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2. 23. 14:27

 

서울 불광동의 북한산 기슭을 오래 차지하던 정부의 연구기관들이 최근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의 오송생명과학단지로 일제히 옮겨갔다. 그 중 한 기관의 연구윤리위원인 까닭에 두세 달마다 회의를 위해 불광동의 낡고 복잡한 건물을 방문하곤 했는데, 얼마 전에 오송의 새 건물을 찾았다.

 

서울역에서 KTX40분 만에 도착한 오송역에서 택시로 5분이면 충분하다는 사전 지식을 인터넷에서 확인했으니 회의 장소까지 천천히 걸었는데 웬걸, 갈무리를 마친 들판 사이에 불쑥불쑥 솟은 아파트와 상가들을 지나 허허벌판의 저쪽, 얼마 전까지 과수원이었을 듯 보이는 낮은 언덕에 번듯하게 들어선 연구단지는 보기보다 멀었다. 바쁜 걸음으로 40분은 족히 걸렸으니 코앞에 와서 KTX에 앉은 만큼 시간을 더 소비한 셈인데, 아직 시골인 오송의 이른 겨울은 모처럼 상쾌했다. 차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랜만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 길을 걸으면서 때까치도 보았다, 1980년대 이후 인천에서 사라진 우리나라 텃새인 때까치는 어릴 적 주안에 참 많았다.

 

보닛과 앞창을 제외한 외부를 성에로 뒤집어쓴 승용차들이 드문드문 달리는 넓은 도로는 근사하게 닦아 놓았는데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는지 아스팔트 냄새가 여전했다. 승용차보다 많은 공사 차량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과학단지 주변은 막 완공된 아파트와 상가가 서울의 신도시 못지않게 수려하지만 적막해 보였다. 대학과 민간의 생명 관련 연구소도 들어온다는데, 인근의 세종시와 더불어 오창과학단지가 완공돼 입주를 마치면 유성의 대덕과학연구단지와 연계해 무척 붐비고 바쁜 동네가 될 것으로 찾아간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전망했다. 이른바 연구단지 클러스터. 하지만 본의 아니게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직장을 옮기게 된 그들은 현재 한적한 동네에서 하루하루를 허전해 했다.

 

대부분 논밭이던 시골에 조성한 오송생명과학단지가 활발해질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점치지 못하는 상황인데, 병원도 약국도 없는 상가는 거의 텅 비었고 아파트도 빈집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진 초로의 연구원들은 점심과 저녁마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다 지겨우면 조치원이나 청주로 나간다는데, 젊은 연구원들도 연구단지가 있는 지역을 제고장으로 인식하기를 거리끼는 인상이 역력했다. 그도 그릴 게 아직 이렇다 할 초중등학교도 들어서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저녁 때 동료들과 어울릴 공간도 없다. 그나마 조용하니 연구나 공부에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 방문자가 아쉬운 건 한적한 연구단지의 풍경이 아니었다. 자신이 근무하는 오송생명과학단지가 논과 밭을 깔고 앉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연구원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머리 좋은 연구원들의 연구와 회의로 많은 돈과 사람이 바쁘게 오고갈 오송생명과학단지는 외부에서 끊임없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잠시도 지탱될 수 없을 것이다. 지역에 뿌리내리지 않은 연구원들이 기회가 생기면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머리와 연구 시설만 있을 뿐, 전기도 가스도 물도, 농수축산물과 그 밖의 모든 일용품도 전부 밖에서 가지고 와야 하지 않은가. 하긴 오송생명과학단지만 그러랴. 대한민국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 아니 대부분의 농어촌과 산촌도 마찬가지다. 도시든 농촌이든, 오송이든 오창이든,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의 지원은 절대적이고, 외부에 의존하는 정도가 심할수록 지역에 대한 거주민들의 애착심은 느슨해질 게 분명하다.

 

도시는 물론이지만 연구단지까지 자급자족한 모습으로 꾸며야 할 이유는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이은 에너지와 식량위기 시대를 맞아 최근 개발하거나 재개발하는 유럽의 도시 대부분은 나름대로 자급을 위해 애쓴다. 적절한 규모를 도모하면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발굴하여 적극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과 물류의 이동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도시의 구조를 지향한다. 연구소와 공업단지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중부권에 과학 연구기관들을 최대한 끌어모아 연구 성과와 그 응용의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정책결정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 기반이 여느 나라보다 효율적인 마당에 원하지 않는 연구원을 반강제로 집적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재개발이 필요한 후미진 공간이 도시마다 널렸는데, 연구를 위해 하필 농경지를 매립해야 했을까. 유성의 대덕연구단지도, 오성과 오창의 과학단지도, 세종특별시도 농경지를 매립한 건 마찬가지다. 배후 신도시와 그 사이를 잇는 아스팔트도 농경지를 널찍하게 차지했다.

