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4. 8. 20. 00:39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은 전에 없었을까. 2000년대 이전을 생각해보자. 과로로 현장의 공무원이 죽어갈 정도로 수많은 가축을 빠른 시간에 죽이는 살처분은 도무지 기억에 없다. 관련 바이러스가 전보다 더욱 무서워졌다지만 독감은 분명히 예전에도 있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일 텐데, 그 바이러스가 하필 왜 요즘 극성이고, 조류독감이 발생한 양계장을 중심으로 저병원성은 반경 300미터, 고병원성은 그 10배인 3킬로미터의 안전반경 안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을 멀쩡해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걸까.


사람은 아니 그렇더라고, 독감에 걸리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들은 왜 대부분 맥없이 죽을까.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보니 감염된 양계장이 처참하다. 양계장 안의 닭들 거개가 죽어 널브러진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모두 죽은 건 아니다. 사체들 사이를 겅중겅중 뛰며 카메라와 기자를 피하는 닭들도 적지 않았다. 그 닭들은 어쩌면 조류독감을 이겨낼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조리 죽이고 만다.


땅을 파헤치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들도 조류독감에 걸리곤 했을 텐데, 떼로 죽는 일은 없었다. 이미 허약해진 사람이 이따금 독감으로 사망하듯 조류독감에 걸린 닭의 일부도 꾸벅꾸벅 졸다 죽었겠지만 나머지는 이내 건강을 찾았다. 훨씬 많은 닭들은 아예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다.


닭과 오리에게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전한 악당으로 취급하는 철새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조류독감에 감염돼 기력을 잃은 철새는 머나먼 길을 날아오는 도중에 떨어졌을 테고, 날아온 철새들은 갯벌이나 호수에 내려앉아 이것저것 먹으며 배설하겠지. 그러다 질병도 나눌 테지만 대부분 견뎌내어 봄에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극히 일부가 죽었고, 그 사체를 수거한 전문가가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했을 것이다.


마당에서 키운 닭들은 서로 쪼면서 서열을 정하고 흙을 파 벌레들을 잡아먹었으며 마음에 닿는 암수가 자유롭게 짝짓기를 해왔다. 닭이 가축으로 길들어진 이후 수천 년 동안 그래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비록 어두컴컴하지만 불이 들어오면 사료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고, 비좁아 부대낄지언정 노상 따뜻한 축사 안에서 조상이 물려준 천명을 절대 누릴 수 없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존엄성 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살코기를 빨리 키우거나 알을 많이 낳는 기계에 불과하다.


닭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부화되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져져 질식해 죽는 수평아리는 대상에 끼지 못하니 빼자. 죽어라고 무정란만 낳는 많은 암탉과 유정란을 낳는 암탉이 적은 수로 있고, 유정란을 낳는 암탉과 죽어라고 짝짓기만 하는 선택받은 극히 일부의 수탉이 있다. 그리고 고기용으로 부화기에서 부화돼 도축 때까지 죽어라고 몸집을 키워야 하는 병아리가 나머지 대부분이다.


통닭용과 삼계탕용은 엄격하게 분리돼 무지막지하게 사육된다. 통닭용은 4주 만에 죽어야 하는 삼계탕용보다 2주 정도 더 살지만 아직 병아리에 불과하다. 샐러드에 넣는 가슴살을 위해 고작 7주만 살 수 있는 미국 닭은 어떤가. 조그맣던 병아리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사람으로 따지면 생후 1년 만에 몸무게가 200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다. 가슴살이 하도 빨리 비대해져 제대로 걷지 못한다.


도축장에 갈 시간이 되면 양계장은 커다란 병아리들로 가득 차 사람이 발 딛을 틈도 없어 보이는데, 그 병아리들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사람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도록 극단적으로 품종을 개량한 탓에 조상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은 것이다. 그 결과 환경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질병을 이겨낼 면역이 아주 취약해졌다. 따라서 외부와 차단된 축사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사료, 항생제, 호르몬과 같은 사육 조건을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태풍으로 문짝이 떨어져나가거나 눈으로 지붕이 무너지고 우박으로 뚫리는 날이면 조류독감에 감염된 양계장 이상 처참해진다.


사람들의 먹성을 만족시킬 정도로 빨라야 하는 닭고기 가공은 기계가 맡았다. 하루에 100만 마리 이상 처리하는 닭고기 가공공장의 정교한 기계는 오차 범위가 좁다. 들쭉날쭉한 닭 때문에 값비싼 기계를 고장나게 만든 양계장은 고객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대한민국의 삼계탕 뚝배기는 크기가 한결같다. 뚝배기에 들어가는 닭이 제각각이라면 같은 돈을 내는 손님들이 달가워할 리 없다. 그 식당은 경쟁에서 쳐지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조류독감이 줄어들까. 정답은 뻔하다. 지금처럼 계란과 살코기를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한 줄어들 리 없다. 조류독감을 알지 못했던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서 닭과 오리와 메추리의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살처분이 사라지고 철새를 원망하지 않겠지. 사람들의 탐욕이 줄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것이다. 조류독감만이 아니다. 규제역과 광우병은 인류에 돌이킬 수 없는 물적 정신적 파탄을 안긴다. 부메랑이다. (함께나누는삶, 20148)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3. 7. 21:28


날씨가 아직 선선해 주위에서 보이지 않지만, 흔히 중국매미라고 말하는 주홍날개꽃매미는 포도나무에 물이 오를 때 눈에 띄게 늘어난다. 전에 없던 주홍날개꽃매미는 왜 요즘 극성일까? 중국에서 누가 잡아와 해마다 풀어놓을 리 없는데, 편서풍 타고 날아오는 걸까? 편서풍은 전에도 불었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정착한 걸까? 중국 원산인 가죽나무가 도처에 늘어나는 것과 무관할까? 도시의 척박한 땅에 든든하게 뿌리 내리는 가죽나무는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가는데, 주홍날개꽃매미는 가죽나무의 수액을 무척 좋아한다.


