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5. 12. 00:22
 

조류독감이 결국 상경했다. 4월에 전북을 휩쓴 조류독감은 전남을 초토화하더니 충남과 경기도의 닭과 오리를 차례로 도살하게 만들었지만 살처분은 서해안 벨트에서 그치지 않았다. 5월에 파죽지세로 경남과 경북의 방역을 무력화시킨 조류독감은 강원도를 예외로 여기지 않았고, 드디어 서울의 허를 찌른 것이다. 그런데 조류독감은 귀향하기도 했다. 잠잠하던 전남에 다시 나타났다는 거다. 이쯤 되면 전국이 위험지역이라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이번 조류독감은 왜 순식간에 전국으로 전파됐을까. 어떤 이는 안일한 대처를 비난하지만 우리 당국은 그런 지적에 무척 서운해 할지 모른다. 공무원이 과로사하는 마당이 아닌가. 철새가 날아올 때 발생한 예년과 달리 이번 조류독감은 철새가 떠날 무렵 창궐했다. 미처 손쓸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양계농가는 봄에 느닷없이 죽은 닭과 오리가 조류독감 때문이라고 의심하지 못했을 수 있다. 조류독감은 이미 토속화된 걸까. 광진구는 건국대 호수에 내려앉은 애먼 철새를 닦달했지만 철새와 무관한 게 아닐까.

 

사람도 독감에 걸린다. 독감 종류도 많다. 홍콩A형이 있는가하면 파나마B형이 있다. 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한 장소의 이름을 붙여 세계 도처의 지명이 쏟아진다. 어떤 독감이 유행할지 예측하기 어려우니 보건당국은 발생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백신을 비치해야 한다. 자칫 어린이나 노약자 가운데 면역이 약하거나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일부가 사망할 수 있다. 가을이 깊어질 때마다 시민들이 보건소 담장을 에워싸는 건 목숨을 보전하려는 절박함이 때문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독감을 예방하려는 수고일 따름이다. 사람이나 새나 순수하게 독감으로 죽는 사례는 본디 드물었을 것이다.

 

흔히 조류독감은 철새가 옮긴다고 말한다. 죽어 널브러진 철새의 가검물을 조사한 결과 관련 바이러스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철새는 해마다 엄청나게 날아온다. 대부분 건강하게 왔다 건강하게 돌아간다. 수천 킬로미터 쉬지 않고 찾아와 지친 개체 중 일부가 죽었고, 일부 사체에서 문제의 바이러스가 검출된다. 조류독감에 걸려도 멀쩡하게 돌아가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의 배설물이 닭장에 떨어지면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닭장이 아니라 승용차 지붕에서 빗물을 타고 닭장에 스며들어도 닭이 떼로 죽을지 모른다.

 

철새도 사람처럼 독감 때문에 쉬 죽지 않는데, 농가의 닭이나 오리는 왜 떼로 죽어나가는 걸까. 많은 이는 밀집시켜 사육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맞다. 밀집되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그 많은 닭과 오리가 허망하게 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철새도 밀집돼 도래한다. 갯벌을 보이는 족족 매립해 앉아 쉴 공간이 부족하지 않은가. 사람도 밀집돼 있다. 초고층 아파트단지만이 아니다. 학교와 관공서와 시장에서 고열에 취해 코를 훌쩍이는 이가 낯선 이의 옷깃과 어깨를 노상 부딪치지만 닭처럼 비참하게 쓰러지지 않는다. 닭과 오리가 떼로 죽는 데 다른 원인이 있다. 단순히 밀집 때문으로 보기 어렵다.

 

2002년 구제역이 돌 때 10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살처분되었다. 그보다 앞서 영국은 양을 대규모로 살처분했다. 역시 구제역 때문이었다. 세계 최초의 복제동물인 ‘돌리’도 살처분될 뻔했다. 대부분 멀쩡했지만 구제역 발생지역과 가까워 죽어야 했다. 이른바 ‘안전반경’이다. 안전반경 이내의 가축을 모조리 살처분해야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는다. 구제역은 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역사가 긴 질병이다. 그때 안전반경은 없었다. 바이러스가 옮기는 무서운 돌림병이기는 해도 가축이 떼로 죽지 않았다. 7퍼센트 이내를 죽이며 지나가면 이내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조류독감도 사람의 독감 이상으로 역사가 길 것이 틀림없다.

 

구제역으로 돼지와 양과 소가 한꺼번에 죽는 건, 최근에 벌어지는 사태다. 판매 용도에 맞게 과학축산이 유사한 개체끼리 교배를 거듭하다보니 조상이 이겨낸 질병에 취약해질 정도로 유전자가 단순해진 것이다. 요즘 구제역은 사육하는 발굽 가축의 70퍼센트를 죽게 만든다. 나머지 가축의 30퍼센트는 시름시름 앓다 살아나지만 죽여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안전반경 이내의 가축도 대상이다. 그래서 구제역에 이길 품종을 쉽사리 찾지 못한다. 과로사 동반하는 살처분으로 근본 문제를 회피하려는 과학축산의 한계다.

 

구제역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공직자의 시식으로 무마하던 정부는 조류독감에도 예외가 없었다. 닭고기를 삶아 먹으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주장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광우병은 조류독감이나 구제역과 발생 경로가 다르다. 감염되면 100퍼센트 사망으로 연결되는 광우병은 소수점 여러 자리 이하의 그램으로도 치명적이므로 먹거나 바르는 걸 피하라고 관련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에서 경고한다. 그래도 우리 대통령과 농림수산부장관은 먹겠다고 호언했다. 믿자니 더 걱정이다. 한번 먹으면 10년 넘는 잠복기를 감내해야 한다.

 

광우병이든,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든, 발생원인은 공장식 밀집 축산이고, 과학축산이 주도했다는 점이 일치한다. 많은 돈을 많이 벌어들이자고 동물의 본성을 최대한 억압한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극단적으로 육종된 어린 초식동물에게 항생제와 성장호르몬과 동물성 사료를 주자 소는 미쳤는데, 미친 소가 아깝다고 소비자에게 팔아치우자 사람이 미쳐 죽었다. 한데 잠복기가 매우 길더라도 사료를 본성에 맞게 바꾸면 광우병은 급격히 줄어들지만 조류독감과 구제역은 다르다. 밀집 사육 방식을 개선해야하지만 그보다 상실된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켜야 대책을 근본적으로 세울 수 있다. 요는 가축의 본성을 배려하는 축산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온도에 아주 민감하다. 끓이면 죽는 독감 바이러스는 남극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극에 가면 독감 증세가 사라진다고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한다. 재고 백신이 소용없는 이유는 대부분 약효가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그 사이에 바뀐 환경변화에 적응해 과거의 백신이 소용없데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환자의 60퍼센트 이상을 사망하게 만든 고병원성 조류독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위스 국적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독점 생산하는 전용백신인 타미플루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조류독감에 대한 여론의 주목이 거두어지면 전국 곳곳의 양계장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닭을 똑같은 방식으로 밀집해서 사육할 것이다. 삼복더위에 맞춰 한꺼번에 출하하는 닭은 뚝배기 크기에 맞춰져 있다. 그 닭은 조류독감에 여전히 취약하다. 획일적 욕심으로 동물의 본성을 억압한 우리는 부메랑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단지 3킬로미터 안전반경 이내라서 죽은 닭과 오리를 애도하지도 않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신문, 2008년 6월호)