 

현재 한적한 오성생명과학단지는 머지않아 많은 연구소들이 가을걷이 마치고 하얗게 서리 내린 농경지를 마저 차지할 것이다. 아파트 가격은 치솟고 넓은 도로와 주차장도 모자라겠지. 그때가 되면 서리도 성에도 때까치도 사라질 테니 과거의 모습은 지워지고 말겠지. 똑똑한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제공하는 국가와 자본이 원하는 연구결과를 수도 없이 내놓을 텐데, 지구온난화 시대에 더욱 심화되는 에너지와 식량위기를 해결할 결과는 마련할 수 있을까. 어마어마한 연구비를 흡수하는 세계 유수의 연구소들은 이따금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가시적으로 예측하지만 그 위기를 예방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 연구소들이 실력이나 돈이 모자라기 때문은 아니다. 위기는 이미 심각해져 돌이키기 어려워졌을 테지만, 그보다 지금과 같은 삶의 자세를 근원에서 반성하며 변화하려는 자세에서 연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돈벌이와 권력이 요구하는 연구에 순위를 빼앗기니 순수한 의지만으로 내일을 걱정하는 따위의 연구결과를 명확하게 내놓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탐욕스런 개발이 몰고온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해 거듭되는 기상이변, 그리고 질병의 확산을 더욱 탐욕스런 개발로 막을 수 없을 텐데, 우리의 생명연구단지는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내놓을 것인가. 외국의 유수한 연구소보다 능력이 떨어지지 않고 성실하지만 연구소가 농경지를 깔아앉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우리의 연구자들은 내일의 생명에 대한 연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 할까. 생명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 없는 연구의 결과는 공허할 가능성이 높은데, 근원적인 고민에 몰두할 수 있을까.

 

새로 지은 연구공간의 시설은 세계 최첨단을 자랑할 테지만, 식량자급이 25퍼센트에 불과한 나라에서 이토록 농경지를 잠식해도 좋은지, 머리 똑똑한 연구자 중 누구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은 현실이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다. 석유위기는 바로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석유를 가공해 얻는 화학비료와 살충제와 제초제에 의존하는 농업의 한계는 석유위기 시대에 증폭될 텐데, 화학농업은 세계 곡창지대의 흙을 이미 고갈시켰다. 이제 석유 없으면 증산은커녕 감산을 모면하기 어렵다. 지구온난화는 화학농업의 한계를 노정시켰고, 한계가 드러난 러시아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은 시방 관세를 매기며 수출을 억제하고 있다. 세계의 식량창고라 일컫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머지않아 의기에 봉착할 것이라 전문가들은 걱정하는데, 우리는 남은 농경지마저 도시로 연구단지로 막대하게 없앤다. 명예와 돈을 마다하지 않은 우리는 반드시 먹어야 산다. 막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은 안타깝게도 내일에 대한 일말의 위기의식조차 갖지 않았다.

 

이미 늦었고, 소용없을 거라는 걸 잘 알지만, 지금이라도 농경지를 보전하고 연구소와 신도시는 재개발이 필요한 기존 도시 공간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면서, 생명을 연구하겠다는 연구원이므로 오늘의 기름진 자본이 아니라 내일의 생명, 다시 말해 우리 후손의 건강하고 행복한 생명을 위해 오늘 노력해야 할 행동을 연구해주길 바란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과 권력을 지향하는 국가가 막대한 연구비를 지불하고, 연구비의 다소에 해바라기처럼 추종하는 연구소의 습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개개 연구자들의 건전한 양심을 믿기에, 그들도 자식을 키우는 어버이이므로, 최소한 농경지를 파괴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지구온난화와 석유위기와 식량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찾기에 짬짜미라도 골몰한 성과를 제시해주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아니면 연구소를 빠져나와 시민과학자라는 고단한 길에 동참해주던가. (인천in, 201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