가죽나무는 초대받지 않고 도시를 푸르게 만드는데 일조하지만 원치 않은 곳까지 빠르게 퍼지면서 도시에서 드물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돼지풀과 달리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여름날 그늘을 만들어 주니 퇴치 대상인 외래종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드물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 안정된 고유 생태계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미국자리공처럼 더는 번지지 못한다. 포도나 감귤나무, 그리고 가죽나무 수피에 빼곡히 달라붙는 주홍날개꽃매미도 마찬가지다. 천적이 없으니 아직 천방지축인 주홍날개꽃매미도 머지않아 조절될 것이다. 황소개구리가 조절되는 사정과 비슷해질 것이므로.


중국에 주홍날개꽃매미의 천적이 있을 게 틀림없다. 굳이 그 천적을 가져올 필요는 없다. 이 땅의 거미와 사마귀가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했다는 게 아닌가. 생소한 겉모습이 섬뜩해 그런지 아직 조심스러워하지만 박새와 직박구리 들도 덤벼들지 모른다. 황소개구리를 조절하는 백로와 수달의 생태계와 생태적 지위를 우리가 보전해야 하듯 도시에 녹지를 늘리며 박새와 직박구리를 보호한다면 가죽나무는 물론 과수원에 피해를 주는 주홍날개꽃매미도 조절될 텐데, 민원에 휘둘리는 조급한 행정이 걱정이다. 살충제를 뿌린다면 일을 그르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호주는 캥거루가 풀을 뜯던 벌판을 밀어내고 단일품종인 사탕수수를 끝없이 심었다. 처음 보는 사탕수수에 섣불리 덤벼드는 해충이 없었지만, 웬걸. 얼마 안 가, 사탕수수 이파리를 갉아먹는 풍뎅이가 걷잡을 수 없게 늘어났다. 내성을 키우는 풍뎅이를 살충제로 제거하기 어려워지자 호주 정부는 수소문 끝에 하와이에서 축구공 반 덩치를 가진 갈색 두꺼비를 들여왔다. 풍뎅이를 게걸스레 먹어치운다는 소문을 들은 건데, 이런! 그 두꺼비가 말썽을 피울 줄이야. 한 배에 만 개가 넘는 알을 낳는 하와이 두꺼비는 사방에 널린 풍뎅이로 배를 불리며 수를 늘리더니 풍뎅이 이외 토종 곤충까지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하와이에서 엉금엉금 기던 두꺼비들이 평지에 마음껏 수를 늘리더니 무리지어 펄쩍펄쩍 움직이는데, 멀리서 보면 땅이 물결치는 듯했다.


피부의 독샘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두꺼비지만 호주의 특산종인 크로커다일 악어는 두꺼비를 먹을 수 있게 진화했는데 그만, 덩치 큰 하와이 두꺼비를 먹고 죽어 자빠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제야 여론이 비등해졌다. 사탕수수 농가를 위해 애써 모르는척했던 당국에서 그제야 방제에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 천적이 없는 하와이 두꺼비 두 마리에 생맥주 한 컵으로 원주민들을 유인했건만 늘어나는 개체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거다. 하와이에서 그 두꺼비의 천적을 들여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호주 당국의 고심은 깊어졌다는데, 이후 사탕수수 밭을 없앴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변화무쌍한 조류독감의 위험성

 

1차대전 말기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스페인에서 발원하지 않았다. 중립국인 스페인 언론이 사실 그대로 검열 없이 보도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던 건데, 1918년부터 1919년까지 1차대전 사망자 900만을 크게 초월하는 2000만에서 5000만 명이 세계 곳곳에서 희생되었을 것으로 자료는 추정한다. 시체와 배설물이 널린 겨울철 참호에서 굶주려 지친 병사를 비롯해 유럽인 200만 이상을 죽게 만든 스페인독감은 인도 빈민 1200만을 희생시키고 일제 강점기의 조선 백성 14만의 생명을 스러지게 했다. 통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당시 세계 인구의 최대 5%가 희생되었으며 55만이 죽은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0년 이상 단축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문가들이 인플루엔자(influenza)라고 말하는 독감을 A, B, C, 세 가지로 구별한다. C는 흔한 감기이고 B는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겨울철에 잘 감염되는 독감으로 오래 전 사람 사이로 들어와 순화된 모습이지만, 야생의 모습을 가진 A는 매우 위험하다. A형 독감은 통상 오리나 물새류에서 기원해 가금과 가축을 거쳐 사람에게 전해지는데, 놀라운 속도로 변형을 만들어내므로 백신을 만드는 과학자와 기업을 긴장시킨다. 변형을 거쳐 병원성이 치명적으로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스페인독감을 H1N1형이라고 말한다. 2009년 세계를 긴장시킨 신종플루는 H1N1형이었고 3년 전 닭과 오리를 비롯한 가금 600만 마리 이상 생매장하게 만든 조류독감(AI, Avian Influenza)H5N1형이었다. 그중 고병원성 조류독감일 경우 발생한 장소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가금을 모두 살처분해야 했던 반면, 저병원성 조류독감은 발생 반경 300미터 이내의 가금을 살처분해야 했다. H9N2형이 우리나라에 자주 출현하는 저병원성 조류독감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든 철새나 가금이든, 독감은 바이러스이고 내부 유전자를 감싸는 표면에 두 가지, hemagglutinin(Ha)neuraminidase(Na) 항원을 가진다. Hhemagglutinin, Nneuraminidase를 뜻한다.


