대신 풍력발전 날개를 달아 오염 없는 전력을 얻었고, 그 전기로 저수지의 물을 끌어올려 흘리는 100여 미터 남짓한 시내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종아리 반 깊이로 조금씩 흐르지만 키 작은 나무로 그늘이 드리우고 의자가 놓인 시내에는 주민들이 넘쳤다. 그들은 여간해서 제 아파트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가이드를 귀띔했다. 자신의 정주공간에 자부심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대구의 작은 동네에서 비롯된 ‘담 허물기’도 좋은 예가 되겠다. 제 집 담을 먼저 헐어 이웃과 차를 마실 공간을 마련한 시민운동가의 기지였다. 서먹했던 동네를 이웃사촌으로 다정하게 이끈 ‘담 허물기’는 이제 관에서 주도하는 주민운동이 되어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인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도시 대부분의 공간은 닫혀있다. 관공서와 아파트는 물론이고 연립이나 다세대주택도 주차 목적 이외의 공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최근 다세대주택을 다시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인다. 소통되던 골목을 다세대주택으로 바꾸더니 다세대주택을 헐어낸 자리를 고층아파트로 채우려는 계획이다. 한데,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대개의 계획은 소통에 인색하다. 가구 수를 늘이려는 건설업자나 주택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주민들도 금전적 이익에 민감할지언정 광장과 골목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북적이는 익명의 공간에서 마음 나눌 이웃이 없는 시민들은 항상 외롭다.


최근 인기 없는 아파트 1층을 공동공간으로 바꾸려는 방안이 사회 일각에서 활발하게 구상되고 있다. 이웃과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꾸미자는 거다. 주차장을 지하로 넣어 확보한 자리에 넓은 녹지광장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성냥갑 같은 폐쇄공간에서 지친 시민들의 당연한 대안모색이라 하겠는데 지하공간을 지나치게 잠식하면 생태계가 교란된다. 지하수 흐름이 차단되고 빗물의 보충이 차단되는 만큼 물이 담기는 생태공간을 지상에 마련해야 한다. 이른바 ‘비오톱’(Biotope)인데, 비오톱도 소통공간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이제 공동주택에 차보다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열린 마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건물을 요령 있게 배치하면 소통이 가능한 골목과 광장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땅이 좁으므로 아파트를 고층으로 올려야 한다는 건설업자의 주장은 우리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의 사례와 비교할 때 설득력을 잃는다. 프리미엄 붙여 팔면 그만인 주택에서 정붙일 이웃을 찾을 수 없지만 소통이 보장된 공동주택에는 문화가 깃든다. 이웃 사이에 정주의식이 싹튼다. 희로애락을 나누는 주민들은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그 결과를 행정과 기쁘게 협의할 것이다.


물리적인 담이 없어지면 마음의 담도 서서히 허물어진다. 이름을 기억하는 이웃과 반갑게 만나는 골목과 광장이 확보된 주거공간에서 시민사회는 건강해지고 민주주의는 튼실해진다. 시민의 출입을 차단하는 인천시가 귀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인천신문, 200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