약간 타원체인 독감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에서 대못처럼 보이는 Ha항원과 버섯처럼 보이는 Na항원이 빽빽하게 박힌 단백질 중합체 껍질로 싸여 있고, 껍질 안에 8가닥의 RNA 유전자를 가진다. 사람이나 가금의 세포막을 뚫어 RNA 가닥들을 숙주 세포 안에 들어가도록 하는 Ha항원은 15가지 변형이 있고 숙주 세포 안에서 충분히 복제된 RNA 가닥들을 숙주 세포 밖으로 나가게 하는 Na항원은 9가지가 분리되었다. 따라서 독감 바이러스는 이론적으로 135가지 항원형이 현재까지 가능하지만, 자연에서 발견되는 항원형은 그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새로운 항원형은 계속 늘어날 수 있는데, 출현이 기록된 기존 항원형은 세계 여러 국가와 지역마다 다르고, 사람은 물론이고 가금과 가축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검출되는 항원형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감의 고독성 여부는 주로 항원형으로 구별하지만 예측치 못한 치명적 위험성은 8개의 RNA 가닥에서 나온다. 스페인독감은 애초 그다지 위험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귀향을 위해 모인 병사들 사이에서 치명적으로 유전자가 변형되어 세계로 빠르게 퍼졌을 것이라고 관련 자료들은 전한다. H1N1형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병사의 몸에서 변형된 RNA 가닥이 호흡으로 다른 병사에게 전파되고, 고향에서 세계 곳곳으로 광범위하게 전파했을 텐데, 처음 돼지독감이라 했던 신종플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까지 가진 돼지독감의 RNA 가닥이 병원성이 커진 상태에서 사람 사이에 창궐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했다.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간 8가닥의 RNA 사슬은 짧은 시간에 많은 복제 사슬을 만들고 밖으로 나가는데, DNA와 달리 복제가 정교하지 못하다. 복제 과정에서 염기서열이 달라진 수많은 변이가 만들어진다는 거다. 그 결과 독감의 병원성이 높아질 수 있고, 최첨단 과학기술이 서둘러 치료제를 개발해도 소용없게 되는 순간이 빨라질 수 있다. 학자들은 독감의 RNA 사슬은 보통 바이러스의 DNA 사슬보다 100만 배나 많은 변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귀향한 병사들이 급속히 전파한 변형 RNA 사슬은 새해 벽두부터 철새들을 경계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H5N8형 조류독감과 어떻게 다를까.


가을이 깊어 가면 전국의 보건소는 독감백신 주사를 맞으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독감백신을 담은 작은 박스를 열면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종이가 있고, 들여다보면 대응하는 독감의 항원형들이 인쇄돼 있을 것이다. 독감 백신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대응하는 항원형이 다양하다. 따라서 거리가 먼 나라에서 백신을 수입해도 소용없고, 지난해 쓰고 남은 백신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지역에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항원형들을 연구자들이 새롭게 조합해 만든 백신을 해마다 보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독감 바이러스가 동일한 숙주 세포에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 그때 다른 바이러스에서 숙주로 각각 들어간 RNA 가닥들은 세포 안에서 유전자를 무작위로 교환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RNA 사슬의 다양성은 무한대에 이른다. 병원성도 천차만별로 늘어날 것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독성 여부에 따라 반경 300미터나 3킬로미터 이내의 가금을 모조리 살처분하는데, 희한하게 돼지도 불문곡직 죽인다. 조류독감은커녕 돼지독감에 감염되지 않았어도 여지가 없는 이유는 돼지 호흡기의 세포에 있다. 조류와 사람의 독감 바이러스 Ha 항원에 친화적인 수용체를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가금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이따금 감염시키지만 그 바이러스는 여간해서 사람 사이로 전파되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를 거치면 달라진다. 이후 사람 사이로 빠르게 퍼질 수 있는 까닭에 다짜고짜 살처분하는데, 돼지는 억울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독감 전문가들은 독감 바이러스가 무한히 창궐하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의 인구가 희생될 가능성을 경고하는데, 조류독감에서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을 그 온상으로 보았다. 그는 이듬해 슬럼을 써야했다. 많은 나라의 대도시에 산재한 슬럼에는 굶주림에 지쳐 면역력이 떨어진 저소득계층이 빼곡히 모여 산다.

당장 가금을 위협하는 우리나라의 2014년 조류독감부터 생각해보자. 2010년 중국 장수성의 청둥오리에서 한 차례 발견된 바 있던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8형은 4년 만에 하필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었다. 사람에게 전파된 적이 아직 없다는데, 내내 안심해도 좋을까? 과연 겨울철새인 가창오리가 H5N8형을 전파했을까?

 

 

오갈 데를 잃은 겨울 철새

 

드넓었던 김포평야의 일부를 매립해 만든 김포공항은 부천시 방향으로 넓은 습지에 둘러싸여 있다. 비행기 소음 민원을 잠재우려고 공항공사가 구입한 논이 30년 가까이 방치되면서 습지로 환원된 것인데, 그 습지에 천연기념물 황새를 비롯해 멸종위기 맹금류들이 다양하게 찾아든다. 어류와 양서류에서 들쥐까지, 먹이가 되는 다수의 생물이 다채롭게 서식하기 때문이다. 매우 희귀한 금개구리도 볼 수 있건만, 공항공사는 그 저절로 생긴 습지에 골프장을 조성하려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공항공사는 주장하지만 반론이 만만치 않다. 습지가 사라지면 쉴 곳과 먹이 터를 잃은 새들이 우왕좌왕하다 충돌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거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 굽어 살피는 인천 자유공원 근처의 한 식당에는 십자매와 같은 관상조류가 날아다닌다. 식탁에 배설물을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손님들이 항의하지만 그런 적 없다는 주인의 대답이 그때마다 돌아온다. 새들은 사람이 앉아 있거나 다니는 공간을 피한다는 거다. 베란다에 십자매를 풀어놓은 한 주부도 비슷한 경험을 말한다. 베란다 전체를 둥지 삼아 날아다니지만 빨래대 주변에 얼씬하지 않는다는 건데, 해마다 우리나라의 습지를 찾은 겨울철새는 오리농장을 왜 기웃거렸을까. 200312월 이후 거의 한 해 걸러 발생하는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왜 그 전에 없었을까. 가금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농장이 그때라고 없었던 건 아닌데.


철새들은 겨우내 한 자리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동틀 때와 해질녘, 수십만 군집이 하늘을 수놓는 장관을 한결같이 연출하는 가창오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철새들은 먹이와 쉴 곳을 위해 한반도의 습지를 오르내린다. 추우면 남쪽으로 내려가고 풀리면 올라간다. 백두대간에서 기원해 황해까지 굽이쳐 흐르는 강들이 해안에 고운 흙을 오래 전부터 내려놓으며 드넓은 갯벌을 펼쳐놓자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언젠가부터 철새들은 내릴 곳을 찾지 못한다. 온갖 철새를 맞았던 갯벌과 육지의 습지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갯가의 농민들이 삽으로 경작지를 늘리려던 소박한 매립이 2000년대에 들어 굴삭기를 앞세운 정부와 기업 주도로 거대해졌다. 공단으로, 신도시로, 공항으로 뭉텅뭉텅 자취를 감춘다. 광활한 갯벌을 해수면 이상 메우려면 그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바깥 갯벌이 망가진다. 개펄과 모래를 막대하게 준설해 매립지를 채우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유역에서 여름을 보내는 철새들에게 우리 습지는 대안 없는 겨울 터전을 제공한다. 습지가 사라지는 요즘, 시베리아 일원에도 개체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을 게 틀림없는데, 겨울철 내려앉을 곳이 줄어들수록 도태되는 철새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멸종으로 접어드는 철새도 생길 것이다. 봄가을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새도 사정은 비슷하다. 마도요가 날아와야 봄을 느끼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매립 자제를 우리에게 간곡하게 요청하건만 한국은 마이동풍이다. 갯벌이나 조간대 상태인 공유수면을 매립하면 내 땅이 되는 공유수면매립법이 자본의 탐욕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3년 전 겨울,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발굽가진 가축보다 훨씬 많은 600만 마리의 가금이 고병원성 조류독감 H5N1 서슬로 생매장되었다. 하지만 살처분된 닭과 오리와 메추리 중 조류독감에 걸린 개체는 없었다. 몇 군데의 철새 배설물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그때 철새는 떼로 죽지 않았다. 떼죽음은커녕 조류독감으로 죽은 사체도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2003년부터 이제까지 2500만 생명들을 파묻었지만 정작 조류독감에 감염된 가금은 121마리에 그친다.(한겨레, 2014.2.6.)


전북 고창과 부안군의 오리농장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한 집단 폐사가 일어난 지난 117일의 바로 다음날, 전북 고창군의 동림저수지에 20만 마리 이상 모여 있던 가창오리 무리 중 90여 마리가 사체로 발견되었다. 실마리를 찾았다는 겐가? 정부는 1000마리 이상 떼죽음했다고 부풀린 보도자료를 서둘러 돌렸고, 언론은 받아쓰기에 충실했다. 사체 중의 일부에서 기다렸던 조류독감 H5N8 항원형이 검출되자 정부는 가창오리가 원인이라고 단정적으로 발표했고, 귀가 얇은 언론사의 자동차와 카메라와 헬기가 철새 도래지를 수시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맹독성 약재가 포함된 방제액을 공중으로 내뿜는 대형 트럭과 작업자가 드나들더니 항공방제를 위한 헬기가 굉음을 터뜨렸다. 철새들은 그만 쉼터에서 쫓겨났다.


허기진 철새들은 부지런히 먹이활동에 나서야하는데 발암물질이 포함된 방제액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방제액이 아니더라도 요즘 철새에게 먹이활동은 전 같지 않다. 갯벌의 어패류가 크게 줄었지만 오래 전 갯벌을 매립해 만든 논에 낙곡이 사라진 것이다. 추수를 마친 들녘에 볏단이 깔끔하게 수거된 이후의 일이다. 탈곡한 볏짚은 자체로 비료다. 조상은 땅을 기름지게 하도록 논에 볏짚을 남겼지만 농협에서 화학비료와 유기질 비료를 주문해 해결하는 지금은 건포 사일리지를 위해 싹 쓸어간다. 볏짚에 붙은 낙곡을 먹으러 철새가 모여들고, 철새가 흘린 배설물이 훌륭한 거름이 되었지만, 하얀 비닐에 둘둘 말린 건포 사일리지는 철새를 거부한다.


2000년대에 들어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는 미국의 곡창지대를 가뭄에 시달리게 만드는데, 최근 심각해지면서 국제 곡물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식량 자급률 23%에 불과한 처지에도 우리 정부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규모를 늘려야 경쟁에 밀리지 않는 목장은 치솟는 사료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건포 사일리지가 대안으로 등장했다. 높이 1.2미터에 지름 1.5미터로 뭉친 500킬로그램 정도의 볏짚 사이에 유산균을 넣어 5겹 이상의 비닐로 둘둘 말아 밀폐해 놓으면 건포 사일리지가 완성된다. 이후 2개월 지나면 수입 곡물사료를 대체할 만큼 영양 좋은 볏짚 사료가 된다. 200평 한 마지기에서 5만원에 거래되는 건포 사일리지가 2개 나오니 농가는 약간의 부수입을 챙기게 되지만 들판은 철새의 배설물을 잃었고, 철새는 굶주리게 되었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철새들을 기다리는 건 위축된 습지다. 그 습지에는 이미 먼저 온 철새들로 빼곡하다. 철새들로 가득한 호수에 전망대를 설치한 사람들은 철새 관광으로 떠들썩하지만 사람들의 냄새와 소음을 반기지 않는 철새들은 이래저래 불안하다. 습지를 따라 남북으로 부지런히 오고가지만 먹을거리는 통 보이지 않는다. 오리와 닭 농장을 분주하게 오고가는 트럭이 흘린 사료라도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인데, 충분할 리 없다.


정부의 보도자료를 언론이 받아쓴 뒤로 지방의 철새 전망대는 속속 폐쇄되었고 철새를 바라보는 언론과 관료의 눈은 차가워졌다. 정부는 야생조류 먹이주기 가이드라인을 급조했다. 먹이주기 행사의 자제를 요청하면서, “공존을 위해먹이를 최소한으로 주라는 가이드라인은 조류독감이 발생한 농가에서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점, 철새가 내려앉는 호수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먹이주기를 제한한 것이다. 그렇다면 철새들은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먹이를 먹고 다시 호수로 돌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금 농장을 지나치며 배설물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철새가 쉬는 호수 주변에 충분히 뿌릴 것을 수정 주문했고, 다행스럽게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

 

 

공장식 축산과 전염병의 청궐

 

고병원성 조류독감에 감염된 철새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왔을까? 철새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약하게 감염돼 날아왔다면 시베리아 지방에 H5N8형 바이러스가 검출되어야 마땅하지만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가창오리를 비롯한 철새가 찾아온 지 3개월이 되었는데 왜 도래지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는지 되묻는다. 철새는 농장의 가금에 비해 면역력이 현저히 높다. 철새에서 H5N8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가 없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이제까지 고병원성 조류독감들은 밀집 사육하는 농장에서 발생해왔다는 점을 상기한다. 오히려 농장에서 발생한 오리의 H5N8 바이러스가 철새를 감염시켰고, 수십 만 마리 가창오리 무리 중 극히 일부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조류독감까지 얹히자 죽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 정황을 미루어, 되래 철새가 오히려 희생되었다는 주장이다.


가창오리와 일부 다른 철새의 사체에서 H5N8 바이러스가 최초로 검출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건만 철새의 배설물이나 사체에서 같은 바이러스를 찾아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농장의 조류독감 전파는 계속된다. 철새 대부분은 무사하거나 이내 회복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예산을 퍼붓는 눈물겨운 방제에도 가금 사이의 전파는 왜 막지 못하는 걸까. 해외 상황을 해마다 예의주시한다면서 왜 조류독감은 반복되는 걸까. 우리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가금을 사육하는 국가와 농장 대부분이 조류독감을 피하지 못한다.


가금을 밀집 사육하는 농장과 달리 자유롭게 축사나 마당을 돌아다니는 유기농 양계장은 조류독감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걸 언론은 보도했던데, 사실 그런 농장은 예외에 속한다. A4용지 만한 면적에 두 마리 꼴로 밀집시키는 대형 양계장은 살코기용이든 산란용이든 사육환경이 열악하다 못해 끔찍하다. 본성을 최대로 억제하는 농장은 먼지와 악취로 뒤범벅이고 깃털을 잃은 가금들은 배설물은 뒤집어 쓴 채로 항생제가 포함된 유전자조작 곡물 사료를 연실 먹어댄다. 축산자본이 그런 사육환경으로 키우는 품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소의 비용과 시간 안에 정해진 크기로 자라야 하는 가금은 규격화된 조건에서 사육한다. 그래야 하루 100만 마리 이상 도살해 자동으로 가공 포장하는 기계의 허용 오차 범위 내로 들어간다.


축산자본의 최첨단 기계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품종의 가금은 유전자가 단순할 수밖에 없다. 유전자가 단순하면 모든 생명은 질병에 취약하다. 따라서 그런 가금은 엄격한 사육조건을 만족시켜야 과학축산이 계산한 이윤이 보장된다. 농장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인큐베이터와 같이 획일적인 사육환경을 공장처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가금뿐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돼지도 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품종이 획일화되기 전, 앓더라도 대부분 회복되었던 구제역에 발굽을 가진 가축은 속절없이 희생된다. 대부분의 철새가 끄떡없는 조류독감에 가금이 맥없이 희생되는 이유가 그렇다.


병원성이 아무리 강해도 빼곡하던 가금이 모조리 조류독감으로 죽는 건 아니다. 일부 살아남아 방송 카메라를 피해 겅중겅중 달아나지만 살처분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 농장주가 유난스레 비정하기 때문일 리 없다. 살처분을 옹호하는 정부는 확산을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이라고 둘러대지만, 기실, 국제시장의 신뢰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살처분이라는 중립적 용어로 초점을 흐린 살해 방법은 정당한가. 밀폐된 축사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안락사시킨 뒤, 땅에 파묻어야 한다는 규칙은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인력과 시간의 부족을 핑계로 구덩이에 멀쩡한 가금을 몰아넣고 흙을 덮어 질식사시킨다. 현장 인부에 정신적 외상을 남길 정도로 우리의 가금 살처분은 참혹하다.


2009년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에서 발생한 돼지독감은 미국계 양돈 다국적기업 스미스필드푸드의 세계 최대 농장에서 기원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멕시코는 정부에서 스미스필드푸드에 개선 조치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그 방면 과문해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멕시코 정부의 조치를 무력화한다. 만일 미국계 가금 사업자가 우리나라에 둥지를 친다면 우리는 조류독감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우왕좌왕해온 정부의 뒷북행정을 보면, 차단은커녕 날아드는 미국계 축산자본의 손해배상 청구서와 해결할 수 없는 민원으로 골치 아플 것이다.


가창오리 사체에서 H5N8형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고 조류독감의 주범으로 단정할 수 없는 건 상식인데, 정부는 왜 서둘러 철새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웠을까. 농림부 역학조사위원인 한 전문가는 모든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철새가 아닌 가금에서 만들어져 왔다는 게 인플루엔자 학계의 정론이고 고병원성 AI가 철새에서 만들어질 수도, 만들어진 사례도 없다고 식량농업기구(FAO), 그리고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과 주장을 같이하면서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검출된 H5N8 바이러스는 2010년 중국 장쑤성의 가금 시장의 오리 한 마리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로, 철새가 이때 감염됐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이 소설을 쓰면 안 된다고 비판했건만(미디어오늘, 2014.1.30.), 정부는 철새 기원론을 철회할 생각이 여전히 없어 보인다.

 

 

부드러운 살코기의 부메랑

 

영국과 유럽연합은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일단 해당 농가의 가금류에 국한해 살처분하고, 안전반경 3킬로미터 이내 가금의 엄격한 이동제한으로 전파를 막는다고 한다. 오랜 경험이 그런 방제 정책을 정착시켰을 텐데, 허둥대지 않으면 가능한 모양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섭씨 75도에서 2, 68도에서 5분 이상 노출되면 죽는다고 하니, 충분히 삶거나 튀기면 먹어도 관계없다고 식품 전문가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안전반경 이내라고 해도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은 닭과 오리, 메추리와 칠면조까지 모든 가금을 예외 없이 생매장하는 행위는 지나치다. 국내에서 사육하는 가금은 거의 나라 안에서 소비한다. 수입하는 국가의 신뢰를 구하려고 광범위하게 살처분하는 처사는 잔혹하다. 인도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수입국의 신뢰를 구할 수 있다. 안전반경 밖의 가금이라는 걸 증명하는 방법을 택하면 가축의 생명을 경시하는 살처분은 없어도 된다.


논산시 연산면에는 1980년 천연기념물 265호로 지정된 연산오계를 보전하고 있다. H5N8형 바이러스가 다가옴에 따라 농가는 정부의 잔혹한 조치를 최대한 피하려고 안전한 지역으로 연산오계를 분산해 보호한다고 한다. 강화의 한 농부는 양계장에서 버리려던 산란용 암탉을 마당에 풀어놓았다. 마당에서 벌레를 찾아 땅을 뒤지며 본성을 찾더니 이내 깃털에 윤기가 돌고 알도 잘 낳는다면서 그 농부는 이야기했다. 마당에 풀어서 대대로 사육해온 연산오계는 조류독감이 휩쓸어도 대부분 이겨낼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깊게 해보자. 살처분하지 않아야 오히려 조류독감에 이겨낼 가금을 보전할 수 있다. 아무리 심각한 독감이 돌아도 대부분 사람들이 이겨내듯, 면역력이 회복되면 닭도 오리도 메추리도 능히 견뎌낼 것이다. 이겨낸 가금으로 개체를 늘린다면 조류독감 중에서 많은 항원형은 심각한 질병의 목록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본성에 적합하도록 가금을 마당에 풀어놓아 면역력을 높이며 기른다면 도류독감에 감염된 농장일지라도 집단 살처분은 불필요해지지 않을까? 조상은 그렇게 길렀을 것이다. 동물복지가 개선된 축산이 가능해진다.


요즘 우리가 먹는 고기는 지나치게 부드럽다.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는다. 그런 살코기를 위해 지나치게 어린 가축을 도축한다는 사실을 먹는 이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을 한 차례도 낳지 않은 물고기를 남획하는 어업을 우리는 비윤리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살코기의 출처는 어떤가. 성체에 훨씬 미치지 못한 가축을 도살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서 즐겨 먹는다면 이율배반이 된다. 소든 돼지든, 닭이나 오리든, 축산자본은 사람 나이로 따져 7살 이내의 가축을 도축한다. 어리다고 덩치가 작은 건 아니다. 극단적 품종개량으로 덩치를 키웠을 뿐 아니라 성장호르몬으로 빠른 시간에 자라도록 만들었다. 살코기가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슴살을 먹는 닭을 1년 동안 키운다면 몸무게가 이론적으로 200킬로그램까지 자란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물론 그 전에 도축하지만, 도축할 때조차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골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오리도 마찬가지다. 근육 사이에 지방이 많을수록 부드러워지므로 움직임을 최대로 억제하고, 얼른 살찌게 하는 사료를 항생제와 배합해 먹인다. 본성에 맞지 않는 사료와 가혹한 사육환경은 어린 가금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만 항생제 때문에 도살 전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과하게 먹는다.


소비자가 부드러운 살코기를 찾기 때문에 사업자가 부응한 것이라고 축산자본은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소비자를 그리 유도한 건 자본이다. 부지불식간에 듣고 보게 되는 광고에 길들어진 결과, 소비자들은 어느새 턱 근육이 약해졌다. 연하지 않다면 고기를 씹어 삼키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다.


태어나 도살될 때까지 본성이 억압되고 스트레스와 공포에 휩싸인 가금과 가축의 살코기는 비만과 성인병만 앞당기고 확산하게 했을까?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장애 증후군이 요사이 아이들 사이에 늘어나는 원인과 무관할까? 아토피 증가의 원인이 부드러운 살코기의 과식과 관계없을까? 개 도축이 합법화된다면 우리나라는 개까지 가혹하게 사육할 것이다.


부드러운 살코기는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과 같은 부메랑이 되어 공장식 축산을 공격한다. 부메랑은 더 있다. 비만이나 성인병,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장애 증후군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본의 탐욕이 원인이든 소비자의 욕심이 원인이든, 거듭되면서 생태계는 점점 단조로워지고 지구온난화는 거세지는데, 석유위기는 가속되고 기상이변이 심화되면서 국제 곡물가격을 높인다. 탐욕과 욕심이 커질수록 다양성을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는 위축되고 평화는 깨진다. 부드러운 살코기의 대량 생산을 위해 많이 죽이고, 많이 먹고, 많이 버리는 풍토는 결과적으로 불안한 사회를 이끌었다. 그런 상황에 질병은 더욱 깊어지는데, 영리병원이 우리를 기다린다. 부메랑이다.


탐욕이 이끈 생태계 변화는 가죽나무와 주홍날개꽃매미의 과잉 출현에서 그치지 않는다. 갯벌이 메워지고 강이 흐름을 잃으면 생태계는 단조로워지고, 생태계가 단조로워지면 생명은 건강을 잃는다. 과학기술이 위기를 잠시 뒤로 미룰 수 있다지만, 그 혜택은 정의롭지 않다. 또한 과학기술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우리가 던진 부메랑이 증명하듯, 과학기술의 한계는 분명해졌다. 탐욕을 부추기는 과학기술에 성찰 없이 길들어지자 호미를 막을 문젯거리를 가래로 막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조류독감은 한 예에 불과하다. 꿀벌이 사라지고, 핵발전소가 폭발했다. 위기는 심화되고 경고는 무서워지는데 우리는 탐욕을 반성할 준비가 되었나. 조류독감 전문가들은 1억 명 이상 사망할 조류독감의 창궐을 경고하는데.


4대강 사업으로 흐름이 가로막힌 낙동강은 달성군 가창면을 멈칫멈칫 흐른다. 가창면에서 이름을 딴 가창오리는 영어로 ‘Vikal duck’이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 주변과 레나강 유역에서 여름을 보내는 가창오리는 거뜬히 회복되었다. 조류독감 전파자라는 혐의를 여태 벗지 못하지만 고맙게도 군무를 멈추지 않는다. 무던한 가창오리는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석양을 배경으로 군무를 언제까지 보여줄까. 우리에게 달렸다. 먹이주기의 활성화를 이야기하는 건 물론 아니다.(녹색평론, 20143-4, 135)

녜 조류독감도 철새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먼저 처음발생한곳부터 정밀한 역학조사 진행하였다면 좋으련만
그먼길을 날아온 철새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니
사람도 감기에 걸리면 먼길 여행갈수 있을까요
벗님 글은 언제나 가슴 조이게 하는 다큐 한 편으로 바뀌어 눈 앞에 그려집니다.
그걸 보며 슬퍼하고 아파하고 분노합니다.
더 많은 이가 읽고 알아야 할 텐데!
고마워요.
좋은 포스팅이네요!
포스팅구경하고가요.

 
 
 

서평·추억

디딤돌 2012. 12. 15. 11:07

   역지사지로 배려하는 아주 좁은 공간

 

생추어리농장, 진 바우어 지음, 허형은 옮김, 책세상, 2011.

 

 

남녀 젊은이들 짝 맞추기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기리에 방영된다. 요즘 방영하는 그런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이름을 생략하고 1, 2호라 부른다. 그래서 어색한데,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하면 객관적으로 시청하기 어렵다고 제작팀이 판단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동물을 입양하면서 이름을 붙인다. 그래야 반려동물에 사사로운 감정을 북돋을 수 있다. 저명한 침팬지 학자 제인 구달은 침팬지에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선배의 비난을 받은 적 있다. 1호 침팬지 2호 침팬지라 해야 연구 결과가 객관적일까.


비슷비슷한 반려동물을 여럿 입양한 사람은 한 마리 한 마리를 구별한다. 개성이 있기 때문일 텐데, 집안이나 울타리 안에서 쓰다듬는 동물이라면 오래 키우며 개성을 구별할 수 있지만 가끔 방문하는 객이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동물이 제 이름을 얼마나 기억하고 간직하는지 궁금한데, 그 여부와 관계없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개성이 배려되는 공간에서 살아간다면 객관을 위장한 번호보다 사사로운 감정을 바탕으로 정하는 이름이 필요할 것 같다.


한 마리의 소에 개성이 있을까. 당연하다. 젖소를 십 여 마리 키운 친척은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새벽에 주인 발소리를 반기며 다가오는 젖소마다 별명을 붙여 구별했다. 새침이, 욕심이, 고집통, 그런 식이다. 닭 우리에 새로운 무리를 넣으면 난리가 난다. 서로 쪼아대지만, 서열이 정해지면 다시 조용해진다. 닭은 99마리의 서열을 기억한다고 하니, 술만 마시면 선후배 사이에도 멱살을 잡는 사람은 머쓱할 밖에. 한데 요즘 대부분의 사람은 동물의 개성을 살필 기회가 없다. 한 마리만 키우는 반려동물에 구별할 개성이 없지만, 요사이 목장은 농부가 일일이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축을 사육한다.


제가 낳은 자식도 많으면 언제나 애지중지할 수 없는데, 가축은 사람에게 오죽할까. 지난 구제역 파동 때, 목장주들은 가족처럼 사육한다고 말은 꺼냈지만, 살처분할 때 무참했다. 자식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공들여 키우던 소 한 마리라면 아쉬운 마음으로 도축업자에게 넘길 테지만, 수많은 가축을 모아놓고 사육하다 일제히 도축업자에 넘기는 요즘 목장이야 어디 그런가. 가축의 개성을 구별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함부로 다뤄지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가축들이 다치거나 죽는다. 공장에서 불량 부품이나 파손된 제품을 마구 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이름이 붙지 않은 가축들도 살아 있고 개성이 분명히 있다. 기계 부품처럼 다뤄지는 과정에서 가축들은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 바우어는 동물, 그 중에 가축의 개성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다. 개성을 말살하며 사육하는 목장에서 다쳤거나 그런 상태에서 방치되는 동물을 구조해 안전한 공간으로 옮겨 보살핀다. 타고난 개성을 발산하며 남은 수명 동안 편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일을 미국에서 시작했다. 사육 가축이 대단히 많은 미국에서, 물론 그 혼자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장식 축산 과정을 볼 기회가 없고, 보더라도 외면하겠지만 그는 직시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마음을 모아 고통 받는 동물을 구조하는 일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통 농장에서 한두 마리 키우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공장식 축산이 일으키는 가축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차피 고기를 위해, 또는 가죽을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진 바우어는 달랐다. 비록 살코기를 위해 사육하고 어린 나이에 도축될 운명이라고 해도, 생명이 있는 존재가 아닌가. 살아 있는 동안 타고난 개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온당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사육장을 돌아다닌다. 어린 상태에서 몸집이 부풀려진 가축들이 폭력에 가까운 사육으로 기진맥진해 쓰러진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그런 가축들을 구조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인도적인 사육과 도축을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아무런 제지 없이 경제적 방식으로 사육해왔던 목장주들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권력도 크다. 로비력을 총동원해 진 바우어가 개선하려는 동물학대 방지 법률을 차단하는데 번번이 성공한다. 물론 그런다고 포기할 진 바우어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성 프란체스코라는 호칭에 걸맞게, 언론을 통해 축산 환경의 문제를 지적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의원을 설득해 법률 개정으로 이끈다. 비단 동물의 학대 방지에서 그치는 건 아니다. 그런 축산환경에 종사하는 이의 인성도 황폐화되지 않던가. 하지만 어렵게 개정한 관련 법률은 변죽만 울린 뿐이다. 탐욕스런 축산, 고기를 탐하는 사람들의 식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동물의 눈높이에서 만족스런 개선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진 바우어가 제아무리 성탄절의 산타클로스처럼 동분서주한다고 해도, 미국 땅에서 사육되는 가축의 일부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다. 즉각 생추어리농장으로 옮겨도 그 혜택은 일부 가축만 받을 뿐이다. 땅을 아무리 확보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구조된 동물의 일부를 진 바우어는 살갑게 소개한다. 개성이 배려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모습을 독자에게 전하는데, 우리는 어떤가. 미국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가축을 사육하는 우리는 동물의 개성을 배려하고 있을까.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구조하는 기관이 없지 않지만 목장에서 사육하는 가축은 방치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축의 개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최근 정부는 멧돼지는 한 마리에 10만원, 고라니는 2만원, 꿩은 3천원이라고 수렵인들에게 고지한 모양이다. 그 사실을 알 자연의 이웃은 사람의 객관적 가격을 되묻고 싶을 텐데, 일부 사람들은 동물을 물건처럼 가격으로 거래하고 피해 보상하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하려 애쓴다. 하지만 아직 개정을 확신할 수 없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가축을 여전히 소외한다. 진 바우어 같은 이가 이 땅에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동물인데, 진 바우어처럼 동물의 처지를 역지사지할 수 없을까. (우리와다음, 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